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56화〉
뇌전의 벽 앞에서 대치한 지 2일째.
여기서 방랑하는 무신이 보이는 힘은 압도적이었다.
파지지직……!
무신이 손을 뻗자, 뇌전의 벽을 향해 뻗어 나가는 강렬한 전류.
그것은 뇌전의 벽을 완전히 뒤덮더니, 오히려 이것보다 커지기 시작했다.
[나, 나 토르의 권능을 어떻게……!]
[이 정도면 괜찮구나.]
상대의 권능을 복사하여, 그보다 훨씬 강하게 내보이는 방랑하는 무신.
하지만 그는 수많은 뇌신의 권능을 복제했음에도.
단 하나.
뇌전의 벽에 감겨 있는 붉은 전류만은 구현하질 않았다.
‘끝끝내 주인께선, 적뢰를 복사하진 않는군…….’
다른 뇌신의 권능에 비해.
일개 인간인 성지한이 만든, 적뢰가 성에 안 차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적뢰의 힘은 그 어느 권능보다도 강렬했다.
화르르르……!
방랑하는 무신에게 두드려 맞던 뇌전의 벽에 적뢰가 번뜩이며 불이 붙자.
금세 복원되는 장벽.
뇌전의 벽이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여기에 공급되는 적뢰였으니.
방랑하는 무신 입장에서는, 다른 뇌신의 권능보다도 이 적뢰에 대처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귀찮군.]
방랑하는 무신은 적뢰를 보고 그리 이야기할 뿐.
이를 흡수하거나, 구현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적뢰에 공허가 담겼다지만…… 주인께서 충분히 제어 가능한 수준인데. 대체 왜?’
동방삭은 이해가 가지 않는 눈으로, 무신을 바라보았다.
적뢰에 담긴 공허.
이것은 불멸자에게 있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긴 했지만.
무신 정도면, 이건 얼마든지 제어가 가능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침공에 실패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뇌전의 벽과, 뇌신의 집합체.
저들은, 무신과 무신의 종이 지금껏 침공한 여러 별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만큼 강력했다.
뇌신 자체가 신 중에서도 강력한 축에 속했던 데다가.
신왕좌를 지키는 뇌전의 벽은, 뇌신의 힘을 강하게 증폭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전황 자체는 무신이 상대 뇌신의 권능을 복사하여, 공격을 일방적으로 퍼붓고 있었지만.
이대로 장벽 앞에서 시간이 지체되다가는, 무신 측도 물러나야 할지도 몰랐다.
‘배틀넷에서 간섭이 들어오기 전에 끝을 내야 하는데, 주인께서는 대체 왜 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가.’
적뢰가 뭐라고, 계속 두고만 보는 건지.
동방삭은 자신도 나름대로 뇌전의 벽을 두드리면서도, 시선은 줄곧 무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롱기누스.]
[네. 주인.]
방랑하는 무신은, 끝까지 적뢰를 운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창을 생성하라.]
대신, 신살의 창을 꺼내 들었다.
‘적뢰 대신, 신살의 권능을 사용하다니…….’
그걸 본 동방삭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것은,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로 빙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군.’
그는 무신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내더니.
저 멀리에서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피티아를 향해 움직였다.
* * *
한편.
‘무신…… 적뢰는 끝까지 흡수하지 않네. 공허의 힘과 상극인 건가?’
안락하게 변한 뇌신의 제어실에서 무신의 힘을 보고 있던 성지한도 동방삭과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뇌신이 무신을 요격하려고 들었지만.
오히려 자기들의 권능을 빼앗긴 채, 역으로 거센 반격을 당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뇌전의 벽이 부서질 뻔했지만, 적뢰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살아난 장벽.
무신으로서는, 저 벽을 넘기 위해선 적뢰를 공략하는 게 필수적이었는데…….
[후, 후후…… 무신 놈. 왠지 모르지만, 네 적뢰는 흡수하지 못하는구나. 좋아! 조금만 더 힘써 주거라.]
성지한의 적뢰가 뛰어난 실적을 보여 주자.
적사자는 생명의 과육을 무더기로 운반하면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호들갑을 떨 때에 비하면, 여유마저 느껴지는 모습.
성지한은 과일을 입에 가져다 대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뭐 버티는 건 버티는 건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있냐? 결국 무신한테 계속 두드려 맞고 있는 거잖아.”
[배틀넷에 보호 요청을 했으니, 곧 무신의 강제 추방 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하지 그랬냐.”
[보호 요청은 절차가 복잡해서, 원래 시간이 좀 걸린다. 방랑하는 무신은 지금껏, 보호 요청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정벌을 끝냈기에 우주에서 공포의 존재로 군림한 거지…….]
“뭐 얼마나 걸리는데?”
[이제 3일 남았다.]
“3일? 나 스페이스 리그 가야 하는데. 시간 겹치면 로그아웃할 거다.”
빠지직!
바구니 과일을 보급하던 적사자가 그 말에 사방으로 뇌전을 방출했다.
[그, 그놈의 스페이스 리그……! 한 번만 안 나가면 안 되겠나?]
“안 돼. 인류한테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거든. 안 그러면 강등당한다고.”
[너 같은 괴물이 있는데 무슨 강등이야!]
“아직 인류 수준이 딸려서 말이야. 나 밴당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 스페이스 리그 경기가 끝난 이후에는.
세계 랭킹 1위일 게 확실한 성지한.
상대 종족 팀이 그를 적극적으로 저격 밴하기 시작하면, 인류의 순위는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
물론, 스페이스 리그 경기 때에는 국가대표 경기 때와는 달리.
‘우수 회원권’의 효과에 의해 30퍼센트 밴을 안 당할 확률도 있었지만.
‘그거 믿다가 또 다 밴당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까. 포인트 딸 수 있을 때 따야지.’
확률에 의지했다가 얼마든지 피를 볼 수 있었으니.
성지한은 승리를 챙길 수 있을 때, 확실히 챙기고자 했다.
하지만.
[큭…… 알겠다. 그럼, 이건 어떻겠느냐? 이번 위기만 넘기면, 내가 전폭적으로 도와주지! 너희 종족 인간 중, 1백 명에게 우리가 후원을 해 주겠다. 그러면 1경기 포기해도, 이를 충분히 상회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흐음…… 그래?”
뇌신은 그런 성지한에게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뇌신 정도면, 강력한 후원 성좌지. 100명의 인간에게 성좌 후원을 해 준다면 쓸 만한데…….’
스페이스 리그 순위는, 경기 말고도.
평소 플레이어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의 성적으로도, 포인트가 주어졌다.
지금 인류 플레이어들이 벌어들이는 일일 포인트는, 스페이스 리그의 20 종족 중에서도 최하위.
하지만 강력한 성좌인 뇌신이 플레이어들을 후원하고, 그들이 제 몫을 해낸다면.
이런 일일 포인트 수확량이 상당히 늘 수 있었다.
“좋아. 그럼 200명 가자.”
[200명은…… 무리다! 한 종족에게 과도한 특혜를 줄 수는 없어!]
“그럼 몇 명까지 가능한데.”
[그건…….]
성지한과 뇌신이 그렇게 한참 협상을 시작하려고 할 때.
[롱기누스. 창을 생성하라.]
[네. 주인.]
화면 속, 방랑하는 무신이 그의 뒤에 있던 롱기누스에게 명을 내리자.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롱기누스의 전신에서, 피가 뽑혀 나가더니 만들어지는 거대한 혈창.
그것은 성지한이 배틀넷 안에서 롱기누스에게 당했던 신살의 창보다, 2배는 더 거대했다.
그리고 곧.
촤아아악……!
뇌전의 벽에 거대한 십자가가 그려지고.
창에서, 보랏빛의 연기가 피어오르며 문자가 나타났다.
[타깃 조건, 불일치]
[소멸 코드 발현 실패]
성지한이 당했을 때와는 달리, 타깃 조건이 맞지 않다는 신살의 창.
그렇게 혈창의 기세가, 약해지려는 찰나에.
스으윽.
무신이 손가락을 뻗어, 연기 속 글자를 향해 움직이자.
문자가 실시간으로 수정되었다.
[타깃 조건, 일치]
[소멸 코드 발현]
‘……저렇게 문자에 간섭하는 게 가능하다고?’ 성지한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는 사실 방랑하는 무신의 힘을 봐도, 큰 감흥이 없었다.
비록 힘이야 성지한보다 훨씬 강력했지만.
그가 펼치는 무공 자체는, 저번 생에서 무명신공을 통해 익힌 것과 판박이였으니까.
오히려 동방삭의 태극마검이나 구궁팔괘도가 더 그에게 감명 깊었다.
한데.
‘이건 신기하군…….’
중간에 문자에 개입해서 이를 실시간으로 뒤바꾸다니.
이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창을 내게 주어라.]
[……예.]
스윽.
무신에게 롱기누스의 혈창이 건네지자.
[……크윽!]
롱기누스의 전신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혈창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두 배 이상 큰 무신에게 걸맞은 크기로, 피의 창이 커지자.
[되었군.]
무신은 이를 그대로 뇌전의 벽에 새겨진, 빛의 십자를 향해 내던졌다.
그러자.
스으으으…….
뇌전의 벽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사라진 부위는 십자가가 그려진 영역뿐이긴 했지만.
지직. 지지직…….
뚫린 벽, 양쪽의 전류가 뚫려 버린 빈 공간을 메우려고 해도.
신살의 창이 휩쓸고 지나간 영역은, 재생이 되질 않았다.
[쿨럭!]
롱기누스가 피를 토하며 고개를 떨구자.
무신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은 무리겠군. 돌아가 쉬어라.]
[……알겠습니다. 주인.]
롱기누스의 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그가 사라지고.
십자에 꽂혀 있던 혈창도 그와 동시에 소멸했다.
‘……무신도 철혈십자를 똑같이 사용하네.’
성지한의 멸신결과는, 비록 스케일이 다르긴 했지만.
무신도 저 십자를 띄우고, 창을 꽂는 불편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거기에 창 소환도, 자기가 직접 하지 않고 롱기누스를 매개체로 했다. 뭔가 부자연스럽군…….’
할 거면 자기가 직접 혈창을 띄울 것이지.
왜 저런 방식을 사용한 거지?
성지한은 무신이 조금 전 보인 철혈십자를 보며, 기이한 느낌을 받았지만.
[마, 망. 망했다!]
옆에서 적사자가 절규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 두었다.
[벽, 벽이 단번에 뚫리다니…… 뭐냐 저 괴물은? 적뢰. 적뢰로 어떻게 안 되냐?]
“적뢰가 무슨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저 상황에서 되겠냐?”
[크, 크윽…… 너무 방어가 잘 돼서, 혹시 뇌신의 우두머리로 계속 있을 수 있나 싶었는데. 역시 불가능한가…….]
슝!
화면 속의 상황은 급박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무신과, 그의 종들이 뚫린 벽 사이로 들어오고.
[벽이 뚫리다니……!]
[여기서 싸우지 마. 일단 신왕좌로 모여라!]
[하나가 된 뇌신으로 합쳐 대항하면, 아직 가능성이 있다!]
벽을 구성하던 뇌신들은, 모두 흩어져서 신왕좌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끝을 내자.]
스윽.
무신이 손가락을 한 번 움직이자.
지지지직…….
일제히 스파크가 튀더니, 사라지는 뇌신 무리.
확실히 뇌전의 장벽에 의지하던 때와는 달리.
후퇴하는 뇌신들은 약하기 짝이 없었다.
[……벌써 뇌신의 10퍼센트가 학살당하다니. 이거, 답이 안 나온다. 끝났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벽 하나 뚫렸다고 끝이냐?”
[그래. 벽이 가장 중요했다…… 저게 신왕좌를 보호하는, 방어의 요체였지. 사실 무신에겐 대항하지 못할 거라고 이미 예상은 했지만. 네 적뢰 때문에 희망을 가졌는데…….]
화면 속에서 무신이 뇌신들을 학살하는 걸 흐릿한 눈으로 보던 적사자는.
성지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로그아웃해라. 나도 내 살길을 찾을 테니.]
“어쩌게?”
[……처음 계획대로 간다. 네가 준 적뢰를 통해, 뇌신의 범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겠다.]
“그래. 나한테 뭐 더 줄 건 없고?”
[없다. 없어! 그만 털어가라. 이 도둑놈아! 나도 이제 빈털터리로 우주를 떠돌아야 한다고!]
성지한은 잔뜩 성을 내는 적사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뭐 이 정도 얻어 갔음 됐지.’
요 며칠간, 뇌신의 제어공간으로 소환돼서 성지한이 얻은 소득은 상당했다.
한 일이라곤 적뢰만 무작정 공급한 거뿐인데.
요 며칠간 뇌인 스탯은 100 넘게 올랐으며.
생명의 기운도 저번에 잃은 것 이상으로, 크게 보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무신의 힘을 구경한 게 가장 큰 수확이야.’
언젠가 무혼을 두고 상대해야 할, 방랑하는 무신의 힘.
사실은 그가 거액의 대가를 내고 봐야 할걸.
특등석에서, 스탯도 얻고 과일까지 먹으면서 봤으니까.
“알겠다. 그럼 가 볼게. 잘 살아남아라.”
[……오냐.]
그렇게 자리를 파하려 할 때.
스윽.
“잠깐. 어디 가요?”
무신의 종 피티아가 전류 사이에서, 얼굴을 쓱 들이밀었다.
“뇌신의 우두머리…… 역시 여기 있었군요. 얌전히 잡혀 주셔야겠어요.”
[어, 어떻게 여기에 벌써……! 나 먼저 간다. 인간!]
적사자의 형태가 무너지며 사라지자.
피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는데, 일만 번거롭게 하네요.”
“당신이 추격도 전담하나?”
“네. 패잔병 추격해서 잡아 오는 게 제 역할이라. 음. 당신은…… 주인한테 걸리기 전에 빨리 로그아웃하시구요.”
“그러지.”
성지한이 피티아의 의견을 받아들여, 로그아웃을 하려 했을 때.
“아. 맞다. 잠깐만요.”
“왜?”
“동방삭이 이거, 당신한테 건네주라는데요?”
피티아가 허공에서 낡은 책을 꺼내, 그에게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