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00화>
=리그 경쟁전, 시작합니다.
인류측 대기실, 그것도 성지한을 위주로 포커싱하고 있던 0번 채널은.
게임이 시작되면서, 본 게임이 벌어지는 전장으로 화면이 옮겨 갔다.
=경쟁전의 게임 방식은, 기본적으로 디펜스에 해당합니다.
=다이아 승급전에 참여하는 TOP100이 서로 협력해서, 각 전장의 몰려오는 몬스터를 막는 것이죠.
=각종족의 스코어는, 누가 먼저 빨리 웨이브를 막아 냈냐. 생존자가 얼마나 되냐에 따라 매겨진다고 합니다만.
=만약 우리 팀이 몬스터 웨이브를 빨리 제압할 경우, 상대 팀을 선택해서 추가적으로 몬스터를 보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인류로서는 처음 겪는 리그 경쟁전.
게임 방법은 단순했다.
TOP 100명이 모여서 몬스터 웨이브를 제압하고, 최대한 생존하며.
힘에 여유가 있으면 웨이브를 빨리 없애고 적진에 몬스터를 더 소환시켜 순위를 경쟁하는 구조였다.
‘방식 자체는 단순하지만…… 배정받는 맵마다 여러 공략 방법이 있었지.’
성지한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인류는 우직하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반해.
세계수 엘프 쪽은 맵을 순식간에 장악하고는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상대 팀을 골치 아프게 만들곤 했다.
=리그 경쟁전에 참여하는 20개의 종족은, 5개의 그룹으로 나뉘며 인류는 3그룹에 배정받았습니다.
=3그룹이 5스테이지까지 진행할 맵은…… ‘거대묘지’군요.
언데드 몬스터가 주로 출몰하는 거대묘지 맵.
랜덤으로 배정되는 맵 가운데선, 난이도가 평범한 무난한 맵이었다.
‘다만…… 숨겨진 포인트를 공략하면, 그때부턴 상대에게 지옥을 선사할 수 있는 맵이었지.’
성지한이 경쟁전 맵 전체를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거대묘지 맵만큼은 공략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세계수 엘프가 이 맵만 걸리면, 바로 특별 포인트를 공략해서 상대 팀에게 지옥을 선사했기에.
인류도 그들의 공략 방법을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배움 끝에, 최초로 특별 포인트 공략에 성공한 게.
바로 무성 시절 성지한이 승급할 때 몸담았던 TOP 100이었다.
‘문제는 이 맵이 언데드 몬스터만 나온다는 건데.’
사신의 힘만으로 리그 승급전 1위를 하라는 성좌 퀘스트.
죽음의 권능만 다뤄야 하는데, 과연 언데드 몬스터에게 이게 잘 통할까?
‘죽음이 언데드를 완전히 지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상대가 죽어서 안 통할 수도 있겠군. 일단은 써 봐야 알겠어.’
스으으으.
성지한은 잘 컨트롤이 되지 않는 스탯 ‘죽음’을 운용하며, 게임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번쩍!
대기실에 있던 100명의 플레이어가 모두 배정받은 전장.
‘거대묘지’ 맵으로 소환되었다.
“여기가 거대묘지 맵…….”
“묘비만 빼곡하네요.”
“방어하기 쉬운 포인트가…… 저 언덕이 나으려나요?”
황량한 황무지에 새하얀 묘비만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거대묘지 맵.
그나마 소환된 곳 동쪽과 북쪽에는 완만한 언덕이 있어서, 수비 태세를 갖출 만했다.
하지만 성지한은 좌중을 둘러보며,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아뇨. 남쪽으로 가죠.”
“남쪽이요? 그쪽은 내리막이라 수비하기가 힘들 텐데…….”
“저쪽에만 묘비가 없습니다.”
“아……! 그러네요!”
“오, 삼촌. 바로 알아채네. 예지몽 꿨어?”
다이아 승급전 TOP 100에 막판에 합류하게 된 윤세아가 씩 웃으며 말하자.
성지한은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이건 그냥 눈썰미지. 예지몽 건수는 다른 게 있어.”
“오, 진짜?!”
“성지한님의 예지몽…… 또 발동된 겁니까!”
“예. 게임 진행하면서 알려 드리죠.”
개막전을 극적으로 이기면서, 성지한의 예지몽은 배틀넷 관계자들에게 한참 화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었지만.
성지한이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후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항상 정답 중에서도 정답만 골라왔기에.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뭐, 저놈이 말한 거니 맞겠지. 먼저 가겠다.”
상태창 2개의 효과로 엄청난 성장력을 보이며, 이번 TOP 100에 참가하게 된 배런은 자기가 먼저 남쪽으로 내려갔다.
한 때는 반목했지만, 혼돈의 전장 때 넣어 준 걸 계기로 꽤 호의적으로 변한 그는.
성지한의 판단을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모두 남쪽으로 가죠!”
그렇게 TOP 100이 일사불란하게 이동하고.
=오. 성지한 선수. 이 게임에서도 예지몽이 발휘될 게 있나 봅니다!
=하하. 참 든든한 선수죠! 같은 편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프. 그러고 보니, S급 능력자도 되셨는데 해설 계속할 필요 있겠습니까? 아메리칸 퍼스트에서 엄청난 딜을 제안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말이죠!
=제가 성이랑 던전 탐사를 같이 가 봤는데 말이죠…… 성이나 검왕 같은 전사에게 보호를 받는 게 아니면, 아직은 해설자로 있고 싶습니다! 던전, 이거 꽤 무서워요!
=오. 그렇습니까? 나중에 쉬는 타임이 되면 던전 탐사 후기를 들어야겠군요!
=별거 없습니다. 성 뒤에 숨어만 있었으니까요! 오. 근데…… 같은 3그룹에 속한, 상대 팀이 나타나는군요!
크리스토프의 던전 탐사와 관련해서 잠시 잡담을 나누던 해설진은.
3그룹에 속하게 된, 타종족 명단이 나오자 이에 집중했다.
=3개의 종족, 명단이 드디어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우르크군요.
=우르크족! 혼돈의 전장에서 본 종족이죠. 플레이어 성이 다 쓸어버려서 힘을 측정하지는 못했지만, 강한 종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리그 순위에도 나오는데…… 20위군요!
=두 번째 종족은…… 어, 기계…… 종족입니까? 로봇들이군요!
=종족 이름은 메칸이군요. 혼돈의 전장에서도 보지 못한 이들입니다. 순위는 15위. 이들도 인류보다는 아래에 있습니다!
우르크와 메칸.
근육질의 돼지머리 생명체와, 이족보행 로봇 종족은 겉보기에는 강력해 보였지만.
막상 리그 순위 자체는 인류보다 아래에 있었다.
이 정도면 3그룹의 종족 배정, 괜찮게 받은 건가 싶었지만.
=어…… 맨 마지막에는 엘프가 또 있군요! 어, 이 종족 이름은 ‘세계수 엘프 - 200’입니다?
=아니. 세계수 엘프가 또 있었나요? 아, 스페이스 리그에서 순위도 드러나는군요. 1, 1등입니다! 세계수 엘프 200, 1등을 달리는 종족이에요!
세계수 엘프 200의 이름이 마지막에 드러나자, 해설자뿐만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모두 경악했다.
* * *
-리그 1등?
-엘프가 1등이었어? 그것도 또 세계수 엘프?
-저번에 세계수 엘프 뒤에 숫자가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ㅅㅂ 그럼 설마 저놈들 1부터 200까지 다 있는 거임?
-엘프 놈들…… 뭔 바퀴벌레냐?
-아니 이게 말이 됨? 배틀넷 운영 개똥이네 ㅡㅡ
개막전에서 인류를 농락했던 세계수 엘프.
성지한이 5게임에서 반전을 일으켜 역으로 저들을 처형시켜 주긴 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은 분명 인류의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런데 그 종족이 하나 더 있다고?
뭐 게임이 이러냐며 시청자들은 배틀넷을 성토하고.
[‘Downglass’가 10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어떻게 해요!! 엘프랑 또 같은 팀에 걸렸어요 ㅠㅠㅠㅠ]
승급전을 중계하는 성지한 채널에서도, 이 소식을 알리는 후원이 도착했다.
“그렇습니까? 대비를 잘 해야겠군요.”
하지만, 사람들의 놀람과는 달리.
‘역시 엘프랑 한 팀에 걸렸나.’
성지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리그 20팀에 엘프만 다섯이 있으니, 하나는 걸렸겠지. 이렇게 된 이상, 빨리 포인트를 공략해야겠군.’
맵을 완전히 꿰고 있는 세계수 엘프.
저들과 같은 그룹에 있는 이상, 적어도 3스테이지가 지나기 전에는 맵의 특별 포인트를 공략해야 했다.
안 그러면, 저들이 먼저 점거하고 말 테니까.
‘죽음의 권능은 1스테이지에 써먹지 못하면 바로 버려야겠어.’
영 써먹기 힘든 죽음의 권능.
성지한은 이거에 길게 미련을 가지지 말고, 1스테이지에 확실히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상대 팀에 엘프가 걸린 이상,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었으니까.
[1스테이지가 시작합니다.]
쿠르르르……!
게임이 시작하자 묘비 앞쪽에 땅이 파이며.
하나둘씩 언데드 몬스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스켈레톤이나 좀비류 몬스터와는 달리.
시커먼 갑주를 두르고 있는 데스 나이트들은, 한눈에 보아도 만만치 않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이아 승급전이라 그런지, 몬스터 웨이브 처음부터 강력하기 짝이 없는 적.
“어. 저거…… 좀 세 보입니다?”
“허약한 언데드로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버프 부탁합니다!”
“내가 먼저 마법을 사용하지!”
TOP 100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방비하고 있을 때.
“죽음 앞에는, 만물이 평등하니. 나 성지한. 사신의 이름으로 이를 주관하리라.”
성지한은 태연한 얼굴로 스킬, ‘죽음 선고’를 사용했다.
꼭 정해진 대사를 읊어야만, 본격적으로 죽음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죽음 선고.
옆에서 요격을 준비하던 윤세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뭐 해. 삼촌? 갑자기 중2?”
“새로운 스킬 써 보는 거야.”
“아~ 그 해골바가지가 준 거야? 뭐 그런 대사를 읊게 만드냐? 내가 다 부끄럽네.”
“얼마든지 이런 대사 내뱉어도 좋으니, 제대로 성능만 나오면 좋겠는데 말이지…….”
오른손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빛을 큰 기대 없이 바라보던 성지한은.
“……어?”
빛이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져 가자 놀란 눈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뭐야, 갑자기?’
현실에서는 별 반응도 없던 것이.
게임에 들어오자, 갑자기 엄청난 호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철컥. 철컥.
“……응?”
“쟤들, 무릎을 꿇는데요?”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오려던 데스 나이트 군단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 * *
=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언데드들이 모두 성지한에게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아아. 또 예지몽이 발동한 것일까요? 근데 그렇다기엔, 성지한 플레이어도 조금 당황한 눈치로군요!
=이러면 웨이브 클리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적 언데드 군단이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복종하는 전장의 상황.
해설자는 물론이거니와.
‘왜 된 거야?’
죽음의 기운을 피어 올렸던 성지한도 영문을 모른 채로, 잠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파이어 웨이브!”
한편,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배런이 그의 전매특허 마법인 파이어 웨이브를 사용하여 언데드 군단을 불길로 집어삼켰지만.
[사신께 복종을.]
[명을, 내려 주십시오.]
데스 나이트들은 몸이 타오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성지한을 향해 일제히 명령을 내려 달라고 말했다.
“그 자세로 대기해라.”
성지한은 그들을 계속 무릎 꿇린 상태에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왜 인게임에서만 이렇게 기운이 터져 나왔을까 의아해할쯤.
[배틀넷 안에서, 그간 수많은 대상에게 죽음을 선사했습니다.]
[죽음의 기운이 한층 강화됩니다.]
[배틀넷 안에서, 그간 일만이 넘는 대상에게 죽음을 선사했습니다.]
[죽음의 기운이 당신을 사신으로 인정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때맞추어 떠올랐다.
‘일만이 넘는 대상이라…… 하긴, 배틀넷에선 만 이상 죽였겠군. 이게 현실과 다른 원인이었나.’
성지한은 죽음의 메커니즘을 대강 파악했다.
현실에서는 누군가를 죽인 적이 거의 없으니, 죽음의 기운도 영 호응을 하지 않았지만.
인게임 안의 성지한은, 많은 이에게 죽음을 선사했으니.
죽음의 기운도 기꺼이 그를 사신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배틀넷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니…… 이럼 반쪽짜리잖아?’
성지한은 한참 기세 좋게 피어오르는 죽음의 기운을 보면서, 서늘하게 웃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현실에서건, 게임에서건.
이 힘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성지한은 경쟁전에서 죽음의 기운을 완전히 분석하기로 결심하고는.
“모두, 일어나서…….”
언데드 군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언덕을 파헤쳐라.”
성지한이 가리킨 건, TOP 100 플레이어들이 처음 수비 태세를 갖추려던 언덕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일제히 일어나서, 언덕을 향해 걸어가는 언데드 군단.
그렇게 디펜스 맵은, 초장부터 장르가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