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45화>
대기 길드의 길드마스터실.
이하연은 심각한 얼굴로 성지한에게 보고했다.
“오너님. 저희 길드로 들어와 있는 중국 측 플레이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임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숫자가 얼마나 되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인원이 좀 많아서…… 6명쯤 됩니다.”
봉황기의 특수 효과로 인해 길드원 수용 가능 인원은 30명으로 늘어 있었다.
그중에 중국 사람만 6명이면, 20퍼센트나 되는 셈.
“중국 사람이 많긴 했네요.”
“이번에 새로 나온 자리를 경매에 붙였는데, 미국이랑 중국에서 대부분 가져갔거든요. 한 명당 한 달에 100억 정도를 내고 있어요.”
“한 달마다 600억의 이득이 날아가게 생겼네요.”
“왕린 님은 50억으로 들어오셔서. 정확히는 550억이죠.”
“그럼 잘 가라고 보내 주고, 새로 구하죠.”
“새로 구하게 되면…… 아무래도 저번보다 수익이 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이하연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성지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자기들이 매달 550억씩 지불하는 큰손이니만큼, 이렇게 계약을 해지한다고 나서면 지금처럼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만.
‘안 벌어도 돼.’
성지한은 수익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인민회 측에 통보해 주십시오. 계약 해지 의사를 받아들이겠다고.”
“네, 알겠습니다.”
이하연은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인민회에 계약 해지를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한 후, 성지한과 잡담을 나누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녀 역시 이 사건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 않는 듯했다.
“채팅 매니저가 그간 할 일이 별로 없다가, 업무가 갑자기 과다해졌다며 울상이에요. 성지한 님 채널뿐만이 아니라, 길드 채널에도 갑자기 악플이 마구 달리고 있고요.”
“집요하군요.”
“그러니까요. 무공 이름을 알아내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커피를 마시다가, 태블릿 PC에 뜬 메시지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왕린 님이 연락이 오셨어요. 오너님과 꼭 한번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그래요?”
“말씀 나누실 거면, 제가 중간에서 통역해 드릴게요.”
“……중국어도 하십니까?”
“네. 나름 공부했죠.”
상당한 능력자였군.
왜 저번 생에서는 그렇게 도박만 했나 몰라.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성지한은 흔쾌히 이하연에게 통역을 맡겼다.
태블릿 PC를 통해 연결된 화상 통화에서는 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 왕린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지한 님. 계약 해지를 받아들이시다니요…… 좋게 좋게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인민회에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린 겁니다.”
[전 사실 대기 길드에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만…… 정부의 방침에 따라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왕린은 그러면서, 은근슬쩍 본론을 꺼냈다.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서, 너무 곧기만 해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지금 정부에서는 성지한 님이 전혀 굽히질 않는다고 상당히 분개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끝까지 가면 성지한 님께만 해가 될 터. 제가 중간에서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중재하겠습니다.]
“중재요?”
[예. 굳이 사문과 연원은 굳이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무공 이름이라도 저한테만 알려 주십시오. 그럼 제가 국가안전부 쪽에 이야기해서 더 이상의 압박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게 회유와 협박을 투 트랙으로 구사하는 굿 캅 배드 캅 전략인가.
월 550억을 날리고 피곤하게 압박당하느니, 그냥 이쯤에서 합의 보자고 하는 거겠지.
‘근데 무공 이름이면…….’
성지한은 씩 웃었다.
생각해 보니…….
무공 이름, 알려 줘도 되잖나?
“좋아요. 그렇게 무공 이름이 궁금하시다면 보여 드리죠.”
[오…… 정말!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 보세요.”
스킬 창을 띄운 성지한은 스킬 이름만 공개 상태로 바꾸어 창을 돌려 주었다.
“제 무공 이름은 무명신공無名神功입니다.”
[……무명無名, 이라고요?]
“예. 왕린 님께만 알려 드리는 거라지만, 중국 정보부와 중재를 해 주신다면 이 무공의 진명을 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저도 궁금하군요.”
[허어어어어! 이름이 없는 무공이라니, 이 무슨……!]
“그리고, 인민회와의 계약 해지는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대기자를 바로 바로 넣어야 하는지라.”
[자, 잠깐! 그건……!]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삑-
성지한은 화상 통화를 끊었다.
“대기자 있죠?”
“네. 있긴 한데, 인민회처럼은 임대료를 높게 부르진 못할 거예요.”
“괜찮아요. 이런 분란을 겪느니 돈 좀 덜 벌죠. 그리고 이제부터 새로 임대받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동북아시아 리그 소속이 아닌 이들로 받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이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같은 리그 소속보다는, 다른 지역 리그 선수들을 받는 게 마음이 편하지.’
지금이야 당장의 수익 때문에 주저한 거지, 오너가 어느 정도 손해를 봐도 상관없다고 나서 준다면야, 자신도 거리낄 게 없었다.
“아. 그리고 이번 중국전은, 자유롭게 베팅하세요. 저도 좀 애매하네요.”
러시아전 때는 100퍼센트 승리할 자신이 있었지만.
중국전은 성지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상대는 세계 랭킹 2위의 국가.
거기에 저들이 정말 백팔나한진까지 갖추고 있다면, 러시아전처럼 3:0 완승은커녕 리그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불확실했다.
“베팅이요…….”
한편 성지한의 말에, 이하연은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저, 베팅…… 이제 안 하려고요.”
“설마, 러시아전 때 돈 다 날렸어요?”
“아니에요! 오너님이 알려 주신대로 해서, 그때 엄청 벌었어요! 빚도 갚았고요!”
“네? 벌었습니까?!”
성지한은 오랜만에 화들짝 놀랐다.
제로가 돈을 벌어?
알려 줘도 반대로만 베팅하는 자폭의 화신이?
“……왜 이렇게 놀라세요?”
“아니. 벌었다니까.”
“흥! 제가 맨날 잃는 줄만 아세요?”
“솔직히 그랬습니다. 정말 의외네요.”
“어쨌든……! 요즘은 안 하고 있어요. 집안에서 신신당부를 해서.”
“집안에서 드디어 알았답니까?”
“네…… 아니, 뭐 집에선 이미 파악은 하고 있더라고요.”
이하연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선 봐야 하니까 당분간은 하지 말라고…….”
“선이요?”
“네.”
“다음 주에 한 건, 다음 달에 두 건 잡혔습니다.”
표정이 푹 썩어 있는 이하연의 뒤에 서 있던 임가영이 딱딱한 얼굴로 덧붙였다.
“한 분은 20살 차이에 대머리. 한 분은 120kg. 한 분은 비공식적으로 애가 둘이 있으신 분이죠.”
평소보다도 더 차갑게 말하는 임가영.
성지한은 그걸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사람들과 선을 봅니까? 하연 씨면 더 좋은 신랑감을 구할 수 있을 텐데.”
재벌가 이성 가문의 딸.
거기에 외모도 여타 연예인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나다.
성격도 괜찮은 편이고.
솔직히 도박 빼곤, 재벌가에서도 일등 신붓감인데.
‘도박 중독이 재벌가에 그렇게 치명적인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저런 사람들과 선을 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지한의 의문에, 임가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집안 사정이 좀 있습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성지한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대답할 뿐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저…… 오너님. 근데 만약 선 봐서 결혼하면, 길드는 어쩌죠?”
“……같이 병행 못합니까?”
“선 보는 대상 재벌가도 다 길드를 운영하고 있어서요…… 동시에 하게 할지 모르겠어요.”
이하연의 거취가 대기 길드와 연결되자,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진 것이다.
‘이하연만 한 육성 전력을 어디서 구하지?’
육성 A.
그녀가 지닌 기프트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능력이었다.
거기에다가 길드 마스터로서도 대기 길드를 잘 운용해 오지 않았던가.
근데 결혼하면 길드를 떠날 수도 있다고?
성지한은 바로 말했다.
“선 보지 마세요.”
“……네에?”
“솔직히 하기 싫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집에서…….”
“저런 남자들만 소개시켜 주는 집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냥 짐 다 들고 소드 팰리스로 오시죠.”
이하연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스터직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태도가 싹 바뀌었다.
“에휴…… 그럼 집안이랑 척지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세요?”
그때, 우두커니 서 있던 임가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 일, 성지한 님이 도와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야! 잠깐! 그건……!”
“어떻게 도와주면 되죠?”
“그 방법은…….”
* ? * ? *
중국전을 사흘 앞둔 시점.
배틀넷 센터 작전실.
한국 국가대표 감독, 노영준은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중국…… 너무 강한데…….’
러시아가 워리어진이 가장 강력했다면.
중국은 워리어진 빼고, 모든 클래스가 다 세계 최고급이었다.
특히 중국 소속 마법사와 서포터에 SSS급 기프트가 있는 선수가 있어서, 검왕이 있던 시절에도 한국의 대 중국전 승률은 40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이놈들을 뽑을 수밖에 없었지…….’
노영준은 선수 명단을 바라보았다.
대 중국전 라인업에는, 저번에 국가대표 명단에서 잘렸던 1군 워리어들이 들어가 있었다.
하유리를 폭행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복귀한 워리어진.
이들이 뽑힌 데에는, 저들이 속한 10대 길드에서 선수들을 복귀시키라고 압박을 넣은 것도 있었지만.
중국에 어떻게든 대항해 보려는 노영준 감독의 의지가 제일 컸다.
성지한이랑 어떻게 시너지를 내면, 이길 가능성이 제로에서 조금이나마 올라가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노영준 감독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동문 새끼들 1군으로 바로 콜업하누
-??? : 이번 일과 관계없지? 그래 열심히 하자~^0^
-너무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
-에이 그래도 하유리 폭행한 놈은 안 불렀잖아. 쟤들이라도 있어야지 중국이랑 좀 해 볼 만하지 않겠어?
-러시아전 때 2군 하는 거 보니 암담하긴 했음 ㅋㅋㅋㅋ 2군은 자동문이 아니라 그냥 문이 없는 수준이자너~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비난은 덜한 편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서 성지한의 사문을 알아내겠다고 대대적으로 압박을 펼친 게 한국인의 자존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쟤들 콜업해서라도, 중국 놈들 이번엔 꼭 이겨야 함
-ㄹㅇ 성지한한테 하는 거 봤냐? 사문 알아내겠다고 별 ㅈㄹ 쌩쇼를 하는데 어이가 없더라 ㅋㅋㅋ-무공이 중국 거니까 당연히 알려 줘야 한대 ㅅㅂ ㅋㅋㅋㅋ 맡겨 놨음 아주 -근데 왜 그런 걸 알라고 하는 거임? 그거 안다고 뭐 변해?
-몰라 중국 애들도 합심해서 성지한 무지성으로 까긴 하는데, 지들도 궁금해하더라 ㅋㅋㅋㅋ사고 친 자동문 애들을 다시 콜업해서라도, 어떻게든 중국 한 번 이겨 보자!
현재 한국인들에겐, 이런 마인드가 더 컸다.
“흠흠. 다시 오니 좋네.”
워리어진 1군 리더였던 김동우는 거들먹거리며 배틀넷 센터 작전실에 도착했고.
“역시 센터 냄새가 좋다니까요!”
그와 언제나 같이 다니던 이윤기도 씨익 웃으며, 뒤를 따랐다.
“중국 때문에, 여론의 반발이 적어서 받아들이는 거야. 이놈들아. 다신 사고치지 마라!”
“하하. 알겠습니다. 감독님. 성지한은 안 왔나요?”
“……왜?”
“저번 일 사과해야죠.”
노영준 감독은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쫓겨나고는 뭔 일이래, 이놈이.
진짜 사과하려는 거 맞아?
“아. 당연히 해야죠. 참 나. 여자 친구가 있다면 있다고 말을 먼저 해 주시지. 그 형님도 참.”
“……여자 친구?”
“네. 감독님. 아. 설마 모르셨어요? 오늘 뉴스 터졌는데.”
김동우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기사를 보여 주었다.
-성지한의 그녀를 포착하다!
기사엔 한강 공원의 벤치에서, 오붓하게 앉아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사진 속에는 대담하게도 서로 끌어안고 입 맞추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 사람…… 대기 길드의 길드 마스터잖아?”
업계 관계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
노영준 감독은 여자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성지한도 별수 없구먼. 패치 애들한테 걸렸네.”
“솔직히 저 여자 길드 마스터 될 때부터 수상하긴 했어요. 플레이어도 아닌데 길드 마스터가 됐잖아요?”
“예쁘긴 하다, 야. 연예인 불러도 안 나온 이유가 있네.”
“제가 또 이성 길드 아닙니까. 길드에 있을 때부터 인기 쩔었어요. 이성가 출신이라 다들 쳐다만 봤지.”
두 워리어들이야 태평하게 이하연을 평가하기 여념이 없었지만.
노영준 감독은 기사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으음…… 성지한 선수. 괜찮을지 모르겠군.”
중국 관련된 이슈에 열애설까지 터지다니.
선수 멘탈이 너무 흔들리지 않을까?
감독은 성지한이 걱정돼서, 그가 배틀넷 센터에 오자마자 멘탈 케어를 위해 그를 불렀지만.
“아. 그거 제가 터뜨린 거예요.”
정작 불려온 성지한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