<2레벨로 회귀한 무신 297화>
“뜻밖이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당신이 날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저번에도 성지한의 편을 들지 않았던가.”
무신은 잠들기 전, 롱기누스에게 성지한을 척살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길가메시는 그걸 무신이 롱기누스에게만 명령한 것이라며, 동방삭에게 개입하지 말라고 말한 바가 있었다.
그때의 태도는 명백히 성지한을 보호하려는 것.
한데 이젠 회복을 도와준다니.
롱기누스는 그의 의도가 전혀 파악이 되질 않았다.
“후후, 글쎄. 이건 도와주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소린가?”
“회복을 도와준다는 게, 네가 완치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강림만 가능한 상태로 만들 뿐. 전력을 다하지는 못할 거다.”
“……전력을 다하지 못해도, 강림할 정도만 회복하면 저놈 정도는 이길 수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상대는 무신의 무혼을 지닌 자. 그것 외에도, 측정 불가능한 힘을 많이 가지고 있지. 마스터가 스페이스 에어리어 3을 도전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롱기누스는 그 말에, 확실히 아니라고 하지는 못했다.
아바타를 통해 싸웠던 성지한은 확실히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모든 힘을 쓸 수 있으면 모르되.
강림만 가능한 정도로 지구에 가서 싸운다면, 확실히 이긴다고 장담하질 못했다.
“……대체 무슨 의도지?”
“나에게는 너희 둘의 격돌이 중요하다. 누가 이기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아.”
“…….”
“원래는 네가 회복한 후의 전투를 기다렸지만, 그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마냥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하는 거지. 어떤가. 그럼에도 나의 도움을 받겠는가?”
“결국엔, 싸움을 붙이기 위해서 도와주는 거군.”
길가메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롱기누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너는 왜 그렇게 나와 그를 싸움 붙이려는 거지?”
“그건 알려 줄 수 없다. 대신,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네가 원하는 확실한 죽음을 약속하지.”
“……그걸 네가 줄 수 있는가?”
“그렇다.”
무신의 종이 되기 전에도, 죽지 않는 몸이었고.
그 영원한 생명을 저주하던 롱기누스는 그의 확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뒤의 복잡한 사정 따위는,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저건 왜 저런 건지. 알려 줄 수 있나? 순수하게 궁금하군.”
“진화 한계를 말하는 건가.”
“그래.”
“네가 죽지 않는 몸이 된 것도, 저거 때문에 그런 거다.”
“뭐…….”
“태초에, 많은 일이 있었지.”
길가메시는 웃으면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미, 저것에 대해 알고 있다. 기억이 봉인되어 있을 뿐이지.”
기억이 봉인되어 있다니.
롱기누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신’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자신.
하나 그 업을 무신에게 빼앗긴 이후로, 그의 종이 되어서 그가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왔다.
이 생애에, 봉인된 기억 같은 건 없었는데…….
“신살의 업, 그전의 기억은 없느냐.”
“딱히 특별한 건, 없다.”
“그럼 나도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군.”
“그냥 말해 주면 안 되나?”
“나도 ‘옛 동료’에게 그러고 싶지만.”
툭. 툭.
길가메시는 자리에 주저앉아, 땅바닥을 두드렸다.
“태초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별의 주인과 한 약속에 위배가 돼서 안 되겠군.”
“……허, 싱겁긴. 그런데 옛 동료?”
“그래. 우리는 예전부터 협력 관계였지…….”
지이잉.
그 말을 하자마자, 길가메시의 몸이 잠시 투명해졌다가 돌아왔다.
“이런, 이 정도 이야기도 무신의 금제에 걸리는군.”
“……됐다, 그럼.”
“알겠네. 회복을 도와주겠네.”
“그래.”
길가메시의 이야기를 듣고 롱기누스는 머리만 더 복잡해졌지만.
일단은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스르르륵…….
“그럼 시작하지.”
길가메시의 몸에서, 사슬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 *
20라운드.
그것은,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북벽의 디펜스와 게임 진행 방식이 달랐다.
[망자의 안식처에서 ‘대기 길드’에서 가장 강한 자를 소환합니다.]
번쩍!
팔짱만 끼고 있던 성지한은 새로운 공간, 망자의 안식처로 소환되었으며.
[망자의 총공세가 시작됩니다. 적의 습격을 방어하세요.]
남아 있는 길드원들이 서 있는 성벽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유령들이 소환되고 있었다.
바로 전 라운드와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많은 적.
거기에 성지한까지 다른 데 소환돼서 없으니, 저걸 방어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저건 좀 많은데…….”
“아무리 영체라도 그렇지, 뭐 저리 크냐?”
“기세도 아까보다 훨씬 강해 보여요.”
“이거, 성지한 님 없이는 막기 힘들 것 같은데…….”
“역시 마지막 라운드인가…….”
19라운드까지 성지한의 힘 3퍼센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랭커들이었지만.
적의 규모가 워낙 차원이 달라, 이건 힘들 거라고 판단하고 있을 때.
[지금까지 플레이어 개인에게 누적된 스코어 값에 비례하여, 플레이어가 강화됩니다.]
그냥 밀리라는 법은 없는 건지, 19라운드까지 벌어 두었던 점수에 따라 플레이어들이 강화되고.
[망자의 안식처에서 나오는 우두머리를 처치하세요. 상대를 처치할 때마다, 길드원들에게 특수 버프가 부여됩니다.]
망자의 안식처로 소환된 성지한의 활약 여부에 따라.
밖의 길드원이 강해질 수 있는 방도도 생겼다.
=뤼에 인베스트먼트 옥타인의 말이 정말 옳았군요! 스코어에 비례해서 플레이어들이 강화된 이후, 움직임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성지한 선수의 3퍼센트 버프도 여전히 유지되는 모양입니다. 이러면, 평소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적과 대항할 수 있겠습니다!
해설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류가 마지막 라운드를 주목하고 있을 때.
성지한은 워프된 망자의 안식처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방에 깔린 저건 눈…… 인가?’
망자의 안식처.
드넓게 깔린, 새하얀 대리석 바닥을 제외하고는.
사방은 거대한 크기의 붉은 눈알로 가득했다.
그 눈은 모두 움직이며, 성지한을 주목하고 있었다.
하나 그러한 주목도 잠시.
[이게 강자라고,]
[새로 깃들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몸이로구나.]
[나는, 노리지 않겠다.]
눈 쪽에서 음성이 들리더니, 하나둘씩 감기는 눈알.
가지각색의 크기를 지닌 붉은 눈 중에서도.
특히 커다란 눈들이 먼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상대는 나오지 않고, 점점 사라지는 사방의 눈.
-뭐야 이거. 왜 상대가 안 나옴?
-저 눈알들이 인류의 육체를 보고 실망하는 거 같은데 ㅋㅋㅋㅋ
-으, 밖에는 지금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 빨리 적이 나와야 함 ㅡㅡ
-성지한 버프 + 스코어 버프를 받고도 힘들어 보이던데…… 여기서 또 버프 타야 북벽이 버틸 수 있을 듯.
-성지한이 또 해 줘야 하는 건가?
-ㅇㅇㅇ 성지한이 인류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음;
망자의 안식처에서 버프를 받아야 북벽의 길드원들이 생존할 수 있는데.
막상 적이 나오질 않으니 애가 타는 시청자들.
하지만.
[나는, 나는 저거라도 먹겠어!]
작은 눈 하나에서 빛이 터져 나오면서.
[성좌의 파편, ‘??’가 당신에게 도전합니다.]
이름이 ??로 뜨는 적이 성지한 앞에 나타났다.
영체 상태로 몸이 세로 반 토막밖에 남지 않은 적은.
늑대 머리를 한, 이족보행의 종족이었다.
‘기세는 꽤 강해 보이는군.’
성좌의 파편이라 그런가.
반절밖에 없는 영체였지만, 그가 내뿜는 기세는 상당했다.
힘만 따지자면, 예전 화신의 잔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몸, 몸을 내놓아라!]
반만 남은 입을 쩍 벌린 채, 발을 박차는 늑대 머리.
그러자 그의 영체는 단번에 사라졌다.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 오는 적.
겉으로 보이는 힘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저 정도 급이면, 지금의 성지한에게는 손쉬운 상대였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태산압정泰山押頂
촤아악!
암검 이클립스가 세로를 긋자, 반절 쪼개진 상태에서 한 번 더 쪼개진 늑대 머리.
[이, 이 힘…… 서, 설마!]
그는 소멸하기 전에, 경악한 목소리로 성지한의 검격을 바라보았다.
태산압정.
어떻게 보면 세로베기의 극에 불과할진대.
그는 뭔가 이 공격을 아는 눈치였다.
“힘이 왜?”
성지한은 그리 반문하며, 검을 이번에는 가로로 휘둘렀고.
[이거, 정말 무신의 힘이냐…….]
촤아아악!
늑대 영체는 결국 처음에 비해 가로세로 1/4 토막으로 쪼개진 채.
무신을 거론하며 사라졌다.
[길드원 전체에게 성좌의 파편 ‘??’의 힘 일부가 부여됩니다.]
[힘과 재생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성지한을 비롯해 모든 길드원에게 뜬 메시지.
그는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성좌의 파편이 지닌 힘이라 그런가, 조금 체감이 되네.’
무혼을 지닌 성지한에게도, 이거 효과 있네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버프.
그가 이 정도니.
-오……! 역시! 믿고 있었다구!
-저 ?? 버프 쩌는데? 지금 북벽에서 전사들 몸이 막 재생되고 있음ㄷㄷ
-팔 잘린 게 힐도 안 받았는데 올라오네 ㅋㅋㅋㅋ
-마치 엘프 같은데? 니들만 이런 거 즐겼냐? 개좋네 진짜 ㅋㅋㅋ
북벽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는 전사들에겐, 이번 버프가 더욱 크게 체감이 왔다.
그렇게 완전히 밀릴 것 같은 전선이 이 버프로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되었을 때.
[허 이거 설마…….]
[무신의 힘인가?]
[다음엔 내가 나서겠다.]
번뜩!
망자의 안식처 안.
거의 사라졌던 눈동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성지한의 몸을 보고 실망했을 땐 언제고.
태산압정과 횡소천군을 보자마자, 다들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 *
태산압정과 횡소천군을 보여 주자마자 달라진 분위기.
[비켜라. 잡것아. 성좌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린 것이 나보다 나서려고 그러는가?]
[아니, 연차가 중요해? 힘이 중요하지.]
[연차가 부족하면 힘도 부족한 것이다.]
[영체를 봐라. 난 당신보다 무신에게 덜 베였다고!]
붉은 눈은 자기들끼리 먼저 나서겠다고 싸우면서도.
결국 순서를 정해서, 하나씩 강자가 소환되고 있었다.
[무신! 나의 세계를 남김없이 파괴시킨 그 괴물과 넌 대체 무슨 관계냐!]
이번에 소환된 성좌의 파편은, 거대한 머리와 손 3개만 남은 기괴한 괴물.
하지만 그의 힘은 파편만이 남았음에도 엄청났다.
‘이거 만만찮네.’
쾅!
한 번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완파되는 대리석 바닥.
그리고 그 아래에는 희끄무레한 영체들이 모두 성지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망자의 안식처라더니, 안식은커녕 산 자를 잡아먹으려고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성지한이 ‘방랑하는 무신’의 무공을 사용하자, 모두 분위기가 격앙되어 그를 잡아먹으려 들고 있었다.
-와…… 성좌의 파편, 세긴 세다.
-성지한이랑 대등하게 싸우네;
-아까 늑대 머리는 엄청 약한 놈이었어.
-역시 성좌가 세긴 센가 봐…….
-으, 북벽 이제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데?
카아아아!
입에서 푸른 불을 내뿜으며, 세 손을 어지러이 움직이는 영체.
그의 공격은, 최근 만나 본 적들 중에서는 단연 까다로웠다.
‘이 정도면 예전에 성좌 시절에도 꽤 강력한 축이었겠군.’
스탯 적을 얻으면서 강해진 성지한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쉽지 않은 상대.
역시 아직 성좌급과 싸우기에는 무린가.
[무신이랑 네놈, 대체 무슨 관계냐고 묻질 않느냐!]
“글쎄다? 넌 무신한테 죽은 거 같은데, 투성에 진열되어 있지 않고 왜 여기 있냐?”
[투성에 진열되어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죽어서 모르냐? 거기에 무신이 사냥한 성좌들이 무기 형태로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던데.”
[뭣…….]
성지한의 말을 듣고 적이 잠시 멈칫했을 때.
그는 특단의 무공을 사용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만귀봉신萬鬼封神
영체를 상대로,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는 만귀봉신.
지금까지 상대한 적은 이걸 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지만, 이번 세 손의 상대는 이 권능을 사용해야 했다.
파악!
허공에 검이 꽂히자, 순식간에 생성되는 무늬.
그걸 보자 상대의 반응이 더욱 격해졌다.
[이, 이 건, 날 마무리했던……!]
슈우우욱!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만귀봉신의 진이 움직이고.
[히이이익……!]
[저, 저건 피해야겠군…….]
[차라리 여기가 낫다. 저 안엔 절대 들어가면 안 돼!]
[복수는, 잊자……!]
사방에서 성지한을 노려보던 성좌의 파편들은, 만귀봉신을 보자 화들짝 놀라 언제 그랬다는 듯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눈알.
[으아아아!]
그리고, 손 세 개의 적은 만귀봉신에 저항하지 못한 채, 이 안으로 휙 빨려 들어왔다.
‘역시 유령 상대로는 만귀봉신이 최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이번엔 무슨 버프가 들어오나 기다렸지만.
‘……없나?’
다른 성좌의 파편을 없앴을 때와는 달리.
만귀봉신으로 흡수한 적은, 배틀넷에서 버프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거, 북벽의 아군에게 버프가 안 가면 버티기 힘들 텐데.
“얘들아, 이거 안 쓸게. 나와서 싸우지 않을래?”
성지한은 주변을 바라보며 그리 외쳤지만.
눈들은 이미 모두 다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만귀봉신 하나 보고, 잔뜩 쫄아 버린 적 때문에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는 상황.
[북벽의 길드원이 전멸했습니다.]
[길드 미션이 종료됩니다.]
게임이 결국 그렇게, 버프가 끊겨 길드원이 전멸하고 종료되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지.’
다음부터는 만귀봉신을 더 아껴 쓰자고 생각하면서, 그는 로그아웃하려고 했지만.
스으으으…….
갑자기 아까 만들었던 만귀봉신이, 그의 앞에 다시 떠오르더니.
펑!
무언가를 밖으로 토해 냈다.
‘이건…… 장갑?’
그것은, 아까의 유령 손과 똑 닮은 하얀빛의 장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