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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192화 (192/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2화>

‘아쉽군.’

성지한은 새카맣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맵이 붕괴했다고 하면서 멈춘 게임.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아직도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세계수의 묘목이 보였다.

‘부서질 거 같으니까, 스스로 맵을 포기한 건가…….’

맵 전체, 세계를 잠식한 암영신검.

그림자검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온 어둠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기세가 더 오르면 올랐지.

이 힘을 받아 내던 세계수의 묘목은, 더 이상 버티다가는 자신도 사라질 것을 깨닫고는.

맵을 스스로 붕괴시켰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섬과 같은 낙원 엘가시아.

낙원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세계수의 묘목에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암영신검이라고…….]

“그래.”

[주인의 힘…… 이렇게까지 강력했나? 그림자기운은, 주인의 손에서 무한히 흘러나왔다. 쉐도우 엘프인 나마저도, 자아를 잃을까 걱정될 정도로.]

“아니,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했지. 아리엘, 몸으로 체험하고도 모르겠나?”

[뭐가?]

“생명의 기운과의 상호 작용 말이야.”

세계수가 지닌 생명의 기운.

그것은 무혼을 지닌 성지한으로서도 모두 파악이 안 되는 복잡다단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림자기운과의 궁합.

서로를 밀어내도 이상하지 않을 두 힘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내면서 증폭되었다.

이번에 암영신검이 세계를 잠식한 것도.

세계수의 묘목이 내뿜는 생명의 기운을 연료로, 그림자힘이 무한정 뿜어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몸으로 느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계수는 우리 쉐도우 엘프의 적. 지닌 힘도 완전히 상극인데…….]

“나도 이유를 설명하라면 아직 모르겠지만…… 느낌이 왔어. 두 힘이 융합되면, 끊임없이 증폭될 거라는.”

[……참 감이 좋군그래. 어떻게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융합할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다.]

“글쎄다. 사류 무사의 영감인가?”

천지의 도를 읊기 바쁜, 사류 무사의 영감.

처음에 이클립스가 터져 나갈 정도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음에도, 별 주저함이 없었던 건 이 효과도 컸다.

터무니없는 짓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주인. 이 사실., 그림자 여왕께 보고해도 되겠나?]

성지한은 아리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적은 우군이지.’

인류를 짓밟았던 세계수 연합.

그들을 견제할 수 있다면, 저 먼 곳의 그림자 여왕에게 암영신검에 대한 단서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래도 공짜는 안 되지. 여왕한테 적절한 보상 청구해라.”

[알겠다. 이제 튜토리얼도 끝났으니, 여왕께서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래.”

성지한이 그렇게 아리엘과의 대화를 끝냈을 때.

[5경기가 종료됩니다.]

[‘인류’ 측이 승리합니다.]

[5경기 MVP로, 성지한이 선정됩니다.]

[특수 업적, ‘스페이스 리그 경기 MVP’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1000000 얻습니다.]

[개막전 시리즈 MVP로, 성지한이 선정됩니다.]

[특수 업적, ‘스페이스 리그 시리즈 MVP’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2000000 얻습니다.]

[특수 업적, ‘맵 붕괴’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3000000 얻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단 한 경기를 치르고 얻어 낸 600만의 업적 포인트.

시리즈 MVP는 벌써 선정된 건지, 성지한에게 200만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당연히 나밖에 없지.’

엘프가 가장 공들였던 5게임.

그걸 완전히 뒤집었는데, MVP를 누굴 주겠는가.

성지한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처형의 시간이군.’

그는 저번 생에서의 개막전을 떠올렸다.

성지한이 없던 인류.

5게임에 차출되었던 플레티넘 서포터는 이탈리아의 유망한 여성 서포터였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낙원 엘가시아에 왔다가, 전사로 키워진 엘프 서포터에게 쓸려 버렸고.

-99번 남았다.

한 번 죽은 것으로 끝이 나질 않고.

계속해서 부활하고, 죽고를 반복했다.

나중에 상대 엘프는 인간 서포터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시시하니까.

-어떻게 배틀넷에 참전했는데, 이렇게 약하지? 해부해 봐야겠어.

전 인류가 보는 앞에서.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배틀넷에 잔인한 장면이 워낙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을 적나라하게 가지고 노는 건,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수많은 사람이 이날 방송을 보고 트라우마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날 100번 죽은 여성 서포터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이후 배틀넷 업계에서 은퇴했고.

나중에는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돌았다.

‘그뿐인가. 여기서 랭커들이 엄청 죽었지.’

미국 1위 올리버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수가 게임이 끝난 후, 뽑기에 뽑혀서 처형당했다.

안 그래도 힘든 스페이스 리그 게임에, 전력이 축소된 인류는.

강등권에서 탈출하지를 못했다.

그래도 리그에서 강등당하지 않았던 건, 신참자여서 그랬을 뿐.

매번 시즌이 끝날 때마다, 엄청난 페널티를 받으면서 몰릴 대로 몰리다가.

결국 최후의 10국이 남을 때가 되자.

우르크와의 강등전에서 패배하고 멸망했지.

‘이번에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잔인해져야겠지.

성지한은 그리 다짐하면서, 로그아웃했다.

*   *   *

“…….”

엘프 대신관은 맵이 붕괴하는 걸 멍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낙원 엘가시아.

이 맵은 세계수 연맹의 ‘상위 존재’가 만들어 낸 엘프 전용 맵이었다.

너무나도 편향된 맵 설정 때문에, 5게임까지 오지 않으면.

그리고 셀렉트 카드 4장이 없으면, 랜덤으로도 절대 걸리지 않는 맵이었는데…….

‘저기서는, 그 어떤 최상급 종족도 견디질 못하고 모두 무너졌는데…….’

엘가시아의 덫에서 빠져나온 종족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플레티넘 서포터라는 클래스 제한에, 세계수의 묘목이 부여하는 정령력 강화는 사기적이었다.

그런데 최하급 종족 따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다니……!

‘거기에 저자. 분명 어머니의 힘을 다뤘어…….’

세계수의 기운.

그건 선택받은 자만이 다룰 수 있는 힘이었다.

근데 그걸 이런 최하급 종족이 사용하다니……!

철저하게 훈련된 엘가시아의 서포터가, 최하급 종족을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면.

힘의 운용이 완벽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아까의 인류, 대체 뭐 하는 존재지?

“페널티, 기대되는군.”

그때, 감독 테이블 건너편.

데이비스 감독은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하마터면 플레이어 20퍼센트를 사지에 몰아넣은 최악의 감독이 될 뻔했는데.

성지한이 완전히 상황을 반전시켜 주니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신난 감독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본 대신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협상하죠.”

“무슨 협상? 당신네가 정한 페널티, 그대로 책임져야지. 얌전히 사형당하시오.”

데이비스 감독은 엘프의 말 따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상대가 얼마나 괴물인지, 이번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이상.

적의 전력을 20퍼센트나 깎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1000조 GP를 지불하겠어요.”

“뭐…… 1000조?!”

엘프 대신관이 제시한 조건에, 말문이 막혔다.

-……1000조 GP?

-예전에 1GP당 1달러였잖아? 그럼 천조 달러임?

-지금은 2달러임 ㅋㅋㅋㅋ 아까 질 거 같았을 때는 2.5까지 갔지.

-와 저거 한 번에 공급되면 예전보다 시세 더 싸지는 거 아냐? ㅋㅋㅋㅋㅋ-ㅇㅇ 그래서인지 지금 저 말 나오자마자 떡락중이다 ㄷㄷㄷ

“거기에 GP의 시세도, 저희 측에서 보전해 주죠.”

-헐, 환율도 맞춰 준다는 건가?

-미쳤는뎨? 그럼 튜토리얼 때처럼 되는 거야? ㄷㄷ

-사형당하기 진짜 싫나 보네.

-개 같은 놈들. 근데 왜 페널티를 걸고 ㅈㄹ임 ㅡㅡ

-지들이 당할 줄 몰랐겠지 ㅋㅋㅋㅋ배틀넷 본 게임에 와서 쓰임새가 더욱 많아진 GP.

저들의 배상을 받고 이 널뛰기하는 시세를 안정시킬 수 있다면,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으으음…….”

“GP는 스페이스 리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기초적인 자원. 이걸 서포트받는 건, 이제 이번 시즌에서 만날 일도 적은 저희 플레이어를 처형시키는 일보다 더욱 값질 겁니다.”

=데이비스 감독…… 고민합니다!

=심적으로는 저 엘프에게 페널티를 그대로 돌려주고 싶지만, 보상이 참 좋아요!

=스페이스 리그 경기는 한 시즌에, 한 종족과 두 번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형시켜봤자, 이번 시즌에서 저들과는 한 번만 더 만나게 될 뿐이죠.

=실리를 위해서는, GP를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아, 감독. 연맹과의 협의를 위해서 타임을 요청합니다.

=잘한 겁니다.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죠!

5경기까지 설계당해서, 이를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인류가 거절하기에는 저들이 제시하는 보상이 워낙 컸다.

“이거…….”

“아무래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처형시켜봤자, 이제 얼마나 만날 상대라고요.”

“GP 환율이 지금 미친 듯이 널뛰기하고 있는데,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배틀넷 연맹의 관계자도 다들 엘프의 제안에 혹해서, 넘어가려고 들 때.

경기를 끝내고 로그아웃한 성지한이 데이비스 감독을 향해 걸어왔다.

“감독님. 제 말,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네. 처형을 꼭 집행하라고 했지.”

“예, 그런데 주저하시는군요.”

“나도 그러려고 했네. 하지만 저들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좋아.”

성지한은 피식 웃었다.

“저는 분명히 경기 전에 ‘그 어떤 조건이 와도’라고 했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나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네. 난 연맹의 메신저에 불과하니까.”

“그렇습니까.”

이러니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반응이 다르다고 하는 건가.

성지한은 스윽, 주변 배틀넷 연맹 관계자들을 둘러보았다.

“저, 저희도 마음 같아서는 처형시키고 싶지만…….”

“GP 보상이 워낙 큽니다. 연맹에서는 GP 시세를 안정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지한 플레이어의 공은, 연맹에서 따로 크게 보상하겠습니다.”

그의 시선에 찔린 건지.

허겁지겁 말을 꺼내는 연맹 관계자들.

“하.”

그는 입가에 차게 미소를 흘리고는, 등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미련 없이 떠나는 성지한.

데이비스 감독은 그걸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죽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네. 이건 인류를 위한 선택이야……!’

감독 혼자서 배틀넷 연맹의 결정을 깰 수는 없었다.

데이비스 감독은 다시 감독 테이블로 복귀해서, 대신관에게 말했다.

“2000조 GP면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그렇게 하죠.”

2배로 배상금을 증액해 불렀는데도, 더 줄다리기를 할 생각도 없이 흔쾌히 OK를 날리는 대신관.

그만큼 이번에 20퍼센트 처형을 집행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럼, 바로 페널티 변경 부탁드릴게요.”

엘프 대신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감독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페널티를 변경하시겠습니까?]

[‘인류’ 측은 기존에 정해진 페널티를 취소합니다.]

[‘세계수 엘프 - 71’ 측은 2000조 GP를 인류 측에 배상하며, 지구에 황금나무를 심습니다.]

“황금나무…….”

“조금 전 말했던, GP 시세 보전을 위해 필요한 나무예요.”

“어떤 기준으로 GP 시세가 맞춰지는 거요?”

“그건 설명드리기 조금 복잡한데…… 아무래도 적으로 만난 상대라 믿기 힙드시죠? 저희보다 객관적인 시스템에 문의해 보세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감독에게 이야기하는 엘프 대신관.

데이비스 감독은 마침 황금나무 옆에 ?가 떠올라 있자, 그걸 눌러보았다.

[황금나무는 GP를 공급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자 나오는 한 줄 설명.

시세 보전을 완전히 시켜 준다고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절한 역할은 수행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군…….”

“그럼, 협상을 체결하실까요?”

대신관의 말에 약간의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연맹과 합의된 대로, 페널티 변경에 예를 누르려던 데이비스 감독은.

‘어?’

갑자기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자, 눈을 깜박였다.

‘모, 몸이 왜 이래?’

마치 마비라도 당한 듯, 옴짝달싹 못하는 몸뚱어리.

아니, 이 중요한 순간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때.

스르르르…….

예를 향하던 그의 손은 아니오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감독…… 님?”

그걸 보고 설마 하며 표정이 굳는 엘프 대신관.

하나 데이비스 감독의 손가락은 정확히 아니오를 누르고.

[페널티 변경을 취소합니다.]

[페널티를 집행하시겠습니까?]

“당신……! 대체 뭐 하는 거야!”

대신관이 평정을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감독의 손가락이, 이윽고 예를 눌렀다.

[페널티를 집행합니다.]

[1/10형이 집행됩니다.]

[5경기의 맵 설정에 따라, 페널티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세계수 엘프 -71의 선수 중, 20퍼센트의 플레이어 가 사형당합니다.]

“이, 이 최하급 종이……!! 감히 나를 우롱해……!?”

대신관의 두 눈에 핏발이 서며, 데이비스 감독을 노려보고.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니, 감독. 미쳤나요…….

=배상을 2배나 증액해서 받아 놓고는, 사형을 집행합니다?!

해설진들도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현 상황을 중계할 때.

이를 대기실에서 바라보던 성지한은 입꼬리를 올렸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의 왼손에는, 그림자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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