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49화>
[5경기 맵은 인베이드 맵, ‘깃발 쟁탈전’입니다.]
[75명의 플레이어가 출전합니다.]
“오오오!”
“단체전이다!!”
중국 대표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으으…… 깃발 맵이라니.”
“역시 개인전이 두 번 연속 걸리는 건 힘든가…….”
반명 한국 대표팀에서는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했는데, 1경기를 제외하고는 단체전에서 죄다 참패를 겪었기 때문에 5경기도 힘들겠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맵의 크기는…… 75명이면 소형 맞지?”
“네. 그렇습니다.”
“망했군.”
노영준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깃발 쟁탈전.
이 게임은 말 그대로, 맵의 주요 포인트에서 랜덤하게 생성되는 깃발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는지 겨루는 게임이다.
게임의 승패는 일반적으로 30분 후, 각 진영의 본진에 보관된 깃발 숫자에 따라서 정해졌지만.
이 맵에는 몇 가지, 다른 승리 조건이 있었다.
상대 진영의 플레이어를 전멸시키거나.
아니면 적의 본진을 부수거나.
노영준 감독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도 바로 이 승리 조건 때문이었다.
“……중국은 소형 맵에서, 승률 100퍼센트입니다.”
“그러니까! 하필 걸려도 소형이라니! 100명 맵이었으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말이 소형 맵일 뿐 깃발 쟁탈전의 맵 크기는 상당했지만, 중국의 대마법사 제갈헌의 마법이 미치는 사거리도 그만큼 상당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것도 자신의 본진에서, 적의 본진에 대마법을 사용할 정도로.
“예…… 소형에선 제갈헌이 괘를 잘못 뽑아도, 황룡의 버프 덕에 운석 낙하 마법이 닿습니다.”
“중국의 게임 시간은 얼마나 걸렸지?”
“평균적으로 2~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제갈헌이 괘를 잘 뽑은 경우에는 15분 만에 끝나기도 했고요.”
“허허…… 뭐 이런……!”
깃발 쟁탈전이라는 본연의 게임 방식과는 달리, 중국이 맵을 플레이하면 일방적으로 적의 본진을 폭격하다가 게임이 끝났다.
아무리 상대 나라가 깃발을 여러 개 확보한다 한들, 깃발을 보관해야 할 장소가 터져 나가니 승리를 할 수가 없었다.
“마법을 못 쓰게 방해하려 해도…….”
“그놈의 황룡 때문에 힘듭니다. 유일하게 성지한 선수만이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힐 수 있죠.”
“그건 백팔나한진 때문에 힘들지.”
노영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안 그래도 강한 팀이, 백팔나한진을 들고 나와서 더 강력해졌다.
물론 백팔나한진 자체는 약점이 많아서 당한 쪽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74대 57이 되도,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막막하구먼.’
팀에서 성지한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노영준 감독은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중국의 마법사와 서포터는 압도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었으니까.
이런 코치진의 분위기는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전염되었는지, 모두들 낯빛이 어두워졌다.
단 한 명.
성지한을 제외하고는.
“감독님. 이번에는 백팔나한진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2, 3 경기.
세 번을 내리 겪은 백팔나한진.
2, 3 경기 때에는 한층 강력해진 진에 의해 억제를 받았지만.
성지한에게는 이제 나름의 확신이 생긴 상태였다.
확실히, 깰 자신이 있었다.
“그. 그러냐?”
“네. 그러니 20분만 버텨 주십시오.”
“20분…….”
그래.
설마, 20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노영준 감독은 일말의 희망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깃발 쟁탈전 맵, 중국 본진.
성지한은 홀로 그리로 걸어갔다.
삼각진조차도 이루지 않고, 홀로로 접근해 오는 그를 보며.
“하. 저 빵즈…… 건방지기 짝이 없네.”
“그냥 백팔나한진 쓰지 말고 죽이면 안 되나?”
“뭔 자신감이야?”
중국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닥치고 써! 게임에서 이겨야지! 저 새끼 제발 게임에서 좀 치우라고!”
4경기 때 성지한에게 일반적으로 털린 제갈헌은 이를 악물며 얼른 백팔나한진을 시전하라고 재촉했다.
중국 대표팀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그가 악다구니를 써 대자, 마지못한 이룡이 앞으로 나섰다.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이 성지한을 시험하겠소이다.”
벌써 네 번째 시전하는 백팔나한진이다.
아무리 성지한이 멀리 있어도, 신승 이룡의 시야에 그가 닿기만 하면, 백팔나한진의 억제력이 적용되었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백팔나한진 안.
“마魔는 순리를 이길 수 없음이니. 소림은 언제나 척마의 기치 아래 선봉에 서 왔소.”
쿵!
이룡이 봉을 바닥에 꽂자.
성지한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백팔나한진이 마공에 특화되어 진을 이룹니다.]
[마공魔功 계열 무공의 위력이 제한됩니다.]
첫 게임에 이클립스에 의해진이 와해된 이후.
이룡은 계속해서 마공 특화로 진을 펼쳤다.
그러자 성지한이 들고 있던 암검 이클립스의 흑마력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큭, 여전히 성가시군……!]
‘쉬고 있어라.’
[진을 와해시키면 나도 꼭 써 줘라. 저 대머리들한테 꼭 한 방 먹이고 싶어.]
‘그래. 들어가 있어.’ 봉황기 하나만 든 채 선 성지한.
그를 향해, 봉을 든 무승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첫 번째 경기처럼, 어설프게 눈에 띄는 플레이어는 보이질 않고 모두가 소림에 소속된 무승들 같았다.
성지한은 창으로 가로를 베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촤아아악!
창의 궤적에 따라 반으로 갈라지는 소림 무승들.
하지만 모두가 다 베인 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봉에서 기를 피워올리며 성지한의 일격을 막아 냈다.
본래라면 저것도 통째로 갈라 냈을 테지만.
‘무공의 위력이 평소의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군.’
머리를 밀면서까지 제대로 펼쳐 낸 백팔나한진의 억제력은 상당했다.
그 강력했던 무혼도 절반 정도가 억제되었고.
이 상태에서 무공을 펼칠 때도 위력이 크게 제한되었다.
철혈십자 같은 멸신결에 속한 무공을 펼치지 못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나머지 신결에 해당되는 무공마저도 사용하기 힘들 정도.
휭! 휭!
거기에 더해, 죽은 무승은 금방 새로 들어오고.
살아난 무승은 봉을 강하게 휘두른다.
캉!
성지한의 창은 현란하게 움직이며, 그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주변을 압도했지만.
그럼에도 무승의 인해전술은 끝이 없었다.
=아. 성지한 선수…… 주변에 머리를 빡빡 민 무승들이 빽빽하게 압박해 옵니다!
=소림의 무승들이 아무리 베고 베어도 계속 나오는군요. 이건 뭐 좀비보다 더하지 않습니까?
=허허, 백팔나한진이라더니…… 대체 몇 명이 튀어나오는 겁니까?
해설진이 질려 버릴 정도로 끝도 없이 덤벼드는 무승.
저 안에 서 있는 사람이 성지한이 아니라 다른 워리어 플레이어였으면, 진작에 저들이 들고 있는 봉에 얻어맞고 버텨 내질 못했을 것이다.
하나 성지한은 힘이 억제된 와중에서도 무승들의 공격을 모조리 쳐 내고 반격해 내고 있었다.
성지한의 입가에 웃음기가 걸렸다.
‘이런 전투도 맛이 있군. 힘이 제약되니 오히려 좋은 점도 있어.’
별의 능력, 무혼을 얻고 난 이후, 성지한은 이 힘을 100퍼센트 다루지 못했다.
능력의 한계를 모조리 끌어내기보다는 그냥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무력을 사용하는 느낌.
하지만 이렇게 힘이 제약되고 나니, 오히려 무혼의 한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내 힘…… 여기서 더 끌어 낼 수 있다.’
휙!
횡소천군이 또 한 번 펼쳐치자.
촤아아악!
승려들이 일제히 갈라졌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가로 베기였다.
모든 무승의 봉에는 강렬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성지한의 일격을 막지 못했다.
“이놈…… 정말 끈질기구나!”
이룡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놈, 어째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다.
1경기 때처럼 강력한 위력의 무공을 쓰지는 못했지만, 창을 다루는 기본기가 완벽하기 그지없어서 질투와 경외심이 동시에 들 정도였다.
저자는 단순히 플레이어로 선택받아 능력치를 올려 강해진 워리어가 아니라, 기예 그 자체가 이미 완성된 무인 같았다.
“그만 좀 죽어라……!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이룡의 손이 금빛으로 빛났다.
휭!
1차전과는 완전히 수준이 다른,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강기가 성지한에게 날아들었다.
주변의 무승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강렬하게 몰아치는 장법은 이내 거대한 황금의 손 형상을 그렸다.
저 안에 담긴 무의 수준은 결코 정교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백팔나한진의 보조를 받아서 그런지 위력 하나는 절륜했다.
‘기본공으로는 막아 낼 수 없겠어.’
그래서 2, 3차전 때는 공격을 피하며 틈을 노렸다.
그때는 그래도 충분히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2번의 경기를 패배하고는 알았다.
‘대표팀에는 여유가 없어.’
자신만 빠지면 모래성처럼 손쉽게 와해되는 대표팀.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었다.
성지한은 이에 대처할 무공을 떠올렸다.
세 가지 신결은 힘이 제약된 지금 사용할 수 없었지만.
딱 한 가지 무공은 가능했다.
‘천뢰봉염天雷鳳炎.’
천뢰신결에 봉황염을 융합시킨 자신만의 무공.
무혼의 성장을 위해 천뢰신결을 개조시킨 이 무공은 평소엔 성공률이 낮은 무공이었다.
천뢰의 힘이 월등히 강해, 봉황의 불길은 그저 깃드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힘이 제약되니, 오히려 제대로 융합시킬 수 있어.’
백팔나한진에 갇혀 과하게 작용하던 힘이 억제되니.
첫 초식을 펼칠 길이 보였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포赤雷砲
창끝에 붉은빛의 전기가 번뜩이더니, 단 한 줄기의 뇌전이 뻗어 나갔다.
붉은 뇌전이 내뿜는 기세는 성지한이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천뢰의 무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고 약해 보였지만…….
“뭣……?!”
촤아악!
한순간에 대력금강장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뭉쳐 날아오던 강기는 그대로 새빨갛게 타올랐고.
한 줄기의 적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지지지직-!
신승 이룡이 어찌할 새도 없이, 붉은 벼락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이룡의 가슴팍에는 어느새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균열의 틈으로, 불꽃이 피어오른다.
순식간에 타오를 것 같은 몸뚱이.
‘하지만 여기는 백팔나한진 안이다!’
백팔나한진에서의 소림방장 이룡은 불사였다.
아무리 저 붉은 벼락이 상식을 초월한 파괴력을 지녔다고 해도, 이깟 뚫린 몸은 금방 재생이 될 터였다.
그래야 했는데…….
‘왜. 왜 이러지……?’
오히려, 균열은 더욱 커져만 간다.
가슴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이다.
소림방장의 재생력은 이 불길을 막는 데에도 버거웠다.
이룡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탈력감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털썩-
그가 무릎을 꿇고, 얼마 되지 않아.
가슴을 관통한 적뢰는, 더 멀리까지 뻗어 나갔다.
소림사라고 쓰여 있는 사찰에까지.
투둑……!
사찰이 맞닿기 전, 두꺼운 보호막이 적뢰의 앞을 막았지만.
붉은 벼락은 이를 그대로 찢으며, 건물을 관통했다.
화르르르르!
불길이 사방에서 치솟으며, 건물이 타오른다.
소림사 석 자가 쓰인 현판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지자.
성지한을 포위하던 소림무승들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서서히 투명하게 변해 갔다.
그러며,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백팔나한진의 중심이 무너졌습니다.]
[백팔나한진이 해체됩니다.]
‘소림사 사찰이야말로 진의 중심이었군.’ 원래는 적뢰포로 대력금강장을 찢고 이룡에게 적당히 타격만 입힐 생각이었건만.
‘천뢰봉염의 위력…… 내 예측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쿠르르르!
성지한은 붕괴되어 가는 진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백팔나한진.
이번 경기 내내 속 썩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무공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는 단초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무공을 자신에게 맞게 일부 변형했습니다.]
[무혼이 5 오릅니다.]
그간 스탯 포인트를 찍어도 오르지 않던 무혼이 한 번에 5가 올라 버렸다.
거기에 더해.
[봉황기에 융합된 ‘구름창 운뢰’가 플레이어를 주인으로 완전히 인정합니다.]
[스킬 ‘뇌운 소환’을 획득합니다.]
봉황기와 합체시켜 놓았던 구름창 운뢰가 적뢰포의 위력을 실감했는지,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이제 이번 경기만 잡으면 되겠군.’
20분 달라고 했지만, 체감상 15분 만에 끝낸 것 같으니.
이제 게임 맵에 복귀해서, 적진을 휘저으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성지한이 백팔나한진에서 나왔지만.
[본진이 부서집니다.]
[게임에서 패배합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적의 진영이 아니라 게임 패배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