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71화>
하이 엘프.
그들은 인류에게 있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저번 생에서, 인류 최강의 전사였던 검왕은 목검을 얻어맞고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며.
그 후 최강의 전사로 대두된 성지한 역시 하이 엘프를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느렸나?’
슉!
하나도 아니고 셋이 돌진해 온다.
이미 여러 번 합을 맞춰 온 듯, 성지한의 주변을 순식간에 포위한 하이 엘프들은 그의 사지를 절단내기 위해 날카롭게 검을 베어 왔다.
저번 생이었다면, 눈으로 따라가기 급급했을 속도.
하지만, 동방삭과의 사투를 벌였던 성지한에게는 그 공격이 너무나도 느려 보였다.
“이건…….”
성지한의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느려지는 하이 엘프들.
그들이 눈을 부릅뜬 사이, 암검이 일렁였다.
그러자.
“……!”
툭. 툭.
세 하이 엘프의 목이 그대로 잘린 채, 땅바닥에 뒹굴었다.
한 번의 격돌로, 사라진 세 전사.
-아까 제갈헌 채널 보니까 인민회 측 전사들이 저렇게 쓰러지던데…….
-여기는 성지한이 단번에 목을 치네
-용도 잡았는데 하이 엘프쯤이야 ㅋㅋㅋㅋ
-그래도 일격에 쓰러질 줄은 몰랐다;
-성좌 나와! 다 덤벼!
시청자들은 당한 걸 그대로 갚아 주는 성지한을 보면서 감탄하며, 하이 엘프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역시 목만으로는 안 되는군.”
휙!
목이 날아갔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하이 엘프 셋.
땅에 떨어진 목도, 성지한을 계속해서 노려보았으며.
잘린 목 단면에는, 살점이 꿈틀거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오려고 했다.
-아니 미친 엘프들 진짜 ㅋㅋㅋ
-이 정도면 언데드보다 더한 거 아님?
-인류도 생명력 MAX 찍으면 저렇게 되나요?
-아 저렇게까지 사는 건 쫌…….
-저렇게 해서 새로 재생된 뇌는 결국 ‘내’가 아니지 않는가? 저렇게 살아가 봤자, 나라는 존재는 결국 소멸한 것 아닌가. 저기 아래서 뒹굴고 있는 하이 엘프의 목, 그 자아는 이미 소실한 거겠지…….
-뭔 개 쌉소리야 ㅡㅡ
미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엘프들의 그로테스크한 재생 광경에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을 때.
이를 이미 예상했던 성지한의 검이, 어둠을 흩뿌렸다.
그러자.
치이이익!
하이엘프의 몸 전체가 갈려 나가며, 목검 세 자루만이 남아 땅에 푹 떨어졌다.
재생할 기미도 주지 않게, 완전히 소멸시킨 성지한.
‘이건 전리품으로 가져야겠군.’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목검, 가져다가 연구하면 무언가 쓸 만한 게 나올지도 모르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무혼의 공간 장악력으로 목검 세 자루를 끌어당겼지만.
[시건방지던 이유가 있었구나. 하급종.]
하늘 위에서, 고엘프의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이그드라실의 뿌리가 되어, 그를 묶어라.]
드르르륵!
바닥에 꽂힌 목검이 갈리면서, 기나긴 사슬처럼 변했다.
그리고 땅바닥에 잔류해 있던 하이엘프의 피와 살점까지 거기에 섞이며.
사슬은 불길한 핏빛을 띈 채, 성지한을 향해 날아왔다.
‘이거…… 천수강신과 연관이 있나?’
멸신결의 마지막 구결이자, 목속성의 무공 천수강신.
골렘 결투에서 골렘에게 생명의 기운을 부여했을 때, 사슬이 튀어나왔던 것과 지금의 모습이 사뭇 비슷했다.
애초에 천수강신의 권능 중 하나가, 엘프와 비슷한 재생력이기도 했고.
속성까지 목이었으니, 세계수 엘프와 연관이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한 번 감겨 봐야겠어.’
성지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혼의 공간을 열고, 팔을 뻗었다.
그다음 세 사슬 중, 나머지 둘의 움직임은 봉인시키고 하나만 놔두자.
휘리릭!
핏빛 사슬이, 성지한의 팔을 대번에 감아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살점을 그대로 파고들면서, 그가 지닌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들었다.
살과, 피, 뼈뿐만이 아니라.
그가 담고 있는 모든 힘까지.
하지만.
‘하나 정도는 견딜 만하군.’
사슬은 성지한의 팔을 감기만 할 뿐, 그 무엇도 가져가질 못했다.
무혼의 힘으로 팔을 보호할 때만 해도, 사슬은 이를 맹렬히 공격했지만.
여기에 공허의 기운이 더해지자, 사슬의 위력이 눈에 띄게 약해진 것이다.
‘더 감겨 보자.’
성지한은 팔을 감은 사슬이 영 힘을 못 쓰자, 움직임을 일단 봉인시켰던 다른 쪽 사슬도 풀어 주었다.
드르르륵!
그러자 성지한의 오른팔을 장악한 사슬.
두 개에 묶이자, 사슬은 한 개였을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성지한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접근을 막는 건 쉽지만, 한 번 감기니까 위력 차이가 크네.’
그래도 성지한이 공허의 힘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자, 다시 위축되는 사슬.
‘뭔가 알 것도 같은데…….’
성지한은 두 팔을 묶은 사슬을 바라보다가, 나머지 한 개도 풀어 주었다.
드르르륵!
그러자 몸통을 감는, 최후의 사슬.
세 개의 사슬은 성지한을 꽉 결박한 채,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었다.
하지만.
스으으으…….
공허의 힘에, 이를 증폭시키는 자하신공까지 운용하자.
핏빛이었던 사슬의 색이, 성지한을 감았던 곳부터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허로 사슬을 물들이고 나니, 이제 좀 분석이 되는군.’
세 번째 사슬에 감기고, 심해진 압박을 견디고 나서야.
성지한은 사슬의 구성원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천수강신天樹降神
드르르륵!
사슬에 감겼던 팔과 몸통에 이에 대항하듯, 보랏빛의 사슬이 새로 튀어 오르고.
[아니……!]
성지한이 만들어 낸 천수강신의 사슬은, 목검에서 나타난 것을 그대로 집어삼키더니.
골렘이 소멸하며 그랬듯이, 하늘과 땅 끝까지 뻗어 나가려 했다.
하지만, 성지한은 여기서 더 진행을 하지 않고 힘을 거둬들였다.
‘너무 생명의 기운 소모가 심하군.’
생명의 기운을 내부에서 극단적으로 파괴해야, 거기서부터 나타나는 사슬.
구성 원리는 어떻게 되는지 묶이면서 파악을 했지만.
아직 완벽히 이해한 게 아닌지라,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하늘과 땅까지 사슬을 뻗어 버린다면.
성지한이 지닌 생명의 기운이 모조리 고갈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가 지닌 모든 힘이 연료로 쓰여 소멸할 것 같았다.
‘천수강신 쓰겠다고 자살할 수는 없지.’
스으으으…….
보랏빛 사슬이 성지한의 몸을 향해 다시 들어오고.
[플래닛 포인트를 4921 획득했습니다.]
[플래닛 포인트를 5644 획득했습니다.]
[플래닛 포인트를 6821 획득했습니다.]
그때가 돼서야, 하이 엘프가 사망 판정을 받으며 플래닛 포인트가 들어왔다.
피와 살점까지 싹 다 사라지지 않으면, 사망 판정을 받지 않는 하이 엘프.
엘프도 재생력이 좋긴 했지만, 이들은 그와 비교를 불허했다.
‘한데 하이 엘프의 강력함을 생각해 보면, 아쉬운 포인트군.’
나름 평균 5천 이상의 포인트를 하나씩 주긴 했지만, 하이 엘프가 지닌 힘에 비하면 아쉬운 포인트.
‘그래도 뜻밖의 곳에서, 천수강신에 대해 큰 힌트를 얻었어. 길가메시를 꺠울 날도 머지 않았군.’
천수강신을 어떻게 발동해야 하나, 그간 아무리 수련을 해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았던 성지한은.
‘이그드라실의 뿌리’에 제대로 감겨 보면서, 드디어 무공구결의 단초를 알아냈다.
지금은 생명의 기운 소모가 너무 심하기에, 완성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시작 포인트를 찾은 만큼, 이제는 시간만 있으면 완성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때.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견디는 것도 모자라…… 흉내를 내? 그것도 공허를 담아서? 이놈.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이었구나.]
하늘에서 고엘프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목소리만 내지 말고 내려오시든가.”
[곧 갈 것이니, 기다리거라.]
그러자.
쿠르르르……!
저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나무에서 큰 흔들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줄어드는 나무 크기.
[엘프 99여. 실험은 중단하고, 강림의 제단을 건설하라.]
성지한은 고엘프의 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강림의 제단이라. 그거 방어 테크트리 풀업하면 있던 건물인데…….’
직접 강림하기 위해, 지금까지 올렸던 베이스 캠프의 발전 테크트리를 완전히 변경한 건가?
성지한이 천수강신으로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흉내 낸 게, 그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일인 것 같았다.
-강림의 제단? 이름부터 불길하네 ㅡㅡ ㄹㅇ 성좌 내려오는 건가?
-굳이 기다려야 하나요? 왠지 상대가 심상치 않은데…….
-그러게. 로그아웃하고 튀면 안 됨?
-안 돼. 생명력 증진은 어쩌고??
-지금 그게 중요함? 성지한 여기서 잃으면 인류가 끝장난다고.
-그렇게 따지면 게임에서 죽어 봤자 로그아웃되고 그만인데 뭔 걱정이야 생명력 올려야지!
-쟤들 이상한 방법으로 죽여 놓고 로그아웃 못하게 하잖아. 그걸 계속 우려먹으면 어떻게 해?
-성지한이면 잘 저항하겠지!
심상치 않은 적이 강림의 제단까지 건설한다고 하니까, 그냥 후퇴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과.
어차피 게임인데 생명력 증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심상치 않게 대립했다.
예전이었으면 그냥 빼자고 하는 게 90%이상이었겠지만.
이번에 사람들은 생명력 증진의 혜택을 너무 크게 본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지한은, 고엘프가 내뱉은 말을 분석해 보고는.
‘결국 강림의 제단 만들 때까지는, 고엘프는 없는 거잖아?’
이번 일을 역으로 기회로 삼았다.
“엘프들이 성좌 강림시키려고 테크트리를 뒤엎으려는 거 같은데…… 전력으로 방해하러 가겠습니다.”
슉!
고엘프가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성지한.
엘프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로써, 행성 개척 8일 차입니다.
=크리스토프. 생명력 증진 효과는 잘 누리고 계신가요?
=전 사실 원래 건강해서 병치레가 없긴 했습니다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데 근육이 평소보다 잘 붙는 느낌이 들더군요. 근 회복도 빨라지고요. 생명력 증진이라는 효과가 이렇게 무궁무진한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오늘은 우리 드워프가 무슨 자원을 가져올지 초유의 관심사입니다. 저번에는 유니크 자원이라고, 인류에게 기프트 등장 확률 업 효과가 적용되었죠!
=맞습니다. 이거 참, 2주만 진행되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리그 경쟁전 ‘행성 개척’과, 그것이 불러오는 자원이 인류 전체의 관심사가 됨에 따라.
채널 0번에 편성된 행성 개척 24시간 방송도 연일 시청률이 고점을 뚫고 있었다.
이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역시, 인류가 얻는 자원의 효과였지만.
성지한과 세계수 엘프 간의 전투도, 주목도가 상당히 높았다.
=아. 성지한 선수. 세계수 엘프를 또다시 베어 냅니다!
=처음에 웅장했던 거대 나무의 모습은 어디가고. 다들 숨어 버렸군요!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해요! 플레이어 성. 확실히 인류의 성좌 후보로 적합한 것 같습니다!
=흩어진 엘프들의 게릴라가 좀 까다롭긴 합니다만…… 그래도 하이 엘프 급이 아니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잘 대항하고 있어요!
고엘프의 발언 속에서, 그가 아직 강림하지 못한 걸 파악하고 그대로 돌진한 성지한.
그는 지금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하이 엘프 셋도 단번에 목이 날아갈 정도로, 워낙 무력적으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으니.
그는 원정 첫날에 이미 적의 기지에 가서 거대 나무를 불태우고, 엘프 플레이어들을 마구잡이로 쓸어버렸다.
이쯤되면 본진이 다 부숴져서, 멸망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이놈들 참 끈질기군그래.’
엘프들은 조인족처럼 쉽사리 멸망하질 않았다.
거대 나무도 베이스 캠프는 아니었는지, 이를 싹 다 불태워도 종족이 멸망하지 않았으며.
성지한의 공격에서 벗어난 생존자 엘프들은, 외곽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인류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종족은 다 멸망시켰단 말이지…….’
다섯 종족이 참여하는 리그 경쟁전.
인류가 조인족을 멸망시키고, 세계수 엘프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동안.
나머지 두종족은 외곽에서 세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세계수 엘프의 별동대들에 의해 멸망당했다.
어느덧 8일 차가 된 행성 개척전에는 인류와 세계수 엘프 - 99.
둘만 남은 상황.
‘이대로 가다가는 고엘프가 강림할지도 모르겠군.’
성지한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면서도, 두 종족을 멸망시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떻게든 포인트를 벌어서, 강림의 제단을 만들려고 하는 거겠지.
‘싸워도 대항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와의 충돌로 명예의 전당에 못 들어가면 내 손해다.’
굳이 고엘프와 격돌하느니, 강림을 막고 안정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서서 무혼을 강화하는 게 더 이득이다.
그리 생각한 성지한이 어떻게든 엘프 잔당을 찾으려 들었을 때.
-고. 고객님. 뇌신이 게임 안처럼, 아바타로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하네! 그러니 제발 그와 한 번만 만나 주게!
아르트무에게서,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