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08화>
러시아 선수 대기실.
“블라디미르 님.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지,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갑자기 저흴 죽이시다니……!”
미리 로그아웃되어 있던 선수들은, 블라디미르가 배틀넷 커넥터에서 나오자 그에게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닥쳐라.”
“…….”
그가 강렬한 살기를 뿜어내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선수들도 다들 국가대표가 될 만큼, 강력한 다이아 플레이어였지만.
블라디미르.
아니,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롱기누스가 진심으로 분노하자 그 기세를 이겨 내지 못했다.
“성지한……!”
롱기누스의 두 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철혈의 힘…….’
방랑하는 무신이 롱기누스에게서 강탈한 ‘신살’의 업.
그것은 철혈의 십자와, 이를 꿰뚫는 창으로 발현되었다.
롱기누스는 지금까지 이 둘 중, 십자를 뚫는 창.
‘신살의 창’만 무신에게서 빼앗긴 줄 알았다.
한데.
‘혈십자에서부터…… 나의 것이 밀린단 말인가?’
조금 전 상황.
분명, 힘을 더 흡수할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몸이 터져 버린 건, ‘철혈’의 힘을 흡수하지 못해서 그런 것.
혈십자부터, 무신의 하위호환이라니……
‘……주인 외의 존재에게, 이렇게 수치를 당할 수는 없다.’
무신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무혼을 지녔다 한들.
이제 곧 다이아가 된 인간에게, 이렇게 밀리는 건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질 않았다.
“블라디미르. 네 몸뚱어리, 좀 개조하겠다.”
[어. 저. 자, 잠시……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한테는 좋은 일일 것이다.”
[아니, 잠깐. 어떻게 개조하려고 하십니까……!?]
몸의 원래 주인은 롱기누스의 안에서 어떻게 할 건지라도 알려 달라면서 호소했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찌이이익!
블라디미르의 얼굴을, 손톱으로 그어 버렸다.
[무, 무슨 짓을……!]
“얼굴에 상처 따위. 좀 남아도 상관없지 않나?”
스으으으…….
이마부터 턱밑까지.
기나긴 상처가 세로로 쫙 그인 블라디미르.
그 모습을 본 주변 러시아 플레이어들은,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얼굴을 그어 버린, 미친놈이었으니까.
‘저건 상처 따위가 아닌 거 같은데.’
‘블라디미르 님…… 정신과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스으으으…….
그 상처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블라디미르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강해질 것이다. 너는.”
* * *
=1경기, 승리하기는 했습니다만…….
=블라디미르 선수,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마터면 지는 줄 알았어요!
하나의 다리에서 치러진 1경기.
여기서 블라드미르가 보인 모습은 파격적이어서, 1경기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다.
-블라디미르 왜케 세짐? 움직임 장난 아니더라 ㄷㄷ
-마지막에 몸 부풀 때는 거기서 더 세져? 하면서 끝난 줄 알았음.
-러시아 커뮤 보니 쟤들도 어리둥절하더라.
쉽게 승리할 줄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서 그런가.
한국 팬들은 1경기를 이겨 놓고도, 오히려 경기가 시작되기 전보다 불안해했다.
그리고 성지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1경기에는 이겼지만, 다음에는 장담할 수 없다.’
저번 생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블라디미르.
하나 이번에는 성지한이 무혼을 얻어서 그런가.
무신과 확실한 연관이 있어 보였다.
성좌의 개입이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변수가 작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능력이 규격 외라는 건 확실했다.
‘철혈십자가 그에겐 상당한 아킬레스건인 거 같았는데…… 다음 경기 때도 만나게 되면 써야겠군.’
성지한은 철혈십자를 키 포인트로 잡고, 나름의 대응방법을 떠올려 보고 있을 때.
=2경기. 러시아가 밴카드를 성지한에게 사용합니다!
=1경기 때 패배가 뼈아팠나요? 러시아, 검왕을 상대하기로 합니다!
러시아는 2경기 상대로 검왕을 택했다.
‘또 상대로 나를 지목할 줄 알았더니…… 의외군.’
무신과 관련된 적이니만큼.
무조건 자신에게 타깃을 집중할 줄 알았는데.
‘하긴, 밴과 셀렉트는 러시아 감독이 하는 거니까.’
성지한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번엔 나군. 갔다 오지, 처남.”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윤세진.
시각을 잃어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해설만 들은 그는, 성지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블라디미르 선수가 강해졌다는데, 어느 정도지?”
“아주 강합니다. 엘프보다 강력한 재생력에, 형체를 파괴해도 핏방울을 움직여 공격해 오죠.”
“흠…… 그거참, 상대하기 까다롭겠군.”
“예. 거기에 어떻게든 제 몸에 생채기를 내려고 하던데, 공격을 한 번 허용하면 피곤해질지도 모릅니다.”
“주의하겠네.”
그렇게 대 블라디미르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둘.
“글쎄. 주의할 필요 있을까?”
“예?”
하지만 대표팀 감독 노영준은, 그들의 열띤 토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도 밴하면 되잖아. 블라디미르.”
“아.”
“그렇군요.”
밴 카드는 저쪽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1경기 때야, 블라디미르가 저렇게 강한 줄 몰랐기에 여러 명이 랜덤 밴 당하는 카드를 썼지만.
이제는 러시아의 핵심 키 카드를 알았으니, 블라디미르에게만 밴을 집중하면 될 터.
“혹시 그와 다시 붙고 싶어도, 이번에는 참아 주게. 첫 시리즈는 승리해야 하지 않겠나.”
“뭐 지름길 있는데 멀리 돌아갈 필요 없죠.”
“감독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성지한과 블라디미르가 밴 당한 2경기는.
=아아. 검왕. 백검을 소환합니다. 100개의 검이 모조리 적을 향해 날아가고 있어요!
=다시 대표팀에서 어검술로 적을 학살하는 윤세진 선수를 보니, 감개무량하군요!
=검이 하늘에서 비 오듯 쏟아집니다. 적, 검 한 자루도 제대로 막지 못해요!
검왕이 완전히 박살을 내 버렸다.
-니들만 밴 할 수 있냐? 우리도 가능하다구 ㅋㅋㅋ
-키 카드가 두 개 있으니까 편-안하구만.
-한 선수 특정 밴은 시리즈에서 두 번씩만 가능하다는데, 진짜 그런가요?
-3번, 4번도 가능하긴 합니다. 다만 3번 째부터는 확률로 들어가요.
-ㅇㅇ 3번 째부터는 50퍼센트 확률임.
세 번의 경기에서, 성지한을 3번 밴했으면.
마지막은 50퍼센트 확률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밴 카드 옵션.
-그럼 블라디미르는 다음 경기까지 칼밴하면 되겠네.
-ㅇㅇ 2번은 절대 못 나오는 거니까 3경기에서 게임 끝내면 될 듯.
-그러네. 4경기까지 끌고 가면 확률 싸움 되니까 안 되겠어.
-첫경기 이긴 게 중요했구만 ㅋㅋㅋ
첫 경기 때 블라디미르가 밴 안 당한 게 이번에는 좋게 작용해서.
2, 3경기 때 그만 밴해 버리면.
한국은 손쉽게 3:0 승리를 따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쉬운 게임이었군.”
가볍게 2경기 MVP를 따고 돌아온 검왕 윤세진은.
“블라디미르 선수와 한번 맞붙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는 없을 거 같네.”
“어차피 리그전이라 또 만날 겁니다.”
“하긴 그렇지. 러시아랑은 예전에도 질리도록 게임 했지. 다음에 붙어 봐야겠네.”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다음 경기도 블라디미르가 밴당하면.
사실 게임의 변수는 크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블라디미르 밴! 러시아는, 또다시 성지한을 밴합니다!
=하하. 이러면 2경기의 재탕이 되겠는데요? 맵이 뭐가 걸리냐가 중요하겠습니다만…….
=맞아요. 3경기부터는 특정 클래스만 출전할 수 있는 맵을 택할 수 있죠. 노영준 감독의 맵 선택은 발할라입니다! 전사들의 맵이죠!
=저희의 장점을 십분 살리는 맵이로군요!
=그리고 러시아의 선택은…… 어. ‘골렘 결투’입니다!
게임의 변수는 아직 남아 있었다.
“골렘 결투라면…….”
“서포터 맵 아닙니까?”
“맞아요. 서포터 승급전 때 자주 나오는 맵이죠.”
특정 클래스만 출전할 수 있는, 특수 맵.
한국은 강력한 전사 둘을 믿고 발할라를 고른 반면에.
러시아는 정면 승부보다는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서포터의 힘을 믿고, 골렘 결투를 골랐다.
“이거…… 맵으로 승패가 정해지겠는데?”
“러시아가 우리보다 서포터가 강하죠?”
“아무래도 그렇지.”
워리어와 아처 클래스는 한국이 강하고.
메이지와 서포터는 러시아가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물론.
이런 평가를 뒤집을 만한, 올 클래스 성지한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내 올 클래스도 이 맵에선 쓸모가 없군.’
서포터 전용 맵 ‘골렘 결투’는 케이스가 독특했다.
전투 능력 대신에 팀원을 케어하는 능력이 발달한 서포터.
그들이 승급전을 맞이할 때는, 팀 단위로 게임을 진행하거나.
아니면 서포터들만의 경기를 따로 치르곤 했다.
‘골렘 결투’도 그런 맵 중 하나로.
서포터들은 각자 할당받은 골렘에게 버프를 주어, 전투를 그들에게 대리했다.
시의적절하게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상황에 맞는 버프를 부여해서.
자신을 대신하는 골렘이 승리하게 이끌어야 하는 ‘골렘 결투’.
이 맵에서, 서포터 외의 전력은 전혀 쓸모가 없었고.
서포터는 버프, 힐 이외에는 전투에 전혀 개입하지 못했다.
‘이 맵, 완전히 날 봉쇄하는 카드가 될 수도 있겠어.’
서포터 전용 맵 중에서도, 골렘 결투는 성지한에게 가장 제약이 심한 맵이었다.
만약 골렘이랑 같은 전장에 서서 싸우는 거면, 성지한이 앞장서서 다 때려눕히면 되겠지만.
이건 아예 공간이 분리되어서, 밖에서 버프만 주는 개념이었으니.
완전히 그에겐 천적이나 다름없는 맵이었다.
‘이 맵…… 우리나라 상대로 많이 들고 올 거 같네.’
성지한은 이번 게임을 계기로, 다른 나라도 죄다 골렘 결투 카드를 꺼내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맵이 뽑힐지를 바라보았다.
=아……! ‘골렘 결투’ 맵이 뽑히는군요!
=3경기에서는, 러시아 감독의 운이 더 좋았나 봅니다!
=이러면…… 서포터들의 역량에 모든 게 달렸네요.
=일반적으로는, 러시아의 서포터를 대한민국의 서포터들보다 한 수 더 우위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차이, 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서포터들! 얼마든지 이 갭, 좁힐 수 있어요!
해설자들은 골렘 결투 맵이 걸린 것에 대해 실망하면서도.
서포터들이 최선을 다하면 이길 수 있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해설 포장하는 거 보소 ㅋㅋㅋ 러시아랑 우리나라 서포터, 두 단계는 차이 나는데 ㅋㅋㅋㅋ-골렘 결투 이거 버프 효과가 젤 중요한 게임이라 절대 못 이길걸?
-4경기 가겠네 ㅋㅋㅋㅋ
-아 성지한 뭐 하냐! 빨리 소피아 꼬드겨서 귀화하게 해라!
-성지한 이미 임자 있음;;
-국가를 위해서다. 한 명 더 사귀어!
-나라가 권장하는 양다리 ㄷㄷㄷ
이미 4경기를 확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 양상은, 그런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아…… 골렘. 폭발합니다……!
=러시아 서포터가 강하긴 합니다.
=4경기…… 갈 것 같군요!
=이러면 블라디미르의 밴이 풀리게 되는데요……!
2:1.
한국의 리드는 여전했지만, 완벽하게 차단되었던 변수 블라디미르가 게임에서 풀리자.
대표팀에는 긴장감이 슬쩍 감돌았다.
“이것 참…… 쉽게 끝내주질 않는군.”
“그렇게 됐네요.”
“이번에도 똑같이 맵 선정이 들어가면, 필밴이 불가능한 블라디미르 대신 적 서포터를 밴하는 게 낫겠어.”
“밴이 먼저라서, 맵이 뭐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러시아는 당연히 서포터 맵을 선택하지 않을까?”
2:0.
절체절명의 순간, 맵을 잘 골라서 승리를 따낸 러시아.
당연히 3경기 때의 승리 공식을 또 써먹으려고 하겠지.
“적이 메이지 맵 같은 거 고르면, 처남이 다 때려 부술테고 말이네.”
“서포터 맵도 골렘 결투만 아니면 할 만합니다. 전장에 나서기만 하면 끝이라.”
“하하. 그건 그렇지. 러시아는 제발 골렘 결투만 걸리길 빌겠어.”
그렇게 모두가, 골렘 결투 맵에 러시아가 목을 맬 거라고 예상한 가운데.
4경기 감독 테이블에서, 밴카드가 먼저 블라디미르와, 윤세진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러시아 측에서 공개된 셀렉트 카드는.
[발할라]
예상외의 것이었다.
“발할라?!”
“미쳤나, 쟤네?”
“설마 블라디미르를 믿고…….”
3경기에서 보여 주었던 필승카드를 버리고, 한국이 원하는 맵.
발할라를 선택한 러시아.
=러시아…….
=이 선택…… 이해가 되지를 않는군요……!
=설마 블라디미르 선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인가요?
해설자들도 일제히 의문을 표하며.
화면은 러시아 감독을 집중적으로 비추었다.
시커멓게 가라앉아 있는 감독의 얼굴.
성지한은 그걸 보면서 대충 눈치를 챘다.
‘자기 의지는 아닌 거 같군.’
블라디미르.
아니 그 안에 있는 무신 관련인이, 이를 주도한 거겠지.
50퍼센트 확률로 밴 당하면 어쩌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겠지. 무신과 관련된 자는.’
그는 1경기 복수만을 원할 터.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시리즈. 끝내고 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