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42화>
‘방송을 틀어야 감지가 되는 거였나?’
성지한은 난데없이 띄워진 메시지에 눈살을 찌푸렸다.
완벽하다 싶던 배틀넷에도 이런 허점이 있었다니.
스으으윽-
한편, 잘린 팔이 순식간에 재생된 엘프는 경악에 찬 눈으로 성지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몰라도 돼.”
팟-!
성지한의 왼손에서 순식간에 생성된 이클립스가 엘프의 몸을 스쳤다.
그야말로 문답무용.
이내 그녀는 거미줄처럼 촘촘한 혈선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엘프한테도 가차 없네ㄷㄷㄷㄷ
-ㄹㅇ 쟤 고자임? 일말의 망설임도 없냐;;
-아니, 적한테 인정사정없어야지 뭔 고자예요?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 여신이잖아ㅜㅜㅜㅜ
세계제일로 미녀로 공인된 이토 시즈루와도 비견될 미모를 지녔던 엘프를 단칼에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리니, 몇몇 시청자들은 성지한 고자설을 진지하게 밀었지만.
꿈틀…… 꿈틀…….
땅에 떨어진 엘프의 파편이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순식간에 뭉쳐 재생하기 시작하자,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 이거 재생하는 거야??? 저 상태에서?
-아 화면 끌 수 없음? ㅈㄴ징그러운데;;;
-밥 먹고 있었는데 ㅠㅠㅠㅠ
-배틀넷은 왜 모자이크 기능이 없냐 우욱씹
[하여간 저 바퀴벌레…… 더 조질까?]
재생되는 엘프를 보곤 아리엘이 진절머리를 치며 말했지만.
‘아니. 잠깐…… 이거, 시청자들에게 보여 줘야겠어.’
성지한은 이번 기회에 대중들에게 엘프의 진면목을 보여 주자고 생각했다.
스으윽-
“너…….”
살점 중 가장 먼저 재생된 얼굴 부위에서.
엘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최상위 개체 이상이구나.”
꿈틀. 꿈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바닥에 흩어진 핏방울과 살점이 일제히 성지한에게 날아간다.
[조심해라! 엘프의 육신은 그 자체가 무기다.]
‘알고 있어.’ 아리엘의 경고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성지한.
그는 검을 그대로 내리쳤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태산압정泰山押頂
촤아아악!
위에서 아래로, 이클립스가 거력을 담아 움직이자, 엘프의 파편이 일제히 터져 나가며 소멸했다.
말 그대로 흔적조차 남지 않는 ‘소멸’이었다.
또한 바닥에서 서서히 재생하고 있던 엘프의 얼굴도 반으로 갈라져 길쭉한 귀만이 일부 남은 상태.
꿈틀…… 꿈틀…….
한데.
그 작은 조각에서, 살점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10초도 되지 않아 다시 생기는 얼굴.
“네가 어떻게 골드리거지?”
엘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태연하게 물었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재생력 실화???ㄴㅇㄱ
-쪼가리만 남았는데 살아난다고??
-바퀴벌레도 울고 갈 듯 ㄷㄷ
-당장 엘프 포스터 떼 버렸다;;; 꿈에서 나올까 무섭다ㄷㄷㄷㄷㄷㄷ-ㅇ???포스터는 언제 팔았음?
-내가 셀프로 만들었지;;
상식을 초월한 재생력에, 재생 과정에서 보여 준 그로테스크함 때문일까.
방송을 보고 미모에 반했던 남자들까지, 엘프를 괴물 같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 행성의 성좌 후보자인가. 이름이 무엇이냐?”
얼굴만 재생된 엘프는 여전히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조금 전, 성지한을 데려왔을 때 희열에 차 있던 때랑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보다 더 차갑고, 기계적이었다.
“알려 주겠냐?”
“‘5번째’가 명한다. 스캔해라.”
그녀가 바람의 정령을 바라보자.
정령의 렌즈에서, 빛이 났다.
-ID를 스캔합니다…….
-스캔합…….
그때.
펑!
바람의 정령 둘이 동시에 터져 나가더니, 렌즈가 허공에서 소멸했다.
쾅! 쾅!
거기에 사라지는 것은, 단지 정령뿐만이 아니었다.
이 공간 전체가 사방에서 폭발하며 삭제되고 있었다.
“시스템이 감지해 버렸군.”
엘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옆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거대한 시험관이 있었다.
“‘5번째’가 명한다. 자폭하라.”
펑!
그녀의 한마디에, 일제히 터져 나가는 시험관.
그러자 일제히 터져 나가는 시험관에서, 거대한 생명체가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온갖 생명체가 뒤섞여서, 모자이크를 끼워 맞춘 듯한 형상.
예전에 보았던, 플래시 골렘 그 이상으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아 밥 먹고 있다고요 ㅠㅠ 제발 그만 ㅠㅠ
-와 눈알이 몇 개냐? 17개 있네 ㅎㅎ; 웩
-난 이미 한 번 토하고 옴; ㅋㅋㅋㅋ 아니 오늘은 좀 심한데...
-ㅅㅂ 우리 엘프 여신님이 이런 일을 한다고?
-아직도 여신이라 하네; 아까 얼굴 재생하는 거나 돌려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하지만 이런 끔찍한 광경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퍼퍼퍽!
자폭 명령이 떨어지자, 거대한 생명체들의 몸이 부풀더니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는 각종 종족들의 파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성지한의 발치에는 눈알마저 굴러왔지만.
퉁!
성지한의 몸에 닿기도 전에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죄다 섞어 놨군그래.”
[허…… 주인은 참으로 평온하군.]
“그럼 뭐, 굳이 놀라야 하나?”
인류가 멸망하는 것도 보고 왔는데.
생명체 좀 섞은 것만으론 성지한을 놀래킬 수는 없었다.
특히 엘프 종족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이상에야, ‘이 미친놈들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펑! 펑!
사방에서 시험관 속의 거대 생명체가 터져 나가고.
이 공간이 완전히 붕괴될 쯤.
[배틀튜브 송출을 정지합니다.]
[게임을 일시 정지됩니다.]
게임이 멈추었다.
* ? * ? *
[증거 자료를 수집합니다…….]
슈우우우-
시험관이 있던 순백의 공간이 순식간에 해체되어 갔다.
스스로 폭발하다가 멈춘 생명체도, 어디론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실험실이 사라지고 나니 보이는 건.
‘……우주?’
별들이 보이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성지한만 홀로 떠 있었다.
[‘세계수 연합’의 ‘연구선’을 감지하여 해체합니다.]
[증거 자료를 완전히 수집합니다…….]
연구선이라니.
아까 탄 게 엘프의 우주선이라도 된 건가.
딱히 중력이 없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건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무렵.
[‘녹색의 관리자’에게 항의 절차에 들어갑니다…….]
[‘녹색의 관리자’가 위법 행위를 일부 인정했습니다.]
[‘세계수 연합’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녹색의 관리자?’
이게 세계수 연합과 관련이 있는 건가.
지금 당장은 메시지에 대해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계수 연합과 관련된 정보는, 모두 기억해 둬야 해.’
성지한은 일단 이를 기억해 두기로 하며, 세계수 연합에게 어떤 페널티가 내려올지를 기다렸다.
[‘세계수 연합’의 스페이스 리그 참전권이 1개 박탈됩니다.]
‘호오.’ 성지한은 저번 생을 떠올렸다.
스페이스 리그에서, 1~5위를 모두 차지한 세계수 연합 소속 엘프 행성들.
그때를 생각하면 1개가 빠진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럼에도 성지한은 아쉬운 마음에 말문을 열었다.
방송이고 뭐고 모두 멈췄지만, 성지한 자신은 움직일 수 있는 상황.
“참전권 1개? 이게 큰 처벌인가. 더 박탈하지 그래?”
[참전권을 더 이상 박탈하기에는 죄가 약합니다.]
그러면서 페널티는 하나 더 추가되었다.
[서바이벌 맵, ‘실험 구역’이 영구적으로 폐지됩니다.]
[‘녹색의 관리자’는 향후 100년 동안 게임 맵을 생성할 자격을 잃게 됩니다.]
관리자가 맵을 생성할 권한도 부여받고 있었나.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녹색의 관리자라는 존재에게 페널티가 가해진 것 자체는 좋았지만.
‘세계수 연합…… 뒷배가 어마어마한데?’
갑자기 튀어나온 ‘녹색의 관리자’라는 존재가, 성지한의 골치를 아프게 했다.
세계수 연합만 해도 저번 생에서 이길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는데.
그놈들이, 시스템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관리자와도 끈이 있단 말인가.
‘더 강해져야 해.’
지구 내에서야, 강함을 이제 어느 정도 입증했지만.
우주적으로 시야를 넓게 보자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방랑하는 무신 쪽을 생각해 보면 지금 수준에선 무신은커녕 그의 종인 동방삭한테도 이길 수 없고.
스페이스 리그에서도 세계수 연합의 행성 하나는 날렸지만 여전히 4개의 행성은 건재했다.
‘무혼을 더 성장시켜야겠어.’
성지한이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때.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서 떠올랐다.
[녹색의 관리자가 사과의 의미로 보상품을 보냈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 주의 : 보상품 안에 함정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이번 메시지에는 특별히 주의 사항까지 담겼지만.
“받겠다.”
성지한은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보상을 받았다.
[생명의 씨앗]
-등급 : SSS
-생명의 기운이 응축된 씨앗.
-섭취할 시, 잔여 능력치 포인트가 +10 오릅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친 성능이군.’ 잔여 능력치를 +10이나 올려 주다니.
SSS급 등급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10을 포기할 수는 없지.’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생명의 씨앗을 꺼냈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생명의 씨앗’은, 흡사 사과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유리에게 감정을 받고 섭취하는 게 보다 안전하겠지만…….’
혹여 부작용이란 게 주변에 피해를 미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냥 이 우주 공간에서 먹는 게 나을 터.
콰득-
생명의 씨앗을 한입 베어 물자, 성지한이 먹은 쪽은 물론.
아직 먹지 않은 부분까지 섭취된 것처럼, 사라졌다.
[생명의 씨앗을 흡수합니다.]
[잔여 능력치 포인트가 +10 오릅니다.]
그러고는 끝나는 메시지.
이렇게만 보면 그 어떤 부작용도 없는 것 같았지만.
‘몸에 뭔가 들어왔군.’
성지한은 체내에 잠입한 은밀한 기운을 감지했다.
예전에 가슴팍에 새겨졌던 세계수의 잎사귀와 유사한 그 기운은, 교묘하게 성지한의 머리와 심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무혼이 아니었으면, 파악하기 쉽지 않았겠어.’
워낙 움직임이 은밀했기에, 무력과 포스가 있던 시절이라면 이런 게 체내에 있는지 긴가민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경지에서는, 생명의 씨앗에서 나온 기운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었다.
성지한은 이걸 완전히 없앨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이 기운에 대해서 연구를 해 봐야겠다.’
연구 목적이면, 이 힘을 그대로 쌓아 둘 필요는 없겠지.
이내 성지한은 침투해 들어온 기운의 90퍼센트 이상을 방출했다.
슈우우우-!
씨앗에서 나온 기운을 방출하자, 성지한의 가슴팍에서 녹색의 연기가 피어오르며 작은 씨앗이 날아갔다.
하나하나가 진한 생명력을 담고 있는 씨앗.
현재 여기가 우주 공간이라 발아하지 못할 뿐.
지구에서 뿌렸다면, 허공에서라도 싹을 틔웠을 것 같았다.
‘여기서 먹길 잘했군. 남은 기운도 지구에서는 방출하지 말아야겠어.’
성지한은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퀘스트 클리어한 건가?”
[에픽 퀘스트를 규격 이상으로 클리어하여, 맵의 본질을 파악하셨습니다.]
“본질 파악이라…… 전혀 안 됐는데?”
엘프의 연구선에 납치된 이후, 방송을 켜니까 상황이 끝나 버렸는데.
사실상 성지한이 오늘 게임에서 한 건, 시청자들에게 엘프의 진면목을 보여 준 것밖에 없었다.
나머지야 배틀넷 시스템이 알아서 연구선을 철거한 거지.
[세계수 연합의 창시자, ‘녹색의 관리자’는 게임 맵을 통해 각 종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했습니다. 이러한 수집 과정에서, 종족의 한계를 넘은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뛰어난 이들을 연구선을 통해 연합의 연구소로 납치했습니다.]
지이잉-
시스템 메시지 위에, 사진이 하나 떴다.
아까 시험관이 깨지면서 보았던, 여러 종족을 뭉쳐 만든 거대 생명체였다.
‘나도 잡혔으면 저 꼴이 되었겠군.’
“그렇다면 처벌이 더 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녹색의 관리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생명의 연구.’ 게임 맵을 통한 데이터 수집은 위법하지 않습니다. 다만 튜토리얼 맵에 침범하여 플레이어를 납치하는 것은 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므로 처벌되었습니다.]
“지금이 튜토리얼이 아니었다면, 녹색의 관리자는 처벌받지 않는 건가? 플레이어를 게임에서 납치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건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성지한은 그 대답을 듣고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튜토리얼 끝나고 이런저런 이유로 실종되는 플레이어들이 적지 않았지…….’
저번 생을 생각하며, 냉정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튜토리얼 이후의 배틀넷.
그 세계는 지옥이다.
게임 안에서도 GP가 없으면 영원히 전사하고, 이런저런 이로 실종되고는 했지.
이런 악마의 게임을 계속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스페이스 리그에서 살아남아, 배틀넷에서 벗어나야 한다.
[퀘스트를 완벽히 클리어하여, 맵의 본질을 파악했습니다. 더 큰 업적 포인트와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5 오릅니다.]
[업적 포인트 300,000을 얻습니다.]
[세계수의 잎사귀를 얻습니다.]
‘1개 더?’ 성지한은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았다.
아까 강탈한 것에 더해서, 하나의 나뭇잎이 더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바이벌이 종료됩니다.]
[맵의 교체를 위해, 전 세계의 골드 리그에서 5일간 서바이벌이 열리지 않습니다.]
성지한은 게임 종료 메시지를 보면서.
‘한 개는 바로 써야겠군.’
돌아가자마자, 2개 중 한 개는 바로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