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225화 (225/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25화>

배틀넷 연맹의 전용기 안.

성지한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이하연은,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세아는 안 온다고 하던가요? 같이 가자 그랬는데.”

“이번에 좀 비싼 활을 선물했거든요. 환불은 안 된다니까 레벨 업으로 은혜를 갚겠다나.”

“활이 얼마나 비싸다고 환불이에요?”

“200억 GP요.”

“……200억이요? GP로?”

성지한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 건, 이하연 옆에 앉아 있던 임가영이었다.

원이 아니라 GP라고?

현재 GP 시세가 1GP당 2.5달러 정도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활 하나가 500억 달러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기가 무슨…… 검왕님의 SSS급 쌍검, 간장 막야도 그 가격은 안 할 거 같은데요?”

“막상 구하려고 들면, 부르는 게 값입니다. SSS급 무기는. 돈 주고 살 수 있을 때 사야죠.”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활 하나에 500억 달러가 뭐냐.

금액이 너무 커져서, 현실감이 없어진 이하연과 임가영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자.

성지한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녀에게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봉황기가 업그레이드돼서, 길드 레벨 +3 더 추가되었으니. 15명도 랜덤 뽑기에 더 넣죠.”

“SSS급에서…… 또 올랐어요?”

“예, 아르트무가 실력이 있더군요. SSS+입니다.”

아니, SSS+라는 등급도 있었어?

진짜 이 사람, 같은 편이라 다행이다.

“아, 하연 씨도 선물 드릴게요.”

“저요?”

“이거.”

성지한은 예전에 시즈루에게 압수했던, 아카식 페이지를 모두 넘겼다.

크리스토프에게 하나를 줘서, 9장 남은 아카식 페이지.

혹시나 나중에 쓰일 일이 있을까 싶어, 일단 가지고 있었지만.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가서 사자.’

환락의 궁전 초대장을 경매장에 팔아치운 후.

성지한의 씀씀이는 더할 나위 없이 커져 있었다.

굳이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을, 킵해 둘 필요는 없겠지.

“오, 아카식 페이지……!”

“아메리칸 퍼스트처럼 100장은 못 주지만. 그래도 틈틈이 모아서 드리죠. SSS급 가 봅시다.”

“아, 알겠습니다!”

이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황금색 종이를 받았다.

본 게임에 들어선 후, 서포팅 기프트 ‘육성’의 가치가 다시 한번 높아지며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는 아카식 페이지.

이걸 9장, 그냥 선물이라고 턱턱 주다니.

“아가씨, 저 종이 반만 찢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 SSS급 갈 거야.”

이하연은 아카식 페이지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일제히 강렬한 황금빛이 터져 나오는 아카식 페이지.

예전에 기프트 육성이 업그레이드 되었을 때와 똑같은 현상에, 이하연은 눈을 빛냈지만.

[기프트 등급을 올리기 위해선, 더 많은 플레이어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소속 길드원 중 한 명을, 종족 내 랭킹 1위로 성장시키세요.]

곧이어 나오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아…… 바로 SSS급으로 올라가질 않네요. 조건이 나와요.”

“조건이요?”

“네. 더 많은 플레이어를 성장시키고, 길드원 한 명을 종족 내 랭킹 1위로 성장시키라는데요.”

“흠, 뒤의 조건이야 금방 충족되겠네요. 제가 있으니까.”

“그거야 그렇죠.”

랭킹 1위야 당연히 맡겨 둔 듯 말하는 성지한.

다른 플레이어가 그랬다면 자기 주제도 모른다고 할 법했지만.

그걸 성지한이 말하니,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저도 그럼 잠시 수련 좀 하겠습니다.”

성지한은 인벤토리를 열어서, 태양석을 꺼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새하얀 돌.

이 안에는, 아르트무가 지니고 있었던 특이한 빛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번 건 영 감이 안 오는군.’

지금까지는 모르겠으면 일단 체내로 흡수하면서 분석하면 어느 정도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태양석이 지닌 빛의 기운은, 체내에 흡수하면 특이성이 사라지고 평범한 빛의 마나로 변해 영 갈피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할 것도 많으니까, 이건 틈틈이 봐야겠어.’

성지한은 태양석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생명의 그림자로 이름이 변한 이클립스를 꺼내 들었다.

중앙부에 초록 에메랄드가 박힌 것 같은, 흑색의 검.

그가 검을 꺼내 들자, 내부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 이거 좀 제발 떼 주면 안 되나? 생명의 그림자로 변한 이후로,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오고 있다.]

“혼란이라니. 업그레이드야. 거기에 그림자여왕도 이런 방법도 써 보길 바라는 것 같던데?”

[으으…… 그건 그렇지만 내가 힘들군. 아. 여왕께서, 나중에 하이드아웃이 풀리면, 성좌 후원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그림자여왕의 성좌 후원.

성지한에게 그건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

‘그녀가 내 배후 성좌가 되면, 기프트 등급이 올라가게 되지.’

성지한의 현 기프트는 SS급 ‘달의 그림자’.

그림자힘을 증폭시키는 이 기프트는, 현재 무혼과 공허를 다루는 성지한에게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SSS급으로 업그레이드되면, 어디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았다.

“성좌 후원은 나도 좋다만. 왜 하이드아웃 후에 하지?”

[여왕께서는 혹시나 네 정보가 세계수 연합 측에 건너가지 않을까 염려하시거든.]

성지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쉐도우 엘프와 세계수 연합은 천적 관계 아닌가. 근데 정보가 어떻게 새어 나가?”

[……내부 단속이 완벽한 건 아니지.]

그쪽도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하이드아웃 끝나면 받아 주지.”

[하. 성좌가 후원하는 데 플레이어에게 부탁까지 해야 한다니 참…….]

그렇게 갑을관계가 뒤바뀐 성좌와 플레이어 상황에 아리엘이 한탄하고 있을 때.

“오너님. 이제 한국 시간으로 3월 2일 됐어요. 길드원 랜덤 뽑기 진행할까요?”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뒤편에서 한숨 잤다가 일어난 이하연이, 날짜 변화를 알렸다.

이번에 한바탕 난리를 일으킨 근본 원인, 길드원 랜덤 뽑기.

“배틀튜브 킬까요?”

“예. 여기서 바로 하죠.”

대기 길드의 첫 길드원 뽑기는,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진행되었고.

[전세기에서 진행된 대기 길드의 배틀튜브, 역대 길드 관련 시청자 기록을 갈아치우다!]

[랭킹 1위 올리버 탈락, 제갈헌 편입! 차후 메이지의 랭킹 순위가 차후 뒤바뀔 것인가?]

[대기 길드의 길드원 수용 한계는 어디까지? TOP 200중 반이 대기 길드 소속으로.]

[올해의 길드 관련, TO를 인정한 대기 길드. 인민회 소속 플레이어 20명, 대기 길드의 버프를 받다.]

[천마 왕린, 드디어 대기 길드에 들어갔다면서 감격의 메시지를 올렸다가 황급히 삭제.]

전세기가 뉴욕 공항에 착륙하기 전까지.

성지한은 하늘 위에서 뉴스거리를 계속해서 터뜨렸다.

그리고 세상의 관심은.

“드디어 도착했군요.”

성지한이 착륙하고 나서도,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불이 붙었다.

*   *   *

뉴욕의 배틀넷 빌딩 안에 위치한, 영광의 홀.

이곳에서는 올해의 길드를 뽑을 때마다, 매번 선정식이 펼쳐졌다.

지금까지는 매년 아메리칸 퍼스트와 인민회가 나눠가져서 그런지.

선정식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드넓은 영광의 홀은 매번 한산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올해의 길드 선정식에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린 건 처음 보는군요.

=세계의 배틀넷 MVP 선수 뽑을 때나 이 정도 인파가 몰리지 않던가요?

=그때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좌석뿐만이 아니라 계단에도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것 보세요!

배틀넷 플레이어 중, 현재 가장 유명한 선수를 뽑으라면 단연 성지한이었다.

스페이스 리그 첫 경기에서 마지막 세트를 승리로 이끌어.

게임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장면은 수십억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했으니까.

하나 그 유명세에 비해서, 외부 활동은 전무해서.

사람들은 이 놀라운 플레이어의 실물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 길드 선정식에 참가한다고 하니.

평소 텅텅 비던 영광의 홀이, 순식간에 가득 차 버린 것이다.

“뉴스 뜨자마자 대기하길 잘했어…….”

“닉. 내가 뭔 미친 소리 지껄이냐고 했던 거, 사과할 게. 저기 봐. 계단에 스타들도 쭈그려 앉아 있네!”

“어. 저, 저기 우리 교수님도 있는데…….”

“야. 야. 저쪽 보지 마. 자리 양보해 달라고 할지도 몰라.”

세계 제일의 배틀넷 플레이어를 보기 위해서, 영광의 홀을 찾은 각계의 명사들.

닉과 그의 친구들은 미처 좌석에 앉지 못하고, 계단에 쭈그려 앉은 유명인들을 바라보다가 담당 교수를 발견하고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맨날 허리랑 무릎 안 좋다고 앓는 소리 하시더니.

이 난리 법석이 된 영광의 홀에는 어떻게 비집고 들어오셨대?

그때.

영광의 홀 안쪽에서, 한 사람이 뚜벅 뚜벅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늘이 MVP 선정 날이었습니까?]

영광의 홀, 관객석을 쭉 둘러보고는 과장되게 화들짝 놀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사회자.

한데 사회자의 모습이.

자세히 보니 어째, 뉴스에 자주 나오는 얼굴이었다.

“야…… 저거 연맹 회장 아냐?”

“어? 진짜 그러네? 제프 회장 아냐.”

“아니 무슨 연맹 회장이 사회를 봐?”

[아니군요. MVP 선정 날보다 사람이 더 많아요! 올리버가 MVP에 뽑혔을 때에도 계단까지 이렇게 사람이 가득 차지는 않았습니다! 오, 제 친구 비즐리의 회장도 저기 쭈그려 앉아 있군요! 미안해, 친구. 아무리 회장이라도 여기서 좌석을 미리 넘겨줄 수는 없었네! 여긴 무조건 선착순이거든!]

계단에 쭈그려 앉은 남자를 가리키며, 농담을 하는 배틀넷 연맹 회장 제프.

평소라면 이것도 웃고 넘길지 몰랐지만.

지금 사람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 말 많네.”

“빨리 성이나 데리고 오라고.”

“아저씨 보러 온 게 아니란 말이야!”

우우우우……!

닉 일행이 야유를 시작하자.

금세 관객석 전체로 파급되는, 음성.

영광의 홀이 쩡쩡 울릴 정도로 야유가 쏟아지자.

[아, 알겠습니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하다가는, 탄핵당하겠어요! 자. 그럼 바로 오늘의 주인공을 모시겠습니다!]

제프 회장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안쪽으로 손을 향했다.

[대기 길드의 오너, 성지한 선수입니다!]

짝짝짝짝!

그러자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모두 벌떡 일어난 채,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서, 성지한이 걸어오자.

“오오…….”

“진, 진짜 성지한이다!”

“찍어!”

모두가 핸드폰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사진 촬영은 사전에 금지되었지만, 이미 그런 룰 따위는 잊은 듯한 관객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막아!”

쿠르르르……!

관객석 앞쪽은 이미 난입하려는 관객과 이를 막아서는 보디가드들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능청스럽게 진행해 왔던 제프 회장도, 성지한이 나오자마자 나타난 혼란상을 보고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올해의 길드 선정식이 아니라, 락스타 공연에 온 것 같군요! 모두들 침착해 주십시오! 선정식까지 자리를 지켜 주신다면, 성지한 플레이어께 부탁해 사인회도 열겠습니다!]

“사인회라뇨?”

“그. 저. 이러다 인명 사고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조금만 사인회 진행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작은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하는 제프 회장.

애초에 조금만 들여보냈어야 했는데.

관심병 회장의 욕심으로 영광의 홀에 수용 한계치의 인원이 들어왔다가, 더 난리가 난 상태였다.

‘흠.’

성지한은 스윽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인!”

“사인!”

그가 생각하는 기색이자, 소요를 멈춘 대중들은 어느새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인을 부르짖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광기마저 느껴지는 외침에, 성지한은 여유롭게 웃음을 지었다.

저번 생의 아메리칸 퍼스트 시절 이후, 이런 대중의 외침은 오랜만이다.

그때는 손 아프게 하나하나 사인을 해 줘야 했지만.

“나중에 할 필요 있겠습니까? 지금 하죠.”

[지금…… 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

스으으윽.

성지한의 왼팔에 그림자가 피어오르고.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대기해 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자는 순식간에 퍼져 나가서, 영광의 홀 전체를 뒤덮었다.

“어…….”

“뭐, 뭐야. 앞이 안 보여!”

정전이라도 난 듯한 상황에 동요하는 관객들.

하지만.

치지지직…….

그들의 옷, 어깨 부위에 잠시 이질적인 감촉이 느껴지더니.

번쩍.

다시 빛이 돌아왔다.

“사인 끝냈습니다. 모두.”

성지한은 그러며, 왼팔을 툭툭 쳤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도, 자신의 옷을 향했다.

“엇…….”

“지, 진짜 사인이다!”

“와. 너, 나랑 완전 똑같네?”

“와.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모두의 옷에, 똑같이 새겨진 성지한의 사인.

사람들은 혼이 나간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플레이어 성지한.

배틀넷에서 놀라운 활약을 한 걸 지켜보고 열광하기는 했지만.

직접 그의 권능을 체감하고 나니까, 놀라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한데.

“흐응…….”

단 한 명.

영광의 홀 좌석 맨 앞에 앉아 있던, 동양인 여성의 왼팔에는.

성지한의 사인이 없었다.

‘이 아이. 쓸 만한데?’

자신의 왼팔을 잠시 쓰다듬던 그녀의 눈에.

‘어디 네 미래…… 예언 해 볼까.’

기묘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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