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54화〉
성지한은 뇌신과의 마지막 거래를 떠올렸다.
EX급 스킬 신좌 소환을 받고, 적뢰를 넘기자.
희희낙락하며 이를 받았다가, 적뢰의 본질에 공허가 담긴 걸 깨닫고는 이런 걸 주면 어떻게 하냐고 날뛰었지.
[적뢰를 이대로 놔둘 거냐고 뇌신이 화를 냅니다. 계약 위반이라고 성토합니다.]
그렇게 한참 성지한을 성토하던 그였지만.
결국 자기가 아쉬워서, 성좌 후원을 철회하지는 않았는데.
“잠시. 성좌한테 메시지가 와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아니, 성좌한테요…….”
“뭐 좀 도와달라네요.”
“네. 갔다 오세요~”
성지한은 손님으로 온 소피아에게 손을 흔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성좌 ‘뇌신’이 방랑하는 무신이 본격적으로 쳐들어왔다고 두려움에 떱니다.]
[성좌 ‘뇌신’이 왜 대답이 없느냐며 당신을 다그칩니다.]
왜 대답이 없냐고 강한 자세로 나오다가.
[성좌 ‘뇌신’이 예전에는 자기가 말이 너무 심했다면서, 이번에 협력하면 더 큰 대가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성좌 ‘뇌신’이 일단 대답이라도 좀 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성지한이 자기 방문을 열 때쯤엔, 읍소모드로 나왔다.
‘뇌신.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
성지한은 실시간으로 자세를 낮추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적뢰 운용이라…… 저번에 말한 게 전부인데? 공허를 활용하라고.”
[성좌 ‘뇌신’이 영생을 포기하고 공허를 활용했음에도 그만한 위력이 안 나온다며 불평합니다.]
[빨리 비법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 달라고 말합니다.]
“비법은 무슨. 뇌신이면 전기 정도는 인간보다 잘 조절해야 하는 거 아니냐?”
성지한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잠시 말이 없던 뇌신.
하지만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뇌신’이 분신을 강림시키려 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래.”
지지지직……!
그러자 성지한의 눈앞에서 전기가 번뜩이더니, 붉은 전류가 감도는 작은 사자가 튀어나왔다.
[적뢰의 주인이여. 빨리 비법을 전수해다오! 무신과 그의 종들이 지금 신왕좌의 바깥에서 배리어를 부수고 있다!]
“아니, 진짜 그런 비법 없다니까. 저번에 알려 준 게 다다.”
[그럴 리가! 내가 수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적뢰를 써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고!]
“공허를 얼마나 섞었는데?”
[1, 2퍼센트…….]
“더 섞어. 수명 좀 더 포기하고.”
[더 섞다간 내가 죽는다!]
이 말에 버럭 화를 내는 사자.
이를 본 성지한은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공허의 기운이 그만큼 신에게는 치명적인 건가.
‘그럼 사기당했다고 저번에 날뛴 이유도 이해가 되긴 하네.’
그래도 그건 저쪽 사정이고.
성지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아는 적뢰 강화법은 공허 섞는 거밖엔 없어. 그 외의 비법? 나도 알고 싶군.”
[으으…… 정말인가?]
“그래. 나도 네가 강해져서, 무신의 발목을 잡길 원한다고.”
[너도 무신을?]
“그래. 그랑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라서 말이지.”
성지한의 말에 적사자는 눈을 번뜩였다.
[무신과 좋지 않은 사이라…… 그럼, 혹시 나를 좀 도와줄 용의가 있는가?]
“가서 싸우라는 거면 사양하지. 아직 그에게 덤빌 정도는 아니니까.”
[그건 나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지지지직…….
적사자의 크기가 작아지더니.
그의 몸 주변으로, 푸른 전류가 피어올랐다.
[나의 일부와 감각을 공유해서, 적뢰 운용을 도와줄 수 있겠나?]
“감각 공유?”
[그래. 너에게 별 해는 없을 것이다. 그저 계속 적뢰를 피워 올리기만 하면 돼.]
“발전기 역할을 하라는 거냐?”
[발전기…… 네가 아무리 성장했다 한들, 뇌신 전체를 어떻게 발전시키겠나. 그것보다는, 그래. 스위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붉은 사자는 성지한 방 안의 스위치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거처럼 말이지. 너는 그저 여러 스위치 중에서, 붉은 등을 켤 수 있게 눌러 주는 역할만 하라.]
“아하. 그 정도는 가능하다. 아 근데.”
[근데?]
“이제 며칠 후면 스페이스 리그 경기가 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나!]
“어. 오래는 못 해 줘.”
[한 경기 정도는 네가 참전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잖아?]
“인류는 나 없으면 큰일 나.”
[으으…….]
파직. 파직.
붉은 사자는 전기를 이리저리 방출하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자긴 지금 무신한테 죽게 생겼는데, 저놈은 뭔 스페이스 타령을 하는 건지 분노가 치솟았지만.
아쉬운 건 이쪽이었다.
[……알았다. 그때는 경기하러 가라. 어쨌든 네가 적뢰를 운용해서 보호막을 강화시킨다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근데.”
[……뭐. 또 근데냐?]
“대가는?”
[대가?]
“어. 아까 준다며?”
[그건 비법을 알려 줬을 때고……!]
“아니. 그럼 설마 안 줄 생각이었어? 사람한테 일을 맡겼는데? 참고로 나, 이젠 선불이다.”
지직. 지지직. 지지지직……!
성지한의 말에 뇌신의 몸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사방으로 전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작은 사자라 귀여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원래의 정체는 뇌신의 분신이라 그런지, 꽤 강력한 힘을 보이고 있었지만.
“내 방에서 난리 피우지 말고.”
스윽.
성지한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자.
뇌신의 전류가 일정 거리 이상을 넘지 못하고 안에 갇혔다.
[……나와 감각 공유를 하면, 네가 지닌 전격 관련 능력치가 오를 거다.]
“뇌인? 이거 딱히 쓸모는 없는데. 그거보다 EX급 아이템 더 없냐?”
[없다! 그런 게 쉽게 튀어나오는 줄 아나!]
“흠…… 그럼 메리트가 너무 적군.”
성지한이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자, 성을 내던 뇌신이 움찔하며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알았다. 내가 살아남으면 그만한 대가를 더 주도록 하지. 그리고, 선불이라 했나? 네 스탯…… 뇌인인가? 이거 50을 추가로 주마.]
“50…….”
[그래. 거기에 나와 감각을 공유하면 이 능력이 더 가파르게 성장할 거다.]
스탯 뇌인.
이 능력은 나름 레어 스탯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이 지녔다면 쓸모 있는 능력이었지만.
성지한에게는 무혼과 공허에 밀려, 이제 딱히 수치도 신경 쓰지 않는 찬밥 신세의 스탯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탯 50을 한 번에 +시켜 주는 건, 얘기가 다르지.
‘이런 건 나름 번개의 신 같군.’
성지한은 팔짱을 풀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무신을 막기 위해, 내 특별히 도와주지.”
[……고맙군, 고마워. 그럼, 지금 바로 날 잡아라.]
새하얗게 물들었던 사자가 다시 푸르게 변하자.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성좌 ‘뇌신’과 후원자 성지한이 감각 공유를 시작합니다.]
[성좌 ‘뇌신’이 이에 대한 대가로 뇌인 스탯 50을 부여합니다.]
[뇌신의 제어공간으로 소환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거 소환되는 거였나? 근데 여기서 어떻게 하면 돌아가지?”
[흠흠…… 꼼꼼도 하군. 옵션 추가하지.]
성지한의 물음에, 멈칫하던 사자가 대답하고.
[로그아웃을 외칠 시, 뇌신의 제어공간에서 역소환됩니다.]
[소환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언제든 돌아오는 옵션까지 챙긴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인다.”
번쩍!
그러자, 성지한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점멸되어 사라졌다.
* * *
지지직…….
‘여기가 뇌신의 제어공간인가.’
소환된 성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눈 아플 정도로 새하얀 전류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
이 전류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붉은빛을 보이고 있었다.
스윽.
그리고 그러한 전류 중에서, 사자머리가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역시, 뇌전이 널 침범하지 못하는구나.]
“나도 나름 공간 제어 능력이 있거든.”
[하지만 적뢰를 강화하기 위해선, 그 공간을 조금 열어 줘야 할 거다.]
지지직…….
사자의 얼굴 앞에, 가느다란 붉은 전류가 두 가닥 올라왔다.
완전히 붉다기에는, 색이 옅은 적뢰.
여기에는 불의 기운보다는, 공허의 힘이 확실히 옅었다.
[이걸 강화해 달라.]
“이거 두 개만?”
[후후. 일단 해 보고 말하라.]
성지한은 무혼의 공간에 다가서는 두 전류에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지지지직…….
그의 손 앞으로, 두 옅은 적뢰 가닥이 잡혔다.
‘여기에 내 적뢰를 부여하면 되는 건가.’
성지한이 시범적으로 자신의 적뢰를 불어넣자.
파직. 파직.
옅은 색의 적뢰가 잠시 진해지나 싶더니, 진한 전류가 번뜩이면서 저 멀리로 사라졌다.
[역시, 네 것이 순도가 높군…….]
“어디 간 거지?”
[네가 강화시킨 적뢰는, 일차적으로 배리어를 강화하는 데 쓰인다. 확실히 적뢰가 섞인 곳이, 다른 곳보다 방어력이 뛰어나.]
“흠…… 그 광경. 나도 볼 수 있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네 적뢰로 방어가 좀 더 굳건해지면, 그때 띄워 주지.]
스으윽.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사자.
‘화면 띄워 주는 거 가지고 생색이군.’
무신과 그의 종들이 침공할 때는 어떤 권능을 사용하나 보고 싶었는데.
뇌신도 성지한의 궁금증을 느낀 건지.
그렇게 쉽사리 그의 요구를 들어주진 않았다.
너 하는 거 보고 해 주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태도였다.
‘일단 스탯도 받았으니, 일을 해 볼까.’
뇌인 스탯 50.
투자할 생각은 없는 능력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레어 스탯이 50이나 올라서 그런지, 뇌전의 힘을 쓰는 게 좀 더 수월해졌다.
지지지직…….
성지한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옅은 적뢰를 계속 강화했다.
붉어지고, 옅어지고.
붉어지고, 옅어지고를 반복하길 몇 시간이 지났을까.
[뇌인이 1 오릅니다.]
[뇌인이 2 오릅니다.]
무지막지한 전류를 계속 다뤄서 그런지, 뇌인 스탯이 쭉쭉 올랐지만.
적뢰의 색이 짙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옅어지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영 보람이 없네. 거기에 나 완전히…… 건전지인데?’
뇌신이 이리로 성지한을 소환할 때만 해도, 스위치 역할이라고 했지만.
막상 적뢰를 보급하는 성지한 입장에서는, 그냥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발전기, 건전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수동적으로 있기는 아쉽군.’
방랑하는 무신과 뇌신의 격돌.
이 전투의 결말은, 성지한이 지닌 천뢰신결이 이미 스포일러 해 주고 있었다.
뇌신은 결국 방랑하는 무신에게 잡혀서, 권능을 빼앗기고 죽을 운명이겠지.
성지한은 아무리 자신이 적뢰를 이렇게 공급한다고 한들.
뇌신이 그를 이길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어차피 로그아웃도 가능하니까, 나도 최대한 여기서 얻어 갈 건 얻어 간다.’
이대로 계속 건전지 역할만 하다가 뇌신 패배하면 로그아웃하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스으윽.
성지한은 두 적뢰 가닥을 왼손에 쥔 채, 남은 오른손으로는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전류를 쥐었다.
지지직!
[너…… 뭐 하나?]
성지한의 돌발 행동에, 사자머리가 얼른 모습을 드러냈지만.
“아. 전기 떨어졌거든. 보충 좀 할게.”
[하긴…… 적뢰를 많이 공급하긴 했지.]
“그래. 야. 나보고 스위치 역할이라더니. 그냥 발전기잖아? 언제까지 적뢰를 보급해야 하는 거야?”
[으음…… 조금만 더 힘 써 줘라. 속절없이 밀리던 배리어가 네 덕에 다시 복원되고 있다.]
“그래? 배리어 더 복원시키고 싶으면, 에너지 보충에 힘을 보태라고. 아니면, 나 그냥 로그아웃해서 쉬고 올까?”
[……잠깐 기다려라. 각출 좀 하고 오겠다. 그동안 저 전기 흡수하고 있어라.]
뇌신은 성지한의 행동을 제지하기는커녕.
그의 에너지 보급 요청에 쩔쩔매고는 다시 사라졌다.
[뇌인이 5 오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얀 전류를 흡수하면서, 능력치를 성장시키는 성지한.
확실히 적뢰 가닥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뇌인의 성장이 급격했다.
‘아무리 레어 스탯이라도 능력치를 공짜로 올리니 좋군.’
자길 제지해야 할 뇌신도 적뢰 때문에 쩔쩔매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능력치를 올리기로 한 성지한은.
적뢰 전환보다, 뇌인 성장을 우선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뇌인이 한 70쯤 성장하자.
‘이제 잘 안 오르네.’
급격한 오름세는 끝이 났다.
성지한은 그걸 보고는, 다음 스탭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야. 뇌신. 각출 안 끝났냐? 아. 에너지 떨어졌는데…… 힘 없다 힘 없어~ 집에 가?”
그 어느 때보다 팔팔한 목소리로 뇌신을 부르는 성지한.
뇌신의 제어공간을 찌렁찌렁 울리는 그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불쑥 떠올랐다.
[당신…… 여기서 뭐 해요?]
무신의 종, 피티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