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83화>
혼돈의 봉인석에 금이 가고, 모습을 드러낸 멸망한 별의 파편.
그것은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딱딱한 금속류로 보였다.
별의 파편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생긴 겉모습.
성지한은 이게 진짜 멸망한 별의 파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에픽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업적 포인트 1000000을 획득합니다.]
[한계 레벨이 50 확장됩니다.]
‘맞네.’ 퀘스트 클리어 알림이 뜨자,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팀을 꾸리는 과정이 오래 걸렸지, 막상 내려오고 나니 쉽게 깼군.’
혼돈의 균열 밑바닥까지 가서, 봉인석을 부수는 과정.
그다지 오래 걸리는 프로세스가 아니라서, 성지한은 참 간단하게 클리어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말고는 이를 클리어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존재칠 않았다.
혼돈의 균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기운이 워낙 강력해서, 그 어떤 플레이어도 이 안에서 오래 생존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분명 보상이 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업적 포인트에 레벨 제한 +50.
이것만으로는 뭔가 아쉽다.
성지한이 입맛을 다시며, 추가 보상이 왜 안 나오는지 아쉬워하고 있을 때.
[브론즈리그에서 강등된 별의 파편입니다.]
[NO.4212 ‘인류’와 멸망한 종족의 싱크로율이 50퍼센트 이상입니다. 멸망한 별의 파편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멸망한 별의 파편을 흡수하시겠습니까?]
*주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브론즈에서 탈락하고, 인류와 싱크로율이 50퍼센트 이상인 별이라.
‘얘네도 최하급 종족이었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예를 눌렀다.
지금 얻은 소득으로는 뭔가 아쉬우니, 부작용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슈우우우……!
작은 금속덩어리던 별의 파편이 순식간에 성지한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며.
[여기는……!]
[따뜻하다.]
[이 몸뚱어리, 우리 종족과 비슷하다……!]
강렬한 원혼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울부짖으며, 키메라로 융합되던 이들과는 달리.
하나하나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원혼.
[이 몸, 빼앗자!]
[그래…… 언제까지고 저 차가운 감옥 안에 갇혀 있을 순 없다!]
[흐, 흐흐, 흐흐흐…… 나. 내가 1년만 먼저 쓸게!]
[어딜! 내가 먼저다!]
성지한의 몸 안에 들어온 이질적인 기운은.
삽시간에 네 갈래로 퍼지며, 그를 장악하려고 들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순식간에 당할 만큼 강렬한 원혼의 빙의.
하지만.
‘……미친놈들인가?’
무혼을 얻으며, 가장 먼저 자신의 몸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게 된 성지한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는 시도였다.
엘프 측이 건넨 생명의 씨앗에서 뻗어 나오던 기운도 자연스럽게 컨트롤했던 그에게.
원혼의 발악 따위는 손쉽게 파훼가 가능했다.
[자, 잠깐…….]
[왜 움직이질 않지…….]
[하, 아니, 아니. 어이! 잠깐만. 야, 농담이야. 헤헤. 몸을 쓰다니…… 구원해 준 것만으로 고맙지!]
[그래, 그래! 너를 먹진 않겠다. 대신 다른 몸뚱어리를 줘! 우리가 정보를 주지! 우리 별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세계의 끝을 보여 주겠다!]
“됐다.”
세계의 끝은, 이미 성지한 자신도 보고 오지 않았던가.
그딴 정보 얻자고 다른 인간에게 이런 위험한 놈들을 풀어 줄 수야 없었다.
성지한은 내부의 이질적인 기운을, 그대로 갈아 버렸다.
[어떻게…… 저기서 어떻게 버텼는데……!]
[성좌가 될 내가……!!]
그렇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사라진 원혼 무리.
성지한은 간단히 반란을 제압하고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부서진 혼돈의 봉인석을 바라보았다.
‘이거 흡수해 봤자 영 소득이 없네.’
혼돈의 전장 맵, 그냥 빨리 깨 버리는 게 낫겠어.
그가 그리 판단하고 있을 때.
[별의 능력, 무혼武魂이 멸망한 별의 파편을 얻어 강화됩니다.]
[무혼의 성장 속도가 오릅니다.]
[멸망한 종족의 ‘성좌 후보자’가 마지막까지 지닌 심득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무혼에 능력치 포인트를 10 투자할 수 있습니다.]
“뭣…….”
성지한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백만의 업적 포인트나 레벨 한계 증가 따위는, 하찮을 정도로.
진짜 보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주어졌다.
* * *
12월 15일.
기세 좋게 출범했던 리허설 원정대의 분위기는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아, 또 실패야?
-지한 오빠 발목 좀 그만 잡아요, 진짜 ㅠㅠㅠㅠ
-아니…… 하늘과 땅이 뒤집히면, 맨날 끝장이 나네.
-비행 마법 쓸 마법사도 추가하고, 아이템도 준비하지 않았냐?
-전사들이 계속 익숙하지 않다면서 떨어지잖아 ㅡㅡ
-거기에 마법사 추가하는 바람에 방어력이 약해짐…….
첫날만 해도, 거의 다 깬 거 같아서 일주일 내에 게임을 클리어할 줄 알았지만.
어째 2주간 계속 게임이 진행되는데도, 클리어를 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역시 가장 문제는 하늘과 땅이 뒤집힐 때의 대처법.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든지, 실드 바인딩을 대지로 향하여 낙하시의 충격을 대비해야 했는데.
손발이 착착 맞지 않아서 사상자가 많이 생긴 데다가.
꼭 이 타이밍을 노리고 비행 종족이 기습을 감행해 왔다.
여기서 본대가 반 이상 박살 나고 나면.
결국 1만 포인트를 달성하기 전에, 본대가 버티지를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이 고안되었고, 그중에는 성지한에게 천지번복 시 손을 벌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본대까지 살리면 제 힘이 다 떨어집니다. 저도 무제한적으로 힘을 쓸 수는 없어서요.
성지한은 그것까지는 하기 힘들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사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해도 500인분이었으니.
여기서 뭘 더 해 달라고 하기에는, 아무리 버스 승객이라고 해도 너무한 상황.
그래서 배틀넷 연맹에서는 성지한에게 더 이상을 요구하지는 못하고, 원인 찾기에만 분주했다.
-내가 분석해 보니 아시안 플레이어가 가장 먼저 추락사했음. 지역별 선수 비율을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다 컨트롤이 뛰어난 지역 위주로.
-아시안인 성지한 버스 타는 주제에 말이 많다 양놈들아 ㅋㅋㅋ-근데 중국 전사들이 좀 잘 죽긴 하던데…….
-인종 차별이다!
-먼 인종 차별. 나도 동양인임;
교묘하게 이루어진 인민회의 트롤링.
그들의 행각은 아직까지 아 ‘쟤네 좀 빨리 죽네’라는 인식만 살 뿐, 확실히 들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작 일을 저지른 인민회의 상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여론의 움직임이 영 심상치 않습니다. 이거 저희가 게임을 망쳤다는 게 알려지면 역풍이 장난 아니겠어요…….”
15일간, 전 세계에 생중계된 혼돈의 전장.
이 2주간, 성지한은 단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인류의 원정대를 책임지는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혼자서 아무리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며 적 종족을 쓸어버린다 한들.
결국 못 미더운 아군이 전사해서 매번 게임을 실패하는 비운의 전사.
-……하아.
최근 1주간은, 원정대가 10퍼센트도 남지 않아서 15분 후 퇴장 메시지가 뜰 때마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짧게 내뱉는 한숨이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ㅠㅠㅠㅠ 또 한숨 쉬셨네 ㅠㅠㅠㅠ
-쏘리 성…….
-근데 뭔가…… 평소처럼 적 쓸어버리다가 저런 모습 보면 색다른 멋이 있음 ㅎㅎ…….
-그거야 기본 와꾸가 사기잖아 ㅋㅋㅋㅋ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류 최후의 전사의 그림을 계속 보여 주니까.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전 세계적으로 팬이 폭증하는 성지한 채널.
안 그래도 원래 구독자가 많아서, 더 이상은 성장이 힘들 거라 생각했던 그의 채널은 이번 기회에 또다시 폭풍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했던 짓이 만약 발각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비난을 살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살은 중지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거 요즘은 이번 일이 발각될까 봐 잠이 안 옵니다.”
인민회의 온건파는 이쯤에서 덮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어허, 그깟 비난에 굴복해서야 되겠소?”
“애초에 우리가 대기 길드에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까? 저들이 왕쓰총님이 성희롱을 했다고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하지 않았습니까?”
“왕쓰총님이 잘못했죠! 국내에서 하던 짓을 외국에서 했으니……!”
“그거참! 말 조심하십시오! 저들의 거짓말에 넘어가 같은 나라 사람을 욕할 생각입니까?”
인민회의 주류를 이루는 강경파는 태도가 완강했다.
“대기 길드에 다시 사람을 보냅시다! 왕린을 합류시켜 준다면, 우리 쪽에서 확실하게 안 죽게 지원해 주겠다고.”
“……바봅니까? 지금 저희가 범인이란 걸 저들에게 실토하자고요?”
“누가 그렇게 말하자고 했소! 그저 지금과는 다른 지원이 들어갈 거라고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소이까. 플라이 마법 스크롤도 더 지원하겠다고 하면서요. 대충 눈치만 줍시다.”
“그래요. 어차피 인민회의 전력이 없으면, 저들도 미션 클리어를 못 할 겁니다. 상부상조하는 거지요. 동방 소국의 길드 따위에게 끌려다녀서야 되겠습니까?”
“거참…….”
대다수인 강경파의 의견에, 온건파는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럼 저희가 협상 대표를 보내겠습니다. 저번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험험…… 왕쓰총님께서는 자기가 결자해지하고 싶다 하셨는데…….”
“아니, 또 문제를 일으키려구요?!”
“거참, 알겠소. 그쪽에서 하시구려!”
그렇게 해서 대기 길드로 파견 온 협상팀은.
저번의 왕쓰총과는 달리, 어느 정도 예의가 발랐다.
“그러니까…… 왕린님을 받아 주면 원정대에도 대거 지원을 해 주시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거기에 지난 일에 대한 사과도 포함하겠습니다.”
“흐음…….”
인민회의 여성 간부로부터, 꽤 매력적인 제안을 들은 이하연은.
[오너님, 어떻게 대답할까요?]
성지한에게 이를 알렸다.
온건파 쪽에서 우리가 자살 시도했다고 전혀 티를 내지 않았기에, 인민회 쪽에서 트롤링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한 이하연은.
[제안 자체는 괜찮은데…….]
그들이 제시한 조건 자체에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지.’
성지한은 저들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 슬슬 끝을 내 볼까.’
그간 회수한 별의 파편은 총 6개.
레벨 제한은 여기서 더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무혼에 추가 포인트를 넣을 수 있어서.
무혼 능력치는 어느새 200에 도달해 있었다.
‘외계 종족의 경험이 상당히 신선했단 말이지.’
멸망한 종족의 성좌 후보자가 지닌 심득.
그들이 지닌 깨달음을 간접 체험하는 건, 사실 너무 짧았다.
원혼을 없애고 나면, 그 이후 1분 정도.
그들이 가장 강력한 힘을 썼던 경험만 잠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그중에는 성지한처럼 힘을 쓰는 전사는 한 명밖에 없고.
메이지나 서포터, 아처가 위주였기에 와닿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냥 다른 종족의 몸을 컨트롤하는 느낌이 꽤 시야를 넓혀 주었지.’
팔이 세 개 달린 종족.
4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종족.
날개가 달린 종족.
그런 이들이 겪어 왔던 경험은 인류가 느낄 수 있는 경험과는 완전히 궤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의 심득은 성지한을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오히려 다른 종족으로 전력을 다했던 그 느낌 자체가.
무혼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주었다.
그래서 모아뒀던 추가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서, 다시 올린 능력치가 바로 200.
[더 이상 ‘멸망한 별의 파편’을 통해 별의 능력을 강화할 수 없습니다.]
성지한은 어제 이 메시지를 확인한 이후.
이제 혼돈의 전장에서 게임을 끝낼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게임을 끝내기 내기 전에.
자신에게 얼토당토않은 시도를 한, 인민회 측에 쓴맛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배틀 마켓.”
그는 배틀 마켓을 열어서, 생각해 두었던 아이템을 샀다.
[1인칭 시점 감각 공유 티켓]
사용자의 시점과 감각을 영상으로 공유하여, 배틀 튜브에 중계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1회성 아이템이며, 티켓 1개당 제한시간은 30분입니다.
자신이 보고 듣는 것 모두를 공유할 수 있는 티켓.
인민회가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완전히 담기 위해서는.
기존의 배틀넷 중계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했다.
성지한의 오감을 온전히 담아야 했다.
‘고마웠다, 인민회.’ 덕분에 게임도 빨리 안 끝내고.
멸망한 별의 파편에게서 능력치를 끝까지 빨아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보답을 해 줘야겠지.
성지한은 티켓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