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10화>
롱기누스의 신살.
그것은, 겉보기에는 너무나도 단순한 찌르기였다.
창끝에 모인 혈기는 어느새 창 전체로 흡수되고.
핏빛이 번들거리는 혈창은 서서히 성지한의 철혈십자를 향해 뻗어 나갔다.
그 움직임은.
조금 전, 강화된 롱기누스의 신체 능력에 비추어 보면.
느릿느릿하기 짝이 없어, 장난치나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이게 진짜 신살 맞나, 의아해할 때쯤.
“큭……!”
창을 내뻗는 아바타 블라디미르의 육신이, 발끝부터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바타론…… 이게 한계인가……!”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피로 변해, 혈창에 흡수되어 버린 롱기누스.
[상대 팀의 선수가 모두 전사했습니다.]
[게임이 곧 종료됩니다…….]
그러자 상대 팀이 모두 전사해서, 게임이 종료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뭐? 끝이라고?’
아니, 장난해?
성지한은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 되었다.
롱기누스 버전의 신살을 볼 줄 알았더니.
눈앞에서 이게 무산된다고?
‘그래도 창은 날아오는군.’
창을 찌르던 본체, 롱기누스가 사라졌음에도.
느릿느릿 이쪽으로 날아오는 혈창.
아무리 봐도 신을 죽이는 창이라기엔 거리가 먼 움직임이었지만.
‘부딪쳐는 봐야겠지.’
게임이 종료되기 전에, 성지한은 자기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몸이…….’
발걸음을 떼려고 보니, 몸은 아예 통제에서 벗어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멈춘 건, 성지한 뿐만이 아니라.
‘……시스템마저 멈추었군.’
‘게임이 곧 종료됩니다. 이후, 로그아웃됩니다’가 떠야 하는데.
시스템 메시지는…… 이후로는 더 이상 메시지가 진행되지 않았다.
멈춘 세상 속.
홀로 느긋이 날아오는 롱기누스의 창.
‘시간 정지…… 이게 그의 신살과 관련이 있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어떻게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부를 관조했다.
무혼과 공허를 위시하여, 많은 종류의 힘이 있었지만.
‘거의 움직이질 않는군…….’
제어권이 사라진 듯.
성지한의 컨트롤이 먹히질 않았다.
그나마, 움직이려고 하는 건 무혼과 공허의 기운뿐.
그는 이거라도 조절하려고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느릿느릿 날아오던 혈창은 어느새 그에게 근접했다.
그리고.
푹!
창끝이 십자에 꽂히자.
피시시시…….
창끝에서 핏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보라색의 글자.
한글도, 영어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모양의 글자였지만.
‘……왜. 읽히지?’
어째서인지 성지한은 이를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타깃 조건, 일부 일치.]
[소멸 코드 발현.]
그리고 그 글자가 허공에서 사라지자.
화악!
철혈십자의 가운데가 뻥 뚫리며.
그 틈새를 혈창이 파고들어 왔다.
푹!
그렇게 창끝이 성지한의 몸을 꿰뚫자.
슈우우우…….
혈창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지워나갔다.
그러면서 특히 억제하려고 드는 것은, 무혼의 기운.
성지한은 창에 꽂히며,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힘…… 무혼을 완벽하게 적대시한다. 그에 반해, 공허는…… 자기가 활용하려고 들어.’
무혼은 삭제하지만, 공허는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신살의 창.
그래도 처음에는 공허에 대한 주도권을, 성지한이 쥐고 있었지만.
‘아니다, 이게 어떻게 하는지 봐야겠어.’
혈창이 어떤 방식으로 공허를 활용할지 보기 위해, 이 움직임을 따르기로 했다.
공허가 그렇게 합세하자, 내부에서 특이한 흐름을 보이는 혈창.
‘호오…….’
성지한은 자신의 상반신이 반 이상 뻥 뚫린 상황에서도.
혈창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무혼을 갉아먹는 혈창.
허나 그 움직임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이게…… 소멸 코드와 관련된 건가?’
어째서인지 읽을 수 있었던 소멸 코드란 단어.
성지한은 본능적으로, 공허와 합세하여 무혼을 제압하는 이 특이한 흐름이.
소멸 코드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아.’
그렇게 자신의 몸이 삭제되는 와중에도.
한참 신살의 창을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던 성지한은.
[로그아웃됩니다.]
혈창의 시간 정지가 끝나고.
흐름이 다시 되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쉽군.’
조금만 더 분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몸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머리와 팔다리만 남게 된 상황에서도.
성지한은 ‘소멸 코드’를 완전히 알아내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래도…… 알아낸 건 있다.’
몸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와중에도.
성지한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 맑았다.
신살의 창.
몸으로 직접, 받아 낼 만한 가치가 있었다.
* * *
한편, 한국의 0번 채널.
=아, 두 선수. 뭐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만…… 중계 화면에서는 들리지 않는군요.
=아, 블라디미르 선수, 손에서 창을 만들어 냅니다! 피가 한 점에 모이는 것이…… 큰 기술을 준비하나 봅니다!
=성지한 선수! 이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나요?
성지한과 롱기누스의 대화가 묵음 처리된 가운데.
둘의 격돌이 중계되고 있었다.
-오늘 방송 사고가 잦네;
-블라디미르 가만히 창에 피 모으고 있는 게 딱 봐도 초필살기 쓰는 거 같은데 왜 기다리고 있음??
-원래 이런 건 기다려 주는 게 국룰임 ㅋㅋㅋ
-아니, 완전 밀리고 있었는데 지금 기회에 반격을 해야지. 이러다 1승 못 챙기면 어떻게 하려고 ㅡㅡ둘의 대화를 듣지 못했기에, 왜 성지한이 가만히 있는 지 이해하지를 못하는 사람들.
하나 이런 걱정은, 블라디미르의 몸이 혈창에 흡수되자 곧 사라졌다.
-잉??
-뭐야. 블라디미르…… 왜 지 창에 흡수됨?
-ㅋㅋㅋㅋ 필살기 실패?
-캬, 거 봐라. 지한 님 예지몽 있는 거 모름? 다 생각이 있어서 대기 타신 거지.
-ㄹㅇㅋㅋㅋ 왜 이렇게 불신자들이 많어? 성지한만 믿고 가자더니 ㅋㅋㅋ성지한은 롱기누스의 신살을 겪어 보기 위해 대기 탔을 뿐이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선, 예지몽이 또 발동한 거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게, 게임 종료됩니다.
=한국…… 3:1로 러시아에 승리합니다!
=마지막 격돌이, 좀 싱겁게 마무리되었습니다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승리가 중요하죠!
그렇게 끝나는 중계.
그 이후 멈춘 세상 속에서, 성지한이 혈창에 꿰뚫리는 장면은 중계화면에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와, 지한 씨 마지막에 알고 기다리셨던 거예요? 블라디미르 선수가 무기에 흡수될 줄 예상하고?”
“예지몽 정말 대단하네요…… 혹시 또 좋은 거 안 꾸셨나요?”
선수들은 성지한에게 다가와 예지몽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
게임 종료 후 벌어졌던 장면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질 않았다.
“예지몽이 그렇게 마음대로 꿀 수 있는 게 아니어서요. 앞으로의 일은 더 자 봐야 압니다.”
성지한은 그런 선수들에게 가볍게 응대를 하고는.
“감독님. 저 집에 좀 바로 가 보겠습니다.”
노영준 감독에게 귀가를 통보했다.
“지, 지금 바로? 시리즈 MVP 인터뷰도 있는데…….”
“그건 대신 좀 해 주십시오. 블라디미르 선수 상대하다 보니, 수련할 것이 떠올라서요.”
“수, 수련 말인가?”
“네.”
노영준 감독은 질린 기색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무슨 수련 귀신이야?’
안 그래도 맨날 집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한다고 소문이 자자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MVP 선정 소감 말할 시간은 있지 않나?
“그…… 혹시 인터뷰 아나운서가 마음에 안 드나 혹시?”
“네? 누구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저 일단 가 볼게요. 매형. 좀 이따 봐요.”
“왜? 같이 가지.”
“뛰는 게 더 빨라서요.”
휭!
그 말을 끝으로, 경공을 펼치며 사라지는 성지한.
노영준 감독은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세진아. 혹시 대신 인터뷰 가능하겠어?”
“뭐, 처남 대신이라면 하죠.”
윤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처남 일이라면.
얼마든지 대신해 줄 수 있었다.
“고맙다. 허 참…… 대체 무슨 수련이 그리 급한지.”
감독 입장에서야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저렇게 강해진다니 고맙기는 하지만.
사람이 쉴 틈도 있어야지.
노영준 감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채, 윤세진과 함께 인터뷰를 준비했다.
* * *
무신의 별, 투성.
“……버텨 냈군.”
중계화면에는 잡히지 않은, 마지막 장면까지 본 롱기누스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성지한의 몸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목과 팔다리만 남아.
현실이었다면 사실상 즉사라고 봐도 되었지만.
[전신이 단번에 사라지지 않았군.]
“……그렇습니다. 주인이시여. 그는 신살의 힘에 저항했습니다.”
원래, 신살의 창에 직격당하면 몸 전체가 닿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야 했다.
한데 성지한은 시간 정지가 풀리고, 시간이 다시 흐를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신체를 지켜 냈다.
[나쁘지 않구나.]
평소 목소리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던 무신에게서, 드물게도 흡족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순히 버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겠지.]
“…….”
[롱기누스. 다음에도, 그를 상대로 창을 허락해 주겠다. 그의 한계를 이끌어 내라.]
“……감사합니다, 주인이시여.”
그렇게 허락해 주지 않던 창을.
성지한 상대로는 마음껏 쓰게 하는 방랑하는 무신.
롱기누스는 무신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네…… 괜찮은가?”
혼이 나간 얼굴로, 터벅터벅 걷는 그의 옆에.
동방삭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가왔다.
“동방삭, 보셨소?”
“그래. 나도 화신을 통해 그를 시험해야 하니. 참고할 겸 보았지.”
“후우…….”
롱기누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신살의 창이 일개 인간에게 막히니…… 원래도 살맛이 별로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더합니다.”
“몸통은 부쉈지 않는가. 시간이 더 흘렀다면 나머지 부위도 다 부서졌겠지.”
“동방삭…… 알면서 왜 그럽니까? 그는 인간입니다. 창이 닿으면, 신체는 대번에 사라져야 정상입니다. 헌데 그걸 버텨 내다니…….”
“인간이라…….”
롱기누스의 한탄에, 동방삭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가 인간이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으윽.
동방삭은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그가 호리병의 마개를 따자.
휘이이익……!
동방삭과 롱기누스, 두 사람의 신형이 일제히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투성에서 누가 듣는다고 여기까지 들어와서…….”
롱기누스의 불평에, 동방삭은 나직이 말했다.
“무신께서 듣지 않는가.”
“……여기선 안 들린답니까?”
“잠깐은 그러네.”
이 호리병 안에서는, 주인의 눈과 귀마저 침범하질 못한다고?
롱기누스가 신기하게 주위를 살펴보다가, 동방삭에게 질문했다.
“한데 주인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깁니까? 성지한이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이야기.”
“뭐…… 내 일방적인 추측이니 말일세.”
동방삭은 주위를 슬쩍 바라보더니, 나직이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성지한 그 아이…… 무신과 ‘동족’인 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