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47화〉
성지한이 출전하자, 누구나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만전 2경기.
하지만, 경기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허우택 선수…… 하늘을 납니다!
=어, 저, 저기서 뭐 하는 거죠?
허우택이 소환한 거대한 태극.
그것이 정방향으로 돌아갔을 때는 맵 자체를 빨아들였고.
=기차마저 날아가다니…… 이게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앗, 태극이 거꾸로 돕니다!
=화면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깁니다.
역방향으로 돌았을 때는.
백색의 검이 어둠을 토해 내며, 세상을 완전히 까맣게 물들였다.
그 어떤 플레이어도 저항할 수 없는 어둠.
-저거 뭐야…….
-화면 왜 안 보임?? 에러 남??
-에러였음 좋겠다…… 지한 님이 패배하시다니 ㅠㅠ
-아니, 저 할배 안 저랬잖아 원래!
-저 정도면 인류 최고의 플레이어 아냐?
-ㄹㅇ 스페이스 리그에 안 나오고 뭐 하셨대 ㅡㅡ
원사이드 경기가 될 거라고 기대하던 시청자들은, 대만의 노인 플레이어에게 게임이 단시간에 종료되자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어. 어…….
=게, 게임 결과. 한국 승입니다?
막상 나온 게임의 결과는, 또다시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뭐죠.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아…… 최후의 생존자는 성지한 선수 1명. 허우택 선수는 전사한 걸로 나와 있습니다?
태극이 역으로 돌며, 세상이 암전되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게임이 끝난 줄 알았는데.
막상 게임 결과는, 한국의 승리였다.
지이이잉.
“와, 시발…….”
“뭐야, 저거?”
“아니. 저 할아버지는 왜 우주 리그에서 힘을 안 쓰고 여기서 저러는 거야?”
플레이어들이 모두 넋이 나간 얼굴로 배틀넷 커넥터에서 나오고.
“엥? 이겼어? 뭐, 뭐야. 삼촌…… 아까 어떻게 된 거야?”
윤세아도 비슷한 표정으로 커넥터에서 나왔다가, 게임 결과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성지한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잠깐만.”
“아, 응.”
심각한 얼굴로, 조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지금껏 어려운 상대는 없었는데…….’
무혼을 얻고, 공허를 얻은 이후.
성지한을 위협하는 적수는 우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근래에 가장 그를 위협했던 건, 아르트무의 자폭 정도로.
성지한의 힘은 일반적인 수준을 한참 초월해 있었다.
하지만.
‘태극마검…… 나의 완패였다.’
역태극에서 나온, 백색의 장검.
그것이 토해 내는 어둠은, 마치 저번 생.
멸망의 때에 자신을 잠식했던 어둠과 비슷했다.
무혼의 공간 장악력도. 공허의 힘도 모조리 이 어둠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성지한은 당연히, 그때 자신도 전사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신이 사라지려고 할 때. 그때야 비로소, 5번째 멸신결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어.’
다섯 번째 멸신결, 천수강신天樹降神.
이 목속성의 무공이 어떤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간 아무리 수련해도 감이 오질 않았는데.
전신이 태극마검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
체내에 남아 있던 생명의 기운이, 이를 봉합하려 드는 과정에서 성지한은 천수강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엘프가 지닌 생명의 힘과, 길가메시의 권능에는 연관이 있다…….’
성지한은 고엘프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지구를 침공하겠다고, 그리 날뛰던 그는.
[허, 이 행성…… 실험이, 이미 진행된 세계였다고…… 그러기에는 종족이 너무 형편없는데…….]
이미 지구가 ‘실험이 진행된 세계’여서, 포탈에 진입하질 못했지.
혹시 길가메시의 권능과, 이것이 연관이 있는 건가.
‘아직은 작은 실마리만 잡았을 뿐이지만…….’
천수강신에 대한 작은 실마리만으로도.
태극마검에 의해 사라졌던 전신이, 생명의 기운을 통해 재생할 수 있었다.
이는 아르트무의 자폭 때 재생했던 것과 매커니즘 자체는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전신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에서 새로이 육신을 재생한 거라,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였다.
물론, 이러한 재생은 아직 온전치 않아서.
태극마검의 어둠이 계속 지속되었다면, 금방 살아난 육체가 소멸했겠지만.
‘허우택의 몸이 태극마검을 견디질 못했지.’
아무리 동방삭이 빙의했다고 한들.
일반 플레이어가 사용하기에는, 태극마검은 너무 강력한 무공이었다.
태극마검이 어둠을 토해 냈을 때.
허우택의 육신도, 당연히 이를 견디질 못했다.
성지한이 재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보다는 늦게 전사했겠지만.
다시 살아나는 바람에, 게임의 승패 자체는 한국에게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일까.
피티아에게서 전송된, 시스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동방삭이 ‘태극마검을 견디고, 다시 살아났구나. 후임. 이번 내기는 내가 졌다.’라고 하네요. 아쉽지만, 공짜 예언 한 번 해 드릴게요.]
깔끔하게 내기에서 졌다고 인정하는 동방삭.
하지만 성지한은 이를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졌다니. 허우택의 몸이 견디지 못했을 뿐이지. 승리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다른 몸으로 제대로 붙자고 전해.”
[아니. 무슨 소리예요. 동방삭은 패배를 인정했고, 제가 공짜로 예언을 해 준다는데!]
“아. 예언은 됐고. 다시 싸우자고 해.”
[아니…… 참나. 내 예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건데!]
“됐다니까. 필요 없어.”
성지한은 내기 승리보다는, 한 번 더 싸우기를 원했다.
전신이 바스라지면서 멸신결 천수강신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 이외에도.
‘동방삭이 펼친 태극과 역태극.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공부가 된다.’
무혼을 얻은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가 된 성지한.
그에게는 지금껏, 보고 배울 만한 플레이어가 한 명도 없었다.
무武의 경지는 혼자서 독보적이었기에, 그 어디서도 배울 수 없고.
스스로가 계속 개척하고, 발전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의 태극은 달랐다.’
동방삭이라는 무인이 보여 준 태극마검은, 성지한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무혼을 지닌 그로서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지.
하지만 태극은 무의식을 자극하여, 지금까지 단련했던 무공을 한층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헌데 그깟 예언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몇십, 몇백 번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의 경지를 드높이기 위해선, 성지한은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다시 붙자고. 빨리 물어봐.”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진짜? 미래가 궁금하지 않아요?]
“미래보다 태극이나 더 보고 싶군.”
[하. 내 예언이 이런 취급을 받다니…… 좋아요. 잠시만요.]
성지한이 확고하게 의사를 표현하자, 피티아는 잠시 후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음 경기까지 출전이 가능하다네요. 어때요. 하시겠어요?]
“좋다.”
[그럼 밴 안 당하게만 해 주세요. 3경기 밴 당하면 그 이후 경기는 강림하지 못하니까.]
성지한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장 노영준 감독에게 갔다.
“하. 허우택 선수…… 이렇게 강력했단 말인가? 그동안 왜 힘을 숨겼지?”
“이제부터 그를 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만에 허우택 말고는 특출난 키 플레이어가 없으니까요.”
비록 2경기를 이기긴 했지만.
초월적인 힘을 보여 준 허우택 때문에, 안전하게 그를 밴하고 가자는 코칭스태프들.
노영준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는 중이었다.
“허우택, 밴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 지한아.”
“3경기만 풀어 주시면 됩니다. 그 이후는 하셔도 괜찮구요.”
성지한의 말에, 노영준 감독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감독 입장에서야, 지금 허우택을 밴하는 게 맞긴 하지만.
‘아무래도 지한이가 그와 다시 맞붙고 싶나 보군…….’
이를 요청하는 선수가 성지한인 게 문제였다.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을 혼자서 끌고 오며, 지역 리그에서 꼴등 하던 나라를 이제 챔피언스 리그 우승 후보로 자리매김하게 한 1등 공신.
팀보다 위대한 선수라면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그의 요청을.
아무리 감독이라 한들, 안 받아 주긴 힘들었다.
“3경기 이후에는…… 정말 상관없나?”
“예. 그렇습니다.”
“알겠네. 그럼 허우택, 이번 경기에선 풀지.”
코칭스태프들은 그 결정에 이게 맞나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반론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들도 성지한이 한국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알고 있었기에.
허우택한테 패배하면 어쩌려고 밴을 안 하냐고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2경기도 이겼으니까…….’
‘혹시 모르잖아?’
어쨌거나 2번째 경기도 한국이 승리했으니까.
한 게임 정도는, 놔줘도 4, 5경기는 허우택 밴하면 되겠지.
코칭스태프들의 동의하에, 노영준 감독은 3경기의 밴, 셀렉트에 돌입했고.
=어…… 허우택 선수. 밴이 풀렸습니다!
=2경기를 보고도, 허우택을 풀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노영준 감독!
=대만 감독도, 성지한을 밴하지 않는군요!
=대신 윤세진 선수가 밴 당합니다!
=맵은 하나의 다리로군요…….
=아. 이러면…… 2경기와 결과가 똑같아지지 않을까요?
맵만 바뀌었을 뿐.
2경기와 똑같은 라인업으로, 한국과 대만은 다시 격돌하게 되었다.
* * *
하나의 다리.
일반 배틀넷에서는 게임에서는 언데드 군단을 막는 디펜스 맵이었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양 진영이 다리를 두고 맞붙는, 인베이드 맵이었다.
원래는 커다란 다리에서, 전사들이 진형을 이뤄 전진하고.
뒤에서 궁수와 마법사들이 화력을 보태는 형태로 게임이 진행되었지만.
대만전 3경기는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예언을 포기하고 나랑 다시 싸우고 싶다니. 큰 결심을 했군.”
저벅. 저벅.
대만 진영에서, 여유롭게 홀로 걸어오는 허우택.
걸어올 때마다, 그의 겉모습이 조금씩 바뀌었다.
수염은 더 길어지고, 머리색은 더 하얗게 물들어.
원래는 중노년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국 진영에서 걸어오는 플레이어도, 성지한 단 한 명으로.
그는 두 무기를 꺼내든 채, 만반의 준비를 다한 상태였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태극을 꺼내지 못하겠어.”
“왜 안 되죠?”
“이 플레이어가, 더 이상은 견디질 못하거든. 그랬다간 죽을 것 같아.”
“아쉽군요.”
맵을 삭제시킨, 태극의 힘.
그걸 다시 한번 체험하고 싶었건만, 강림한 육체가 약해서 또 쓰지는 못하는 건가.
성지한이 아쉬워하자,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걱정 말게. 원래의 내기는, 1분이지 않았던가.”
뚝.
그가 수염을 뽑자.
스으으으…….
그의 등 뒤에서, 강렬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천마의 힘으로도, 끝을 낼 수 있을 터이니.”
스윽!
그가 손을 한 번 젓자.
대기가 요동치며, 성지한의 왼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마의 무형장無形掌
형形을 뛰어넘는 장법은, 팔을 비롯하여 그림자검마저도 지워 버렸지만.
“흐음…….”
막상 그의 왼팔을 없앤 동방삭은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로, 침음성을 흘렸다.
“천마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만.”
그도 그럴 것이.
스으으으…….
사라졌던 성지한의 왼팔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네.”
“그럼, 제대로 보여 주시죠. 1분 금방입니다.”
쿵!
성지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리가 무너지며, 동방삭의 몸이 순식간에 성지한에게로 접근했다.
“그래. 금방 끝내지.”
순식간에 몰아치는 마기.
전신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성지한은 미소 지었다.
태극마검은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이었지만.
천마의 무공은, 어떻게 써먹는 건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무형장. 이렇게 한 겁니까?”
슈우우우!
몸을 회복한 성지한이, 손을 휘둘러 조금 전의 무형장을 따라 하자.
동방삭의 옷 한 가닥이 찢어졌다.
그리고.
스윽.
동방삭은 굳은 표정으로, 사라진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성지한이 따라 한 무형장.
한 번 보고 사용한 것치고는, 놀랍도록 유사했다.
“……무혼으로 이해한 것인가?”
“예.”
“내 후임으로 들어오면, 다시는 흉내 내지 못하게 해 주지.”
이를 본 동방삭의 마기가, 더욱 흉흉하게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