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6화>
윤세아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도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거대한 덩치의 남성이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기척 없이 병실까지 들어온 것을 보면, 그는 플레이어가 확실했다.
“……내가 왜 죽어야 해?”
윤세아의 반문에, 그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노란 부적이 들려 있었다.
“의연한 아이로군. 네 기프트를 원망해라.”
“……뭐? 내 기프트?”
“아가씨께서 도저히 골드는 못 가겠다고 하시는구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다.”
탁.
“강시화.”
그가 윤세아의 이마에 부적을 붙이자,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동자의 동공에는 힘이 풀린 채, 생명의 기능이 정지하는 그녀.
“일어나라. 나의 종아.”
그리고 윤세아의 신체는 그런 상태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천천히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끼이익.
그렇게 윤세아가 창을 스스로 열고 밖으로 떨어지자.
“성공했군.”
마스크의 남성은 자신의 흔적을 다시 한번 지우며, 혀를 찼다.
“아가씨도 참, 그렇게 밀어줘도 골드를 못 가서 살인이라니…….”
그 한마디를 끝으로 사라진 남성.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세아야. 어…… 세아 어디 갔지?”
밖에서 전화를 끝낸 성지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병실을 둘러보는 걸 마지막으로.
환상은 끝이 났다.
“어…….”
성지한 일행을 비롯해서, 크리스토프와 소피아까지.
환상이 끝나자, 서로가 놀란 기색으로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특히 가장 황당해하는 건.
“뭐야, 이거. 나 왜 죽어?”
거기서 죽어 버린 윤세아였다.
“애초에 병원엔 왜 있었던 거야. 삼촌…… 대출은 왜 받고?”
“……눈이 먼 나도, 이번 환상은 보았다. 강시술을 쓰는 남자…… 뭐 하는 놈이지? 조사해서 당장 제거해야겠어.”
아무리 환상이라지만 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충격이 큰 윤세진.
그가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윤세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살인범의 말에서 힌트를 떠올렸다.
골드가 안 된 아가씨.
거기에 기프트.
이거 설마 저번에 성지한이 제거한 중국의 진유화 이야기 아닌가?
“아! 삼촌, 근데 저 살인범이 이야기한 거……!”
[거기까지. 대기만성 건은 맞지만, 여기서 꺼낼 주젠 아니야.]
“……뭘까?”
성지한은 급히 전음을 날려, 윤세아가 대기만성에 대해 말하려는 걸 틀어막았다.
‘이 환상, 저번 생의 일을 재생한 것 같군…….’
성지한은 자신도 몰랐던, 윤세아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을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번 생에서 그녀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한 걸 알았다면.
진유화를 저번 생에서부터 죽여 놨을 텐데.
이번에 너무 편안한 죽음을 안겨 준 게 아닌가, 후회될 정도였다.
‘근데 누나가 이걸 어떻게 알지? 아니, 누나가…… 맞긴 맞나?’
저번 생을 다룬 환상을 보게 되자, 성지한은 의문만 증폭되었지만.
“……아직 거대 던전 포탈이 더 남았으니, 다 조사해 보죠. 크리스토프. 바로 다음 가능합니까?”
“예! 가능합니다. 아카식 페이지도 받았는데, 힘써야죠!”
“그러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세 번째 던전 포탈.
마음이 한층 더 급해진 성지한과 검왕이 순식간에 던전 내부를 평정하고.
“여깁니다!”
크리스토프가 던전핵을 바로 찾자, 다른 조사단 일원들은 이제 구경꾼 신세가 되어 뒤에서 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와…… 진짜 빠르네.”
“거대 던전 이렇게 쉬웠나?”
“세계 최고 전사들에 S급 탐색 능력자가 섞이니 그냥 불도저처럼 밀어 버리네.”
“이거 뭐 이동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데?”
“우리 너무 쓸모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성지한의 던전 평정을 감탄과 허탈함이 뒤섞인 채 바라보던 조사단.
“근데 왜 이렇게 급하게 가?”
“뭐 던전핵 관련해서 알아볼 게 있나 봐.”
“북한 탐사 빨리 끝내고 검왕도 복귀하고 싶은 거 아닐까?”
“아하, 이제 또 리그 시작 할 테니까. 실적 있으면 빨리 복귀시켜 주겠지.”
“한국 챔스 가겠다, 야.”
가족사에 대해서는 몰랐기에, 성지한 일행이 이렇게 속도를 내는 건 국가 대항전 때문이라고 조사단은 판단했다.
그렇게 조사단과는 떨어진 상태에서, 세 번째 던전핵을 발견한 성지한 일행은.
“자, 세아야. 시작하자.”
“응, 보이드 애로우.”
화아아악!
공허의 화살이 나타나자, 폭발하는 보랏빛 기운.
그리고 일행은 또 다른 환상을 맞이했다.
* * *
연보랏빛의 운무가 가득한, 던전 포탈 안.
저벅. 저벅.
검왕 윤세진은 두개의 목을 쌍검의 끝에 꽂은 채, 정처 없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목의 주인은, 부패가 진행되어서 확실히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시즈루와…… 아카리인가?’
성지한은 대략 둘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저번 생에서 매형이 실종되었을 때의 일인가…….’
저번 생에서도 윤세진은 최강의 전사였고, 계속해서 성장했었다.
하이 엘프가 주먹으로 패다가, 성장했다면서 목검을 들 정도로.
그래서 그때 세계수의 목검으로 후드려 맞고는, 패닉에 빠져서 게임에서 나왔지.
지금의 환상은, 그날 이후의 일인 것 같았다.
“살아…… 있었구나.”
지금처럼 아이기스의 반지를 목에 걸고 있던 검왕은.
보랏빛 연기 속의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연기 속에서 떠오르는 어두운 그림자에서는 형상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지아야…….”
윤세진은 그걸 보고, 성지아라고 확신했다.
[왜 왔지?]
“왜 왔다니!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널 여기서 빼내야지……!”
[그래? 그럼 이리로 와.]
사아아아아…….
검은 그림자가 커지고, 누가 봐도 불길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아무리 봐도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래.”
윤세진은 입술을 꾹 깨문 채,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툭. 툭.
쌍검에 걸린 두 목이 떨어지더니, 아카리의 것은 불타 사라지고.
시즈루의 것은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난…… 이 안에서, 다 보았다. 윤세진.]
“봤다고…….”
[그래. 네가 딸을 버리고 일본에 간 것. 그리고, 세아가 살해당한 것…… 동생이 괴물의 영원한 종이 되어 버린 것까지…….]
“…….”
[나는 이미 죽었으니……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거야 괜찮았다. 새 사랑을 만나서, 나라를 떠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딸은? 세아는 내 딸이기만 했나? 네 딸은…… 아니었나?]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윤세진에게 읊는 성지아.
그녀의 말에 윤세진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내 죄가 너무 커. 그래서 너를 해방시키고, 죽으려 했어…….”
[죽어? 누구 마음대로? 그건 사치다. 너는 더, 고통받아야 해.]
스으으으…….
시즈루의 목처럼.
윤세진의 몸도,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공허의 마녀가 명한다. 종말의 사도, 아수라가 되어라. 윤세진.]
퍼득. 퍼득.
윤세진의 몸이 울퉁불퉁해지면서, 그 안에서 괴물의 팔이 튀어나온다.
순식간에 인간이 아니라.
머리 셋, 팔 6개의 괴물로 변해 버린 윤세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중국으로 가서, 딸의 복수를 해라. 그게 네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그래. 그게 네 뜻이라면.”
[너와는 말을 섞기도 싫다. 미쳐라. 광화하여, 괴물이 되어라.]
“……크, 크아아아……!”
윤세진의 이성을 빼앗으면서까지, 증오를 불태우는 성지아.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린 윤세진을 마지막으로.
환상은 끝이 났다.
* * *
‘매형이…… 아수라였나.’
인류 최후의 시기.
20개의 국가에서 소환되었던, 각기 다른 종말의 사도.
그중 중국에서 소환된 건, 삼두육비의 거대한 괴물 아수라였다.
‘천마 왕린이 동귀어진하면서, 중국은 아수라를 겨우 잡아냈지.’
서큐버스 퀸이 미국의 LA를 사라지게 한 것처럼.
아수라도 중국의 대도시를 여럿 초토화시켰다.
종말의 사도가 강림한 20국 중 살아남은 10개의 나라 중에서는.
LA를 핵으로 터뜨린 미국보다, 중국이 인명 피해가 가장 컸다.
‘공허의 마녀라…… 그 존재가 종말의 사도를 만들 수 있는 건가. 근데 그게 누나라고…….’
생각보다 권한이 막강한 공허의 마녀.
그게 실종했던 누나라니.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생각했다.
‘거기에, 괴물의 영원한 종이 된 동생…… 이건 날 말하는 거 같은데.’
괴물이면 무신인가.
영원한 종이면, 맨날 동방삭이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던 종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번 생에서 종자가 될 뻔한 건가…… 나?’
하나 윤세진이 아수라가 될 때만 해도, 성지한은 방랑하는 무신의 전폭적인 지지만 받고 있었지.
종자의 ‘종’조차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근데 뭘 보고 성지아는 그렇게 판단한 거지?
‘누나…… 예지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성지한이 성지아에 대해 추리를 하고 있을 무렵.
“……이래도 싸지.”
풀썩.
윤세진은 자리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만약에, 상상하기도 싫지만. 세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이런 취급을 받아도 싼 거지…….”
“…….”
“오히려 복수할 힘을 줘서 감사했겠군. 지아한테…….”
그러면서 한참을 침울해하는 검왕에게.
짝!
“어허! 거참. 살아 있는 사람 앞에 두고 무슨 소립니까!”
윤세아는 등짝을 짝 때렸다.
“아. 세, 세아야…….”
“나 잘만 살아 있잖아. 아빠! 지금, 저런 배드 엔딩 상황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더 힘을 내서 엄마 빨리 꺼내 오자고요. 하여간! 무슨 공허의 마녀래. 삼촌은 괴물의 종이 되었다고 하질 않나.”
“지한, 누구 종이에요?”
“아닙니다.”
무신 이야기야 굳이 할 필욘 없지.
성지한은 피식 웃으면서,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 체력 남았죠?”
“네, 지한은 안 힘들어요?”
“괜찮습니다. 그럼, 마지막 던전 바로 깨러 가죠.”
다음 던전에선, 종이 된 경위라도 나오려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일행들을 4번째 던전으로 이끌었다.
* * *
한편.
무신의 별, 투성.
쿠르르르…….
“비상, 비상!”
땅이 뒤흔들리며, 전신에 쇠갑옷을 입은 사람이 튀어나왔다.
얼굴을 가린 투구 사이로, 길게 늘어진 금발에.
밝은 톤의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응? 뭐야…… 넌 왜 깼어?”
“세 번째가 아니라 네 번째가 먼저 일어나다니. 신기하군.”
지상에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던 롱기누스와 동방삭은.
갑작스럽게 깨어난 여성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잔…… 당신 세상의 끝이 다가와야 깨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게 언제 적 이름인데. 노스트라다무스가 최신식이야.”
“그 이름은 너무 길어.”
“그럼 그냥 피티아라고 불러. 잔은 듣기 싫거든. 네 이름, 강상처럼.”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언의 능력을 지닌 네 번째 사도.
그녀에게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그렇게 듣기 싫은 건가.
“……그래. 피티아, 왜 깼나.”
“끔찍한 예언을 봤어!”
“뭔데?”
“나 대신 공허의 마녀가 되기로 한 애가 풀려났다고!”
“그게 왜 끔찍하지?”
“그럼 내가 대신 그 자리에서 종말을 주관해야 해. 그럼 이 별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동안 못한다니까.”
“여전히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만.”
롱기누스는 혼자서 난리를 치는 피티아를 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신의 종자 중에서도, 특이한 포지션에 있는 예언 능력자.
그녀가 하는 말은, 대부분 뭘 말하는 건지 당시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것보다…… 아, 그래. 잘 됐다. 저번에 나한테 예언 한 번 해 준다고 했지? 얘 좀 봐줘.”
스으윽.
롱기누스는 핸드폰을 꺼내 성지한의 모습을 띄웠다.
“얘 미래, 어떨 거 같아? 역시 주인한테 형편없이 깨지냐?”
방랑하는 무신에게 처절하게 짓밟힐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성지한을 보여 준 그였지만.
“……얘는 예언이 안 통하는데? 뭐야, 이거?”
피티아는 심각한 목소리로, 성지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런 인간 케이스는…… 주인밖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