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39화>
칼레인이 열어 준 포탈.
그 너머에는, 청혈 마족 수백 명이 검은 언덕 위에서 결연한 기세로 서 있었다.
‘저게 청혈 마족인가.’
머리 두 개, 팔 네 개를 지닌 푸른 피부의 종족은.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으로 합친 듯한 모습이었다.
인류보다는 살짝 더 큰 청혈 마족.
종족의 전투력 평가가 중하급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겉모습은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침입…… 자……!]
[모두, 저자를 장악하라!]
번쩍!
청혈 마족 수백의 눈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자.
성지한의 몸이, 기이한 힘에 구속되기 시작했다.
‘이게 청혈 마족의 빙의인가?’
빙의가 완전 랜덤으로 걸린다고 하더니, 성지한 신체와 빙의의 궁합이 좋았던 걸까.
그는 자신의 제어가 서서히 풀려 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
-성지한 왜 가만히 있음?
-뭐야. 빙의 걸린 거야?
-아 그 해골바가지 말 듣고 민간인 구역 가지 ㅠㅠ
적을 눈앞에 두고도, 우두커니 서 있는 성지한.
그를 보고, 시청자들은 걱정의 기색을 보였지만.
‘빙의, 무혼으로 제어가 가능하군.’
막상 빙의에 걸린 성지한은 무사태평했다.
신체를 완전히 제어하는 무혼.
이게 빙의가 걸린 환경에서도, 별문제 없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단번에 쓸어버려도 되겠지만…….’
그에게 이번 게임의 목적은, 적을 무작정 섬멸하는 게 아니라 청혈 마족의 근원을 찾는 것.
성지한은 일단 빙의에 걸린 척, 상황을 두고 보기로 했다.
[되, 된 거 같은가?]
[으음……!]
[모, 모르겠습니다!]
[된 거 같긴 한데…….]
한편.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청혈 마족 무리는, 성지한을 장악했는지 확신하질 못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멈추고, 빙의의 권능이 힘을 잘 뻗어 간 걸 보면 된 게 맞는데.
어째 다른 종족을 빙의했을 때와는, 움직임이 영 뻣뻣했다.
[저놈, 제어해 봐!]
맨 앞에 서 있는 청혈 마족의 지시에, 눈을 번쩍이는 이들.
펑!
[아악……!]
그중 일부는 눈이 시뻘게지더니, 터져 나갔지만.
‘이거 안 되겠군.’
성지한이 무혼의 제어를 잠시 거두자.
그의 몸이 뒤뚱뒤뚱 움직이기 시작했다.
[되, 됩니다!]
[좋아…… 그럼 침공자와 맞붙게 하자!]
적에게 빙의하여, 적진끼리 싸우게 하는 게 청혈 마족의 기본 전법.
‘이럼 그냥 다시 칼을 빼 들어야겠네.’
성지한은 배틀넷을 통해 번역되는 청혈 마족의 말을 듣고.
빙의 제어를 풀고 적을 쓸어버리려 했지만.
[……음? 아니다. 잠시 멈춰라.]
그 전에, 맨 앞의 마족이 손을 들어 지시를 철회했다.
[신께서, 그를 성지로 데려오라 하신다.]
[이놈을요?]
[위험하진 않을지…….]
[한 번 빙의에 걸린 놈이다. ‘빙의 적합자’야. 성지에선 더 강하게 빙의에 걸릴 테니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번쩍!
청혈 마족의 눈이 또다시 빛을 내뿜고.
펑! 펑!
[크, 큭……!]
두 마족의 눈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성지한이 일부러 저항하지 않았는데도, 권능을 사용하는 게 힘든 건지.
계속해서 희생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저항력……!]
[이 플레이어, 위험한 존재입니다.]
[지금 자살시키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그러니까 더욱 성지로 데려가야 한다. 얼른 조종해라!]
맨 앞 대장의 재촉에, 다시 권능을 사용하는 청혈 마족들.
저벅. 저벅.
성지한은 저들의 힘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열 발자국 정도를 걸었을까.
펑! 펑!
뒤편에서, 또다시 눈동자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족 대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이놈, 얼마나 강력하기에 단지 걷게 하는 것도 힘든 거야?
[……안 되겠군. 포탈을 저놈 앞에 열어라. 성지로 일단 보낸다!]
[알겠습니다.]
대장의 지시에.
지이이잉!
성지한의 바로 눈앞에, 푸른 포탈이 떠올랐다.
‘성지라…….’
청혈 마족의 근원을 찾으라는 에픽 퀘스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들이 오히려 셀프로 길을 마련해 주는 것 같았다.
‘가서 살펴봐야겠군.’
그리고 포탈 너머에 들어서자.
청혈 마족의 성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꿈틀. 꿈틀…….
청혈 마족의 성지 안.
그곳은, 인류의 관점에서 보기에.
신성한 곳이라고 하기에는 그로테스크했다.
-으…….
-이게 뭐야.
-사방이 눈알?
-눈동자 노이로제 걸리겠네 ㅡㅡ;
천장이고 벽이고 바닥이고.
모두가 푸른 눈동자로만 이루어져 있는 성지.
파직!
성지한의 발이 닿자, 바닥의 눈동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갔지만.
스으으으…….
터진 곳에서 다시 눈동자가 스윽 올라오며.
그를 지켜보았다.
[포탈이 열리다니…… 제물인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그것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빙의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작도 부리는군.’
물론 무혼을 지닌 성지한에게는, 별 영향이 가지 않았지만.
그는 가만히 이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나 지켜보았다.
스으으으…….
그리고 눈동자 사이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푸른 촉수.
그것은 성지한의 몸을 스르르 감더니.
지이이잉……!
그의 몸을 사방에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빙의된 데다가, 온몸이 묶이니.
성지한은 이제 완전히 제압당한 것 같았다.
-아, 아니. 뭐야. 이대로 끝이야?
-촉수 엔딩 실화냐…….
-ㄹㅇ 촉수밖에 안 보이네 ㅡㅡ;
-아니 조금 전에 제일 저항이 센 곳으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이런 결과는 좀 ㅠㅠㅠㅠ-지금까진 일부러 세뇌당한 척한 거 같았는데…… 진짜였어?
처음 세뇌당할 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성지한이 연기한다 vs 아니다’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푸른 촉수에 그의 몸이 속수무책으로 감기기 시작하자, 점점 연기가 아니라는 데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아 검은 해골한테 헬프 콜 해야 하지 않나 이거?
-근데 어떻게 헬프 침? 빙의당했는데.
-아…… 그러네.
-성지한 게임에서 1등 못 하는 거 드디어 보나요?
-1등이 뭐야 지금 꼴등 하게 생김 ㅋㅋㅋㅋ
칼레인에게 헬프를 치고 싶어도, 빙의 때문에 할 수 없는 상황.
시청자들은 하나둘씩, 성지한이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암울한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때.
꿈틀. 꿈틀.
[……아니. 종말을 집행하는 것이 플레이어였나? 어디, 종의 평가는 최하급…… 하지만, 종말에 참여할 정도면 기프트가 뛰어난 것인가.]
성지한의 정보를 읽는 건지.
눈동자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최하급이면 오히려 좋다. 널, 제물 중 하나로 선택하도록 하지…….]
두두둑!
사방에서 눈동자가 몰려들고.
성지한의 모습이 그 안에 파묻혔다.
아니.
파묻히려고 했다.
“이제 그만해야겠군.”
촉수에 갇혀 있던 성지한이, 나직이 말문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뭣…….]
화르르르!
성지한을 감싸던 촉수가 일제히 불타오르고.
그의 손에는, 어느새 붉은 뇌전이 감겨 있는 봉황기가 들려 있었다.
-오!
-역시 믿고 있었다고!
-그럼 그럼 성지한이 빙의당할 리가 없지!
-와 조금 전까지 해골한테 헬프치자고 했으면서 ㅋㅋㅋ 태세전환 보소.
-위엣놈 니도 그랬잖아 ㅋㅋㅋㅋ
조금 전과는 달리, 역시 성지한이라면서 환호하는 시청자들.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봉황기를 빙빙 돌렸다.
“어디 적당히 기다려 볼까 했는데.”
퍽!
창끝이 특히 향하는 곳은, 사방에 깔린 눈동자.
“네놈들이 눈동자를 온몸에 쑤셔 넣으려고 할 줄은 몰랐군.”
성지한은 사방에 깔린 눈동자를 모조리 박멸했다.
빙의에 걸린 척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체 내부에 눈동자가 들어오는 것까지 견딜 생각은 없었으니까.
거기에.
‘검우劍雨가 꿈틀했어.’
탐색 능력을 지닌 네 번째 멸신결, 빙천검우.
특히 검우는 여기서 배틀넷의 에러를 찾는 역할을 했다.
청혈 마족의 근원을 찾으라는 에픽 퀘스트를 받을 때부터, 빙천검우를 활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는.
성지에 진입하고 체내에 품어 두었던 검우가 움직이자, 바로 연기를 그만두었다.
[빙의…… 되지 않았던 건가.]
그때.
꿈틀. 꿈틀…….
성지한이 대번에 쓸어버린 성지에서.
또다시 눈동자가 꿈틀꿈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멸망의 사도. 만만치 않구나.]
퍽. 퍽. 퍽.
사방에 깔린 눈동자가, 한군데로 모이기 시작하고.
서로가 강하게 부딪쳐 짓뭉개 진 채, 곧 거대한 눈동자로 융합해 나갔다.
[하지만 빙의의 권능이 안 통하는 상대는 아니니…… 널 장악하고, 이 세계를 탈출하겠다.]
번쩍!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나는 청혈 마족의 권능.
성지한은 몸이 움찔하는 걸 느꼈다.
무혼만 아니었으면, 확실하게 장악되었을 것 같은 신체.
하지만 저 거대한 눈동자의 권능도.
무혼의 장악력은,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안 통하는데?”
성지한은 눈동자를 향해, 창끝을 뻗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포赤雷砲
지지지직……!
거대한 적뢰가 대번에 눈동자를 꿰뚫고.
붉은 뇌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지를 대번에 휩쓸어 버렸다.
조금 전까지는 계속해서 다시 올라오던 눈동자들도, 적뢰포의 힘을 견딜 수는 없었던 건지.
더 이상 재생을 하지 못했다.
[이 무슨……! 최하급 종의 육체로, 어떻게 이런 힘을 보이지?]
“너희야말로. 중하급이라면서 왜 이렇게 약하지? 빙의밖에 할 줄 모르냐?”
[……이 성지는 폐쇄한다.]
성지한에게 한 방을 얻어맞자마자, 성지 폐쇄를 결행하는 적.
스르르르…….
적뢰포에 쓸리고,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눈동자가 완전히 철수하고.
성지의 기운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판단이 빠르군.’
성지한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적이 좀 부딪쳐 줘야, 청혈 마족의 근원을 찾는 일도 수월할 텐데.
눈동자는 힘이 밀리는 걸 알자마자, 성지를 포기하고 튀어 버렸다.
‘이번 에픽 퀘스트는 쉽지 않네.’
그냥 적이랑 싸우는 거라면 쉽게 하겠는데, 아무런 단서도 없는 근원 찾기라니.
그렇다고 퀘스트 포기하기에는 보상이 너무 좋았다.
‘일단 이 성지의 기운을 추적해 봐야겠군…….’
성지한은 주변을 바라보았다.
전방위에 있던 눈동자가 모두 타 버리자, 드러난 것은 푸른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하 공간.
사방이 뚫려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는 방향 가늠이 되질 않았다.
‘이 성지의 기운과 비슷한 힘은, 북쪽에서 그나마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군…….’
상대가 성지를 폐쇄해서,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청혈 마족의 기운.
성지한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면,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의 분포도는 희미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기운 감지에는 성공했으니.
자신의 감각을 믿고, 따라가면 될 테지만.
‘검우가 가리키는 방향은 반대네.’
성지한의 감각과는 달리.
빙천검우의 탐지력은 오히려 성지의 기운이 가장 희박한 남쪽을 가리켰다.
‘이번엔 검우의 방향대로 가보자.’
스으으윽.
성지한은 팔에서 이클립스를 꺼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빙천검우氷天劍雨
시퍼렇게 얼어붙은 이클립스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통째로 얼어붙기 시작하는 성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물의 검이 튀어나와, 남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자.”
성지한이 검우에 올라타자.
슈우우우!
물의 검이 지하 공동의 남쪽 방향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마치 거대한 홍수처럼, 지하를 뒤덮어 버리는 물의 검.
[뭐, 뭐냐. 저거!]
[막아라!]
[성지로 보내면 안 돼!]
청혈 마족 무리가 검우를 막아서려고 했지만.
스으으으……!
그들은 모두 물의 검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휩쓸려 버렸다.
빙천검우가 비록 탐색용이라고는 하지만.
멸신결에 속해서 그런지, 무공의 위력 자체가 강력했다.
그래도.
‘이런 애들이 어떻게 실버 리그까지 갔는지 모르겠군. 빙의 능력 하나만 가지고 올라온 건가?’
검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청혈 마족들을 보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스으으으…….
강렬히 뻗어 나가던 물의 검이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청혈 마족을 쓸어버리며, 한참을 나아갔을까.
“이건…… 나무?”
검이 최종적으로 멈춘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걸 발견했다.
눈동자가 주렁주렁 달린, 거꾸로 매달린 거대한 나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