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19화>
예전부터 미심쩍은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림자검으로 변한 쉐도우 엘프라고 하기에는, 아리엘은 뭔가 여왕의 의중이나 내부 사정을 많이 아는 것 같았으니까.
성지한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그림자여왕이냐?”
[……아닌데?]
“근데 여왕이 손가락을 어떻게 떼 준다고 확신하지?”
[쉐도우 엘프에게 손가락은 정말 별 게 아니라니까? 금방 재생해. 나 같은 여왕의 심복이 이야기하면, 금방 들어 줄 거다.]
“쉐도우 엘프에게 손가락이 별 가치 없냐?”
성지한은 아르트무 쪽을 바라보며 묻자, 그가 대답했다.
[쉐도우 엘프도 엘프에서 파생된 종족이니, 재생력이 뛰어나긴 하지. 하나 손가락을 통해 그림자기운의 정수를 얻으려면 여왕도 출혈이 없지는 않을 텐데. 그냥 껍데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림자기운의 정수가 담겨야 한다.]
“그렇다는데?”
[……여왕께서는 너와 이클립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계시다. 그 정도 투자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리고, 난 정말로 여왕 아니다!]
“흐음…….”
성지한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왼손을 바라보았지만, 본인이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어디,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여왕.”
[하…… 억울하군. 나도 내가 여왕이었으면 좋겠다! 여왕이 왜 이런 검 안에 있겠냐!]
“그러게. 왜 그러고 있어요, 여왕님?”
[아니라니까!]
펄쩍 뛰는 아리엘.
성지한은 피식 웃고는, 아르트무에게 이야기했다.
“여왕의 손가락, 이쪽에서 구해 보지.”
[그래? 그게 충족된다면야, 검도 강화할 수 있다.]
“알았다.”
[그럼 협상이 완료되었군.]
번쩍. 번쩍.
아르트무의 몸뚱어리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그의 크기가 급격히 작아지고.
성지한 앞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백색 나팔이 생겨났다.
[암석을 얻으면 그 나팔을 불어라. 내 대장간으로 초대하지.]
“좋아. 그리고 네 빛의 기운. 그거 특이하던데, 얻을 방법 없냐?”
[……허! 욕심도 많은 놈이군. 내 대장간에 넘치는 게, 네가 말한 빛의 기운이다. 암석만 가지고 와라. 좀 가져가도 상관하지 않겠다.]
“흠. 지금은…….”
[그럼 그때 보자.]
철컥. 철컥.
그 말을 끝으로, 아르트무의 전신이 해체되면서, 순식간에 중간보스룸에서 사라졌다.
‘빨리도 가네.’
처음 접해 보았던 특이한 빛의 기운.
이것도 나름 분석해 볼 가치가 있었는데, 상대는 협상이 완료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철수해 버렸다.
괜히 더 있다간 빛의 기운을 빼앗길까 봐 불안했던 걸까.
‘암석 받고 가야겠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쿠르르르…….
[다이아가 있는 곳이 여기냐!]
[난이도가 어려울 거라고? 그거야 각오했다!]
중간보스룸 문이 열리며, 외계 종족 손님이 또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1등으로 게임 마무리를 해야겠군.
“간다. 여왕.”
[……하. 맘대로 불러라.]
성지한은 제자리에서, 이클립스로 가로를 그었다.
촤아아악!
그러자, 일제히 갈라지는 침입자들.
-역시 한 방…….
-아르트무가 그나마 버틴 거구나.
-그리고 손님들도 어째 더 약해진 느낌인데?
-ㄹㅇ 붉은 뇌전 안 써도 될 만한 애들만 옴.
오히려 게임 중반 때, 강력한 종족이 쳐들어왔지.
성지한이 그간 하도 원킬을 내 버리니까, 게임 막바지에 와서는 쭉정이들만 침입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적들도 한 방에 쓸려 나가자.
-와, 이젠 손님이 안 온다…….
-아르트무랑 스코어가 조금 붙기 시작하네요 ㄷㄷ 2천 포인트 좁혀짐-아까 아르트무 난쟁이들 잡은 건 스코어 계산 안 되더라.
-그 합체 로봇이 본체라 그런 건가? 아쉽네
성지한의 중간보스룸은 이제 완전히 한산해졌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다행이군.’
초중반에 다이아로 어그로를 끌지 않았다면, 마지막쯤 돼서 재역전을 허용할 뻔했지만.
[스페셜 던전, ‘보스 선출전’이 종료됩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이 보스 선출전에서 1등을 차지합니다.]
성지한은 1만 5천 포인트의 격차로, 마지막 날의 게임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 * *
[한 달간, 다이아 리그 던전 맵의 히든 보스로 플레이어 ‘성지한’이 랜덤하게 등장합니다.]
[플레이어가 하이드아웃 상태입니다.]
[히든 보스 이름이 ??로 표시됩니다.]
그러면서 성지한에게, 히든 보스의 상태창이 떴다.
[히든 보스 : 성지한]
[특성 : 일격필살]
[사용 스킬 : 횡소천군, 암혼와류, 적뢰포]
[공격력 : EX]
[방어력 : A]
[생명력 : F]
[난이도 : 최상]
[보스 정보 : 튜토리얼이 끝나자마자 스페이스 4에 진입한 초신성. 모든 상대를 일격에 베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최하급에 달하는 종족의 한계로 생명력은 약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퇴치 보상 : 스탯 다이아몬드 5개]
‘스킬이 세 개밖에 없군. 던전에서 쓰던 게 저거라 그런가.’ 웬만한 상대는 횡소천군으로 날려 버리고.
좀 강한 이에겐 적뢰포를 쓰고, 때로 특이한 종족이 있으면 암혼와류로 끌어당겨 살펴보고 해서 그런지.
히든 보스 성지한의 스킬은 3개밖에 되질 않았다.
‘공격력 EX야 당연하지만…… 생명력 F라니. 너무하군.’
팔다리 정도는 잘려도 금방 재생하는 외계 종족들이 많아서 그런가.
인류 출신인 성지한에게, 주어진 생명력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갑옷도 입지 않는 그에게, 방어력을 A나 준 건.
방어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암혼와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도 퇴치 보상이 좋아서, 적들이 많이 노리지 않을까 싶은데.’
스탯 다이아몬드로 적을 꼬드겼던 성지한.
그걸 반영해서인지, 히든 보스 성지한을 잡으면 주어지는 보상이 엄청난 수준이었다.
공격력 EX에 도전 정신이 사그라들다가도.
스탯 다이아몬드를 보면, 다시 토벌 의지가 불타겠지.
‘이제 이 녀석이 경험치와 GP를 벌어다 주겠군.’
하이드아웃 때문에 그런지 얼굴 쪽이 검은 그림자로 가려져 있는 히든 보스.
성지한은 앞으로 한 달 동안 보상을 가져다줄 자신의 아바타를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스페셜 던전의 역대 스코어를 갱신했습니다.]
[히든 보스를 추가적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성지한이 얻은 스코어가 기록적이었는지.
추가로 보스를 강화할 수 있다는 옵션이 떴다.
[히든 보스 능력치 강화]
[히든 보스 등장 빈도 증가]
그러면서 심플하게 두 가지로 드러난 옵션.
‘당연히 아래쪽이지.’ 성지한은 바로 등장 빈도 증가를 택했다.
공격력 EX의 히든 보스.
여기서 더 강해졌다가는, 플레이어들의 도전 의지가 꺾일 수도 있었다.
그것보다는, 던전에 자주 등장해서 도전자들을 더 많이 물리치고.
본체인 성지한에게 경험치와 GP를 벌어다 주는 게 낫지.
[히든 보스 ‘성지한’이 강화됩니다…….]
[더 많은 종족의 배틀넷에서, 히든 보스 ‘성지한’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성지한의 의중대로 강화된 히든 보스.
하나 보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옥마궁의 특별보상이 주어집니다. 아래의 항목 중 한 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레어 스탯 ‘업화’(보유)]
[지옥마궁의 암석]
[고위악마의 갑옷]
‘특별보상…… 별 쓸모있는 게 없네.’ 아르트무에게 암석 관련 의뢰를 받지 않았다면, 셋 중에선 어쩔 수 없이 고위악마의 갑옷을 선택했겠지.
물론 이 갑옷도 등급이 SS로 성능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갑옷 안 입는 성지한으로서는 딱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가 의뢰대로 지옥마궁의 암석을 선택하려고 할 때.
[지옥마궁의 관리자, ‘서큐버스 퀸’이 플레이어에게 진한 관심을 내보입니다.]
[자신의 권한으로, 지옥마궁의 보상에 ‘환락의 궁전 초대권’을 추가합니다.]
특별보상 항목 중, 환락의 궁전 초대권이 맨 아래 추가되었다.
다른 보상 항목과는 달리,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글자.
‘이건 필요 없고.’
하지만 성지한은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바로 지옥마궁의 암석을 골랐다.
[지옥마궁의 암석을 획득합니다.]
환락의 궁전 따위보다, 무기 업그레이드가 먼저지.
[에픽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0,000을 얻습니다.]
[지옥마궁의 보물상자를 얻습니다.]
특별보상까지 고르자, 이번에는 에픽 퀘스트 보상까지 주어졌다.
‘아주 보상 풍년이군.’
업적 포인트는 잘 접수한 후, 성지한은 지옥마궁의 보물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환락의 궁전 초대권’이 주어집니다.]
“하.”
조금 전 쳐다도 안 본 보상이 보물상자 안에서 나왔다.
이것도 서큐버스 퀸이 장난을 친 건가?
“환락의 궁전 초대권이라니…… 재수가 없으려니 이딴 게 나오네.”
이거 그냥 찢어 버릴까.
성지한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때.
-환락의 궁전 초대권? 주인. 그거 엄청 비싼 거다.
“그래?”
-그렇다. 환락의 궁전…… 온 우주의 쾌락이 집중되는 곳. 우주의 대부호들은 못 가서 안달인 장소지. 경매장에 올리면 비싸게 팔릴 거다.
“호오…….”
아리엘이 이를 듣고는, 얼른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역시 여왕님. 아는 게 많아.”
-……앞으로 입 닫고 있는다?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 여왕이라고 안 부를게.”
여왕 취급은 나중에 해 줘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배틀넷 경매장에 환락의 궁전 초대권 시세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나온 가격은.
“……1000억 GP?”
그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뭐 이리 비싸?”
[1000억 GP면 그래도 좀 싸졌군. 환락의 궁전에 중독된 대부호 중 일부가 파산이라도 한 건가.]
“이게 싸진 거라고?”
[그래. 찢으면 큰일 날 뻔했지?]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물건이 1000억 GP라니.
역시 우주는 참 넓군.
성지한이 이 가격으로 물건을 등록하자.
“와, 바로 팔렸네.”
순식간에 1000억 GP라는 거액이, 수수료 떼고 들어왔다.
‘이젠 진짜 돈 걱정 안 해도 되겠군.’
원래도 재산에 대해선 일정 단계 이상이 된 이후, 초탈하긴 했지만.
1천억 GP가 추가된 이상, 진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아르트무의 대장간에서, 혹시 구매할 게 있으면 이 돈으로 써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아리엘에게 물었다.
“여왕의 손가락은 언제 얻을 수 있지?”
[일단 로그아웃을 해라. 그래야 여왕께 연락을 하니까.]
여왕이 여왕 본인한테 연락한다고?
성지한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1000억 GP 벌어다 줬으니, 며칠만 참아 주지.’
하마터면 초대권이 찢을 뻔한 대참사를 막아 줬으니, 여왕 호칭은 나중에 불러 주기로 했다.
그렇게, 성지한은 스페셜 던전 맵을 끝냈고.
[앞으로 한 달 간, 던전 맵에서 히든 보스가 등장합니다.]
세상은 그때부터, 히든 보스 성지한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와…… 저희 파티, 또 전멸했습니다…….
-아니 무슨…… NPC도 왜 이렇게 세?
-아 성지한 나오지 말라고! 히든 보스가 왜 이렇게 자주 나와!
등장 빈도 증가를 누른, 히든 보스 성지한.
지구의 다이아리거들은, 성지한이 스페셜 던전 맵을 나선 이후부터.
한차례 홍역을 겪고 있었다.
히든 보스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마구 튀어나오는 성지한.
그가 일검을 휘두를 때마다, 던전을 공략하던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썰어 버렸다.
“삼촌…… 나, 방금 삼촌한테 죽었어.”
한편 배틀넷에서 로그아웃한 윤세아도, 성지한을 찌릿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센 거야, 진짜?”
“그래…… 공허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지 그랬냐.”
“거기 계속 있을 순 없잖아. 나오자마자 검 휙 긋더니 썰리던데?”
“그거 미안하구만. 그래도 삼촌한테 경험치와 GP를 벌어 줬다고 생각해. 그럼 좀 나을 거야.”
“그거 전혀 위안이 안 되는데요.”
그러면서 다이아 리거들의 게시판을 살펴보는 윤세아.
다들 히든 보스 성지한 때문에 레벨이 떨어졌다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보상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긴 하네. 공략법 만들고 있어.”
“스탯 다이아몬드가 워낙 좋긴 하지. 흠. 근데…… 내가 날 잡을 수도 있나?”
“오. 그러네. 삼촌이면 삼촌 이기지 않을까? 그래도 본체인데. 나랑 파티하자!”
다이아 보상, 여기서 얻어 주면 완벽한데.
성지한은 즉시 그 자리에서 윤세아랑 파티를 짜 게임을 돌려 보려 했지만.
[플레이어 ‘성지한’과 팀을 짤 경우, 히든 보스 ‘성지한’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아쉽게도, 배틀넷 시스템은 이를 막아 두었다.
“아깝네. 나랑 한번 싸우고 싶었는데.”
그 메시지를 보고 파티를 다시 해제한 성지한.
“이왕 파티 한 거 같이 게임 돌리지 왜?”
“아리엘이 그림자여왕 손가락 가져오면, 대장간 가려고.”
“아하, 삼촌. 나 좋은 활 있으면 좀 사주라. 헤헤.”
“그래. 한번 둘러보고 사 줄게.”
1000억 GP도 벌었겠다, 윤세아 활 정도야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지.
성지한이 선선히 그리 대답했을 때.
딩동. 딩동.
벽에 있는 월패드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오너님! 제발 얼굴 좀 봐요! 길드 일 처리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딩동. 딩동. 딩동.
그러면서 벨을 마구 두드리는 길드 마스터 이하연.
얼굴은 피곤에 가득 쩔어 있었다.
“흠…… 업무야 다 맡겼는데. 뭘 또 처리할 게 있다고.”
“삼촌…… 하연 언니 요즘 업무 폭탄 때문에 미치겠다고, 일 때려치울 기세던데?”
“그래?”
이하연이 일을 그만둬서야 안 되지.
성지한은 얼른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겠습니다. 길드로 내려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