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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273화 (273/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73화>

슈우우우……!

행성 개척 맵의 동쪽 해안가.

하늘 위로 일제히 치솟는 바닷물 위에는, 똑같이 생긴 엘프들이 수십 명 서 있었다.

“엘프 잔당들인가……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바다에 있었군.”

“성지한 님한테는 알렸지?”

“어. 우린 일단 후퇴하자!”

초록 머리칼의 하이 엘프뿐만이 아니라.

일반 엘프에게도 속절없이 밀렸던 플레이어들은, 해일을 몰고 오는 엘프들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베이스 캠프로 후퇴하는 인류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고엘프는 아니군.’

전속력을 다해 해안가에 도착한 성지한은, 엘프들을 보고는 잠깐 숨을 돌렸다.

강림의 제단을 완성해서 고엘프를 소환한 줄 알았더니, 아직은 아닌 건가.

‘그래도 방심해선 안 된다. 뭔가 준비가 다 되었으니, 공격을 개시한 걸 테니까.’

성지한에게 사냥당해서 숨어 있던 엘프들이, 이렇게 요란하게 쳐들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그는 암검 이클립스를 꺼내 들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촤아아아악!

하늘까지 치솟은 바닷물이 단번에 갈라지자.

그 위에 있던 엘프들이, 일제히 성지한을 향해 날아왔다.

하이 엘프조차도 가볍게 썰어 버리는 그에게 돌진하는 건, 죽으려고 드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스으으윽……!

‘저건…….’

돌격해 오는 엘프들의 얼굴에, 일제히 하얀 가면이 생기자 속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이 엘프보다도, 한층 더 빨라진 움직임.

목검을 든 그들은, 성지한을 순식간에 전방위로 포위했다.

“목만 남겨라.”

쉭!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지한을 거세게 몰아치는 엘프 무리.

‘가면이 무슨 작용을 했는지, 확실히 하이 엘프보다 더 강하군.’

성좌가 직접 강림하기보다는, 엘프들에게 힘을 부여한 건가?

성지한이 엘프들의 파상공세에 대응하려고 할 때.

[순리를 따르지 않은 존재입니다.]

[‘공허의 대행자’ 칭호 효과가 작동합니다. 공허의 힘이 크게 증폭됩니다.]

‘호오.’

그간 수많은 적을 만나도 발동하지 않았던 공허의 대행자 칭호가.

가면을 쓴 엘프들과 싸우려하니,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 정도는 되어야 순리를 따르지 않는 존재인가…… 어쨌든, 싸울 만하겠군. 여기에 자하신공을 사용하면…….’

스으으으…….

성지한의 몸에서 보랏빛의 기운, 자하기가 강렬하게 피어오르자.

“……!”

공격해 오던 엘프들이 본능적으로 잠시 몸을 움츠렸다.

그 찰나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뻗어 나가는 검과 창.

체내에 넘치는 적뢰의 힘이, 일반 공격에도 깃들면서.

치이이익……!

순식간에 엘프 절반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 버렸다.

하나.

툭. 툭.

엘프들이 쓰고 있던 가면만은, 타오르지 않은 채 멀쩡한 상태로 땅에 떨어졌다.

무한한 재생력을 보이던 엘프도 견디지 못했던 붉은 뇌전의 힘에도.

전혀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은 가면.

슈우우우…….

가면은 저절로 허공에 떠오르더니, 일제히 한 곳으로 모여 합쳐졌다.

그리고 움직이는, 가면의 입.

[역시 너희론 안 되겠구나. 나의 제물이 되어라.]

거기서 고엘프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살아남았던 나머지 절반의 엘프가, 일제히 자기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으으으……!”

“저, 저희에게 기회를……!”

펑!

하나 그 말이 무색하게, 터져 버리는 엘프들.

스멀스멀…….

그리고 터져 버린 몸의 파편은, 곧 한 군데로 뭉치며.

새로운 육신을 형성했다.

본래 외모와 신체가 모두 같던 엘프와는 달리.

조금 더 큰 키에, 근육질의 남성형 신체.

한데, 사지와 몸통은 다 생겼음에도, 머리 자리만 텅 비어 있었다.

대신.

‘저기서, 공허의 힘이 느껴지는군.’

탁!

가면이 날아와, 머리를 메우기 전.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공허의 기운이 강하게 퍼져 나왔다.

그리고.

[순리를 따르지 않은 존재입니다.]

[‘공허의 대행자’ 칭호 효과가 작동합니다. 공허의 힘이 크게 증폭됩니다.]

[순리를 역행하여, 이를 조장하는 존재입니다. 상대를 소멸시킬 경우, ‘공허의 의지’에 의해 ‘공허의 대행자’ 칭호가 업그레이드됩니다.]

공허를 내뿜었던 상대에게, 강하게 반응하는 공허의 대행자 칭호.

성지한은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적뢰를 날렸지만.

지지지직……!

“부질없는 저항이다. 내가 강림했으니, 이미 끝났다.”

가면은 적뢰를 그대로 흡수한 채, 입을 움직였다.

“검.”

쩌적!

그러자, 가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땅에 떨어지고.

그것은 곧 목검이 되어, 고엘프의 손에 감겼다.

“공허의 힘을 극한까지 다루다니…… 역시, 너는 잡아가야겠다.”

“이게 극한이라고? 아직 한참 모자란데.”

“건방을 떠는구나. 그 여유.”

촤아악!

고엘프의 목검이 움직이자.

치이이익……!

성지한의 왼팔에 기나긴 검상이 생긴 채, 피가 솟구쳤다.

하나.

그걸 본 고엘프는 드러난 반쪽의 얼굴에서, 눈썹을 꿈틀댔다.

“……잘리지가 않아?”

“그 정돈 아니던데?”

“허.”

스으윽!

목검이 한 차례 움직이자, 성지한의 몸에 수십 개의 검상이 새겨졌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격.

“언제까지 건방을 떠나 보자.”

성지한의 신체에서 솟구치는 피를 보며, 고엘프가 강한 살기를 내뱉었다.

*   *   *

=성지한 선수…… 이, 일방적으로 밀립니다! 신체가 재생하지 않았으면, 진작에 끝이 났을 겁니다!

=상대방의 움직임, 전혀 보이질 않아요! 그저 몸만 베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목이 안 날아간 게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요?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어요……!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증폭된 공허의 힘을 바탕으로, 자하기를 극성으로 발현하고 있음에도.

“부질없다.”

치이이익!

성지한의 팔과 다리는, 몇 번이고 검상을 입었다.

하지만 아무리 검격을 당해도, 절단까지는 당하지 않는 신체.

그것은, 성지한의 전신에 피어오른 자하기의 덕이 컸다.

‘공허 대행자로 자하기가 증폭되지 않았으면, 진작에 목만 남았겠군…….’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포赤雷砲

적의 일격을 어떻게든 버티면서, 성지한은 창을 뻗었지만.

지지지직!

그의 공격은, 고엘프의 반가면에 모두 흡수된 채 힘을 발휘하질 못했다.

“제법이구나.”

스윽.

적뢰로 인해 그을린 가면을 쓰다듬자, 다시 깨끗해지는 반가면.

고엘프는 흥미롭다는 듯, 붉은 전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공허의 힘으로 나의 일격을 버티고. 입은 상처는 생명의 기운으로 재생하는군. 하찮은 종이, 공허와 생명의 기운을 같이 운용하다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너도 똑같잖아? 머리는 공허인데, 신체는 엘프니까.”

흠칫.

성지한의 대답에, 고엘프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걸 알아보았나.”

“아까 가면 쓸 때 느껴지던데.”

“……특별한 감각을 가졌군. 단순한 하급종은 아닌가. 해부, 실험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구나. 널 데려가겠다.”

슉!

목검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치이이익……!

성지한의 전신에, 검상의 개수가 순식간에 늘어 갔다.

‘지금까진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진짜 목만 남겠다.’

성좌급 상대라는 고엘프.

강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대항조차 못 할 정도로 힘의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성좌와의 격차가, 아직 이 정도나 났단 말인가?

-아니 미친 듯이 센데 저놈…….

-나머지 플레이어들 뭐 해? 몸을 던져서라도 성지한 탈출하게 해 줘야지 ㅡㅡ

-몇 명 도와주러 갔다가 멀리서 그대로 썰렸음;

-ㅇㅇ 검왕 배틀튜브도 같이 틀고 있는데, 검왕도 접근하다가 그냥 몸 다 갈려 나가더라…….

-마법도 그대로 반사되던데? 가면엘프 힘…… 그냥 차원이 달라.

다른 인류 플레이어들도 놀고 있는 건 아니라서.

각자 성지한을 도와주기 위해, 나름의 수를 쓰고는 있었지만.

고엘프의 영역 안에 들어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인류에게 희망을 지닐 수는 없는 상황.

‘결국 내가 이겨 내야 한다.’

성지한은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전력을 끌어올렸다.

체내의 모든 기운이 이에 호응했지만.

지지지직……!

적뢰 스탯에 포함되지 않았던, 잔여 적뢰만은.

컨트롤이 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지지지직……!

“음…….”

잔여 적뢰는 성지한의 몸에, 점점 퍼져 나가면서.

더욱 거세게 전류를 방출했다.

성지한의 신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전기가 번뜩이자.

고엘프는 잠시 검을 멈췄다.

“……뭐지? 그 힘은? 설마 전력을 숨기고 있었나?”

“아니. 숨은 놈이 튀어나온 거다.”

뇌신에게 받았을 때부터 기묘한 움직임을 보여 주던 적뢰.

스탯 200에 추가되지 않았던 적뢰의 양은, 받을 때만 해도 적당히 많아 보였지만.

위기 상황이 되니까, 진면목을 드러내듯이 어마어마한 양이 방출되고 있었다.

[조용히 좀 있으려고 했더니. 벌써 이런 위기를 맞이할 줄은 몰랐군…….]

“뇌신인가? 적뢰가 컨트롤 되지 않는 게 수상하다 싶더니, 여기 숨어 있었나.”

[정확히는 그의 분신이지.]

지지직!

방출된 적뢰에서, 사자 머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그냥 힘만 넘겨주려고 했는데, 1조 GP나 가져간 네놈이 괘씸해서 분신을 심어 놓았지.]

“솔직히 말해라. 그거랑은 상관없잖아? 어차피 심었을 거 아닌가?”

[크흐흐. 역시 안 속나? 그래. 무신조차 흡수하지 못했던 이 힘…… 적뢰를 어찌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적뢰의 운용원리를 완전히 깨우쳐, 무신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네 몸에서 한동안, 적뢰를 어찌 쓰나 지켜봐야 했는데…….]

지지직!

붉은 사자가 입을 쫙 벌렸다.

[이렇게 빨리 죽으려고 들 줄이야. 성좌에게 대항하다니. 참 겁 없는 놈이로다.]

“그래서 숨어 있지 못하고 튀어나왔냐?”

[그래. 네가 살아야, 나도 적뢰를 터득할 거 아닌가? 네가 우주수 이그드라실에게 끌려가면, 나까지 지옥에 갇히게 될 터이니.]

콰르르르!

붉은 사자의 입에서 강렬한 뇌전이 뻗어 나오자.

“큭. 뇌신…… 죽은 게 아니었나?”

그간 가면으로 모든 공격을 흡수하던 고엘프가 표정을 찌푸리며 몸을 피했다.

뇌신이 뿜은 적뢰 자체는 성지한의 것과 비슷했지만.

방출한 힘의 차이가 수십 배는 나서, 고엘프가 조금 전처럼 여유를 부리지는 못했다.

“호. 도와주게?”

[네 몸의 제어권을 나와 공유하면, 살려 주도록 하지.]

“제어권을…….”

[그래. 나의 사도가 되어라. 인간.]

성지한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역시 그냥 도와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군.

눈앞에는 성좌.

몸 안에는, 자신에게 기생하고 있는 뇌신.

안팎으로, 난리도 아니다.

“내가 네 꼭두각시가 될 거 같냐?”

[꼭두각시라니. 어디까지나 너와 나는 감각을 공유하는 거다. 이것이, 우주수 이그드라실에게 끌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

“사도가 되라며?”

[나는 관대한 신이니. 많은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성심성의껏 나를 떠받들면 된다.]

“종노릇을 하라는 거군. 내가 받아들일 것 같나?”

[후후. 굳이 네가 저항한다면, 내가 고엘프와 직접 협상할 수도 있다. 안 그런가?]

“뇌신. 네가 협조한다면…… 저 몸뚱어리 반은 떼어 주지. 대신 목은 우리가 가져간다.”

[아니. 그건 안 된다. 차라리 같이 실험하자.]

성지한의 몸뚱어리를 두고, 서로 주인인 양 다투는 고엘프와 뇌신.

성지한은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뇌신에게 말했다.

“야. 뇌신.”

[결심했나? 한데 야라니. 종이 될 생각이 들었으면, 앞으로 극존칭을 써라.]

“내가 진짜 네가 스며든 걸, 몰랐을까?”

[후후. 의심은 했겠지. 하지만 알아봤자 뭣하나. 대응할 방법도 없지 않나?]

“아니. 사실 있어. 한 가지 방법이.”

지지지직……!

사자 머리를 완성한 적뢰가, 갑자기 사방으로 꿈틀거리고.

[……뭣?]

뇌신이 깜짝 놀라 움찔할 때.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천수강신天樹降神

스르르르륵!

붉은 번개가 꼬이면서, 사슬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아니, 어떻게 날……!]

철컹. 철컹!

붉은 사자가 점점 형태를 잃어가고.

“아니. 뇌신을, 이그드라실의 뿌리로 변형한다고…… 대체 어떻게!”

사슬은 곧, 고엘프를 향해 뻗어 갔다.

조금 전의 여유를 잃고, 목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고엘프.

하지만.

철컹! 철컹!

무한하게 뻗어 가던 사슬은, 곧 하나둘씩 고엘프의 몸을 감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둘이 놀아라.”

이이제이가 제대로 통한 모습을 보면서, 성지한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러며,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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