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138화 (138/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38화>

무명신공無名神功

멸신결滅神訣

철혈십자鐵血十字

그림자검 이클립스가 무정히 가로를 그었다.

그러자.

“엇……!”

슈우우우-!

러시아 워리어들이 장비하고 있었던 갑주와 무구가 해체되며 가루로 변해 갔다.

그렇게 흩어진 금속의 가루는 이클립스의 검로를 따르는 듯싶더니.

푹!

강철의 금속이 되어, 대지에 깊게 뿌리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윽-!

이번엔 봉황기가 이클립스의 뒤를 이어, 물 흐르듯 세로를 베었다.

조금 전에 보여졌던 검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허공에 십자十字를 그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무…… 슨……!”

두근! 두근!

블라디미르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성지한이 펼친 건, 단 두 번의 휘두름에 불과할진대, 버서커 모드의 신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경고를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도끼와 갑옷을 이루는 금속 일부분이 이상 현상을 보여서가 아니었다.

스으으윽-!

도끼에 깃들었던, 혈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기운은 창의 흐름에 순종하여, 주인에게로 돌아가질 않고 오히려 성지한이 그려 내는 종縱을 완성했다.

펑!

블라디미르의 몸이 저 멀리 튕겨나가며, 그와 동시에 ‘블러드 레이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허공에 흩날려 사라졌다.

“이이익!”

그래.

상대가 강한 건 알고 있다.

플레이어 성지한.

비록 골드에 불과하지만, 그가 보여 준 놀라운 업적을 보며 블라디미르는 방심을 전혀 하지 않던 상태였다.

애초에, 국가대표 다이아 클래스를 한 방에 날리는 건, 그로서도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힘에서 밀린다 해도 이해는 가능했다.

하지만.

‘나만의 혈기가……!’

버서커가 다루는 힘, 혈기.

이것이 통째로 저쪽에 날아갈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파아아악-!

바닥이 변한다.

가로로는 강철이 박히고.

세로로는 피가 물든다.

철과 혈이, 획을 하나씩 맡은 십자의 문양이 순식간에 사우스게이트의 바닥에 새겨졌다.

“크으으윽!”

“우,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

블라디미르야 도끼에 깃든 혈기를 빼앗겼을 뿐이지만.

다른 러시아의 워리어들은 심각한 상태였다.

그들의 온몸에서, 피가 마치 땀이라도 나듯 줄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줄기, 한 줄기가 모여 바닥을 적실 정도로.

그 모습을 본 블라디미르는 대번에 정신을 차리고 일갈했다.

“……내가 성지한을 맡겠다! 달려!”

사우스게이트에서 가장 큰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문을 넘는 것.

굳이 하나 남은 상대를 죽이겠답시고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다른 선수 중 단 한 명만 지나가도 포인트는 획득할 수 있으니!

‘한계까지 폭발시킨다!’

블라디미르는 전력으로 버서커 모드를 발동하며 성지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우우우-!

접근할 때마다 갑옷은 해체되어 바닥에 박히고 핏빛 혈기도 약해져 갔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마음 먹은 블라디미르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쾅!

도끼와 검이 맞붙자, 거대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큭……!”

그리고 이 격돌에서 한 발짝 물러난 것은, 블라디미르 쪽.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전력을 발휘한 버서커 모드다.

그것도 팀의 버프는 물론 삼각진의 시너지마저도 모조리 자신에게 몰아 받은 상태이거늘.

전심전력을 다한 일격임에도, ‘광역’ 스킬을 사용한 성지한과 동수도 이루지 못한 말인가…….

“그럴 리가!”

블라디미르는 이를 부정하듯, 도끼를 내리찍었다.

전력을 모아, 찍어 누르는 일격.

캉!

하나 봉황기는 가볍게 도끼를 쳐 냈다.

검과 창.

리치가 확연히 다른 두 무기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성지한.

블라디미르는 상대가 지닌 무의 역량을 보며 침을 삼켰다.

‘마치 검왕을 보는 것 같군……!’

물론 검왕보다는 아직 압박감이 덜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저 괴물 같은 이가 아직 골드리거라는 것.

레벨이 낮은 이때에도 이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블라디미르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가 성장하기 전에, 빨리 한국을 상대로 승을 따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생겼다.

그래도.

“먼저 가겠습니다……!”

“그래. 일단 지나가기만 해!”

블라디미르의 마크 아래, 러시아 워리어들 일부가 성지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최대한 그와 접근하지 않으려고, 가장자리에서 이동한 전사들.

모두가 225레벨 이상의 최정예 워리어라는 걸 생각하면 골드 상대로 우습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모두들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한국에게서 1승을 따야 한다!’

‘나중에는 진짜 못 이길지도 몰라!’

러시아의 최고 전사, 블라디미르마저 이겨 내는 성지한.

그가 더 성장하면 나중에 어떤 재앙으로 들이닥칠지 뻔히 예상이 가능했으니, 그전에 1승을 따 두자고 모두가 합심한 것이다.

“흠…….”

성지한이 흘깃 옆을 쳐다보자.

“어딜 보나!”

블라디미르가 짐짓 고함을 지르며, 필사의 일격을 시전해 나갔다.

캉! 캉!

여러 번 무기가 맞닿고.

블라디미르는 밀리는 와중에서도, 간간이 반격을 성공하면서 일방적인 수세로 몰리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는 상황.

그리고.

‘돼, 됐다……!’

한 러시아 워리어가, 드디어 사우스게이트의 포인트 지점을 넘으려 했다.

25명이 돌진해 와서, 성지한 한 명에게 절반 이상이 쓸려 나가고.

한국 궁수진의 맹공에 포인트 지점까지 닿은 이는 결국 3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 게임은 저 선을 넘는 게 중요하니…… 응?’

그때.

푹!

성지한이 봉황기를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쿠르르르……!

철혈의 십자가 그려진 바닥 전체가 진동했다.

“……!”

그와 동시에, 십자의 중심을 이룬 사우스게이트의 전투 지점이 새하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그 새하얀 빛에서 불길함을 감지했다.

“이건……! 뛰어!”

철혈 십자의, 중심부를 지워 버리는 빛.

다른 때에 보았다면, 성지한이 펼친 스킬이 한계에 다다라 사라지는 현상이라 판단했겠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야!’

불길함을 느낀 블라디미르는 얼른 다른 팀원들에게 자리를 벗어나라고 외치려 했지만.

번쩍!

빛이 한 번 점멸하며 땅바닥에 꽂힌 성지한의 창에 새하얀 액체가 스며들자.

뚝-

철혈십자의 연결 고리가 순식간에 끊겼다.

“컥……!”

그러자.

포인트 지점에 닿으려던 러시아 전사들이 일제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블라디미르의 눈이 흐리멍덩해졌다.

지금까지는 피를 빼앗겨도 어떻게든 버티던 전사들이, 이렇게 단번에 사라지다니?

대체 무슨 일이…….

그때.

그의 눈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즉사가 발동됩니다.]

[인간종입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사망합니다.]

즉사?

“이런 미친……!”

그 말은, 블라디미르의 유언이 되었다.

도끼를 든 상태에서 가루가 되어 버린 버서커.

러시아 대표팀 전사는, 그를 끝으로 모두 전멸했다.

* ? * ? *

=아! 성지한 선수. 잘 싸웠지만……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었군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희망이 보였습니다! 졌지만, 잘 싸웠습니다!

러시아 선수가 포인트 지점을 넘으려 할 때만 해도, 안타까워하며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던 해설진은.

=아, 아니…… 이, 이건?!

=갑자기 왜, 모두 사라지는 거죠??

=대체 저희가 뭘 보고 있는 겁니까?

성지한이 바닥에 창을 꽂자, 모두가 사라지는 걸 보고 도무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허. 허허…….”

경기를 지켜보던 노영준 감독도, 그저 지금의 결과에 헛웃음만 흘렸다.

블라디미르.

그 끔찍할 정도로 질긴 광전사를 저런 스킬로 단번에 소멸시킬 줄이야.

‘1군이 필요 없다고 한 이유가 있었어.’

슈우우우…….

그렇게 1경기가 한국의 승리로 끝나고.

선수들이 배틀넷 커넥터에서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모두들 갑작스러운 게임 종료에, 혼이 나간 얼굴.

특히 성지한과 같이 사우스게이트를 막던 전사들은 더했다.

“와…… 즉사? 즉사라고?!”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러시아 전사들에게 진형이 무너진 이후에도 생존했던 대한민국 워리어 몇몇은, 철혈십자가 끊어진 마지막 공격에 휩쓸려 같이 가루가 되었다.

러시아 워리어들과 똑같은 시스템 메시지를 받아 본 그들은 도저히 영문을 알지 못했다.

뭐 이런 개사기 스킬이 있어?

그럼에도 잠시.

번쩍-!

다른 플레이어와는 달리, 배틀넷 커넥터를 활용하지 않고 대표팀 경기에 들어간 성지한이 허공에서 다시 복귀하자.

“수, 수고하셨습니다!”

같이 출전했던 워리어들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들 중, 즉사를 당했던 이들은 성지한을 보면서 몸을 살짝 떨기까지 했다.

“지, 지한아. 수고했다.”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하마터면 경기를 내줄 뻔했네요.”

부족하다니?

누가?

이 말을 들은 선수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성지한은 1경기 승리를 따내며, 그리 생각했다.

‘버프까지 받았는데, 전력을 끌어내지 못했어.’

대한민국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보내 주는 버프.

성지한에겐 정작 별 효율을 보이질 못했다.

‘버프받은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힘을 끌어냈다면 더 쉽게 이겼을 텐데.’

러시아 워리어들이 한국의 워리어들보다 강하다곤 해도, 사실 모두가 김동우보다 강하진 않았다.

그런데 성지한에게서 나름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버프의 효율 유무.

러시아 전사들은 버프 효과를 모두 활용한 반면, 성지한한테는 무혼을 얻은 이후 버프가 이제 큰 효과가 없었기에 대표팀 선발 테스트 때처럼 원 펀치로 끝내는 게 불가능했다.

‘무혼의 활용법에 더 익숙해져야 하는데 말이지. 이 정도 숙련도라면, 멸신결에서 철혈십자만 가능하겠어.’

멸신결.

천뢰신결과 암영신결이 각기 빛과 어둠의 속성에 맞게 통일성이 있던 것과는 달리.

이 세 번째 신결은, 무공 하나하나가 따로 놀았다.

다만, 속한 무공 5개의 속성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五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엮을 만한 범주에 들어갈 뿐이었다.

‘철혈십자는, 금金의 무공.’

멸신결 중에선, 그나마 가장 사용하기 쉬운 금속성의 무공.

무공의 발현에 있어, 꼭 두 가지 무기가 필요한 철혈십자는, 무기 중 하나로 ‘창’을 요구했다.

‘십자의 연결선을 끊기 위해선. 창이 아니면 안 됐지.’

갑옷을 해체하고, 생명력을 갈취하는 철혈십자.

하지만, 단순히 그런 효과만 지닌 거면 예전의 두 신결에 속한 무공의 위력이 더 강력했다.

철혈십자의 진정한 힘은, 십자가 끊겼을 때 나왔다.

‘인간종 즉사 효과는 그대로군.’

끊긴 십자의 위, 모든 인간은 즉사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세계 최고의 탱커가 온갖 버프를 두르고 있어도, 즉사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번 생에서 성지한이 철혈십자를 사용하면.

다른 나라 플레이어들은 일단 냅다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그 어떤 방비를 하더라도 즉사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도 모르니, 쉽게 당해 줘서 좋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철혈십자에 대해 생각했다.

‘스킬을 통해 써 보지 않으니 알겠군. 이 무공은 이상하다.’

이전, 상태창에 SSS급 스킬 무명신공이 등록되어 있을 때에는 철혈십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냥 레벨이 높아지고, 무력이 올라가다 보니 사용 가능해진 스킬로만 판단했을 뿐.

하지만 무혼을 통해 이 무공을 사용하니, 확실히 철혈십자는 무공 초식이라기에는 좀 이상했다.

‘애초에 십자를 왜 만들어야 하는 거지?’

피와 강철로 이루어진 두 선.

이것이 그려질 때 나타나는 위력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전사들이 버틴 것에도 보듯 적에게 피해를 끼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괜히 십자를 그릴 필요 없이.

마지막에 이를 끊어 버리며 인간종을 즉사시키는 일격만 가져오면 좋을 텐데.

‘이 안에는, 아직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숨겨진 무리武理가 있다. 이 즉사 효과만 가져와서, 개조를 하면 좋을 텐데…….’

성지한이 그렇게 굳이 십자를 그릴 필요가 있나 생각하고 있을 때.

[무혼이 1 오릅니다.]

시스템에서, 무혼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다.

‘응?’

지금껏 레벨 업을 하면서, 무혼에 포인트를 쭉 투자했음에도 오르지 않았던 그 능력치가.

단지, 철혈십자에 대해 파악하려는 것만으로도 수치 상승이 이뤄진 것이다.

‘……이제부터 성장하려면, 단순한 포인트 투자만으론 부족하겠군.’

무혼을 올리려면, 멸신결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무명신공의 강화가 필수가 된 것이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2차전을 준비했다.

“지한아, 근데…… 아까. 그 기술은 뭐지?”

“가벼운 즉사기입니다. 인간에게는 좀 잘 통하는.”

즉사기에 가벼운 게 어디 있어?

더 가벼우면 덜 죽나?

노영준 감독은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었지만.

‘……같은 편이니 됐다.’

같은 편이 강한 것에 대해서는, 밸런스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치트면 어떤가.

이기면 장땡이지.

“그…… 어떤 경우에 가장 효과적인 스킬이지?”

“사우스게이트처럼 중요 포인트가 있는 맵에서 효과적인 스킬입니다. 그러고 보니, 2라운드는 저희가 공격이죠?”

성지한은 활짝 웃었다.

“한 번 더 즉사 먹이죠.”

철혈십자.

이 무공은, 약점이 많은 무공이었다.

십자가 그려진 순간, 일단 도망치면서 마지막 일격 범위만 피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사우스게이트 맵처럼, 꼭 지켜야 할 포인트가 있을 때에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어! 어어어! 적진이 무너집니다!

=성지한 선수의 스킬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블라디미르! 즉사가 말이 되냐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만……!

=저희도 저번에 광폭화가 말이 되냐고 했었죠! 하하하! 다 돌고 도는 거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경기도, 성지한은 철혈십자로 손쉽게 승리를 따냈다.

그렇게 멸신결의 무공이 성지한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을 때.

번뜩-

“감히 누가……!”

무신의 별, 투성에서.

한 존재가 벌떡 일어났다.

“깼나. 아니…… 그가 널 깨웠군.”

그의 앞에 서 있던 노인, 동방삭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롱기누스.”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