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66화>
일본의 배틀넷 센터.
“으…… 으으…….”
일본 감독은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휭! 휭!
그의 주변에는, 검왕의 백검이 날면서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특히, 검이 집중적으로 노리는 건 배틀넷 커넥터.
펑!
백검에 베인 배틀넷 커넥터에 작은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자.
감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토 시즈루, 당신만 믿으라며!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야……!’
1차전 때 갑작스럽게 검왕이 로그아웃했을 때부터 뭔가 불안했는데.
시즈루는 도망가고, 검왕은 완전히 폭주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까지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는 점일까.
이미 스태프 대부분은 겁에 질린 채 도망갔고.
배틀넷 센터 경비를 서던 경호원들은 검왕의 검에 기절한 상태였다.
그래도 살인까지는 저지를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지지지직……!
배틀넷 커넥터 여럿에 스파크가 튀는 걸 보면, 검에 베이지 않더라도 금방이라도 누군가는 감전사할 거 같았다.
“검, 검왕님! 제, 제발 멈춰 주십시오! 이러다가 폭발하면…… 서, 선수들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죽으면 죽는 거지.”
“그, 그런……!”
“아니면 직접 죽이길 원하나? 후후. 생각해 보니, 여기있는 사람들만 다 죽이면 일본 대표팀은 완전히 붕괴되겠군그래.”
자신의 짓뭉개진 눈을 만지면서,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검왕.
그에게서는 강렬한 광기가 느껴졌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그럼 당장 시즈루 데려와.”
“시즈루 님을 저희가 어떻게……!”
“데려오는 건 너희가 할 일이지.”
스으윽.
백검이 배틀넷 커넥터를 해체하면서, 그 안에서 사람을 하나씩 꺼냈다.
두 눈이 멀었음에도, 마치 제 손처럼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검왕.
왜 그가 세계 랭킹 1위의 전사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검옥劍獄.”
그리고 그가 그리 말하자.
“아…… 뭐야……!”
“어. 어…… 이거……!”
커넥터에서 강제 로그아웃된 플레이어들을 향해, 빛의 검이 그대로 뻗어 나갔다.
사람의 크기에 맞게 커다랗게 변한 검은.
이들을 검 안으로 포획한 채, 둥둥 떠서 검왕의 근처까지 데리고 들어왔다.
“이놈은 아니군.”
“커. 컥……!”
푹!
포획돼서 온 플레이어 중 일부는 검옥이 폭발하면서 그대로 기절해 땅에 쓰러졌고.
“이놈은…… 그래. 괜찮군.”
일부 플레이어, 20명은 검 속에 그대로 갇힌 채.
“이거 뭐야 대체!”
“사, 살려 주세요……!”
“얌전히 있어라.”
“으, 으아악……!”
검왕의 술수에 의해, 모두 기절했다.
아무리 커넥터에서 강제 로그아웃되어 혼란에 빠졌다지만.
한 명 한 명이 국가대표에 뽑힐 만큼 강력한 플레이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를 제압한 검왕.
꿀꺽.
일본 감독은 침을 삼켰다.
‘이 괴물……! 눈 먼 거 맞아? 포획한 선수들, 죄다 상위 랭커잖아!’
검옥에 가둔 선수들은 일본 국가대표 중에서도 최상위권 20명.
두 눈이 멀었음에도, 검왕은 가장 가치 있는 인질만을 선정했다.
“12시간을 주지. 그동안 시즈루를 안 데려오면, 10분에 1명씩 공개 처형하겠다.”
“아. 아니…… 공개 처형이라니. 그런……!”
“그러니 기자를 불러라. 아…… 아니지. 네놈을 믿을 순 없지.”
검왕은 짓뭉개진 눈을 매만지면서, 천천히 말했다.
“시스템. 배틀튜브를 틀겠다.”
시즈루에게 매혹된 이후, 단 한 번도 튼 적이 없었던 검왕의 개인 채널.
검왕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배틀튜브를 틀었다.
* * *
한편, 한국의 배틀넷 센터.
“우리 팀, 승리당했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형님.”
김동우와 이윤기는 환한 얼굴로 배틀넷 커넥터에서 나왔다.
1경기 때 검왕이 로그아웃된 이후,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던 일본 대표팀.
2경기는 전력 차로 손쉽게 이기고, 3경기도 로그아웃으로 알아서 폭망해 주었다.
왜 저렇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걱정했던 한일전을 압승했으니, 한국 대표팀 플레이어들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다.
물론.
“대체 일본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강제 로그아웃이라니. 배틀넷 경기에서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정전 나도 3시간은 돌아가잖아. 커넥터.”
“국가대표급 기계면 6시간은 돌아갈걸?”
일본 대표팀에서 일어난 사고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던 케이스라 그런지, 모두의 관심은 그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감독님. 뭐 소식 들어온 거 없나요?”
“으음…… 아직은 없다. 아, 일본 배틀넷 센터에서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는데…….”
노영준 감독은 일본 측의 소식을 듣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대피요?”
“어떻게 된 겁니까?”
1, 2, 3경기 연속 MVP를 딴 성지한은 굳은 얼굴로 노영준 감독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서, 여러 속보가 주르륵 뜨는 걸 볼 수 있었다.
-일본 배틀넷 센터에서 스태프 황급히 대피 중!
-검왕이 미쳤다는 증언이 속속 등장……! 내부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은 검왕으로 추정.
미치긴.
정신을 차린 거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노영준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내부 사정을 아직 자세히는 알 수 없나 보군요.”
“그, 그래…… 으음. 검왕이 배틀넷 커넥터에 손을 댔나 보군…… 대체 일이 어떻게 될는지…….”
감독이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을 때.
스태프 중 한 명이 급히 소리쳤다.
“어. 가, 감독님! 검왕의 배틀튜브가 열린다고 합니다!”
“뭐…… 배틀튜브가?! 바로 화면 띄워 주게!”
“알겠습니다!”
지이이잉.
그렇게 뜬 검왕의 배틀튜브 화면은.
“헉……!”
“누, 눈이……!”
처음부터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양쪽 눈이 짓뭉개진 채, 눈 아래에는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검왕.
그 모습은 마치, 피눈물을 흘린 것처럼 보이는 섬뜩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입을 연 검왕에게서는, 한국어가 나왔다.
일본으로 귀화한 이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한국말이.
[한국에서 그간 저를 응원해 주셨던 팬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제가 여자에 미쳐,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그러며 검왕은 자신의 눈을 스윽 매만졌다.
[결국 스스로 눈을 없애고 나서야…… 드디어 미몽에서 헤어 나왔습니다.]
“아…… 정신 차렸구나. 검왕! 지한아. 네, 네가 한 거니?”
“그렇습니다만…… 두 눈을 보아하니, 일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군요.”
시즈루가 또 재 매혹을 시도했던 걸까.
두 눈을 스스로 찌르다니.
‘아니, 눈은…… 재생하면 된다. 다시 매혹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지.’
사라진 신체야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다.
지금은 현실에서 그런 치료 효과를 보이는 일이 힘들더라도, 튜토리얼이 끝나고 나면 서포터의 치료 효과도 게임처럼 좋아지니까.
목숨만 붙어 있다면 됐다.
성지한은 냉정히 그리 판단하면서.
[이번 일은…… 제 스스로 결자해지하겠습니다.]
이제는 ‘윤세진’으로 돌아온 검왕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정부에게 고한다. 시즈루를 12시간 내에 당장, 내 눈앞에 데리고 오라. 만약 데려오지 않는다면.]
휭. 휭.
두 눈이 사라져서 그런가.
배틀튜브의 카메라가 자신을 어떻게 비추는지 감을 잘 못 잡는 검왕은.
거칠게 20명을 가둔 검옥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노영준 감독은 눈을 크게 뜨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검옥 속의 선수들을 겨우 파악했다.
“어…… 사쿠라 선수에. 헤이지 선수도 있군…… SS급 기프트를 지닌 선수들이 검에 갇혔구나!”
“매형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히는 선수들 아닙니까. 그들은?”
“그래…… 검왕이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꽤 골치 아픈 선수들이었지. 근데 그들을 인질로 잡다니…….”
[이들을 10분에 한 명씩 죽이겠다.]
최상급 플레이어만 인질로 잡은 검왕이.
시즈루를 안 데려오면 죽이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자, 노영준 감독은 미간을 찌푸렸다.
“음. 살인을 예고하다니……! 살인자가 되면, 국제 배틀넷 협회에 의해 제명당하는데…….”
“제명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국가대표도 될 수 없고, 국제경기 출전 금지 조치를 당하지.”
그거야, 튜토리얼 때나 통용될 만한 규칙이군.
야만의 시대에 접어들 튜토리얼 이후의 세계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법이다.
출전 금지 좀 당하더라도. 이번에 두고두고 후환이 될 시즈루를 뿌리째 뽑는 게 낫다.
다만.
‘저대로 오래 놔둘 수는 없어.’
검왕의 힘이 아무리 절대적이라고 해도, 현실에서 힘을 쓸 수 있는 데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지금은 저렇게 백검을 운용하면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언제 기운이 다 빠질지 모르는 노릇.
그럼 이제 완전히 적지가 된 일본에서는 치명적이다.
성지한이 핸드폰을 들어, 박윤식 과장에게 연락을 하려 할 때.
“사, 삼촌!”
배틀넷 센터 안으로, 윤세아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아빠 방송 봤어? 매혹에서 벗어났나 봐! 삼촌이 한 거지?”
“응.”
“아…… 역시! 근데 아빠 눈! 눈은 어쩌지? 아 진짜…… 자기 눈을 찌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윤세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성지한에게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 냈다.
그간 자기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해서 미련 없는 것처럼 강한 체를 해 왔지만.
상황이 막상 이렇게 되니, 본심이 드러난 것일까.
윤세진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일단 지금 박윤식 과장님한테 연락해서 일본행 비행기편 구해 달라 하게.”
“일, 일본 가려고?”
“자. 자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성지한이 태연하게 일본행을 이야기하자, 모두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상황을 좀 지켜보지도 않고 바로 일본행이라니.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매형, 두 눈을 잃어서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거기에 세계수의 잎사귀도 먹여야 하고.”
“으…… 그건 그렇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하긴. 내가?”
피식 웃는 성지한의 모습에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긴, 날아오는 총알도 영역 지배로 멈춰 세울 수 있는 사람이니까.
성지한과 검왕이 연계하면, 상대 입장에선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겠지.
“으…… 그래도 말도 안 통하고 지리도 모를 텐데.”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그래도 계속 걱정을 하는 윤세아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아카리가 나섰다.
“전투 면에서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일본에서의 안내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세아가 문제인데.”
“나도 따라가는 건…….”
“안 되지.”
“아, 알았어. 그럼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을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아카리 언니랑 가!”
“음…….”
윤세아의 말에도 성지한이 고민하자.
“세아는 제가 봐줄게요.”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하연주가 나섰다.
한국 최고 레벨 플레이어인 그녀는 평소에 경호를 삼엄하게 받았으니.
윤세아를 잠시 맡기기엔 최적의 상대였다.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저도 검왕님이 무사히 한국에 돌아오시는 걸 바라니까요.”
“그래. 내 걱정은 하지 마! 연주 언니랑 있을게!”
어느새 하연주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윤세아는 성지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폰을 들었다.
“박윤식 과장님. 일본행 비행기, 2자리 좀 부탁합니다.”
[이, 일본요…….]
“네. 지금 당장요.”
* * *
검왕의 생중계 방송은, 전 세계에 일약 화제로 떠올랐다.
특히 검왕의 배틀튜브엔, 한일 양국 시청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가서.
시청자가 천만을 가뿐히 돌파하고 있었다.
-검왕님 ㅠㅠㅠㅠ 저는 믿고 있었어요 이렇게 돌아오실 줄 ㅠㅠㅠㅠ-눈 어떻게 해 ㅠㅠㅠㅠ-배틀넷에서 재생하는 방법이 있을 거임…… 검왕가 이름으로 다시 모여서 모금합시다!
-와 검왕가 안 망했구나 ㅋㅋㅋ 졸라 많네 -햐…… 근데 인질극 실화냐?
-으으. 이래서 춍을 믿으면 안 되는데……! 대표팀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한 명한테 저렇게 당할 수가 있나!
-ㅋㅋㅋㅋ 일본 애들 발끈하네.
-wwww <- 이거 안 봐서 기분이 너무나 좋다는 wwww -ㄹㅇ ㅋㅋㅋ 당장 검왕 돌려주고 리그 최하위하시라는 wwww 검왕이 일본에 간 후, 일본 네티즌들에게 쭉 조롱을 당하던 한국인들은.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어, 그들을 양껏 놀려 댔다.
그러면서도.
-근데 이러다 진짜 살인 나는 거 아님?
-ㄹㅇ 시즈루가 나오겠어? 분위기 개 살벌한데 -자위대는 뭐 하는 거지?? 당장 검왕을 진압해야지!
-ㅋㅋㅋㅋㅋ 검왕 진압하기 전에 인질이 먼저 죽을 거 같은데.
-만약 쟤들 죽으면 일본 진짜 최하위 되지 않음?
-ㅇㅇ SS급 인질만 셋이야
일본 자위대에도 대 플레이어 전용 진압 부대가 있었지만.
검왕의 인질로 잡고 있는 플레이어는, 일본 대표팀의 핵심 중추였기에 함부로 검왕을 진압하려 들려 하질 못했다.
[이토 류헤이는 즉각 무장을 해제하고, 인질을 해방하라!]
일본의 배틀넷 센터를 멀리서 포위한 채, 확성기로 검왕에게 인질을 풀어 달라고 요구만 할 뿐이었다.
“역시, 딱히 데려올 생각은 없는 것 같군요.”
지지지직……!
검에 가둔 20명 외에도.
쾅!
“으. 윽……!”
기절해 있는 나머지 플레이어 중 깨어나려는 기색이 보이는 이들을 다시 기절시키면서.
“누구부터 처형할까. 역시 일본에서 가장 성가신 사쿠라인가?”
검왕은 천만이 넘게 보는 생중계 채널에서.
거리낌 없이 죽음을 입에 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이러다가 진짜 죽이겠어……!’
‘대체 정부는 뭐 하는 거야!’
멀리서 이 상황을 바라보던 일본 스태프들이 절망에 빠질 때.
또각. 또각.
“어…….”
“저 사람은…….”
한 여인이 인질극이 벌어지는 배틀넷 센터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저 왔어요…… 류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급하게 도망쳤던, 시즈루가 제 발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검왕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래. 죽어라.”
일제히 검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