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48화〉
=허, 허우택 선수…… 발로 땅을 찍으니, 다리가 부서집니다!
=아니, 2경기에 이어서 또 맵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어요! 이 선수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란 말입니까?
다리에서 치러진 1:1 전투.
하지만 이 전장은, 동방삭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쿵!
동방삭이 발을 찍자, 순식간에 다리가 부서지며.
슈우우웅!
다리의 파편이 일제히 마기에 휩싸여, 성지한에게 날아왔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을 담고 있었지만.
‘무혼에는 제어가 된다.’
이는, 성지한의 공간 장악력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허공에서 일제히 멈추는 파편.
하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로 검을 뻗었다.
캉!
그러자, 어느새 뒤에서 뻗어 오던 동방삭의 손이 가로막혔다.
“감각은 있구나.”
“이렇게 쉽게 공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천마가.”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를 쉽다고 하는 인간은 네가 유일하다.”
“인간은…… 말이군요.”
슈웅!
허우택이 원래 지녔던 검이 뽑히고.
검붉은 검기가 치솟나 싶더니, 둘 간에 순식간에 수백 합이 교환되었다.
검과 검, 창과 검이 맞붙을 때마다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검붉은 마기.
그것은 성지한의 몸을 갉아먹으며, 신체를 불태웠다.
‘……이번 경기. 힘의 차이는 크지 않아.’
자신이 강림한 대상, 플레이어 허우택을 생각해서인지.
3경기의 동방삭은, 태극마검을 꺼냈을 때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힘의 차이를 보자면, 그가 소폭 우위.
아니면 비슷한 정도일까.
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가 앞선다.’
화르르륵!
수십 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성지한의 전신은 어느새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암적색의 마기가 타오르고.
팔과 다리, 몸통은 몇 번이고 검에 베여 떨어졌다가, 다시 재생했다.
무의 기본.
보고, 베고, 찌르고. 막는.
이러한 기본기에서.
동방삭은 성지한을 압도했다.
-?? 뭐 이리 빨라? 슬로우 모드 맞지?
-맞음 ㅋㅋㅋㅋ 인간이 어찌 저러냐?
-와, 성지한이 확실히 밀리네…… 벌써 온몸에 검은 불길이 가득함…….
-허우택 미친; 존나 쎄;;
시청자도 확실하게 인지할 만큼.
둘의 격돌에서, 성지한은 확연히 밀렸다.
스으윽.
동방삭은, 전신이 타오르는 성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본기에서의 압도적인 패배.
무인으로서, 좌절할 만큼 찍어 눌러줬건만…….
‘눈빛은 아직 살아 있군.’
역시, 성지한은 후임으로 둘 만한 인재다.
그는 잠시 검을 거두었다.
“이번엔 힘을 자네에게 맞췄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확실히 밀리는군요.”
“그래. 나에게도 이런데, 무신께는 어찌 대항하겠나. 무혼을 포기하고, 같이 가게.”
동방삭의 권유에, 성지한은 씩 웃었다.
“글쎄요. 지금은 밀리나, 무혼이 있으면…… 어르신도 금방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만.”
“허.”
“무의 기본도,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동방삭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첫 격돌 때보다.
그 후의 성지한의 기본기는 눈에 띄게 성장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사지가 그대로 찢겨 버렸다면.
이제는 팔 하나, 다리 하나 정도로 내주는 데 그쳤으니까.
“그 기묘한 재생력이 없었다면, 진작에 끝났을 것을…….”
“덕분에 수백 번을 베이며, 발전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죠.”
“무혼…… 정말 어처구니없는 능력이구나.”
“아주 좋은 능력이죠.”
무혼.
이 ‘별의 능력’은, 무인으로서 그간 쌓아 온 노력을 너무나도 쉽게 강탈했다.
동방삭은 영생을 살아오며 많은 걸 포기하고, 접어 두었지만.
자신이 쌓아 온 무공이.
그가 평생 노력해 온 힘이 일방적으로 갈취되는 건, 아무리 오래 살아도 불쾌한 경험이었다.
“이대로 계속 제압해 봤자, 자네만 키워 주는 꼴이군. 단번에 끝장을 내겠네.”
“오. 강한 무공 사용하십니까? 좋군요.”
동방삭의 말에 반색하는 성지한.
그는 눈앞의 맹랑한 청년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한 방에 끝내 주겠다는데도 좋아하는 꼴이라니.
그놈의 무혼 때문이겠지.
“……안 되겠군.”
뚝.
동방삭은 평소와는 달리, 수염을 여러 가닥 뽑았다.
그러자, 수염이 저절로 허공을 흩날리며.
그의 등 뒤로, 기묘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파천의 검을 사용하려고 했건만…….”
스으으으…….
“생각해 보니, 자네가 나보다 더 뛰어난 게 있지 않던가.”
동방삭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문양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천마의 광폭한 마기 대신, 현기가 가득했다.
“인간과 만귀가 공존하는 시대. 한 사내는, 귀鬼와 신神을 봉하고. 인간의 시대를 열 업을 부여받았다…….”
스으윽.
동방삭은 가라앉은 눈으로, 수염을 매만졌다.
“하나, 그는 이를 결국 이루지 못했네. 다만, 시일이 흘러. 미련이 남아 흉내만 내었지.”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 그가 무엇을 흉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멸신결의 두 번째 무공, 만귀봉신.
영체를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이는 이 무공을.
흉내 낸 것이 저것인가.
‘만귀봉신과 비슷한 듯, 다르군.’
성지한은 동방삭이 떠올린 진을 보았다.
만귀봉신의 문양과 언뜻 보기에는 흡사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진.
동방삭이 말한 대로, 저것이 만귀봉신을 흉내만 낸 거라면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구궁九宮.”
진 안.
아홉 곳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아홉 빛 근처의 세상이, 일그러졌다.
2경기 때, 동방삭이 처음 보였던.
만물을 빨아들이는 태극과 흡사한 힘.
하나 성지한의 눈에는, 빨려 들어가는 대기보다.
[타깃 조건, 일부 일치.]
어느덧, 그 위에 뜬 문자가 신경 쓰였다.
‘이건…….’
롱기누스가 신살의 창을 썼을 때 보였던 문자와 동일한 것이.
구궁을 읊자,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팔괘八卦.”
진 안, 여덟 방위에서 팔괘가 그려지자.
[봉인 코드.]
그 위에, 떠오른 문자가 변형되었다.
롱기누스 때는 소멸 코드였다면, 이번에는 봉인 코드로 달라진 문자.
“칠성七星.”
그리고 그다음, 칠성을 읊자.
봉인 코드의 글자가 사라지며.
[발현…….]
그 자리에 발현이 뜬 순간.
[그만.]
쩌저적!
동방삭의 등 뒤 진에서.
공간이 찢어지며, 거대한 검은 손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다.]
“주, 주인이시여…….”
콰직!
검은 손이 주먹을 쥐자.
동방삭은, 그가 구현한 진과 함께 허공에서 그대로 터져 버렸다.
‘주인이라면. 설마 무신인가…….’
아무리 무신이 규격 외의 존재라지만.
경기에, 외부에서 저렇게 개입할 수가 있다고?
성지한은 검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 수십이 들어갈 만큼 거대한 크기.
그 안에서 풍기는 기운은, 소름 끼치도록 불길했지만.
‘……이상하게도, 동방삭보다 상대해 볼 만한 것 같다.’
무의 극을 보여 주었던 동방삭.
그런 그도 단숨에 터뜨려 버린 저 검은 손이.
어째 성지한에게는 더 쉬워 보였다.
[…….]
스으윽.
주먹을 쥔 검은 손이 찢어 버린 공간 사이로 사라지고.
공간의 틈새는 금방 매워졌다.
그러자 남은 것은.
부서진 다리와, 동방삭의 구궁팔괘도에 빨려 들어가던 플레이어들뿐이었다.
반절 이상은 빨려 들어오다, 힘이 사라지자 절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지만.
“으, 으으…….”
“살았다…….”
반 정도는, 어떻게든 다리 근처의 땅에서 버티며 생존해 있는 상태였다.
이는 동방삭의 구궁팔괘도가, 힘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쉽군.”
성지한은 그런 전장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동방삭과 싸우며, 무혼을 통해 배운 것이 어마어마했는데.
하필 무신이 개입하는 바람에, 이런 배움의 장이 끝나 버렸다.
‘아무래도 그가 다음 경기는 나오지 않을 거 같고…….’
스윽.
성지한은 다리 근처에서, 몸을 추스르는 대만 플레이어들을 바라보았다.
‘게임이나 끝내자.’
슉!
무너진 다리.
허공에 서 있던 성지한이 경공을 사용하고.
“아…….”
“서, 성지한 온다!”
“막아……!”
대만 플레이어들은 어떻게든 이에 대항해 보려고 했지만.
두 괴물의 1:1 대결을 지금까지 보던 그들은, 이미 목소리에 힘이 쫙 빠져 있었다.
저 규격 외 플레이어를, 대체 어떻게 막아?
그리고.
쿵!
성지한이 대만 쪽 땅을 밟자.
대지가 갈라지며, 파편이 일제히 플레이어들을 향해 날아갔다.
“아까 건…… 이렇게 쓰는 거였나?”
동방삭이 사용했던 천마군림보와 흡사한 광경.
다만 그의 것에는, 마기 대신 뇌전이 깃들어 있었다.
“이, 이거 허우택 할아버지가 썼던 거잖아?”
“으. 씨…… 이걸 어떻게 막아!”
지지지직!
파편에 꿰뚫려, 일제히 사라지는 대만 플레이어들.
여기에는 방어 태세를 굳건히 갖춘 전사들도 예외가 없었다.
[3경기가 종료됩니다.]
3경기는, 그렇게 성지한이 대만의 땅에 발을 찍는 순간.
종료되었다.
* * *
[한국, 대만에 3:0으로 승리하다.]
[태극에 의해 사라진 2경기. 역대 배틀넷 게임 중 최단 시간에 끝나다.]
[3경기 이후 쓰러진 허우택 선수, 성좌의 강림으로 그런 힘을 냈다고 밝혀.]
[성지한을 상대할 때마다 성좌가 강림한다? 블라디미르에 이어, 또 다른 성좌 강림. 그에게 성좌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모두가 한국이 승리할 거라고 예상했던 대만전.
경기 결과는 예측대로 3:0으로 끝났지만.
경기 내용은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결과는 어쨌든 3:0이긴 하네?
-와, 진짜 지는 줄 ㅋㅋㅋㅋ
-할배 또 성좌 강림이었음?
-성지한 왜 이렇게 성좌들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아니 스페이스 리그 때나 도와 달라구요 ㅋㅋㅋ
성좌가 강림했다는 허우택의 인터뷰에, 어쩐지 세더라며 리플을 다는 사람들.
사람들은 그러며 이번 성좌에 대해 추측했다.
-야, 근데 진짜 이번 애는 강하긴 하더라…… 격이 달랐어;
-3경기 보니까 천마라고 하는 거 같은데. 천마가 원래 그렇게 셈?
-세긴 센데 태극 쓰는 천마는 반칙인 듯 ㅋㅋㅋ
-ㄹㅇㅋㅋ 정사마의 힘을 다 가지고 있으면 안 되지 ㅡㅡ-그러니까 성좌까지 하는 거겠지…….
-천마 왕린 이제 천마 떼야 할 듯 ㅋㅋㅋ
-ㄹㅇ 저게 진짜 천마죠.
자기 입으로 천마라 말해서 그런지, 이미 ‘천마’로 인식된 동방삭.
그의 활약상은, 그간 천마라고 불리던 왕린에게서 칭호를 빼앗는 효과까지 불러왔다.
한편.
그렇게 세간에 화제가 된 동방삭은.
무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인이시여. 송구합니다.”
[무엇이 송구한가.]
“그건…….”
동방삭은 무신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사실 그도, 구궁팔괘도를 제대로 써먹으려고 할 찰나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으니까.
무신은 잠시 침묵하며 동방삭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이제부터, 너는 그에게 관여하지 말라.]
“저만…… 말입니까?”
[일단은, 그렇다.]
“……알겠습니다.”
동방삭은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무신이 개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종이 된 몸으로서, 주인의 말에 복종하기로 한 것이다.
[물러나 쉬어라. 이제 곧, 침공이 있을 터이니.]
“침공이라 하심은…….”
[뇌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파악했다. 신왕좌를 강탈할 것이다.]
“뇌신의…… 신왕좌 말입니까?”
[그래. 왕좌를 교체할 때가 되었다.]
신 중에서도 강력하다고 알려진 뇌신.
하지만 무신은 그의 신왕좌가, 이미 자기 것인 양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다른 종에게도 준비하라 일러라.]
“예.”
무릎을 꿇었던 동방삭이 물러나자.
무신은 손가락으로,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툭툭 쳤다.
그러자.
번쩍!
어둠 속에 가려졌던 무신의 얼굴 이마 쪽에서.
빛의 눈이 생성되었다.
이는 예언의 능력을 지닌, 피티아의 신안神眼과 흡사한 생김새였다.
[패배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보였군.]
지금까지는 성지한이 이긴다는 미래가, 하나도 존재하질 않았는데.
그가 동방삭의 무를 견식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구궁팔괘도를 보았기 때문인지.
그의 신안에서는.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처음으로 성지한에게 패배하는 미래가 보였다.
[작은 변수도…… 차단한다.]
무신은 나직이 읊조리며. 신안을 다시 거둬들였다.
그러자 그의 자리에서는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그를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