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193화 (193/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3화>

엘프의 제안을 들었을 때.

성지한은 감독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판단했다.

저번 생의 기억이 있는 그마저도, 처음 1000조 GP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살짝 끌렸을 정도였으니까.

GP 시세가 급변하여 혼란을 겪고 있는 현 인류 사회에서.

저 제안을 거절하는 건 너무나도 비합리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GP보다 적의 전력을 깎는 게 중요하지.’

GP의 교환 비율은 인류가 리그에서 순항하면, 좋은 교환비를 유지할 수 있을 터.

그것보다 리그 내 가장 강력한 적 중 하나인, 세계수 연맹의 전력을 깎는 게 급선무였다.

특히 스페이스 리그 내에서, 적 종족과의 경기는.

지금처럼 정식 경기 말고도 여러 부딪침이 있었으니까.

적 전력, 그것도 대표팀 같은 핵심 전력을 없앨 수 있으면 그걸 택하는 게 베스트였다.

그래서 성지한은 아리엘을 몰래 데이비스 감독의 내부에 침투시켰고.

‘아리엘이 잘해 줬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황금나무는 저번에도 그렇고, 어떻게든 설치하려고 드네…….’

저번 생에서도, 지구에 설치된 적이 있었던 황금나무.

그때는 엘프 측에서 5퍼센트 사형을 감면해 주는 대신, 지구에 심겠다고 조건을 내건 나무였다.

‘황금나무가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최후까지 결국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대가 처벌을 감면해 줄 정도면, 인류에게 호의적인 물건은 아닐 터.

그걸 이번에는 GP 비율 보전해 준다면서 설치해 주겠다고 하고 있으니까.

엘프 쪽도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번쩍!

감독 테이블에서 대신관이 분개하며 난동을 부리던 화면이 전환되고.

황량한 황무지 위에, 400의 엘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저게 사형장인가?”

“아, 진짜 페널티 집행되나 보네.”

“감독 뭐 한 거야? 솔직히 속은 시원하다만…….”

경기 들어가기 전만 해도, 저렇게 아름다운 엘프랑 어찌 싸우냐고 농담식으로 말했던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며, 그런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저들은 실제로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원수였으니까.

미추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지한 선수 아니었으면 우리가 저기에 서 있었을지도…….”

“그러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성,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러니까요. 뉴욕 한번 놀러 오시죠. 제가 한 턱 쏘겠습니다.”

성지한에게 다가가 엄지를 척 올리는 외국 플레이어들.

4경기까지 왜 이 자리에 성지한이 있냐고 차가운 시선을 보낼 때와 비교하면.

보이는 반응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죠.”

성지한은 이걸 대충 받아 주면서 사형 집행을 주시했다.

외모가 각기 다른 400의 엘프.

그런데.

[사형을 집행합니다.]

이 메시지가 뜨자.

스으으으…….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던 400의 엘프가, 모두 하나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

“저 모습…… 대신관이 변한 거랑 똑같은데?”

“그 하이 엘프도 저 모습 아니었어?”

“성! 성 게임에서 나타난 엘프도, 저 얼굴이었죠.”

“예, 맞습니다.”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금발의 엘프.

이들은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400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엘프들의 모습이 갑자기 다 바뀌었습니다. 쌍둥이라고 해도 이렇게 똑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마치 같은 공장에서 찍어 낸 것 같아요!

=아. 저 엘프들 가운데에는, 4경기에서 맹활약한 초록머리 엘프도 있군요.

=검왕을 맨손으로 이긴 엘프 말이죠?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만…… 이렇게 사라지니 인류로서는 호재군요!

20퍼센트의 확률을 피하지 못한 건지, 사형장에 서게 된 하이 엘프.

그 하이 엘프는 무표정한 다른 이들과는 달리,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서 죽을 줄은 몰랐네.”

쿠르르르르……!

황무지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불꽃이 솟아오르자.

엘프가 하나둘 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 속에 잠기면서도, 표정 변화 하나 없는 400의 엘프.

-와, 표정 변화 전혀 없네…… 뭔 로봇 같다, 야.

-실제로 죽는 거잖아? 타오르는데 안 아픈가?

-그러니까. 엇. 쟤네 몸뚱어리 재생한다?

-성지한 방송에서도 저 얼굴 엘프 엄청난 재생력을 보여 줬는데 그게 지금 나오네 ㄷㄷㄷ 사형 안 되는 거 아냐?

특유의 재생력으로 불꽃에 저항하는 엘프들이었지만.

화르르르……!

몸을 잠식한 불꽃의 색이 검붉게 변하자, 그때부터는 재생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엘프가 사라지고 마지막 생존자.

초록머리의 하이 엘프는 죽기 전, 허공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인류여. 짧은 승리를 즐겨라. 자매들이 나의 복수를 해 줄 것이니…….”

펑!

그러면서 주먹을 뻗어, 스스로의 머리를 부수는 하이 엘프.

머리가 사라진 그녀의 몸통을 검붉은 화염이 감싸며.

[특별 페널티 집행이 끝났습니다.]

엘프 처형식은 하이 엘프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   *   *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두 눈에 핏발이 선 채 사형식을 지켜보던 대신관은, 이를 갈면서 데이비스 감독을 노려보았다.

한편 사형식이 끝나자, 몸이 다시 원래대로 움직이게 된 데이비스 감독은.

‘아니, 젠장. 갑자기 왜 손이 멋대로 움직인 거야…….’

적 감독이 성질을 내는 것보다, 돌아가서의 후폭풍이 더 걱정되었다.

2000조 GP.

그 엄청난 보상을 포기하고, 사형을 집행해 버렸으니까.

그래서일까.

그는 대신관이 자신을 노려보자, 저것들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거 같아서 역으로 성을 냈다.

“애초에 그런 페널티를 정한 게 누군데…… 불만 있으면 이기지 그랬나? 패자는 그저 얌전히 입 다물고 있어라. 안 그래도 손이 멋대로 움직여서 짜증 나는데 어디서 성질이야?”

“허……!”

쿵!

대신관이 살벌한 얼굴로 감독 테이블을 내리치자 그대로 손자국이 찍히며 책상이 박살 났지만.

인류 측 테이블은 공간이 분리된 건지, 충격이 들어가질 않았다.

“뭐, 뭐. 책상 부수면 어쩔 건데? 내가 겁먹기라도 할 것 같나? 죽은 20퍼센트 책임이나 질 것이지. 감독이 힘자랑만 하고 말이야. 쯧쯧.”

안전이 보장되자, 안심한 데이비스 감독이 한참 입을 털려고 할 때.

[개막전 시리즈 MVP가 선정됩니다.]

[인류 측 플레이어, ‘성지한’이 선정되었습니다.]

게임의 종료 시점.

시스템에서, 시리즈 MVP로 성지한을 선정하는 장면이 나왔다.

“오우, 역시!”

자신을 살려 준 구세주 성지한이 나오자, 바로 엄지를 척 올리는 데이비스 감독.

한데, 건너편에 있는 대신관은 심각한 얼굴로 시리즈 MVP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모습이…….”

시리즈 MVP로 선정된 인물이 누군지는 명확했다.

5경기를 박살 내 버린, 그 플레이어겠지.

대신관은 이번 MVP 창을 통해 세계수 연합의 메뉴얼을 망쳐 버린 플레이어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에게 영원한 고통을 안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하이드아웃 상태인 성지한은, 시리즈 MVP창에서도 모습이 온전히 보이지 않았다.

‘경기할 때도 모습이 흐릿하게 보여서 설마 했는데……!’

5경기 때, 게임을 박살 낸 성지한.

인류 측에서 시청할 때와는 달리.

엘프 시점에서는, 그의 모습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얼굴을 비롯해서 몸 전체가 흐릿하게 보여, 상대가 누군지 정확하게 특정하기가 힘들었다.

근데 시리즈 MVP창에서도 이렇게 나오다니…….

“설마…… 하이드아웃? 우수회원이란 말인가?”

배틀넷 플레이어 중, 극소수만이 지니고 있다는 우수 회원 자격증.

그걸 인류의 플레이어가 지니고 있다니.

‘……누군지 꼭 알아내야겠어.’

저 플레이어.

가만히 놔뒀다가는, 이 스페이스 리그를 망칠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변수는…… 빠르게 제거해야지.’

엘프 대신관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흐릿한 성지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개막전 경기가 끝난 후.

“자, 여러분!”

“오늘 승리의 주역. 시리즈 MVP! 짜릿한 뒤집기를 보여 준 성지한 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채널 0번의 중계를 담당하는 미국 해설진은, 선수 대기실로 소환되어 성지한을 만났다.

“먼저 시청자분들께 인사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입니다.”

“오늘 엄청난 활약을 보이셨습니다! 대표팀 선수 20퍼센트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성지한 플레이어께서 혼자 상황을 뒤집으셨어요!”

“예. 게임을 이긴 건 모두 제 덕이죠.”

이럴 때 흔히 하는, 팀원의 도움이 컸다는 식의 겸손한 대답 대신.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성지한.

이를 대기실 근처에서 지켜보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휘파람을 불며 열렬히 환호했다.

“맞다 맞어!”

“성지한 덕에 살았지!”

“진짜 사형장 갈 뻔했다구!”

“지금 와서 말하지만, 아까 저 페널티 보고 오줌 지렸어요!”

전 인류가 합심해서 파티 분위기가 된 대기실.

카메라는 세계 탑급 플레이어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모두 담아냈다.

-오줌 뭐냐 ㅋㅋㅋㅋ

-사형장 끌려갈 뻔했는데 그럴 법도 하지 ㅋㅋㅋ

-ㄹㅇ 400명 살려낸 거임, 성지한이.

-자신감 넘치게 대답해서 좋다, 야

“이야, 역시……! 자신감이 넘칩니다! 역시 성지한 선수 답군요!”

“사실 오늘 게임에서, 명단에 들어가 있는 걸 보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게임 참여 조건이 다이아 리거 이상이어서, 왜 명단의 한자리를 차지하냐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순간에, 딱 출전할 자리가 나오게 되었어요. 세간에서는 성지한 선수가 예언자 아니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해설은 그러면서 성지한에게 상기된 얼굴로 윙크를 했다.

성지한의 호언장담에, 1만 달러를 성지한 MVP에 걸었던 그는.

엄청난 대박이 터져 버려서, 잔뜩 업이 되어 있었다.

“아, 제가 꿈을 좀 꿉니다. 몇 번 잘 들어맞아서 그런가. 이거 진짜 예지몽 같더군요.”

“예지몽…… 이요?”

“예.”

어떻게 알고 그랬냐는 물음이 나오면, 이제부터 예지몽으로 답을 통일하기로 마음먹은 성지한.

그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는 5경기에서 참패해서, 여러 플레이어들이 사망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욕먹을 거 각오하고 매형께 부탁해서 나왔죠.”

“아아……! 예지몽이라니…….”

“성지한 선수가 보여 준 놀라운 행보도 그 꿈과 연관이 있을까요?”

“예,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냔 반응이 나오겠지만.

지금까지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준 성지한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이를 믿는 기색이었다.

-성지한이라면 진짜 예지몽 꿀 거 같음. 죄다 정답이었잖아 ㅋㅋ-어쩐지 말도 안 되게 크더라.

-와, 그럼 로또 번호 다 알겠네 ㄷㄷ

-야, 성지한 재산이 얼만데 로또가 문제냐 ㅋㅋㅋㅋ

-배틀넷 베팅도 죄다 성공하는 거 아님, 저럼?

-나 이제부터 무조건 성지한에게 건다…… 진심이다…….

“이거이거, 성지한 선수의 반대편에 서면 안 되겠군요!”

“예. 그러니까 이제부터 제 말 다 따르시죠. 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하하! 당연하죠!”

그렇게 성지한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끝난 인터뷰.

하나 그다음 인터뷰 대상인 데이비스 감독 차례 때에는 분위기가 심각했다.

“감독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2000조 GP로 합의할 때만 해도 감독님의 협상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요. 갑자기 엘프 처형식이 집행되다니요.”

“아니, 그게…… 내 손이…… 갑자기 조종받은 듯 멋대로 움직여 버렸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엘프에게 당한 게 있다 하더라도, 엄청난 이권을 포기하고 말았는데요…….”

-무슨 변명이 ㅅㅂ 판사님 고양이가 타이핑했습니다 급이냐 ㅋㅋㅋ-2000조 GP 개 아까움…….

-알고 보면 감독이 GP 졸라 사둔 거 아냐? 2천조 GP 들어오면 가치 떡락할까 봐 ㅋㅋㅋ-ㄹㅇ 수상한데? 계좌 털어 봐야 하는 거 아님?

-진짜 그거밖에 없다니까?

-감독님, 사랑합니다 ^-^ GP에 전 재산 몰빵했었는데 떡락할 뻔했네요, 휴~엘프의 제안을 대체 왜 받아들이지 않는 거냐로 난리가 난 데이비스 감독 쪽.

성지한은 아리엘을 몰래 회수하며, 대기실을 나섰다.

‘욕 대신 먹어 주니 좋네.’

그렇게 개막전이 끝나고.

[경기가 끝나 스페이스 리그에서의 순위가 오릅니다.]

[공동 1등입니다. 던전 포탈이 대거 사라집니다.]

리그 순위가 오름에 따라서, 사회가 또다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 때.

“처남……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북한 던전 탐사를 다시 계획하던 검왕은, 성지한에게 도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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