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40화>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나무.
거꾸로 매달려 땅바닥을 향하는 가지에는, 눈동자처럼 생긴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청혈 마족이 지닌 푸른 눈동자와 비슷한 모양.
성지한은 그 나무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무? 나무가 여기서 왜 나오지?’
나무 하면 이제 세계수 연합부터 떠오르는 성지한.
그래도 저 거꾸로 매달린 나무 자체는, 생명의 기운을 지니거나 하진 않고 있었다.
‘일단은 부숴 봐야겠군.’
검우가 저 나무를 가리킨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성지한은 저 흉흉한 나무부터 없애 보기로 마음먹었다.
스으윽.
그가 봉황기를 꺼내, 나무를 겨누자.
[이곳까지 오다니……!]
번쩍!
나무에 매달린 열매에서 모조리 빛이 번쩍이더니, 청혈 마족의 기운이 다시 성지한을 구속하려고 했지만.
“그거 안 통하는 거 알잖아?”
성지한은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창에 붉은 전류를 끌어 올렸다.
지지지직!
나무가 상대라 그런가.
평소보다 더 강렬하게 뻗어 가는 적뢰.
눈알 열매가 먼저 재가 되고.
오색찬란하던 나무의 가지와 기둥도, 점차 빛깔을 잃더니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소멸되는 거대한 나무.
‘간단한데?’
처음의 존재감에 비하면, 생각보다 손쉽게 사라진 대상.
하지만.
스으윽……!
성지한이 타고 있던 물의 검은, 사라지지 않고.
검 끝을 오히려 천장으로 향했다.
“가자.”
쉬이익!
성지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장을 꿰뚫어 버리는 물의 검.
지하의 성지를 초토화시킨 그는, 그렇게 다시 지상 위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전 자신을 감았던, 푸른 촉수가 대지 위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는 걸 발견했다.
땅 위는 물론이거니와 하늘까지 뻗어 있는 촉수는 워낙 개수가 많아서, 세상이 완전히 푸르게 보였다.
-이거 아까 촉수잖아?
-근데 나무 위에 있었으니…… 이거 뿌리 역할을 한 건가?
-아 오늘 게임은 눈알에 촉수에 좀 그로테스크한데 ㅡㅡ-으으 촉수 사이에 또 눈알도 있음; 사방에서 꿈틀거리는 게 꿈에서 나오겠다 야.
성지한의 배틀튜브를 오랜만에 본 것은 좋았지만.
워낙 나오는 장면이 장면이다 보니, 시청자들은 절로 괴로움을 호소했다.
하나 아수라장을 한두 번 넘어온 게 아닌 성지한은, 아무런 심적 동요 없이 촉수의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촉수 대부분이 휘감고 있는 건 청혈 마족인가.’
촉수의 끝부분에는.
청혈 마족 무리가 사방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신께…… 귀의한다……!]
[신께…… 귀의한다……!]
두 눈이 풀린 채, 그 말만을 내뱉는 청혈 마족은.
스르르르……!
촉수가 몸을 휘감고, 그들을 흡수하는 순간에도 신만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청혈 마족이 흡수될수록.
툭.
기다란 촉수에, 눈이 하나씩 올라왔다.
-으으…… 마족들 동족 먹는 거임?
-나무가 쟤들이랑 동족은 아니잖아.
-아 그런가. 그래도 신으로 모시는데…….
-어차피 멸망하는 와중이라 뭐 보이는 게 있겠어? 뭐래도 하는 거겠지.
-우리는 저 지경 가면 안 되는데…… ㅡㅡ;
멸망을 맞이하게 된 세계에서, 인신공양이 일어나는 걸 목격한 시청자들은.
리그 강등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확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한편 성지한은, 촉수가 움직이는 현상 자체를 주목했다.
‘나무는 없어졌는데, 촉수는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는군.’
아직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근원이 어디 있지?
그는 자신을 지상으로 끌어온 검우를 바라보았지만.
스으으…….
지상에 올라온 물의 검은, 하늘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 보자.”
성지한의 지시에 검우가 다시 뻗어 나가려고 했지만.
뚝!
검은 끝까지 올라가질 못하고, 중간에서 끊겼다.
‘범위가 여기까진가.’
지하에서 사용했던 빙천검우.
거기서 꽤 먼 거리까지 뻗어 나갔다가, 지상 위까지 올라왔으니.
검우의 범위가 끝날 법했다.
‘검을 다시 회수해야겠군.’
스으으윽……!
성지한이 그림자기운을 지하로 내뻗자. 지하에서 빙천검우가 해제되며 이클립스가 성지한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꽤 먼 거리에 있어서, 바로 회수되지는 않는 검.
‘일단 검우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가 볼까.’
그는 창을 들고 하늘 위로 올라섰다.
스으으으…….
성지한이 나서자, 얼른 그를 피하려 드는 촉수들.
특히, 성지한의 창끝에 맴도는 적뢰에 대해서는 기를 쓰면서 닿지 않으려 들었다.
-ㅋㅋㅋㅋㅋ 촉수 빠른 거 봐라.
-적뢰 무서워서 노이로제 반응 보이네 ㅋㅋㅋ
-닿기만 하면 가루가 되는데 당연한 거지 ㅋㅋ
-근데 왜 저거 내버려 둠?
-그러게…… 뭐 찾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촉수가 터 주는 길을 통해, 하늘 위로 올라선 성지한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내가 나온 곳이 언덕 위였나 보군.’
거대한 언덕을 중심으로, 빽빽하게 모여 있는 청혈 마족의 거주지.
성지한이 땅을 뚫고 나온 곳은, 언덕 위의 정상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마족의 거주지는.
본격적으로 초토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번쩍! 번쩍!
하늘 위에서는 태양의 빛이 내리쬐며, 청혈 마족의 거주지에 플레이어들이 현신했다.
[강등하는 별을 멸망시키다니, 이번 스페셜 맵은 거저군!]
[이 구역은 내가 차지한다. 끼어들지 마라!]
[여기에 니 구역 내 구역이 어디있어? 먼저 죽이는 게 임자지!]
거대한 거인에 용족.
그리고 한눈에 봐도, 강해 보이는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청혈 마족을 순식간에 학살했으며.
플레이어 중 일부가, 잠시라도 학살을 멈추면.
[저놈…… 빙의당했군!]
[좋아! 쟤부터 죽이자!]
[맞아. 배신자부터 처단해야지!]
금방 멈칫한 플레이어를 맹공하여, 제압하곤 했다.
-이게…… 멸망?
-와…… 빙의 당했다 싶으면 신나서 빙의자 죽이네;
-청혈 마족이 전혀 대항을 못 함…….
-개 쎄 쟤들;
압도적인 플레이어는 성지한과, 엘프만 보았던 인간 시청자들은.
청혈 마족의 본거지에서 본격적으로 학살을 벌이는 타 종족 플레이어들을 보면서 전율했다.
정예만을 뽑아 온 스페셜 맵이라 그런가.
청혈 마족도 나름 저항한다고 하고는 있었지만, 철저하게 박살이 나고 있었다.
거기에.
‘저쪽은 공허…… 그때의 어둠인가.’
외곽에는 거대한 어둠이 일렁이며 청혈 마족의 거주지를 완전히 지워 나가고 있었다.
공허 소속의 플레이어들은, 태양 소속과는 달리.
철저하게 저 어둠 속에 가려져서 상대를 잠식해 나갔다.
그래서일까.
최외곽 쪽의 청혈 마족들은, 몰려오는 어둠에 빙의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외곽부터 금방 정리가 되었다.
-이 도시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는데…….
-초토화는 순식간이네.
-플레이어들이 진짜 인정사정 없구나…….
-쟤들 지구에 소환되면 저항할 수 있을까?
-용한테 핵 터뜨리면 어때?
-그럼 우리도 터짐요;
-리그 최하위권 가면 절대 안 되겠네 ㄷㄷ
이런 상황이 지구에서 터졌으면 어떨지 생각해 보고는 사람들은, 순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편 성지한은.
‘이거…… 이러다 끝나겠는데?’
청혈 마족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했다.
빙의 능력이 있음에도, 저항이 불가능한 일방적인 학살극.
게임의 끝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거 바라볼 때가 아니야.’
이클립스 없이라도, 빙천검우를 사용해야겠다고 성지한이 생각하고 있을 때.
스으으윽!
[멀다. 멀어.]
지하에 있던 이클립스가 타이밍 맞게, 성지한에게 도착했다.
“잘 왔다. 다시 얼려 줄게.”
[주인…… 요즘 너무 그것만 쓰는 거 아니야?]
“찾을 게 있어서. 자. 가자.”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빙천검우氷天劍雨
스르르르!
해동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얼어붙은 이클립스.
원래 하늘을 향해 사용하는 무공이라 그런가.
지하에서 쓸 때보다, 훨씬 빠르게 대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냉기가 감도는 하늘.
그리고.
파아아앗……!
“음…….”
얼어붙은 하늘에서, 사방으로 검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지한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던 촉수 쪽을 향해서가 아니라.
태양 소속으로 현신했던, 플레이어들한테로.
‘이거…… 일이 꼬였군.’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 * *
빙천검우.
탐색 능력을 지닌 이 권능은.
일차적으로 배틀넷의 ‘에러’를 찾아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뭐냐, 이거?]
멸망을 위해 소환된 플레이어들은.
다들, 각자의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로.
‘에러’로 탐지되기에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펑!
수백 갈래로 나뉜 검우.
힘은 그만큼 약해져서, 물의 검은 소환된 플레이어들을 뚫지 못하고 중간에서 터져 나갔다.
그리고.
스으으윽…….
검우에 일제히 타깃팅을 당한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청혈 마족의 잔재주인가?]
[빙의밖에 못 하는 줄 알았더니…… 꽤 강력한 플레이어가 있나 보군.]
[하긴. 그 정도는 반항해야 싸우는 재미가 있지.]
[저거, 내가 먼저 죽인다!]
일방적인 학살극에 질린 차였던 플레이어들은.
성지한이 보인 힘을 보고는, 재미있는 상대가 나타났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휭! 휭!
맨 먼저 날개를 펴고 날아오는 건 거대한 용족.
그의 입가에는, 이미 거대한 불길이 감돌고 있었다.
‘이 놈들도 죄다 에러투성이라니…… 검우의 힘을 좀 더 세심하게 조종할 걸 그랬군.’
이대로라면 에픽 퀘스트가 곧 끝날 거라는 생각에 급히 빙천검우를 썼다가.
청혈 마족 최후의 실력자로 낙인찍히게 된 성지한.
[GP와 아이템을 내놓아라!]
그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검은 용은, 신나는 목소리로 입가에서 불길을 내뿜었다.
화아아아아!
하늘을 순식간에 잠식하는, 거대한 화염 브레스.
-드래곤도 게임할 땐 똑같구나. 템 떨구라고 소리치네 ㅅㅂㅋㅋㅋㅋ-아니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거죠…….
-브레스 오지네; 사방이 불임.
-오늘이 드디어 성지한 1등 못 하는 날인가?
혼원신공混元神功
암영신결暗影神訣
암혼와류暗魂渦流
하나 그 브레스는, 또다시 해동된 이클립스의 소용돌이에 의해 대번에 빨려 들어갔다.
[좋다. 약한 놈이 아니구나! 좋은 아이템을 떨구겠어!]
성지한이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막자, 오히려 즐거워하는 검은 용.
[비켜라! 내가 먼저 잡을 거다!]
[어. 근데…… 저놈. 자세히 보니 히든 보스 아니냐?]
[아, 그 괴물 작아서 몰라봤는데…… 진짜 그러네?]
[맞아? 저거? 얼굴은 가려졌잖아?]
[무기가 똑같아!]
일방적인 학살에 지겨워하던 플레이어들도 너나할 것 없이 성지한을 잡으러 하늘로 왔다가.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눈을 빛냈다.
[그놈 종족 청혈 마족 아니었는데? 빙의당했나?]
[뭐 어때. 저놈, 스탯 다이아를 줄지도 모른다!]
[던전에서의 패배, 갚아 주마!]
히든 보스 성지한에게 쌓인 게 많았는지.
그에게로 더욱 몰려드는 플레이어들.
‘이놈들이랑 푸닥거리할 시간이 없는데.’
에픽 퀘스트가 빨리 끝날까 봐, 빙천검우를 최대 출력으로 썼다가 사단이 나 버렸군.
하지만. 이게 꼭 최악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이거…… 청혈 마족이 끝장나는 시간은 좀 더 늦췄군.’
성지한이 히든 보스임이 알려지자, 다들 학살을 멈추고 성지한 레이드에 뛰어든 플레이어들.
아이러니하게도 에픽 퀘스트를 깰 시간은, 조금이나마 번 셈이 되었다.
물론.
[주인. 이거 더 못 먹어 치우겠는데…….]
저들의 공세를 버틴다는 가정하에 해당하는 말이었지만.
‘이놈들…… 세긴 세군.’
언제나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금방 한계에 다다른 암혼와류.
‘일단은, 좀 처리하고 시작해야겠다.’
이대로라면 포위당해서 밀려 버릴 테니.
성지한은 수비보다 공격을 택하기로 마음먹고, 암혼와류를 거둬들이려 했다.
소용돌이의 흡입력이 약해지고.
불길이 성지한을 잡아 삼키려 들었을 때.
[안 돼! 히든 보스는 내 거다!]
펑!
한참 브레스를 쏘던 검은 용을, 땅에서 뛰어오른 거인이 발로 차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