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5화>
“저주한다니…….”
북한 던전 탐사 끝에, 성지아의 음성을 듣게 된 건 성과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누나가 저런 말을 할 스타일은 아닌데…….’
온화한 성격의 성지아.
성지한에게는 나가서 활동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지만.
평소 말투는 친절하고 나긋나긋하여, 저렇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체 뭐 때문에 윤세진을 콕 집어서 말한 거지?
“……그래도 살아는 있는 건가. 다행이군.”
윤세진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입가에 미약한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큰 기대 없이 시작했던 북한 탐사였다.
저주를 퍼붓든, 쌍욕을 하든.
성지아의 유의미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니 그거로 되었다.
“다른 거대 던전을 탐사하다 보면, 뭐가 더 나올 수도 있겠어.”
“크리스토프, 오늘 한 군데 더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가능하죠! 근데 무슨 말이 나왔기에 그렇게 놀라신 겁니까?”
“매형을 저주한다고 해서요.”
“아하…… 저주라니. 일본 가셨던 걸 알기라도 한 걸까요?”
“흠…….”
만약 시즈루에게 넘어갔던 걸 알았다면, 이제 돌아온 것도 알아야 하지 않나?
성지아의 성격상, 윤세진이 매혹당했다가 두 눈 찔러서 돌아온 걸 알았다면.
왜 거기 넘어갔냐고 저주를 퍼붓기보다는, 그간 고생 많았다고 눈은 어떻게 하냐고 말할 텐데.
“일단은 더 탐사를 해 봐야 알 것 같군요.”
“그래. 계속 가 보지.”
“예. 그리고 세아도 불러야겠습니다.”
“세아도…….”
“던전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고, 세아는 공허의 힘을 감별할 수 있으니까요.”
성지한과 윤세진에 의해 생각보다 쉽게 쓸려 버린 거대 던전 포탈.
물론 다른 던전에 가면 여기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단서가 나왔으니까, 여기에 집중해야 해.’
성지한은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윤세아에게 전화했다.
“세아야, 던전으로 와라.”
[어? 진짜? 나 가도 돼?]
“어. 생각보다 안 위험하더라. 아카리 씨랑 같이 와. 네가 감별해 줄 것도 있고.”
[왜? 무슨 일 있었어?]
성지한이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자, 윤세아는 화들짝 놀랐다.
[헐…… 엄마가 아빠한테 그랬다고? 상상이 안 가는데.]
“매형은 그래도 살아는 있는 거 같다고 좋아한다.”
[음…… 그러게. 뭔가를 알고 있으니까 저주를 하는 거잖아? 으. 궁금하다. 빨리 가 봐야겠네! 아카리 언니! 우리 준비하죠!]
“그래. 조사단의 차 보낼 테니까, 빨리 와.”
그렇게 윤세아를 부른 성지한은.
“그럼 빨리 다음 던전으로 가죠.”
“그래.”
바로 두 번째 거대 던전 포탈 탐사를 시작했다.
차로 1시간은 가야 있는 두 번째 거대 던전 포탈.
성지한과 같은 커다란 밴에 탄 소피아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소피, 그만 좀 쳐다봐라. 성지한 님 부담스럽겠다.”
“왜 오빠, 좋아서 보는 건데? 지한, 부담스러워요?”
“뭐, 익숙합니다. 이젠.”
“……하아. 임자 있다고 성지한 님은!”
“크리스, 그냥 쳐다보기만 하는 거잖아. 왜 잔소리야?”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크리스토프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더니, 화제를 바꾸었다.
“성지한 플레이어. 북한 탐사와 성녀 성지아님이 연관있던 거였습니까?”
“예, 맞습니다.”
“아하…… 어쩐지. 왜 검왕께서 북한 탐사를 하나 궁금하긴 했습니다.”
“성녀 클래스는 저랑 성지아 님 둘뿐이었는데. 사라지셔서 정말 아쉬웠어요. 성녀 선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거든요.”
서포터 클래스의 특수 직업, 성녀.
인류의 성녀는 단 둘, 성지아와 소피아 뿐이었다.
기존의 서포터 클래스에 비해 버프 효과가 강화되며, 신성력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성녀.
“하지만 신성력을 심층적으로 사용한다는 게 아직도 뭔지 모르겠어요…… 이거, 성지아님에게 가장 먼저 여쭙고 싶었는데.”
성지한은 저번 생을 생각했다.
그때도 소피아는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해서.
-지한, 혹시 성지아님에게 이야기 들은 것 없어요? 신성력 사용에 대해서 말이에요.
몇 번이고 기억나는 거 없냐고 물어보곤 했지.
결국 종말의 순간까지, 소피아는 성녀 클래스를 온전히 활용하질 못했다.
“이번에 누나 찾으면 물어보시죠.”
“네, 그러니까 꼭 찾아요!”
“아, 그리고 크리스토프님. 이거, 약속했던 물건입니다.”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저번에 시즈루에게 압수했던 아카식 페이지를 크리스토프에게 넘겨주었다.
“어……! 버, 벌써 주십니까?”
“어차피 드릴 거. 빨리 주고 S급 탐색으로 던전 탐사도 빨리 끝내야죠.”
“하…… 역시 배포가 크십니다. 그, 그럼 사양하지 않고 감사히……!”
성지한 덕에 연초 대박도 터뜨리고.
이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아카식 페이지로 능력 강화까지 하다니.
크리스토프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아카식 페이지를 받아서, 서포팅 기프트를 강화했다.
“오오…… 탐색 S……! 능력이 이렇게 쉽게 오르다니!”
“S도 되셨으니, 아예 한국 오신 김에 북한 일 끝내 버립시다.”
“좋죠! 어비스까지 정복해 버리죠!”
아카식 페이지로 인류 최고의 탐색 능력자가 된 크리스토프는, 어비스까지 토벌하자면서 기세등등했다.
“그냥 탐색만 하면서 참…… 누가 보면 오빠가 다 던전 클리어하는 줄 알겠어.”
“어허,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임무인데!”
그러면서 티격태격하는 크리스토프 남매.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거렸다.
자기네 오누이랑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네.
‘난 누나가 다 받아 줬지…….’
성지한과는 10살 차이가 나는 성지아.
그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준비하던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까지 책임감 있는 소녀 가장 역할을 해 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20살이었던 어린 누나도 상당히 충격이 컸을 텐데.
동생 앞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씩씩하게 생활을 책임졌지.
‘……매형 말대로야. 살아만 있으면 된다.’
윤세진을 저주하든 말든.
누나가 살아 있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끼이이익.
일행이 탄 밴이 멈추고, 두 번째 거대 던전.
“오, 성지한 님. 바로 느껴집니다. 입구에서부터 딱, 던전핵의 느낌이 와요!”
S급으로 능력이 강화된 크리스토프는, 조금 전보다 훨씬 빠르게 던전핵을 찾았다.
거기에.
“어, 그리고…… 이거 땅바닥에도 뭐가 있는데요? A급일 땐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디죠?”
“여, 여깁니다.”
S급이 되면서, 거대 던전 포탈에서 또 다른 단서를 포착한 크리스토프.
그가 가리킨 땅바닥에는, 반투명한 던전핵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이거…… 아까 거대 던전에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거대 던전 한바퀴 돌고 확인차 가 봐야겠군요.”
“예. 괜히 클리어된 줄 알고 일반인이 진입했다가, 다시 던전이 생기면 곤란하니까요.”
그가 그렇게 던전핵을 모두 찾아내고 있을 때.
“저분. 크리스토프 해설 아냐?”
“어, 근데…… 설마 탐색 능력잔가? 던전핵을 찾고 있네?”
“아까 거대 던전도 저 분이 찾았어. 능력이 아무래도 B급 이상인 거 같아.”
“와…… 크리스토프 해설이 플레이어였다니. 이거 완전 특종인데?”
0번 채널의 해설자로 세계 각지에 얼굴이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프.
그를 알아본 배틀넷 조사단이 술렁거렸다.
“하하, 이거 참. 유명세는 어쩔 수 없군요! 자. 세계 최고의 탐색 능력자가 된 크리스토프입니다!”
“오, 진짜 맞네?”
“해설자님, 사인 좀 해 주세요!”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자자. 이리로 오세요!”
이번 기회에 아예 탐색 능력자로 커밍아웃하기로 작정한 건지.
조사단원들에게 대놓고 자신을 드러낸 크리스토프.
소피아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지한, 미안해요. 오빠가 관심병이 좀 있어서.”
“S급인데 신날 만 하죠. 일만 잘 해 주면 됩니다.”
“네. 제가 옆에서 감시 잘할게요!”
그러면서 소피아가 크리스토프 쪽으로 향하자.
윤세진은 그가 찾아낸 던전핵을 보면서,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탐색 S, 대단한 능력이군…… 일이 금방 끝나겠어. 던전핵, 바로 부술까?”
“세아도 1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오고 나서 부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공허의 힘으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도 있을 테니까요.”
“1시간이면…… 그게 낫겠군. 주변을 안전하게 해야겠어.”
“예, 정리합시다.”
만에 하나의 일이 없도록.
성지한과 윤세진이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를 완전히 쓸어버리고 잠시 대기하자.
“삼촌! 아빠! 나 왔어!”
아카리를 대동한 윤세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디어디…… 뭐 보면 돼?”
“잠깐만. 던전핵 부수고.”
콰직!
목걸이를 지닌 윤세진이 던전핵을 두 개 다 부수자.
[거대 던전의 던전핵이 모두 부서집니다.]
[던전 토벌의 기여도에 따라, 최고레벨 제한이 1 오릅니다.]
성지한에게서는 아까 보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호오…… 이게 던전 토벌로 얻는 메리트인가?’
목걸이를 지닌 윤세진이 던전핵을 부숴야 할 거 같아서 그냥 몬스터를 토벌하기만 했는데.
그것도 시스템에서는 나름 기여라고 인정을 한 건지, 레벨 제한을 1 올려 주고 있었다.
‘나중에 레벨 제한 꽉 차면, 던전 토벌 쭉 돌아야겠군.’
그렇게 나중 계획까지 짜 둔 성지한은.
부르르르……!
윤세진의 반지가 또다시 떨리자, 이쪽으로 관심을 집중했다.
완전히 보랏빛으로 물든 아이기스의 반지.
“세아야, 그때처럼 해 봐.”
“응!”
윤세아가 저번처럼 보이드 애로우를 소환하자.
반지와 화살이 공명하며, 보랏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으으으…….
눈앞의 시야가,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
* * *
‘이건…… 환각인가.’
보랏빛에 물들며, 완전히 변해 버린 세상.
성지한은 금방, 이것이 환각의 한 종류임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어딘가에 빙의된 듯.
성지한 자신은 지켜보기만 하고, 시야를 공유한 대상은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환각을 깨는 거야 쉽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마음만 먹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지만.
누나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성지한은 일단 빙의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나오면 되겠지.
‘근데 여기…… 병원인가?’
빙의된 대상을 통해, 지켜본 세상의 광경은.
대형 병원의 병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데…… 왠지 익숙한데.’
성지한은 병실의 모습을 보면서,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여기 한 번 와 본 거 같은데.
그때.
“으…….”
빙의된 대상의 입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옆에서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세아야, 괜찮아?!”
‘……나잖아?’ 지금과는 달리, 다크 서클이 깊게 패여 있고 초췌한 얼굴의 성지한.
그는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빙의 대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지한은 그 얼굴을 보자, 여기가 어딘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세아가 자살했던 병원이군.’
윤세아가 검왕가의 테러를 당하고 자살한 병원.
저번 생에서, 성지한을 가장 괴롭게 했던 기억이 담긴 장소였다.
“삼촌…….”
“어.”
“……거울 좀, 부탁해도 될까?”
“……그래.”
성지한이 보여 준 손거울에는, 붕대로 칭칭 감긴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회복…… 할 수 있을까?”
“걱정 마. 내가 서포터 열심히 찾고 있어. 예전 얼굴로, 다시 되돌려 줄게.”
“나 힐 해 줄 사람 없을 거 같은데…….”
“돈이면 다 된다. 세아야, 삼촌 대박 쳤으니 걱정 마.”
“뭐 맨날 대박이래…….”
피식.
윤세아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을 때.
부르르르.
성지한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아, 세아야. 잠깐 갔다 올게.”
“응, 일 봐…….”
전화를 받았는지 황급히 나가는 성지한.
윤세아는 병실에서 나가는 성지한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아, 설마…… 이거, 그때인가…….’
성지한은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대출 전화 받는다고 급히 나갔던 이 때가.
저번 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순간이었는데.
설마…… 이걸 윤세아의 시점에서 본다고?
왜, 공허에서 이게…….
그때.
“……하, 이런다고 내가 죽을 줄 알고?”
윤세아는 손거울을 다시 꺼내 보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
얼굴이 찢기는 테러를 당해도.
“어떻게든, 성공할 거야.”
그녀의 의지는 굳건했다.
‘……뭐야? 자살…… 여기선 안 하는 건가?’
그래.
이게 어떻게 보면 정상이었다.
윤세아의 의지력은 절대 나약하지 않았으니까.
성지한이 그렇게 환각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러면 안 되는데.”
스으으으…….
윤세아의 뒤편에서.
“넌, 여기서 죽어야 해.”
어딘가 어눌한 한국어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