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59화〉
세계 랭킹 1위부터 3천위까지 뽑힌, 인류 대표팀.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인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강한 프라이드가 있었다.
그들은 성지한의 활약상 자체야 든든하게 생각하고, 높게 평가했지만.
그래도, 만귀봉신에 갇혀 아무것도 안 하고 버스 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꼈다.
자기들도, 스페이스 리그에서 주연은 아니더라도.
조연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 종족, 용족의 수준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저, 저번 리허설 땐…… 이러지 않았는데……!”
화르르륵!
배런은 앱솔루트 실드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걸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리허설 게임 때의 드래곤도 강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간 자기도 많이 성장했으니,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쐈는지도 알 수 없는, 화염 브레스에 대번에 쓸려 버릴 줄은 몰랐다.
한편.
파이어 브레스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멀쩡하게 서 있던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리허설 생각하고 싸워 보겠다고 한 거냐? 그때 용족도 플래티넘이었다. 네가 세진 만큼, 용들도 강해졌지.”
“그, 그래도…… 이 정도 격차가 있을 거라고는……!”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지.”
치이이익!
배리어가 완전히 사라지고, 순식간에 타오르는 배런.
불길에 잠기기 직전, 그는 허탈한 눈빛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온 세상이 불바다인데, 옷자락 하나 타오르지 않는 그는.
자기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넌 어떻게…… 멀쩡한 거지?”
“나름 방법이 있어서.”
스으으으…….
성지한의 전신에 보랏빛이 일렁이자.
파이어 브레스가 그가 있는 공간만은 침범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뚝 끊겼다.
동방삭에게서 배운 자하신공.
공허를 다루는 이 무공은, 확실히 쓸 만한 구석이 많았다.
아직은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자하신공의 보랏빛 기운을 완전히 컨트롤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자하기紫霞氣 자체가, 배리어 역할을 하는군.’
그렇게 갈무리하지 못한 기운은 성지한의 주변을 떠돌면서, 파이어 브레스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이 자하기를 운용하여 넓게 퍼뜨린다면, 성지한 자신 말고도 파이어 브레스에 불타오르는 여러 사람을 구했을지도 모르지만.
‘공허를 지니지 않은 플레이어들에게 자하기를 씌웠다간, 역으로 그들이 잡아먹힐지도 모르지.’
일반 플레이어에게 이 보랏빛 기운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었다.
성지한은 자하기를 잠시 바라보다, 불길에 잠긴 배런에게 말했다.
“미안하군. 이건 아직 힘 조절이 익숙지 않아서, 나한테 쓰는 게 한계다.”
“……네가 미안할 건, 없다. 내가 싸우고 싶었으니……!”
“그래? 사실은 안 미안하다. 다음엔 얌전히 말 좀 들어라.”
“큭……!”
쓴웃음을 지으며, 사라지는 배런.
그의 소멸을 시작으로, 성지한과 함께 소환되었던 플레이어들이 모조리 없어지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모습은 보지도 못한 채, 초장거리에서 파이어 브레스 폭격을 맞고 사라진 인류의 대표팀 플레이어.
=이, 인류 측, 파이어 브레스에 잠겨, 부대가 순식간에 전멸합니다!
=아직 500명만 전사했을 뿐입니다. 아, 아니군요. 499명! 성지한 선수는 살아 있습니다!
=역시 성지한 선수! 저 강대한 파이어 브레스도 견뎠군요!
=아니, 근데 이렇게 금방 뒈질 거면 그냥 검진 안에 얌전히 들어갈 것이지…… 배런 진짜 뭐 하는 거야?
=크, 크리스토프. 마이크 켜져 있습니다!
=아, 흠흠. 죄송합니다! 감정이 잠깐 격해졌군요!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해설하는 해설진 중 크리스토프가, 짜증을 냈다가 그대로 송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해설자가 미국인 유망주를 까네 ㅋㅋ
-깔 만하지. 배런 인류 대표팀 들어오자마자 자존심 내세우다가 10초컷 당했잖아 ㅡㅡ-크리스토프 해설 백퍼 저거 고의로 했다 ㅋㅋㅋㅋ-ㄹㅇㅋㅋ 이미 자긴 서포팅 기프트 빵빵하게 있다 이거지 ㅋㅋ-아니 그래도 언제까지 성지한 버스만 탈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플레이어들이 싸워 보긴 해야지…….
-그러다 인류 랭킹 떨어지면 님이 책임질 거임?
-자기 집에 던전 생겨봐야 정신 차리지 ㅉㅉ
배런을 비롯한 인류 대표팀 선수들이 좀 버티면서 싸웠으면 모를까.
파이어 브레스에 너무 쉽사리 쓸려 가서 그런지, 이들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었다.
거기에.
=인류 대표팀. 괜찮습니다. 성지한 선수를 중심으로 상황을 풀어 가면, 이길 수 있어요! 아직은 499명만 죽었을 뿐입니다…… 아. 전, 전사자가. 순식간에 늘어나는군요!
=혼돈의 전장의 하늘 곳곳에서, 브레스가 쏟아지고 있어요!
=한데 막상 드래곤은 대체 어디 있나요? 하늘 위 높은 곳에 있는지,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아. 3, 3000명 전사! 벌써 반 이상이 전사했습니다!
전황 자체도, 인류에게는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흘러갔다.
‘역시 이 맵은 힘들군.’
성지한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브레스가 휩쓸고 지나간 이곳에는 더 이상 불줄기가 내려오질 않았지만.
저 멀리 인류 부대가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 곳곳에서는.
파이어 브레스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쏘는 걸 보면, 드래곤도 비슷한 지역에 10마리씩 소환되었나 보네. 만귀봉신을 사용했어도, 1000명 살리기는 쉽지 않았겠어.’
성지한 지역의 500명을 만귀봉신에 봉인했다 한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게임은 이미 끝이 났겠지.
성지한은 1경기는 그냥 대표팀에게 냉혹한 현실을 깨우치게 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용 한 마리는 잡아야지.’
슉!
성지한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드래곤을 찾기 위해,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그가 구름 너머를 주파하자.
[인류 측 플레이어 80퍼센트 이상이 전사합니다.]
[게임이 곧 종료됩니다.]
금방, 게임이 끝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벌써?’
아무리 브레스가 세긴 했다만, 이건 너무 심한데.
성지한은 게임 종료 전, 드래곤을 찾기라도 하자고 생각하며 경공을 전력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곧.
하늘 위에서 거대한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휭! 휭!
구름을 지나, 하늘 저 너머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레드 드래곤.
그는 눈을 감은 상태로, 천천히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지한이 등장하자,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린 용은.
“…….”
그를 가라앉은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 저게 드래곤입니까?
=어, 엄청 크군요…….
=저번에 리허설 게임에 보았던 용족은, 정말 새끼였나 봅니다.
리허설 때 보았던 해츨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붉은 용.
사람들은 그 끝도 모를 크기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품었지만.
‘어디 한번 베어 볼까.’
성지한은 공격할 생각이 가득했다.
스으으으…….
그의 왼팔에서, 암검 이클립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전신에서 번뜩이던 자하기가, 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차피 1경기는 졌으니.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고…… 가볍게 잽만 날린다.’
괜히 강한 공격을 펼쳤다간, 집중 견제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성지한은 뒷 경기를 생각해서, 검으로 가볍게 세로를 그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태산압정泰山押頂
그러자.
치이이익……!
드래곤의 머리 앞에, 배리어가 수없이 생성되었다가 갈라져 사라지고.
모든 걸 쪼개던 검기는 드래곤의 이마까지 베었다.
푸슈슈슉……!
베인 검상 사이로, 사방에 솟구치는 용의 피.
그것은 대기와 닿자 금세 끓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자하기를 섞으니, 예상보다 위력이 세네?’
가볍게 잽만 날릴 생각이었는데, 생채기까지 낸 성지한.
[게임이 종료됩니다.]
[플레이어가 로그아웃합니다.]
번쩍!
그렇게 일격을 먹이고 그가 로그아웃하자.
레드 드래곤은 가만히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종은 하찮은데…… 신기하구나.]
무심하던 용의 눈에, 잠시나마 빛이 번쩍이고.
[거기에 공허라. 어쩌면…….]
그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 * *
=1경기, 패배했군요. 게임이 순식간에 끝나버렸습니다…….
=드래곤. 과연 리그 2위다운 강력한 모습입니다……!
1경기 패배.
이 게임은, 인류 측에게 강한 무력감을 안겨 주었다.
-아니. 뭐 하늘에서 브레스 맞다 끝나냐…….
-50:1이 아니라 500:1로 교환비 해도 우리가 졌겠는데?
-밴도 잘 했고, 성지한도 살았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지면…… 이 시리즈 희망 있나?
하늘 위에서 용들이 브레스를 쏘자 끝나 버린 게임.
비록 성지한은 멀쩡히 살아남아 용족에게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이미 그땐 게임이 끝난 후였다.
아무리 숫자 보정이 있다 한들 메워지지 않는, 압도적인 종족 차이.
‘강해도…… 너무 강하다.’
데이비스 감독은 조금 전보다 어두워진 얼굴로 감독실에 들어섰다.
용족.
강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밴 카드가 잘 풀렸는데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패배할 줄은 몰랐다.
이런 놈들과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거야?
‘……일단은, 무조건 성지한 위주로 풀어야 해.’
조금 전 게임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브레스를 쉽게 버텨 낸 성지한.
그를 중심으로 게임을 풀어가지 않으면, 인류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이런 구조로 가서는 안 되겠지만…….’
성지한이라는 핵심 플레이어에게만 의존하는 전략.
이건, 감독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1승이 중요한 인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데이비스 감독은 남은 경기도 무조건 전사 맵 발할라를 셀렉트하기로 하면서.
감독실 안, 구름 위를 걸어갔다.
‘카드는, 아까랑 똑같이 간다.’
밴 카드와 셀렉트 카드를 1경기와 똑같이 설정하고, 거대한 용 앞에 서 있던 데이비스 감독은.
[하찮은 이여.]
1경기 땐 아무 말이 없던 상대측이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 다시 넘어졌다.
-아니 감독 오늘 왜 이렇게 넘어져 ㅡㅡ
-용 감독이 갑자게 말 거니까 쫄아 버린 듯.
-근데 쟤 말할 줄 아네?
-하찮다니…… 1경기를 보니 반박할 수 없어 슬프다.
“뭐, 뭐요?”
데이비스 감독은 얼른 몸을 일으켜, 용에게 급히 대꾸했다.
어떻게든 기세에서 밀리지 않으려고는 했지만.
그도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감독을 내려다보던 용이, 다시 음성을 발했다.
[너희의 진정한 대표를 불러오라. 그와 이야기가 하고 싶다.]
“진정한 대표라니…….”
[우리에게 상처 입힌 자. 하찮기 그지없는 종에서 태어난 돌연변이를 말함이다.]
성지한을 말하는 건가?
데이비스 감독은 용의 꿍꿍이를 몰라 미간을 찌푸리다 생각했다.
‘성지한은 우리의 핵심 플레이어…… 괜히 여기 왔다가 정보가 파악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굳이 적의 이야기를 받을 필요는 없지.’
그렇게 그는, 단칼에 용의 이야기를 거절하려고 했지만.
[불러오면, 2경기를 져 주지.]
“뭐. 뭣…….”
[1경기로는 부족한가? 그럼 3경기도 내주겠다.]
2경기를, 져 주겠다고?
데이비스 감독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 그 말을 어떻게 믿소?”
[용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시스템의 공증도 받지.]
“그. 그런…….”
단지 감독을 바꾸는 것만으로, 2경기를 내주겠다고?
배틀넷의 공증까지 받고?
데이비스 감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용족.
1경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기기 힘든 상대다.
근데 그들이 성지한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2경기를 포기하겠다니…….
“고, 공증부터 받겠소.”
데이비스 감독은 너무 좋은 조건에, 쉽사리 믿을 수가 없어 배틀넷의 공증부터 받아 보겠다고 말했지만.
[좋다.]
용족의 감독은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면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용족이, 왜 성지한 선수에게 관심을?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해설진이고 시청자고.
모두 영문을 몰라 했지만.
배틀넷의 공증까지 끝나고 나자.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지한 선수. 부탁 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2승 준다는데 가 보죠.”
그렇게 성지한은 데이비스 감독 대신, 감독실에 발을 들이밀었고.
번쩍……!
[기대 이상이구나.]
드래곤은 성지한을 보고 눈을 빛내더니.
[그대여. 어떤가. 우리 일족이 되지 않겠는가?]
“……뭐?”
성지한에게 다짜고짜, 스카웃 제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