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85화>
‘이 시스템 메시지창은 붉은색이군.’
평소 반투명한 상태로 뜨는 시스템 메시지창과는 달리.
성지한에게 직접적으로 경고한 이번 메시지는 배경 색깔이 붉은색이었다.
스탯 ‘적’과 연계된 메시지라 그런가.
[남은 시간 23:58:57]
그리고 공허의 수련장에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째깍째깍 줄어들던 남은 시간은.
수련장에 오자, 줄어들지를 않았다.
‘대성좌가 이 안은 감지하지 못하는 건가?’
이러면 시간제한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
‘물론 이제 곧 5월 말이니. 일정이 빡빡하긴 하지만…….’
저 타이머에서 감지만 안 될 뿐이지, 시간은 계속 흐르는 공허의 수련장.
1차적으로는 5월 말의 일정을 소화할 때까지, 적의 능력을 흡수하여 은폐하는 걸 목표로 해야 했다.
하나.
‘정 흡수가 안 되면, 스페이스 리그 경기 1경기 정도는 패스해야지.’
괜히 인류를 위해 무리해서 모든 경기를 챙기려다가, 대성좌의 타깃이 된다면 일을 완전히 망치는 격이니까.
5월의 일정을 포기하더라도, 일단은 적을 완벽히 얻어 은폐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화르르륵!
성지한은 예전에 적뢰나, 용염을 끌어올렸을 때처럼 적을 피워 올렸다.
적뢰를 연상할 때는 뇌전의 힘이 우선시되었으며.
용염을 연상할 때는 불의 힘이 우선시되며 치솟는 적의 힘.
두 속성을 다 아우르는 이 권능은, 일단 예전 능력의 강화판으로만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다뤄 보자.’
그렇게 공허의 수련장에서, 적을 수련하기 시작한 성지한.
‘일단, 적뢰와 용염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스탯은 이미 적으로 통합되었지만.
성지한은 힘이 따로따로 나오는 이유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인식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적뢰는, 오랫동안 운영했던 힘인 만큼.
뇌전의 힘에 대한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으니까.
‘둘 다 써야 한다.’
적뢰도 용염도 아닌, 적의 힘 자체를 끌어올린다.
이렇게 자신의 인식 체계를 바꾸기 위해, 성지한은 끊임없이 힘을 발현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해서.
나중에는 전력을 다해 끌어올리며, 최대한 통합을 하려고 시도하자.
[적의 힘이 고갈되었습니다.]
붉은 시스템 창에, 적의 힘이 다 떨어졌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흠.”
성지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경을 바꿀 수 있는 공허의 수련장.
우거진 숲을 띄웠던 이번 배경 맵은, 이미 적의 권능에 초토화되어 나무가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새까맣게 타 버린 대지 위에서, 계속 피어오르고 있는 적색의 불꽃을 보고 성지한은 생각했다.
‘적 스탯 5…… 화력만 따지면 용염 250, 아니 그 이상도 하겠어.’
사용하면 할수록 힘을 더 끌어낼 수 있는 적 스탯.
과연 무등급의 능력이라 할 만했다.
거기에.
[태양의 빛을 흡수하여, 적의 힘을 보충합니다.]
수련장 배경 맵에 띄워져 있는 태양도 힘을 내포한 건지.
스탯 적은 태양의 힘을 흡수하면서, 고갈된 능력을 빠르게 충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용염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던, 최초의 브레스도 태양에서 쏟아져 내리더니.
적의 능력과 태양, 확실히 연관이 있는 건가.
힘의 출력에서도 그렇고, 보충에서도 그렇고.
확실히 기존의 능력에 비해, 진일보된 스탯 적.
성지한은 그렇게 힘을 보충하고 쓰고를 반복하며.
결국 적 스탯의 한계치까지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비록 스탯 수치는 5지만, 예전 200 시절에 비해 화력이 2배 이상 강해진 화염과 뇌전의 능력.
‘그렇지만 확실히 흡수하여 은폐하라는 조건은 충족이 되지 않았군…….’
남은 시간을 가리키는 타이머는 멈춘 상태로, 계속 띄워져 있는 상태.
힘의 출력을 자유롭게 다루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을지도 모를 만큼 계속 적의 힘을 다루던 성지한은.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다른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저번 경기 리플레이를 돌려 보자.’
스탯 적을 얻자 보였던, 신살의 창의 숨겨진 코드.
성지한은 그걸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떠오르는 코드.
[타깃 조건, 일부 일치]
[소멸 코드 발현]
정체불명의 글자가 떠오르고 난 뒤.
[타깃 정지 코드 실행 중]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적색의 글자가, 떠올랐다.
그런데.
‘음?’
저번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적색의 글자 앞에.
태양을 닮은, 특이한 형상의 문양이 슬쩍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게 성지한의 눈에 들어왔다.
‘저번엔 분명히 없었는데…… 스탯 적을 다룰 수 있게 되어 보이게 된 건가?’
성지한은 리플레이를 다시 최대한 천천히 돌려보았다.
그러자 또다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태양 마크.
그리고 그 마크를 보자, 성지한은 본능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게 코드를 은폐하는 핵심이군.’
왜 태양 마크가 은폐를 담당하는 건지, 이유는 몰랐다.
그냥 보자마자 이해했을 뿐.
‘이것도 스탯 적이 작용한 건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신살의 창을 처음 맞았던 예전 경기도 돌려보았다.
그때도, 타깃 정지 코드를 비롯하여 태양 마크는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스탯 적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을 뿐.
‘흠…… 신살의 창은 결국 멸신결 철혈십자와 연계되어 있지.’
멸신결 철혈십자.
십자를 그리고, 피와 강철이 흡수된 후 창으로 가운데를 뚫으면.
그곳의 모든 생명체가 즉사하는 이 무공은, 막상 실전성이 매우 떨어졌다.
그래서 성지한도 최근에는 그냥 적뢰포를 사용하거나, 철혈십자를 떼어다 십자가 방패로 쓰는 등 거의 활용을 하고 있지 않았다.
‘적의 권능을 얻었으니, 이 무공을 다시 분석해 보자.’
성지한은 검과 창을 교차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철혈십자鐵血十字
철의 가로획.
그리고, 피의 세로획.
철혈의 십자가 그렇게 대지에 새겨질 동안, 코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푹!
성지한이 봉황기를 들어, 가운데를 내리찍자.
조금 전 적색의 글자를 숨겼던 태양 마크가 드러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선행 조건 완성]
[소멸 코드 발현]
붉은색의 글씨가 드러났다.
‘역시 철혈십자에도 코드가 있었나.’
적을 얻고 나서야, 드디어 볼 수 있는 코드.
‘선행 조건이라 함은, 십자를 그리는 이 불필요한 절차를 말하는 것이겠군.’
성지한은 철혈십자를 이리저리 개조했었지만, 이것이 지닌 즉사 효과는 제대로 구현하질 못했다.
그건 결국, 즉사 효과의 핵심이 저 코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코드를 입력할 수 있다면, 굳이 십자의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업그레이드된 무혼을 통해, 가능하게 된 코드 입력.
물론 조건은 되었다고 해도, 쓰는 법 자체를 몰라 지금껏 코드 입력은 보류되었지만.
“흠…….”
태양 마크와 함께 붉은색으로 새겨졌다, 사라지는 글자를 보며.
성지한은 이번에 얻은 힘, 적의 능력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리플레이 때와는 달리, 성지한이 직접 철혈십자를 통해 코드를 발현해서 그런가.
‘무혼이 업그레이드되었을 때, 이를 통해 코드를 입력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움직이는 건 적이군.’
코드 입력에 대한, 실마리가 서서히 잡히고 있었다.
‘좋아…….’
배경을 리셋한 성지한은.
또다시 철혈십자를 사용하며, 글자를 띄웠다.
그때마다 꿈틀거리는 적.
‘스페이스 리그, 한 경기는 패스다.’
성지한은 이번에 얻은 단서를 확실하게 챙기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계속 반복해서.
적을 운용하고, 철혈십자를 띄우던 그는.
‘이건가…….’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힘을 구현했다.
* * *
평야 지대를 배경으로 한, 공허의 수련장.
그곳에 홀로 선 성지한은 검지 손가락을 펼쳤다.
그러자.
치이이익!
손가락 끝에, 피어오르는 붉은 불꽃.
겉보기에는 그저 화염을 피워 올린 것 같지만.
그 내부는 수많은 권능이 혼합되어 있었다.
성지한이 지니고 있는 무혼과 적.
거기에 공허까지 합쳐져, 불꽃 안에는 그가 지닌 모든 권능이 존재했다.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치이이익……!
허공에 글자가 새겨졌다.
[멸]
성지한이 수도 없이 보았던, 소멸 코드의 멸.
그 문자를 다 완성하기도 전에, 불꽃은 순식간에 힘을 잃어 갔지만.
“됐군……!”
결국 멸 문자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사아아악……!
문자를 그린 허공이, 검은색으로 변하며.
주변의 초원 지대와, 완전히 괴리된 공간으로 변했다.
“……이건.”
두 눈을 크게 뜬 성지한은, 그것을 보며.
수련장의 배경을 바꾸어 보았다.
평야 지대에서 숲으로.
숲에서 하늘 배경으로.
세상이 그 어떤 배경으로 바뀌어도.
멸이 그려졌던, 그래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던 허공은, 그대로 소멸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멸 코드의 힘인가.”
성지한은 그걸 보고, 힘이 쭉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코드 입력.
단 한 글자만 썼지만, 전신의 힘은 모두 빠져나간 상태였다.
적은 물론이거니와.
공허고 무혼이고, 성지한의 체내에 있는 힘은 모조리 고갈되어 있었다.
그만큼 코드를 작성하는 건, 강력한 힘을 요구했다.
‘……쓰는 법은 알았지만. 새기는 게 힘들군.’
인류를 초월하여, 예비 성좌까지 오를 플레이어가 되었지만.
코드를 쓰는 건, 그것 이상의 힘을 요구하고 있었다.
‘레벨 업 더 해야겠네.’
성지한은 주저앉은 상태에서, 성장 욕구를 느꼈다.
더 성장하여 이 코드를 자유롭게 다루게 된다면, 무서울 게 없었으니까.
그러려면, 승급전에 참여해야겠지.
‘슬슬 지구로 갈까.’
글자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며칠이 흘렀는지 감도 오지 않는 상황.
성지한은 이제 슬슬 귀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 전에…….”
성지한은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처럼 생긴, 붉은색의 반점.
스탯 적을 얻은 후, 생겨난 문양이었다.
그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힘을 회복하다가.
“후우…….”
기운이 다시 모이자, 손에 다시 불꽃을 피워 올렸다.
코드 입력이 가능한, 불길.
그는 그걸 가슴에 새겨진 초승달 근처에 가져다 대었다.
“큭…….”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불꽃을 통해 가슴에 문양을 새겼다.
그가 새긴 것은, 붉은 글자를 숨겼던 태양 마크.
초승달 모양의 반점 위에 그것이 그려지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탯 ‘적’이 은폐됩니다.]
[관리자 외에는, 적의 힘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코드 입력 시, 은폐가 일시적으로 풀립니다.]
초승달 문양은 모습을 감추고.
태양 마크도 잠시 빛을 번쩍이다가, 성지한의 가슴팍에서 사라졌다.
‘타이머도 사라졌군.’
허공에 계속 떠 있던 남은 시간 메시지.
최종 시간은 23:58:57이었다.
‘실전에서 소멸 코드는 결정적일 때만 사용해야겠어.’
지금은 저렇게 시간이 멈춰져 있지만.
소멸 코드를 사용하면, 다시 대성좌의 감지가 작동할 테니까.
성지한은 그렇게 스탯 적까지 은페를 한 후, 홀가분하게 수련장을 나왔다.
‘여기는…… 배틀넷 센터인가.’
수련장에서 로그아웃하자마자 드러난 풍경은.
성지한에게 눈에 익은 곳, 배틀넷 센터였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전이 끝난 후, 급한 마음에 집에 가지도 않고 수련장에 들어갔었지.
‘일단은 집에 가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고, 배틀넷 센터를 나섰다.
스탯 적이 제대로 은폐되었는지, 지구에 왔음에도 떠오르지 않는 타이머.
‘엘레베이터 타긴 귀찮으니까.’
성지한은 경공을 극성으로 발휘하여, 순식간에 펜트하우스에 옥상에 도착했다.
드르륵.
창도 가볍게 밀고, 거실로 들어온 성지한.
“아…… 까, 깜짝이야! 언제 왔어, 삼촌?”
“방금.”
머리를 감고 나온 윤세아가 그런 성지한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그를 반겼다.
“아. 조금만 빨리 오지. 아쉽다.”
“스페이스 리그 경기 끝났어?”
“응…… 어제.”
수련장의 성능이 좋아져서 그런가.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날짜가 많이 지나진 않았네.
“어떻게 됐어?”
성지한은 경기 결과를 물어보았다.
“졌어. 삼촌 없었잖아.”
“상대가 누구였는데. 설마 세계수 엘프?”
“차라리 그랬으면…… 아니다. 그럼 우리 사형당했으려나?”
윤세아는 면목 없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상대는 조인족이었어.”
“……리그 꼴찌?”
“응…….”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인족.
성지한에게 행성 개척 맵에서 된통 당하고.
스페이스 리그에서도 꼴찌였던 종족.
아무리 자신이 참가하지 않았다지만, 리그 꼴찌한테 지고 있냐.
“……경기 뉴스, 볼래?”
“그래. 봐 보자. 꼴찌한테 진 인류를.”
“으…… 그래도 나름 접전이었어.”
삑!
윤세아는 TV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