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43화>
“저 아저씨가 직접 나서다니. 역시 여기, 문제가 있는 세계였구만.”
딱. 딱.
검은 해골은 이빨을 부딪치며, 가면 엘프가 사라진 쪽을 지켜보다가.
성지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머리. 몸 상태는 괜찮나?”
“쟨 뭐지?”
반가면의 엘프.
그는 지금까지 보았던 스테레오 타입의 엘프와는, 외모가 달랐다.
예전에 인류가 보았을 때, 여러 가지 외모로 보였던 엘프들은 사실 위장 마법이 걸려 있었고.
실제로는 모두 똑같은 여성 엘프 얼굴로 형태가 통일되어 있었다.
하나 아까 보았던 엘프는, 위장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외모도 남성형으로, 기존에 보았던 엘프와는 확실히 궤가 달랐다.
‘하이엘프처럼 녹색의 머리칼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은발이었지.’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
성지한이 그에 대해 의문을 표하자, 칼레인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말했다.
“아까 가면 엘프? 고古엘프다.”
“고엘프?”
“어. 늙다리 엘프. 세계수 연합이 탄생할 때부터 있었다는 원로급 엘프라는데…… 나도 일 때문에 몇 번 봤을 뿐, 자세히는 몰라. 단지, 개개인이 성좌급으로 강하다는 것만 알지.”
“성좌급이라고?”
“그래. 그것도 꽤 강력한, 고위 성좌급일 거야.”
그러며 칼레인은 성지한이 쥐고 있는 씨앗을 바라보았다.
“저 고엘프 성깔 완전 드러워서, 네가 그거 넘기면 진짜 쳐들어올지도 몰라. 그냥 아예 다 흡수해 버리지 그래?”
“흠. 걱정하는 건가?”
“당연하지. 우리 머리가 될 몸인데. 고엘프는 진짜 치졸하고 위험한 상대야. 괜히 찍혔다가, 엄청 피곤해져.”
죽은 별의 성좌가 저렇게 이야기할 정도면.
확실히 아까의 가면 엘프,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넘겨야지.”
“……진짜?”
“어. 엘프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니까.”
에픽 퀘스트 보상도 보상이거니와.
세계수 연합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면야,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위험하면 언제든 날 부르라고. 머리 회수하러 갈 테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난 언제든 성좌 채널을 열어 놓고 있을게~! 다음에 보자고!”
작별 인사하듯, 고개를 신나게 흔들면서 사라진 검은 해골.
가면 엘프를 막기 위해 소환되었던 언데드 군단도, 그와 함께 스르르 사라졌다.
-해골 걱정해 주는 거 보소 ㅋㅋㅋㅋ 성지한한테 왜 이리 집착하냐?
-머리로 만든다잖아; 절대 좋은 의도가 아님.
-아니 근데 검은 해골 머리 있는데 뭘 머리로 만들어?
-그러게. 근데 성좌 채널 연다니…… 저런 애가 성좌야? ㅋㅋㅋㅋ-성좌에 대한 환상 다 깨지네 ㅡㅡ;
별의 주인인, 성좌의 기존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칼레인.
이를 두고 시청자들이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
스으으…….
사라졌던 칼레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까 작별 인사했는데 모양 빠지게 다시 와 버렸네.”
“왜 왔냐?”
“1등 선물 시상식 해야지!”
“1등?”
“어. 양 진영 통틀어서, 청혈 마족의 멸망에 가장 기여했거든. 네가.”
검은 해골은 음산하게 웃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거대한 다이아가 튀어나왔다.
“1등 보상은…… 무려 잔여 스탯을 열 개나 올려 주는 스탯 다이아라고!”
“주는 거야 감사히 받겠다만, 내가 왜 1등이지?”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실컷 태양 진영의 플레이어들과 싸우다가 게임 끝났는데.
이거랑 멸망의 기여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배틀넷의 자체 평가점수론 네가 압도적이야. 아마, 네가 청혈 마족의 희망을 완전히 짓밟아 버려서 그런 거 같은데?”
“아. 빙의를 막아서 그런 건가.”
“그래. 빙의 갈아타기! 그걸 네가 원천봉쇄했으니, 저 아래 시가지 좀 부순 거보다 훨씬 공로가 크지. 자.”
스으으으…….
거대한 다이아가 성지한에게 날아오자.
그는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한 종족을 멸망시키고, 얻은 보상인가…….’
잔여 스탯 + 10.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으로는, 최상급이었지만.
이를 얻기 위해 한 종족을 끝장냈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심경이 교차했다.
만약 인류도 멸망할 때.
저번처럼 종말의 사도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참전하게 된다면.
그들 중, 1등은 스탯 +10 받으려고 인류를 학살하는 건가.
“뭐 해? 안 가져가?”
“……아니. 주는 건 받아야지.”
그래.
현 청혈 마족의 상황과, 인류를 대입해 봤자 어차피 의미 없는 가정이다.
성지한은 생각을 멈추고, 다이아를 움켜쥐었다.
[‘종의 정수’를 흡수했습니다.]
[잔여 스탯이 +10 오릅니다.]
그러자 잔여 스탯을 올려 주고는, 사라지는 종의 정수.
“머리야. 그럼 진짜 작별이다~”
빙그르르.
검은 해골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더니 사라지고.
[스페셜 맵, ‘종족 섬멸전’을 1등으로 클리어했습니다.]
[레벨이 10 오릅니다.]
[100억 GP를 획득합니다.]
종의 정수 이외에도.
1등 보상으로 막대한 경험치와 GP 보상이 들어왔다.
‘10레벨이나 오르다니…… 이러다 랭킹 1위 하는 거 아니야?’
최상위권 랭킹에는, 레벨 업 하나하나가 순위 변경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여기서 10레벨 업은 랭킹 순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불러 올 만한 변수였다.
성지한은 이를 보고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하나 싶었지만.
[A.DaVVies가 10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오오. 성지한 선수 2등!! 정말 다행입니다!! 다음 경기는 걱정 없겠군요!]
데이비스 감독의 후원 메시지를 보자, 1등이 안 된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오…… 성지한, 랭킹 2등 했네?
-다행히 1등은 아니다 ㅋㅋㅋㅋ
-휴우…… 다음 스페이스 리그까지는 성지한 밴 저격 안 당하고 써먹을 수 있겠네…….
-근데 이쯤 되면 올리버가 대단하지 않냐? 성지한이 저렇게 치고 올라오는데 어떻게 1등을 계속 지킴?
-ㄹㅇ 잘 버틴다니까 ㅋㅋㅋㅋ
근래 수년간 세계 랭킹 1등을 지켜 왔던 올리버.
성지한에게 1등을 빼앗길 건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간 벌어 둔 것이 있어서 그런지, 최대한 1등에서 버텨 주고 있었다.
‘랭킹 1등은 다음 스페이스 리그 경기 이후, 탈환해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
* * *
“으. 아. 아아아…… 이거 뭐야. 내 머리카락!”
로그아웃하자마자, 성지한의 팔에서 나온 아리엘은 비명을 질렀다.
“하, 하이 엘프처럼 돼 버렸잖아!”
회색빛을 띠는 흑발이었던 아리엘의 머리카락 색은.
몇 갈래가 하이 엘프처럼 녹색 빛을 띄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 때문에 그런가?”
“아. 아…… 이래서야, 쉐도우 엘프가 아니지 않는가…….”
“진화한다고 생각해.”
“이게 무슨 진화냐! 잡탕이 되는 거지……!”
“그래도 저번보단 강해진 거 같은데?”
“그, 그런가? 음…….”
성지한의 말에, 머리카락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리엘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집 여기저기에 그림자를 띄워 보고.
하나의 형태에서, 그림자를 퍼트려 수십, 수백 명으로 나뉘는 등.
자체적으로 이리저리 힘을 사용해 보곤.
성지한에게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군. 체감될 정도로, 강해졌어.”
“그치? 그러니까 계속 섞자.”
“……하아.”
생명의 기운을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니까,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
아리엘은 푹 한숨을 쉬더니, 성지한의 팔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조금, 쉬도록 하지…….]
“아. 근데, 쉬기 전에. 아까 가면 엘프에 대해 아는 거 있냐? 그거만 알려 주고 가.”
[가면 엘프? 그런 존재가 나왔었나? 아까는 생명의 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못 봤는데.]
“어. 죽은 별의 성좌가 고엘프라는데.”
[고엘프라고…….]
성지한의 말에 대번에 심각한 목소리를 낸 아리엘.
[아까의 영상, 찍은 게 있으면 보여 줄 수 있겠나?]
“그래.”
그렇게 그녀는 조금 전 끝났던 배틀튜브를 다시 돌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후…… 고엘프. 나도 이야기로만 들었다. 세계수 연합을 만든 원로들로, 하나하나가 성좌와 비견될 정도로 강력하다고 하지. 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면, 여왕께 즉각 알리게 되어 있다…… 잠깐 보고해도 되겠는가?]
“세계수 연합의 원로라…… 고엘프에 대해 더 아는 건 없고?”
[내가 아는 선은 여기까지다. 여왕께 더 여쭙지.]
“알았어.”
[아. 그 고엘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씨앗은 내버려 두는 게 낫지 않겠나? 저 존재가 진짜 이 세계로 쳐들어오면 위협적일 텐데 말이지.]
“흠.”
[그럼, 일단 가 보겠다.]
그렇게 아리엘이 그림자여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사라지자.
성지한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씨앗을 바라보았다.
‘칼레인도 그렇고. 아리엘도 일단은 내버려 두라고 하는군.’
고엘프가 강한 건, 그가 발길질 한 번으로 촉수를 날리는 걸 보며 어느 정도 체감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경계심을 표출하는 게, 유별날 정도였다.
‘이게 뭐라고 말이야.’
성지한이 작아진 개조 씨앗을 매만지자.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개조된 생명의 씨앗’을 배틀넷에 반납하시겠습니까?]
[씨앗의 기운이 더 사라질 경우, ‘증거 자료’로 채택이 되지 않아 보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씨앗에서 생명의 기운을 흡수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배틀넷.
성지한은 그걸 보고 입맛을 다셨다.
남은 생명의 기운도 깡그리 다 빨아 버리고 반납하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그럼 여왕의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내버려 둘까.’
어차피 반납할 건 확정이지만.
아리엘의 권유도 있으니, 고엘프에 대해 이야기 정도는 들어 보자고 그가 생각하고 있을 때.
스으으으…….
갑자기, 개조된 생명의 씨앗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개조된 생명의 씨앗에서 급격하게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운이 사라진다면, 증거 자료로 채택할 수 없습니다.]
[개조된 생명의 씨앗을 반납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황급하게 뜨는 메시지.
성지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씨앗이랑 시스템이 동시에 난리가 나고 있었다.
‘……왜 이래, 이거?’
성지한은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반납한다.”
에픽 퀘스트 보상을 놓칠 수는 없었기에, 개조된 생명의 씨앗을 얼른 시스템에 넘겼다.
그러자 이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 씨앗이 바로 사라지며.
[에픽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공허 스탯 수용 한도가 +30 늘어납니다.]
[칭호, ‘공허 집행자’를 획득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와 함께 보상이 주어졌다.
‘좋아. 칭호 넣을 거 없는데 잘 됐군.’
성지한은 에픽 퀘스트 보상으로, 새로 얻은 칭호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스으으으…….
조금 전, 씨앗에서 뿜어져 나왔던 녹색의 연기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진해진 채, 창밖을 향해 날아가는 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거부터 정리해야겠어.’
연기 속에 가득한, 생명의 기운.
저걸 내버려 뒀다가, 지구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까.
성지한은 칭호를 확인하기 전에, 씨앗이 뿜어낸 연기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스으윽.
그는 가볍게 손을 뻗어, 이를 흡수하려고 했지만.
연기는 성지한의 힘에 저항하며, 순식간에 거실 창을 뚫고 날아갔다.
마치 창이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녹색 운무를 보고.
‘저항이 심하네.’
성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창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허공을 밟은 성지한은 연기에 손을 뻗었지만.
슈우우우……!
연기는 나무의 형상으로 잠시 변하나 싶더니.
스으으으…….
곧, 특이한 형상의 글자로 바뀌었다.
‘이거…….’
그리고 성지한은 이 글자에 대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를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실험이 진행된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