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83화>
=블라디미르 선수…….
=이, 이 모습은 설마 성좌가 강림한 겁니까?
=예. 러시아 쪽 영상을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선수, 자국 선수들을 모조리 터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주변 몬스터의 피까지 흡수했어요!
블라디미르를 제외하고는, 전멸한 러시아 대표팀.
그의 주변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수많은 몬스터들의 시신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성지한과 발할라 맵에서 맞붙을 때에 비해, 피를 더 흡수해서 그런지.
블라디미르의 기세는 그때보다 확실히 강했지만.
‘저 정도면 이기겠는데?’
그때에 비하면, 강해진 건 성지한도 마찬가지였다.
“보는 눈이 많군.”
블라디미르가 손을 올리자.
파아악!
허공에 피가 터져 나가며.
=아…… 또. 또 화면이 피로 가려집니다!
=어차피 성좌임이 밝혀졌는데, 블라디미르 왜 또 화면을 가리나요!
=하필 중요한 순간에……!
중계 화면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저번처럼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그는, 성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지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성장했구나. 주인께 널 척살하라는 명을 듣고는, 납득할 수 없었는데. 널 직접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도 널 직접 보니까 말이지. 생각보다 상대하기 쉬워 보여.”
“어디.”
스으으으…….
블라디미르의 온몸에 혈기가 피어오르고.
핏줄기는 곧, 갑옷처럼 변해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리고 곧, 그의 두 손에 거대한 혈십자검이 생겨났다.
“그 말. 증명해 보아라!”
슉!
눈 깜박할 사이에, 성지한에게 돌진해 오는 블라디미르.
그 움직임.
저번에 상대했을 때에 비해, 훨씬 빨랐다.
하지만.
‘고엘프만큼은 아냐.’
성좌급이었던 고엘프와 전투할 때에 비하면, 이번 그의 움직임은 확실하게 보였다.
휙!
혈십자검이 성지한을 강하게 내리찍었지만.
지지직……!
적뢰에 물든, 봉황기는 그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 내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포赤雷砲
창에서 잠시 적뢰가 멎나 싶더니.
곧바로 창끝에서, 붉은 뇌전이 거세게 뻗어 나왔다.
이렇다 할 전조 없이 즉발로 발동하는 적뢰포.
그러자 블라디미르의 혈십자검이 순식간에 적뢰에 물든 채, 기세가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음……!”
침음을 삼킨 블라디미르가 다시 혈기를 피워 올려 혈십자검을 크게 만들려 했지만.
지지지직……!
적뢰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쏟아지며 블라디미르의 전신을 강타했다.
핏빛의 갑주는 처음엔 적뢰의 공격을 몇 번이고 튕겨 냈지만.
파지직……!
계속된 공격에 버티질 못하고, 갑옷의 한편에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의 틈이 생기자.
화르르륵!
적뢰는 그 안으로 스며들며, 순식간에 블라디미르의 몸을 안에서부터 불태웠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혈갑주.
혈십자검도, 급격히 쪼그라들다가 사라졌다.
‘이거…… 너무 싱거운데?’
적뢰와 용염.
두 스탯을 얻어, 자하신공까지 활용하는 성지한의 무력은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스탯이 아직 합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면. 나중엔 더 기대해 볼 만 하겠어.’
잔여 스탯을 모두 용염에 투자하기로 한 성지한.
스탯 포인트를 몰빵한 결과, 용염의 수치는 197이었다.
적뢰와의 격차는 불과 3 차이.
사실 이 정도 수치면, 한번 융합을 시도해 보아도 되겠지만.
3의 차이로 혹시나 실패할지도 몰랐기에, 성지한은 둘 다 200일 때 융합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합치진 않아도, 어쨌거나 용염에 투자한 게 있어서 그런지.
적뢰가 내포한 불의 힘은 예전보다 훨씬 강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피를 모아 온 블라디미르가, 불길에 잠겨 사라질 정도로.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군.”
그때.
저 멀리 대지에 있던 피 웅덩이에서, 블라디미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슈우우욱!
피의 대지에, 흩뿌려진 핏물이 다시 블라디미르에게 흡수되며.
그가 기존의 육체보다, 조금 더 커져 갔다.
핏빛 갑주를 입은 채, 혈십자검을 다시 쥔 혈기사.
그는, 그 상태에서.
휙!
성지한을 향해 다가오는 게 아니라, 뒤쪽의 몬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펑! 펑!
순식간에 터져 나가는 몬스터 무리.
거대 괴수도, 비행종도 무리 지어 있던 몬스터들은 혈기사가 다가갈 때마다 모조리 피를 빨렸다.
‘흠.’
성지한은 그 모습을,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몬스터의 피를 흡수하며, 힘을 기르는 블라디미르.
실전이었다면, 이를 막기 위해 최대한 접근해 견제했겠지만.
‘지금 아바타 형태의 롱기누스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해. 여기서 최대한 강해져야, 나중에 성좌 롱기누스가 실제로 강림할 때 대비가 된다.’
오히려 인게임에서는, 져 봤자 큰 페널티도 없으니.
아까처럼 간단하게 터뜨리느니, 반항하게 힘을 기르도록 두는 게 나았다.
그래야 강해진 블라디미르와 싸우며, 실제 롱기누스와 격돌할 때 쓸 만한 정보를 얻어 갈 수 있겠지.
그리고.
“이 정도면. 이 아바타의 한계군…….”
기존보다, 두 배정도 커진 블라디미르가 그리 중얼거리자.
“그래? 그럼 간다.”
슉!
성지한은 팔짱을 풀고, 바로 그에게 나아갔다.
“수혈!”
조금 전보다 훨씬 강해진 블라디미르가, 성지한에게 손을 뻗어 그의 피를 몬스터들에게 한 것처럼 뽑아 내려 했지만.
그의 혈기는, 성지한의 무혼을 전혀 뚫을 수 없었다.
“이게 끝이냐?”
촤아악!
순식간에 커진 이클립스가 블라디미르의 몸을 가르고.
스멀스멀…….
블라디미르의 몸에서 나온 피가, 갈라진 몸을 다시 이었다.
조금 전, 적뢰에 당했을 때에 비하면, 쉽게 손상이 수복되는 블라디미르.
그는 자신을 벤 암검 이클립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성지한에게 물어보았다.
“……아까의 붉은 뇌전은 쓰지 않을 것이냐? 이 정도 일격이면,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한데.”
“어. 그거 쓰면 너무 쉬워서.”
“하. 건방을 떠는구나……!”
블라디미르가 발끈하며 성지한에게 검을 뻗었지만.
캉! 캉!
두 검은 몇 번, 검격을 주고받나 싶더니.
“음……!”
치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혈십자검이 갈라지며.
툭. 툭……
그의 목마저, 바닥에 떨어진 채 뒹굴었다.
“이것 봐. 쉽잖아.”
스윽.
성지한은 검을 거둔 채, 떨어진 목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
“그렇군. 아바타에 강림하는 것으로는, 아무리 힘을 끌어모아도 한계구나.”
떨어진 목 상태에서 입을 여는 블라디미르.
그의 태도는, 마치 이런 패배를 예상이라도 한 것마냥 덤덤했다.
“인정하겠다. 아바타로는 널 상대할 수가 없어.”
“너…… 나 왜 불렀냐?”
“뭐?”
“무신의 명에 따라 날 척살할 거면, 성좌가 직접 지구에 강림해서 날 찌르면 끝나는 문제 아니었나? 굳이 인게임에서, 아바타를 통해 나와 싸우는 이유는 뭐지?”
성지한에게 신살의 창을 쓰기는 사치니, 이번 게임에 나오면 십자에 달아서 없애주겠다던 롱기누스.
하나 그는 성지한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한 채,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유라…….”
스으으으…….
성지한의 물음에, 피로 변해 사라지는 블라디미르의 얼굴.
그 머리는, 날아갔던 블라디미르의 육신에서 다시 생성되었다.
“너는, 나의 업을 네 식대로 개조했지.”
“철혈십자를 말하는 건가? 그랬지.”
스으윽.
성지한은 검지 손가락 두 개로, 십자가를 그렸다.
그러자.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철혈십자鐵血十字
부우우웅……!
새하얀 빛의 십자가가 성지한의 전방을, 보호하듯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무기로 십자를 교차해야 발현되었던 철혈십자가.
이제는 두 손가락만으로도, 손쉽게 발현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걸 구현하다니.”
“사람이 발전해야지.”
“하.”
그 말을 들은 블라디미르의 표정이 구겨졌다.
‘업’의 정해진 방식을, 완전히 파괴하여 자기 식대로 개조하는 성지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피어오르는 불쾌감은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하나.
“……그래서, 그걸로 끝이냐?”
그는 그 감정을 애써 가라앉힌 채, 성지한에게 물어보았다.
“뭐?”
“나의 업을 개조한 게. 그거로 끝이냐고 물었다.”
“글쎄다? 요즘은 잘 안 써서 말이지.”
“그런가.”
스으으으…….
블라디미르의 손에서, 혈십자가 사라지고.
“그럼, 이제부터 나의 업을 개조해 보아라.”
그 대신, 혈창이 천천히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넌 나에게 결국 죽을 테니까.”
무신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신살의 창.
그것이 블라디미르의 손에, 쥐어졌다.
* * *
롱기누스의 혈창.
그것의 파괴력은, 성지한도 잘 알고 있었다.
‘뇌신의 보호벽을 부순 건, 결국 롱기누스의 창이었지.’
그 강대한 무신이, 벽에 가로막혔을 때 무기로 뽑아 든 게 바로 저 혈창.
비록 무신이 사용한 것과, 아바타 블라디미르가 사용하고 있는 혈창의 힘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신살의 창은 나타난 것만으로도,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블라디미르에게 전하라 하지 않았나? 그 창. 나한테 쓰기엔 사치라며?”
성지한이 혈창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한마디 하자.
“지금 찌르진 않을 것이다.”
뚝. 뚝…….
온몸에서, 땅바닥에 피를 흘리고 있는 롱기누스가 그리 이야기했다.
신살의 창을 소환하고나서부터는.
급격히 형태를 잃어가는, 블라디미르의 육신.
하나 그는 자신의 몸 상태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다만, 겨눌 뿐.”
창끝을 성지한에게 향했다.
그러자.
뚝.
성지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예전 신살의 창에 직격당했을 때 느꼈던 현상.
육신의 제어력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급격히 무너지고 있던 블라디미르의 육신도, 핏방울이 허공에 멈춘 채로.
가만히 있었다.
‘시간 정지인가…… 저번에도 느꼈지만. 몸의 제어가 거의 안 된다.’
예전에 비해, 월등히 강해진 성지한이었지만.
신살의 창이 그를 타깃팅하자, 몸뚱어리는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그나마 내부에서 움직이려고 드는 건, 무혼과 공허의 힘 뿐.
새로 얻은 적뢰나 용염은, 미동도 하질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게 멈춘 상황에서.
피시시시…….
혈창만이 꿈틀거리다가, 창끝에서 핏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보라색 글자.
[타깃 조건, 일부 일치]
[소멸 코드 발현]
예전에 롱기누스의 창에 찔렸을 때, 보았던 문자와 똑같았다.
지금은 그가 가만히 겨누고만 있지만.
창이 만약 찔러 온다면, 저 ‘소멸 코드’가 성지한을 순식간에 없애겠지.
사실, 그래 봤자 인게임에서 사망하는 거니 성지한한테는 큰 손실이 없었지만.
‘……아바타가 만든 신살의 창에도 이리 못 움직이면, 성좌 롱기누스의 창에는 절대 대응하지 못한다.’
신살의 창이 지닌 시간 정지.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죽음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운이 아예 안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강해진 무혼과 공허가 어떻게든 움직이며, 이 상황을 극복하려 했지만.
성지한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렇게 지금껏 여유로웠던 성지한이, 현 상황에 온 신경을 집중했을 때.
“서. 성지한 님……! 제가 돕겠습니다!”
갑자기, 혈창의 형태가 사라지며.
지금까지의 성좌 롱기누스와는 다른.
아바타를 제공했던 플레이어 블라디미르가, 급히 목소리를 내었다.
“이놈……! 뭐 하는 짓이냐!”
“아무리 성좌시라도…… 성지한 님을 죽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이 자식이……!”
성좌와, 플레이어 블라디미르가 섞여서.
한 입으로 두 존재가 대화하는 아바타.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이 중요한 순간에, 튀어나온 거야.
“블라디미르. 괜찮습니다.”
“하지만……!”
“쉬고 계세요. 이건 제게 기회입니다.”
“아. 혹시 제가 일을…… 망쳤습니까?”
“계속 계시면 그럴 거 같군요.”
“네…….”
의욕적으로 성지한을 도우려 했던, 플레이어 블라디미르가 시무룩한 얼굴로 사라지고.
몸의 주도권을 되찾은 롱기누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신살의 창을 띄운 틈을 타서, 아바타가 반항하다니. 어이가 없군.”
“야. 다시 가능하냐?”
“……가능은 하다.”
“그럼 잠깐.”
성지한은 상태창을 열었다.
공허와 무혼.
둘만으로는, 시간 정지를 극복할 수 없었으니.
‘용염과 적뢰…… 융합을 해야겠군.’
두 유니크 스탯을 섞어 나오는, 새로운 능력이 통하나.
실험해 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