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84화>
12월 15일에 벌어진 리허설 게임.
이날도 게임의 시작은 비슷했다.
[미친…… 뭐 이런 놈이……!]
인류를 처음 조우하는 종족은 겉모습만 보고 기습했다가, 성지한한테 완전히 박살이 났고.
[NO.4212……! 그놈이 있는 종족이다. 피한다.]
인류를 예전에 리허설에서 미리 만나 보았던 종족은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포인트가 예전보다 올리기 더 힘든 느낌이네…….”
윤세아는 자꾸 도망치는 적들을 아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성지한에게 된통 당한 종족은 절대 싸우려고 들지를 않았다.
멀리서 인류를 보기만 해도, 일단 전력으로 도망치고 보았다.
“지한만 보면 바로 도망치니까. 새로 들어오는 종족이 많아야 할 만한데.”
“그러니까. 거기에 천지번복 때 우릴 노리는 적도 많아졌어.”
천지번복,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상황만을 기다리다가.
인류가 혼란에 빠졌을 때, 기습을 감행하는 종족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론 성지한이 이 때에도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대처를 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삼촌 혼자서는 무리지…….”
천지번복의 순간, 성지한이 모든 원정대를 케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다 케어가 가능한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그랬어.’
능력은 되지만, 혼돈의 균열에서 얻을 게 있다고.
한동안은 이 상태로 가야겠다고 성지한은 윤세아에게 귀뜸했다.
“이래다 정말 못 깨는 거 아닐까?”
“에이, 결국은 깨겠지.”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클리어를 걱정하는 소피아에 비해 여유가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적의 대응이 더 기민해질 거 같긴 한데…….’
15일쯤 되니, 조금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천지번복 때, 제발 대응 잘 해 줬음 좋겠네.”
그렇게 게임은 쭉 진행되고.
원정대의 포인트가 5천쯤 다다랐을 때.
“뒤, 뒤집힌다……!”
“모두 준비해!”
원정대의 발목을 번번히 잡는, 천지번복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대장님, 오늘도 시작합니까…….”
“그래, 이제 협상을 하려는 것 같은데. 혹시라도 그 전에 게임이 클리어되면 안 되지.”
“근데 성지한이 협상을 받아들이긴 할까요? 우리 한 짓을 알게 되면…….”
“온건파가 갔단다. 대놓고 티를 내진 않을 거야.”
인민회 소속 플레이어들은, 자살 시도를 다시 하려고 했다.
스으으으…….
그들의 등 뒤로.
작은 검 모양의 그림자가, 솟아올랐다가 사라진 건 느끼지도 못한 채.
[혼돈의 균열이 확장되어, 천지가 뒤집힙니다.]
쿠르르르……!
하늘과 땅이 뒤집히면서, 원정대 모두가 공중에 떴을 때.
멀리서 서 있던 성지한은.
‘때가 됐군.’
배틀 마켓에서 구매한, 감각 공유 티켓을 끊었다.
그러자.
-어…….
-이거 뭐야?
배틀 튜브로 세계 전역에 생중계되던 성지한의 영상에, 변화가 생겼다.
* * *
처음 시청자들이 본 것은, 다중시점이었다.
-억……! 갑자기 화면 몇 개가 나오는 거야?
-모니터 20개는 깔아둔 거 같네.
-지한 오빠 화면이 아니잖아요, 이거?
성지한의 관점에서 보이는 화면 하나가 아니라.
20개로 나눠진 화면.
성지한이 평소 느끼는 감각을 일반인이 온전히 느끼기에는, 이 정도로도 역부족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오감을 완전히 담아내는 일은, 일반인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자, 다시 시작한다. 땅에 떨어져.”
“마법사는, 리버스 그래비티 대신 중력강화를.”
“서포터도 배리어 대신, 해제마법을 사용해라.”
“빨리…… 죽어!”
그런 일반인도, 영상에서 플레이어들의 의미심장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뭐? 땅에 떨어지라고…….
-자살? 이 상황에서?
-이거…… 누구야, 대체?
그리고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려는 듯.
스으으윽……!
검 모양의 그림자가, 인민회 플레이어들의 등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주인, 이들을 비추면 된다는 거지?]
“그래.”
성지한과 아리엘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20개의 화면에 일제히 뜬, 인민회 플레이어.
공중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자살 시도를 하려던 그들은.
“뭐, 뭐야 이거?”
“그림자 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검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검의 주인이 누군지는.
이제 지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서, 설마…….’
‘들켰어……!’
인민회 플레이어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고.
성지한은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을 향해,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천지번복. 이 현상이 생긴 지 벌써 2주째. 연맹에서는 충분한 트레이닝을 행해 왔고, 연습 때는 모두 그렇게 잘했죠. 한데.”
스으으윽.
처음에는 손톱만큼 조그맣던 그림자검이.
점차 커져 간다.
검날이, 목을 벨 정도로.
“왜 실전에만 가면 그럴까 의아했습니다.”
“저, 이것은……!”
“이, 이건 개인적인 실수입니다!”
“사, 사실 이 맵에서 레벨 업을 더 하려고……!”
어떻게든 인민회와는 연관을 짓지 않고자, 개인의 일탈이라고 말하는 플레이어들.
하지만.
그런 변명이 무색하게, 그들의 갑옷과 로브 자락에는 인민회 마크가 자랑스럽게 떡하니 붙어 있었다.
-고의자살이라니…….
-와…… 인민회에서 지금까지 클리어를 고의로 방해한 건가?
-아니…… 왜? 미친 거 아니야?
-지금 클리어에 목맨 사람이 몇 명인데…… 원정대에 인민회 플레이어도 엄청 많잖아?
스탯 포인트 7이라는 엄청난 보너스를 주는 리허설 맵.
모든 플레이어가 하루라도 빨리 클리어하고 이를 투자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이걸, 이들이 지금까지 고의로 방해해 왔다고?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도, 도저히 이 일을 믿질 못했다.
그러다가.
-아, 설마 저번에 천마 안 넣어 줬다고?
-……진짜? 겨우 그거 때문에 원정대를 방해했다고?
-그거 아니면 뭐가 있어. 쟤들이 굳이 죽는 이유가.
-ㄹㅇ 어차피 자기들도 스탯 +7 이득 보는데 말이야.
-얼토당토않은 모함이다! 저들의 행동과 인민회는 연관이 없다!
-그런데 자살하려는 20명이 죄다 인민회다, 그쵸?
근래 성지한과 인민회가 부딪쳤던 이유를 떠올리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인민회는 천마를 파티에 안 넣어 줬다고 고의 트롤링을 했단 말인가…….
“이젠 안 되겠군요.”
성지한은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그러자, 20명의 앞에서 커졌던 그림자검이 일제히 움직이고.
스르르릉!
인민회 플레이어의 목이 일제히 떨어졌다.
-어…….
-성지한이 죽였네…….
-아, 아군을 죽이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수가 적어졌던 중국 시청자들은.
인민회 플레이어들이 모조리 참수되자,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민회의 플레이어랑은, 이제 리허설 게임을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무기를 인벤토리에 놓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은 성지한.
[지금이다.]
[여기서 숫자를 줄여야 해!]
천지가 뒤집혔다 되돌아오고.
적 종족이 땅에 떨어지는 원정대를 급습해 오는 아비규환인 상황 속에서.
성지한은 뇌운 위에서 홀로, 전장과 유리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나마 그가 나설 때는.
“아…… 삼촌, 땡큐!”
“성! 덕분에 살았어요!”
윤세아나 소피아 등, 자기 지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뿐.
“야. 나, 나는……!”
배런과 같은 나머지 사람은 전혀 챙기지 않았다.
[팀의 생존자가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15분 후, 맵에서 추방당합니다.]
결국 생존자가 10퍼센트도 채 남지 않아서, 게임 추방 메시지가 뜨자.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키던 성지한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원정대에서, 인민회 플레이어를 모조리 추방하겠습니다. 이럼에도 만약 배틀넷 연맹에서 선수 명단에 계속 인민회 플레이어들을 넣는다면…….”
그는 단호하게 말을 끝맺었다.
“리허설 게임은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끝이 난 이날의 게임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 * *
[지금까지 리허설이 클리어되지 않았던 이유는…… 충격적인 전모가 드러나다!]
[인민회는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가? 월 초 성지한의 천마 언급에 단서가 있어.]
[천마 왕린,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면서 인터뷰를 극구 사양.]
[인민회, 이번 일은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전면 부인.]
[세계 배틀넷 연맹, 문제를 일으킨 플레이어를 추방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기로 기대.]
여느 때와 같이, 수많은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된 성지한.
하지만 이번 일은 파장이 만만치가 않았다.
=리허설 게임이 열리지 않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계 배틀넷 연맹은 성지한 선수와 인민회 사이를 조율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면서 뉴스에 나오는 대기 길드 마스터, 이하연.
그녀는 냉정한 얼굴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저희 측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인민회를 비롯하여, 그쪽 출신의 플레이어를 모두 배제해 주십시오. 그 명단이 아니면 받아들이질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대조적으로 나오는 배틀넷 연맹의 대리인.
=개인의 실수를 인민회 전체에게 뒤집어씌우다니. 성지한 선수에게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인민회 전체를 배제하는 것은 리허설 미션 클리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번에 불측한 일을 저지른 선수들을 교체하고, 제대로 된 정예를 뽑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인민회 측에서도 선수 관리 부실의 책임을 통감하고, 비행 마법이 걸린 아이템 500개를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민회의 배제는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예……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성지한 선수의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하겠습니다.
세계 배틀넷 연맹에서 인민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기에.
연맹으로선 성지한의 요구 조건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맹은 인민회와의 합의를 촉구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이러다가 정말 성지한 선수가 게임을 보이콧하는 거냐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민회를 배제하라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임 재개를 위해서 연맹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어디까지나 게임을 주최할 수 있는 것은 성지한뿐이었다.
그가 인민회 빼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나오니까, 연맹으로서는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그리고 인민회의 자살시도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세계적으로 성지한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단 한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와, 삼촌. 저거 봐.”
=한편, 중국에서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성지한 선수가 인민회에 죄를 뒤집어씌웠다면서, 신문 사설에서 그를 저격하고 나선 겁니다.
뉴스 앵커의 브리핑이 끝나고 이어지는 화면에서는.
물건을 모아 두고 불을 지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성지한 선수의 중국 팬들도, 이번 일로 크게 실망했다면서. 성지한의 팬 물품 화형식을 열었습니다.
-성지한 선수 활약상을 보고 팬이 되었는데, 이번에 정이 확 떨어졌어요. 개인의 실수를 어떻게 인민회 전체의 잘못으로 몰아가죠?
-그래요. 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
-이번 생중계는 저희 나라를 모욕한 겁니다!
화르르르!
성지한의 사진을 비롯하여 팬 용품이 무더기로 불타는 화형식.
윤세아는 그걸 어처구니없다는 듯 지켜보다가, 성지한에게 질문했다.
“……삼촌, 굿즈도 팔았어?”
“내가 그랬겠냐?”
“그럼 자기들이 만든 걸 불태우는 건가…….”
“그렇겠지. 야, 잘 탄다.”
자기 얼굴이 불타오르는 걸,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지켜보았다.
언제 팬이었다고 저런대.
“근데 삼촌…… 진짜 리허설 안 하게?”
“왜, 하고 싶니?”
“아니, 뭐. 헤헤. 스탯 7이 쪼오금 아깝긴 하지만, 삼촌 입장이 우선이지!”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성지한을 바라보는 윤세아.
이제 어엿한 플레이어라 그런지, 스탯 +7이 욕심나기는 하는 것 같았다.
“연맹에서 명단 안 바꾸면, 원정대로는 안 할 거야.”
“맞아…… 그래야지! 여기서 받아 줄 순 없잖아!”
“하지만 네 스탯 보너스는 챙겨줘야지.”
“응…… 그렇다는 건…….”
성지한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요즘 세졌어.”
“……거기서 더?”
“어.”
연맹이 저렇게 합의보라고 종용하는 건.
자기들이 없으면 결국 게임을 클리어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젠 리허설, 매칭으로 깰 수 있다.”
무혼이 200이 되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