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1화>
조금 전.
‘때가 되었군.’
대기실 한편.
상황을 지켜보던 성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형, 다녀오겠습니다.”
“……처남, 뭔가 알고 있었나?”
하이 엘프에게 발차기를 맞고 전사한 윤세진은.
귀로 5게임의 참가 요건을 듣고는, 놀란 표정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스페이스 리그에 참전해야 한다면서, 나에게 지지를 요청하더니…….’
뭔가 이상하다 했다.
다이아만 출전할 수 있는 게임에, 굳이 명단 1개 비집고 들어가려는 게. 그가 알던 성지한은, 그렇게 명성에 구애받는 성격이 아니었다.
굳이 따가운 눈총을 사면서까지, 왜 참전하나 싶었는데…….
“제 꿈이 좀 잘 들어맞더라고요. 예지몽인가 봅니다.”
성지한은 가볍게 대답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모이고.
“아니, 성지한…… 출전할 수 있나?”
“당연하지! 그는 모든 클래스가 가능하잖아. 서포터 조건에도 부합한다고!”
“어떻게 이 상황에 딱 맞게……!”
“아, 제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지한이 왜 이 자리에 있냐면서 안 좋은 시선을 보내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그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지한 선수. 5경기, 부탁하네. 제발…… 저들의 설계를 부수고, 한 방 먹여 주게.”
대기실로 돌아온 데이비스 감독은 성지한이 걸어오는 걸 보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가 알고 참전했는지, 아니면 공명심으로 참전하려고 들었다가 우연히 상황이 들어맞았는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인류 최강의 플레이어 20퍼센트가 사형당할 상황에.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는, 성지한 뿐이었으니까.
데이비스 감독이 거의 절까지 할 기세로 고개를 깊게 숙이려 하자, 성지한은 이를 제지했다.
“물론입니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제가 이기면, 페널티. 적에게 그대로 집행해 주십시오.”
“페널티라면, 사형 말인가.”
“예, 적이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집행해야 합니다.”
“……알겠네.”
데이비스 감독은 이를 부드득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정한 페널티를 그대로 되돌려주는 건.
그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그럼. 5게임, 끝내고 오죠.”
번쩍!
대기실에서 성지한이 소환되어 사라지자.
이를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성지한이 소환됐어……!”
“후우, 저 참전 조건에 부합한다는 증거네.”
“살았다…….”
적으로 만날 때는 누구보다도 무섭지만.
아군일 때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그가 나섰다.
이제 5경기는, 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5경기 시작합니다.]
[‘낙원 엘가시아’ 맵의 출전 조건에 걸맞은 플레이어가 출전합니다.]
[게임 종류는 서바이벌입니다.]
대표팀 플레이어 20퍼센트의 생존권이 걸린, 마지막 경기.
-와…… 엘프한테 지금까지 농락당했던 건가…….
-1, 2경기도 쉽게 이길 수 있는데 저 새끼들 우리 사형시키려고 일부러 5경기까지 온 거지?
-근데 카드 4장 모으면 4경기에 터뜨리지, 왜 5경기까지 온 거야?
-5경기가 변경 가능한 옵션이 더 많대 ㅡㅡ 특히 페널티…….
-와 미쳤네…… 이게 스페이스 리그?
-아, 누가 사형당할지 두렵다…….
-우리나라 플레이어라도 살았으면…… ㅠㅠ
경기 출전 조건을 자세히 모르던 시청자들은, 이미 패배를 확정 짓고 모두 절망에 빠졌다.
자기 나라 플레이어만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기도하면서, 엘프의 설계에 치를 떨던 사람들은.
=5경기 시작합니다……!
=인류 대표로, 성, 성지한 플레이어가 출전합니다!!
=맞습니다. 성지한 선수, 올 클래스였죠! 플레티넘, 서포터의 조건에 딱 부합하는 선수입니다!
=예비 명단에 있었다면 랜덤으로 뽑혔을 텐데, 대표팀 명단에 있어서 바로 출전할 수 있게 됩니다!
=아…… 상황이 이렇게 되나요!
출전 선수 명단이 뜨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와…… 성지한 출전!!
-캬!! 야 아까 그 새끼 나오라 그래 ㅋㅋㅋㅋㅋ 왜 자격도 안 되는데 한자리 차지하냐고 입에 거품 물던 새끼들 ㅋㅋㅋㅋ-와 ㄹㅇ 예지능력 있는 거 아냐? 상황 개 절묘하네 ㄷㄷㄷ-휴, 한숨 돌렸다…….
-엘프 죽여!!
성지한의 강력함이야,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으니까.
특히 그에게 된통 당했던 일본과 중국의 시청자들도, 지금은 한마음 한 뜻으로 그를 응원했다.
-이게…… 성상의 맛…….
-wwww 우리만 당할 수 없지. 엘프들도 성지한한테 당해 보라는 wwww -성지한…… 무당제자다운 모습이군…… 오늘만은 응원하겠다.
-무당제자 시발 ㅋㅋㅋㅋ 아 좀 니네랑 엮지 말라고 ㅋㅋㅋ-저놈들 조금 전만 해도 대표팀에 성지한 왜 들어가 있냐고 채팅창 도배하더니 ㅋㅋㅋㅋ그렇게 전 인류의 응원을 한 몸에 사는 상황에서.
낙원 엘가시아에 들어온 성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평화로운 분위기의 푸르른 녹지로 이루어져 있는 엘가시아 맵.
맵의 중심, 하늘 위에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저게 세계수의 묘목인가.’
정령의 힘을 강하게 증폭시킨다는 세계수의 묘목.
하나 성지한은 이를 보면서, 정령력 이상의 힘이 내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군.’
성지한이 검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쏠쏠하게 써먹었던 생명의 기운.
그것이 저, 묘목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크기의 나무에 가득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 힘도 좀 흡수할까.’
거의 다 쓴 생명의 기운을 보충해 볼까 성지한이 생각하고 있을 즈음.
번쩍!
상대인 엘프 측, 플레티넘 서포터가 소환되었다.
말만 서포터지.
등에는 활을 매고, 양손에는 단검을 들고 있는 엘프 플레이어는.
“신참자여.”
성지한을 보면서, 비웃음을 머금었다.
“너에게는 100번의 기회가 주어질 터니. 그동안, 발악해 보도록 해라.”
휙!
그러면서 사라지는 엘프.
서포터라기에는, 너무나도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낙원 엘가시아의 맵에 적합한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
클래스는 서포터지만, 실제로는 전사로 길러진 엘프.
거기에 정령력이 강화된 맵이라서 그런가.
엘프의 움직임은 다이아급 전사, 그 이상으로 강해 보였다.
=적, 빠릅니다……!
=맵이 엘프를 위해 설계돼서 그런가요!?
=아, 성지한 선수……! 잘 이겨 내었으면……!
3, 4 경기를 완패당해서 그런지.
아무리 성지한이라도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하는 해설진이었지만.
툭.
성지한이 허공에 손을 가져다대자마자, 사라졌던 엘프의 머리가 붙잡혔다.
“……뭣!?”
“자.”
쾅!
그가 손을 움켜쥐자, 그대로 터져 나가는 엘프의 전신.
성지한은 자신의 몸에 피가 튀기지 않도록, 공간을 격리하고는.
나직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빨리 다시 살아나라. 엘프.”
일격.
그것도 무기조차 쓰지 않고, 엘프가 터져 나가자.
해설자들은 안도했다.
=아……!
=역시 성지한 선수죠! 든든합니다!
=속이 뻥 뚫리는군요!
그리고 곧.
슈우우우…….
상대 엘프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부활했지만.
펑!
“다시.”
펑!
“다시.”
성지한은 계속, 엘프를 터뜨렸다.
자비 따위는 1도 보이지 않은 채, 부활하는 엘프를 계속해서 죽이는 모습.
하나, 이에 눈쌀을 찌푸리는 시청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죽여!! 더 죽여!!
-아오 언제까지 살아나냐, 저것들 ㅡㅡ
-3, 4경기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네 ㅋㅋㅋㅋ
-이럼 저쪽이 사형당하는 거임?
-ㅇㅇㅇ 신참자를 다루는 메뉴얼이랍니다?? 엘프 니네나 당해 봐라 ㅋㅋㅋㅋ자국 플레이어가 사형당하기 직전에, 상황이 뒤집어졌으니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엘프가 죽고 죽어 나가는 걸 감상하고 있을 때.
엘프 대신관의 얼굴은, 게임 시작 후 처음으로 여유를 잃고 있었다.
“저자는 대체…….”
플레티넘 서포터로 출전한 엘프.
저 엘프는, 저렇게 무력하게 터질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세계수 연맹의 데이터상, 최상급 종족의 서포터까지도 손쉽게 이길 수 있도록.
철저히 전사로 훈련된 플레이어였으니까.
거기에.
‘세계수의 가호가 있는데도……!’
비록 묘목이라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보태 주는 세계수의 가호.
이것이 뒷받침된 엘프는, 설령 적이 종족 대표급 다이아 전사라 할지라도 제압할 만큼 강력했다.
근데 그런 엘프를, 저렇게 단숨에 제압하다니……!
‘이러다가 패배하면 큰일 난다.’
출전 플레이어 중, 20퍼센트 사형.
이건 저 하급 종족인 인류 따위보다, 엘프에게 크게 치명적인 페널티였다.
당연히 그녀로서는, 이 처벌이 자신들에게 되돌아올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성지한을 보고 패배를 상정해 보자, 이 페널티가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세계수 엘프의 인구수는 인류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적은 편이었기에.
20퍼센트가 날아가면 새로 육성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긴급 사태입니다……!”
대신관이 이를 꽉 깨문 채, 어딘가로 긴급 사태를 보고하자.
스르르르…….
그녀의 모습이 기존과는 달리, 완전히 다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 모습은…….’
테이블 건너편에서 대신관의 초조와 불안을 즐겁게 지켜보던 데이비스 감독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변화된 대신관의 외양은, 조금 전 보았던 하이엘프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머리색이 완전히 금색이라는 것뿐.
‘……성지한의 채널에서 나왔던 모습도 저랬는데. 뭐지?’
얌전히 패배할 것이지.
또 뭔 짓을 하려고?
데이비스 감독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속에서도, 왠지 불안해졌다.
그리고.
쿠르르르……!
하늘 위에 있던 세계수의 묘목에서.
흙무더기와 함께, 잎사귀가 떨어지자.
“하아, 하아…….”
형편없이 터져 나가던 엘프의 머리색이 녹색으로 빛나며.
툭.
처음으로 성지한의 공격을 막아 냈다.
* * *
스르르르…….
“세계수께서…… 은총을 내려 주셨다……!”
완전히 변한 엘프의 모습.
조금 전, 하이 엘프와 비슷한 외양에, 금발의 머리는 녹색으로 빛났다.
초강화된 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진해 오고.
캉! 캉!
순식간에 수십 합이 교환되며, 성지한과 잠시 동안 대등한 교환을 이루어 냈다.
성지한의 힘이 초월적인 걸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교환.
세계수의 묘목이 내려 준 힘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알 수 있었다.
[저게 묘목이 맞나? 엄청난 힘이군…… 세계수. 역시 우주를 지배하는 일곱 존재답구나.]
“너흰 저런 거에 정말 대항할 수 있냐?”
[…… 해 봐야지. 그게 우리의 존재 이유니까.]
쉐도우 엘프인 아리엘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력한 세계수의 권능.
성지한은 하늘 위의 세계수가 엘프에게 내려 주는 생명의 기운을 응시했다.
하늘 위에 둥둥 떠 있을 때보다, 훨씬 흡수하기 쉽게 내려 주는 힘.
‘좀 가져가야겠군.’
휙!
성지한은 싸우다 말고, 하늘로 올라가 이를 중간에서 인터셉트했다.
슈우우우…….
한 번 흡수해 봐서 그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생명의 기운.
오히려 엘프에게 직접 꽂아주는 양보다, 성지한이 중간에서 빨아들이는 게 더 많았다.
[주, 주인…… 너무 많이 흡수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세계수의 노예가 된다!]
예전에 생명의 씨앗에서 흡수할 때보다, 훨씬 많은 생명의 기운이 들어오자 아리엘은 경악했지만.
“괜찮은데?”
[세계수 욕 좀 해 봐.]
“세계수는 우주 쓰레기에 불쏘시개다.”
[……왜 괜찮지?]
성지한이 태연하자,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네, 네놈…… 어떻게 기운을…… 아니…… 아닌가? 어머니…….”
생명의 기운을 중간에서 잔뜩 빼앗은 성지한을 보고 화를 내던 엘프는.
일정 수준 이상이 되자, 성지한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혼란에 빠졌다.
그러더니.
“어머니의…… 큰 뜻입니까, 이건…….”
털썩.
성지한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혼란을 감추지 못하는 엘프.
“그래, 얘야. 그러니 이만 죽으렴.”
펑!
성지한은 그런 엘프를 발로 차 터뜨려 버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생명의 기운을 무지막지하게 내뿜고 있는 세계수의 묘목.
부우우웅……!
묘목은 성지한이 기운을 빼앗아 가도 상관없다는 듯이, 녹색빛으로 빛나면서.
그에게 생명의 힘을 계속해서 불어넣었다.
마치, 누가 이기는지 내기라도 하자는 듯.
이미 죽고 사라진 엘프를 또다시 살려 강화하기보다는.
성지한에게 기운을 더 불어넣어, 장악하겠다는 심산 같았다.
하지만.
‘이것 참…… 왜 아무렇지도 않지?’
무혼 때문인가.
몸에 가득 생명의 기운이 담겼음에도, 자유롭기만 한 성지한.
더 이상 담을 곳이 없을 때까지, 생명의 기운을 차곡차곡 모은 그는.
‘흐으음…….’
왼손에 들린 이클립스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암영신결 최강의 초식, 암영신검.
예전에 무명신공이 스킬로 등록되었을 때, 지구 멸망 직전에나 사용할 수 있었던 그 무공은.
무성 성지한일 때보다 강력해진 현재에도, 무공을 구현할 실마리가 없어 사용하질 못했다.
한데, 지금은.
‘가능할 것 같단 말이지.’
생명의 기운이 가득 몸 안에 응축된 지금.
역설적이게도, 생명을 잠재우는 암영신검을 그 어느 때보다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엘.”
[왜?]
“예전에 성장하면, 암영신검을 보여 준다고 했지?”
[그…… 암영신결 최강의 초식 말인가? 그랬지.]
“한번 해 볼 테니, 버텨라.”
[……보여 주는 거야 고마운데, 왜 내가 버텨?]
“그야.”
부우우웅!
생명의 기운이 이클립스를 잠식하고.
[아, 아아악…… 뭐, 뭐야!]
“이래야 쓸 수 있으니까.”
성지한은 아리엘의 비명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하늘 위로 뻗었다.
검의 형태가 사라지며, 폭발하는 어둠.
이클립스에서 뻗어 나가기 시작한 그림자는, 하늘을 향해 역으로 날아가고.
무명신공無名神功
암영신결暗影神訣
암영신검暗影神劍
찬란한 녹음이 반짝이던 낙원 엘가시아는.
온전히 어둠에 잠겼다.
하늘 위에 떠 있던, 세계수의 묘목.
거기에 더 위에 있는, 태양빛까지 모두 잠식하는 어둠.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맵 전체가, 어둠에 가려졌어요!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자들도 영문을 몰라 하고.
“이, 이게…… 대체…….”
엘프 대신관의 눈에 핏발이 선 채, 화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낙원 엘가시아가 붕괴됩니다.]
[5경기가 종료됩니다.]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어두워진 화면 위에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