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32화>
스페이스 리그 경기 이후, 일주일 만에 치러지는 한일전.
이 게임에 대한 전망은, 6개월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1.01…… 배당률 실화냐??
-한국 승 걸면 1% 버는 거임? ㅋㅋㅋㅋㅋ
-원래 1.05였는데 성지한이 스페이스 리그 MVP 받고 나니까 더 떨어졌음 ㅋㅋㅋ-하기야 일본 애들도 한국 승에 걸걸? 일본에 요즘 인재가 없잖아.
-작년 광복절이랑 상황이 반대구만 ㅋㅋㅋ
검왕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작년 광복절이나.
그리고 성지한이 급부상하며, 검왕과 싸웠던 그다음 한일전과는 달리.
2021년의 한일전은, 모두가 싱겁게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스페이스 리그 경기를 지배한 성지한.
거기에 이제는 워리어 2위라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강력한 검왕 윤세진이 참전했으니까.
이에 반해 일본은 검왕이 다시 한국으로 복귀한 이후, SSS급의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동북아시아 리그에서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다.
한국의 낙승은 이미 예정된 상황.
한국 사람들은 뻔하게 예상되는 게임 결과보다는, 오히려 다른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윤세아도 이번에 대표팀에 들어갔더라
-엥? 윤세아가?? 아니 그건 좀; 가족 빽이라도 쓴 거 아냐?
-└└└ 윤세아 저번 달 다이아 아처 중에서 승률 최상위권임 원래도 잘했는데 활 바꾸고 미쳤음;
-헐…… 그쪽 가족은 괴물만 모였네 ㄷㄷ-성장 속도가 진짜 말이 안 돼 ㅋㅋ 하루 게임 두 판이 완전 사기임대기만성 기프트의 진가를 보여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윤세아.
그녀의 보이드 애로우는 활을 바꾸고 난 이후, 한 번에 7발씩 날아가며 전장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그 기프트 성장만 빠르지, 결국 성장 정체되면 별거 없는 거 아닌가?
-그러게. 뭔가 딜적으로 좋거나 하는 효과는 아니잖아-국가대표에 끼는 건 좋은데, 활약을 보일지는 모르겠네……
그래도 가족 중 두 사람이 워낙 괴물이라 그런가.
성지한이나 검왕에 비해서는, 대중에게 박한 평가가 내려진 윤세아.
하지만 한국대표팀 스태프들의 평가는 달랐다.
“귀갑진. 파괴됩니다.”
“전사진 전멸합니다!”
새로 들어온 윤세아의 테스트를 위해, 기존 전사진과 함께 연습 게임을 진행한 대표팀.
거기서 윤세아가 보여 주는 퍼포먼스는 놀라웠다.
“보이드 애로우. 강력한 건 알고 있었지만…….”
윤세아만 사용할 수 있는 공허의 화살.
사라졌다가 휙 튀어나오는 이 화살은, 다이아 클래스의 워리어도 제대로 막질 못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다이아 초입이나 못 막지, 상위급 유저는 이에 잘 대처할 거라 생각했지만.
활을 바꿔 온 윤세아는, 국가대표급 선수들도 손쉽게 사냥했다.
“아무리 그래도, 귀갑진까지 손쉽게 꿰뚫어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여 만든 방어 진형, 귀갑진.
성지한 같은 규격 외의 선수야 이를 손쉽게 부숴 버렸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진형을 부수기 위해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쳐야 했다.
한데 이 진형을, 화살로 뚫어 버리다니.
“이대로 윤세아 선수가 성장만 해 준다면, 올해……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지 말게. 무슨 우승인가. 본선 진출도 장담하기 힘든 것을.”
호들갑을 떠는 스태프들을, 노영준 감독은 들뜨지 말라면서 타박했지만.
정작 자신도, 눈은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편.
“세아야…… 리더 자리. 네가 할래?”
궁수진 리더 하연주는 배틀넷 커넥터에서 나오는 윤세아를 마중 나왔다.
“에이. 연주 언니, 언니가 있는데 무슨 리더야!”
“나보다 센 사람이 대장 해야지. 귀갑진, 나도 혼자서 부수진 못하거든.”
“혼자서라니. 아카리 언니랑 같이했는걸!”
스으으윽.
윤세아와 같이 나온 아카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같이라니…… 전 그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아 님께서 다 하셨죠.”
“뒤 걱정이 없으니까 마음껏 시위를 당긴 거지!”
“그래요. 전사 플레이어들의 견제, 잘 흘리시던데요.”
“……저기, 제가 정말 대표팀에 들어와도 괜찮겠습니까? 궁수진에, 저 같은 암살자가 필요할지…….”
이번에 윤세아와 같이 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아카리.
레벨은 245로 많이 성장해서, 충분히 대표팀에 들어올 만한 고레벨이었지만.
아처의 변형 클래스인 암살자는, 한국의 궁수진에 들어오기엔 참 안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괜찮아요. 저희 궁수진, 딜적으로는 세아가 합류하면서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되었으니까.”
“그래. 거기에 게임 맵이 정면에서 맞붙는 게임만 있는 게 아니지. 던전 같은 곳에 걸리면, 암살자 클래스는 빛을 볼 거야.”
“아…… 삼촌! 수련하고 있지 않았어?”
윤세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배틀넷 커넥터로 다가온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아니, 또 수련한다고 사라졌었는데 언제 왔대?
“이번 건은 감 잡기가 힘들어서, 수련은 일단 마무리 짓고 왔어.”
“아니, 성지한 선수도 힘든 게 있어요?”
하연주의 농담에, 성지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신도 아니고, 모든 걸 다 쉽게 하겠습니까.”
4번째 멸신결, 빙천검우.
피티아가 이 무공의 진의는 ‘탐색’과 연관이 있다고 이야기한 이후.
성지한은 공허의 수련장에서, 이 무공을 몇 번이고 펼쳐 보았다.
하지만.
‘탐색이 영 실마리가 잡히진 않는군. 검우劍雨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저번 경기에서, 대족장의 힘의 원천을 차단한 검우.
그것은 성지한이 딱히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저절로 우르크 전사들에게 칼끝을 뻗었다.
탐색이 빙천검우의 진의라면, 그때의 모습과 연관이 있을 터.
하지만 공허의 수련장에서는 하늘을 얼리는 빙천은 가능해도.
검우는 저번처럼 커다랗게 구현되질 않았다.
정말 비처럼, 대지를 향해 내렸을 뿐.
성지한이 잠시 빙천검우에 생각하고 있을 때.
하연주는 씩 웃으며 말했다.
“신이라…… 전 저번 경기 보고 신인 줄 알았어요. 요즘은 성지한교도 있다니까요?”
“성지한교? 뭡니까. 그건.”
“뭐겠어요. 성지한 님을 믿는 종교죠.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될 거라나?”
“……언니. 그거 농담이지?”
“진짜야. 유리가 이런 사이비는 커지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고, 여러 개 신고하고 있는 걸 봤거든.”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플레이어를 신으로 믿는 사이비 종교.
이건 거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나 있던 일이었는데.
지금 인류는 순위도 5위로 잘 나가고 있는데, 뭔 벌써부터 사이비 종교가 생기나.
“제가 너무 강한 모습을 보였나 보군요. 이거 일부러 져야 하나?”
“안 돼요, 메시아님! 구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 줘야죠!”
“그래. 삼촌!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에다 성좌까지 올라가 보자!”
그때.
“……성좌? 무슨 소리 하고 있나?”
“아빠!”
성지한처럼 개인 수련을 하던 윤세진도, 배틀넷 센터를 찾아왔다.
커다란 꽃다발을 두 개 든 채.
“세아야. 대표팀 승선 축하한다.”
“헤헤. 고마워.”
“아카리 양도 축하해요.”
“고맙…… 습니다.”
꽃다발을 넘겨준 윤세진은, 성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남. 저번에 말해 준 거, 약간 실마리를 찾은 거 같네.”
“검을 합치는 것 말입니까?”
“그래. 처남 말을 듣길 잘했어.”
저번 생에서, 검을 합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검왕.
혼자 고민할 때는 길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성지한이 방향을 알려 주니 확실히 진도가 빨랐다.
“우리 대표팀 핵심 전력이 모두 여기 있었군.”
그때, 노영준 감독이 웃는 얼굴로 배틀넷 커넥터 쪽에 걸어왔다.
“이제부터 일본의 저번 경기 영상을 보고 분석을 하려 하네. 자네들이라면 사실 굳이 안 봐도 되겠지만…… 그래도 어떤가? 전력분석, 같이 듣는 게.”
“오. 들을게요. 들어 보고 싶었어!”
일본의 전력분석.
이제 굳이 위협적인 나라가 아니라서, 볼 필요가 없기는 했지만.
“알겠습니다.”
수련 진도가 막힌 지금, 그는 기분전환 겸 전력분석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얘네…… 왜 이렇게 약해졌어?’
영상 속 일본의 전력을 보고는 의문을 품었다.
* * *
=여러분. 2021년 첫 한일전이 다가왔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 올해 동북아시아 리그에서 2승으로 순항 중이죠! 2번째 경기, 대만전은 성지한 선수가 부재했음에도, 낙승을 거뒀습니다!
=성지한과 검왕, 쌍두마차의 효과가 너무 좋아요!
=한편 일본 대표팀은 0승 2패로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졸전 끝에 3:0으로 패배했죠.
2021년 동북아시아 리그.
2승 0패로 순항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기프트 등급이 높은 핵심 선수가 없다는 약점이, 일본의 발목을 잡는군요.
=한데 2019년에도 기프트 등급이 높은 선수는 없지 않았습니까? 올해 들어 일본의 약점이 더 부각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전에는 저희에게 검왕이 있어도, 일본전 승률이 60% 언저리였죠. 핵심 선수가 없는 대신 전 포지션의 전력이 고르게 강한 게 일본의 특징이었습니다만…….
=요즘 들어선 전 포지션의 전력이 어중간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2년 만에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니. SSS급 기프트가 절실하겠군요.
배틀넷 선수 대기실.
성지한은 한국 해설진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핵심 선수의 부재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선수들 전체가 약해진 거 같군.’
저번 생과 지금, 일본 전력의 변화라면.
검왕이 다시 한국에 온 것과, 시즈루가 죽은 거 둘밖에 없는데.
검왕이 있고 없고가 다른 선수들 수준을 좌우하는 건 아닐 테니까.
‘시즈루가 다른 일본 플레이어들도 편집시켜 줬던 건가?’
편집 능력, 정말 사기적이긴 했군.
인류를 위해 그 능력을 헌신적으로 사용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여자가 아니지.’
그 권능으로,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할지 몰랐으니.
제거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성지한은 밴 과정을 바라보았다.
=일본, 밴 카드를 사용하려 합니다.
=누구에게 사용할까요?
=아무래도 성지한 선수가 전 경기 때 놀라운 활약을 보여 줘서, 밴 1순위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저번 경기 때 잘해도 너무 잘했죠! 스페이스 리그를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예전보다 더 확신하면서, 성지한이 밴 당할 거라고 예상한 해설진이었지만.
=어, 어? 그런데…… 밴 카드에는 윤세진 선수 이름이 써 있습니다!
막상 나온 결과는 완전히 예측 밖이었다.
“……내가?”
당연히 자신이 출전할 줄 알고, 쌍검을 꺼내 바라보고 있던 윤세진은.
해설자의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니, 일주일 전 경기를 보고도.
성지한을 밴 안 하고 자신을 밴한다고?
“저놈들, 무슨 속셈이지…….”
“글쎄요.”
성지한은 겉으로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체 대답했지만.
내심 돌아가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피티아가 뭔가 손을 썼나 보군.’
한일전 경기에서 만나자고 했던 피티아.
그러려면, 일단 성지한이 경기에 출전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뭔가 수상하군. 조심하게. 처남.”
“알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윤세진의 걱정에,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첫 경기, 삼촌이랑 출전이네?”
“그래. 가자.”
윤세아와 같이 한일전 1세트에 참전했다.
* * *
=1경기 맵은 사우스게이트입니다. 이 맵, 일본 측에서 뽑았어요!
=아…… 사우스게이트에서 성지한 선수를 상대한다구요? 일본 감독,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성지한이 그간 활약해 왔던, 사우스게이트 맵.
그 같은 초월적인 전사가 힘쓰기에는 최적의 맵이라, 이 맵을 뽑는 건 일본의 자해 행위로 여겨졌다.
하지만.
“여기예요! 여기!”
게임 시작 후, 성벽 위.
한 일본 플레이어가 스윽 나타나더니, 지한을 바라보며 양손을 흔들다가.
“아. 여기선 이야기하기 좀 그렇구나? 제가 좋은 곳으로 초대할게요.”
스으으윽.
손바닥을 하늘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떨어지세요. 아폴론.”
화르르르……!
그러자 하늘 위에서, 거대한 화염의 마차가 피어오르더니.
그대로 대지를 강타했다.
콰콰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흔들리는 대지.
곧이어, 거대한 불의 파도가 피어오르며 한국 대표팀을 집어삼켰다.
특히.
불길은 맨 앞에 있는 성지한을 최우선적으로 감쌌다.
“으으윽…….”
“뭐, 뭐야! 불 안 꺼지는데?”
“히, 힐!”
성지한 뒤편에선, 대표팀 전사들이 불을 맞이해서 고전했지만.
정작 불길은 맨 앞의 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떨어진 아폴론의 성역’에서 당신을 초대합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얼마 안 있어, 초대 메시지가 떴다.
‘대표팀, 고생 좀 하겠군.’
떨어진 아폴론의 성역.
그것은 불로 이루어진, 그리스 양식의 원형신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티아야, 단순히 성지한을 초대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지만.
“으…… 모, 못 막아. 이 불……!”
“뒤로 피해!”
대표팀 선수들은 신전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의 간접적인 영향력에도, 견디질 못했다.
과연, 예언자라고 해도 무신의 종이란 건가.
‘그래도 이 정도는, 대표팀이 알아서 헤쳐 나가겠지.’
언제까지 대표팀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줄 수는 없는 노릇.
이런 건 자기들끼리 이겨 내야지, 생각하면서.
“초대에 응하겠다.”
성지한은 성역의 초대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