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36화>
성지한은 귀를 의심했다.
‘연예인에 아나운서? 이게 무슨 조촐한 환영회야.’
대대적인 술 파티가 아닌가.
국가대표 경기가 며칠이나 남았다고 이러는 거지?
‘미국에 있을 때랑 너무 딴판이군.’
물론 그때는 실제로 여러 나라가 망하던 시점이고, 지금은 그 정도의 긴장감까지는 조성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표팀이 치르는 일정은 기본적으로 하드했다.
‘지금처럼 3~4시간만 연습하는 게 아니라, 기본이 12시간이었지.’
거기에 체력이 떨어지면, 2군 서포터가 나서서 케어해 주는 것도 모자라 상대 팀 전력 분석에 전략 브리핑도 받는 등.
한 게임 한 게임을 전쟁을 한다는 심정으로 임했다.
한데 그렇게까지 지독하겐 하지 않더라도, 1승도 못한…… 그것도 패배의 주역이나 다름없는 워리어진이 첫날부터 술 파티라니.
‘마인드가 글러 먹었네.’
명분이야 환영회의 형식을 띠고 있다지만, 실상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성지한은 손을 휘휘 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조카도 봐야 하고, 아카리도 지켜봐야 하는지라.”
“아, 그래도…….”
“에이 형님! 그러지 마시고…… 하유리도 온대요!”
“걔가 누군데?”
“아니, 대한민국에서 하유리 모르는 사람이…….”
“몰라.”
“얘예요. 얘!”
이윤기는 얼른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더니, 하유리라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스마트폰 화면 안에는 TV 광고에서 자주 보이던 톱스타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TV에서 본 사람이네.”
“그래요! 얘가 얼마나 콧대가 높은데…… 형 본다고 온다니까요!”
“오지 말라고 해. 나 안 되니까.”
“지한아…… 부탁이다. 제발. 오늘 하루만 안 되겠니?”
하유리까지 온다고 하는데, 이걸 거절하다니!
이놈, 남자 맞아?
김동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여러 여자 연예인 사진을 보여 주며 간곡히 부탁했다.
“하유리 뿐만이 아니야. 너 보려고 얘도 오고 얘도 오고…… 얘도…….”
“안 됩니다.”
하지만 성지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등을 돌렸다.
“어제 일 때문에 여유가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 그, 그래.”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싸늘한 성지한의 태도에 더 이상 김동우는 권유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성지한이 인터뷰장을 완전히 떠나고 난 이후.
김동우는 그제야 투덜거림을 시작했다.
“하. 시발…… 저 새끼 고자 아냐?”
“형님이 이해해 주십시오. 어제 일이 좀 그랬잖습니까.”
“쩝…… 그래. 아오~ 새끼…… 정색하니까 소름 돋더라.”
“으으…… 사실 저도 좀 쫄았습니다. 역시 수준이 다르긴 하네요.”
어디 가서 위압당한 적이 없는 국가대표 워리어들이었지만.
그간 잘 맞춰 주던 성지한이 한 번 싸늘해지니, 더 이상 권유를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겨우 구축한 관계가 바로 뒤엎어질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에이…… 씨발. 지만 손해지. 야, 근데 어쩌냐? 일부러 모으기 힘든 애들만 모았는데. 애들도 엄청 기대하고 있더만.”
“음…….”
옆에서 이윤기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묘수를 생각해 냈다.
“지한이 형은 어제 일 때문에 나중에 합류한다고 하죠? 술 좀 돌리다 보면 뭐 그때까지 기억하겠습니까?”
“그럴까?”
“네. 술 들어가면 뭐, 끝이죠. 거기에 우리가 다른데서 그리 꿀리는 스펙은 아니잖아요?”
“하기야~.”
그리 생각한 김동우는 성지한 없는 성지한 환영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 ? * ? *
한편, 성지한은 윤세아와 함께 배틀넷 센터의 개인 연습실로 향했다.
성지한이야 그냥 배틀넷에 접속할 수 있었지만, 윤세아는 커넥터가 필요했기에 굳이 개인 연습실에 들른 것이다.
“배틀넷 커넥터 좀 써도 되나요?”
“아, 물론이죠!”
이내 미국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피아도 접속해서 3인 팀을 이루었다.
[이번 미션은 인베이드입니다.]
[당신은 악마 진영입니다.]
“지한! 인터뷰 봤어요. 진짜 14라운드까지 깼어요?”
“네. 15라운드도 깰 만했는데, 아쉽게 됐네요.”
“와…… 영상 보고 싶다…… 공개는 안 되겠죠?”
“러시아전이 끝나면 모를까. 그전에는 안 될 겁니다.”
성지한의 기록에 관심을 보이던 소피아는 곧 윤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아. 그래서 전직은 어떻게 하려고?”
“아. 그거…….”
순간, 성지한이 말을 끊었다.
“세아야, 전직에 관해 소피아도 알아?”
“응. 보이드 아처. 할까 말까 고민하다 소피아랑 이야기를 좀 나눴거든…….”
윤세아는 성지한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 그거 하려고.”
“아리엘의 경고를 감수하고도?”
“응. 빨리 강해지고 싶어.”
“알았어.”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드 아처.
공허에 엮이면 실종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저번 일이 꽤 충격적이었나 보군.’
시즈루에게 납치당할 뻔했던 일 때문인지.
윤세아의 눈에는 독기마저 서려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 그깟 위험쯤은 감수하겠다는 모습.
성지한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 그렇게 결정했으면 밀고 나가야지.”
“응응. 기다려! 삼촌 이기러 갈 테니까.”
“2등으로 만족해라.”
“그건 절대 안 져 주네.”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것보단 낫거든.”
보이드 아처로 무혼을 이길 순 없지.
둘이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자니, 상대편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ㅡㅡ 상대가 지한이횽이라니...]
[오늘 일진 겁나게 사납구만ㅜㅜ]
[우물에 짱박히겠습니다~~^^7]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성지한 이름을 본 순간 이미 게임을 포기하고 본진에서 나오지 않는 상태.
이는 성지한이 골드가 된 이후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미니언 잡고 열렙하고 있어.”
“알았어.”
“소피아도 세아 커버 좀 해 주세요.”
“네~ 아가씨, 가시죠~!”
“아, 아가씨?”
“남편 여동생한테 한국말로 아가씨라고 하는 거라며?”
“저기요. 나 조칸데…….”
“그게 그거지~.”
성지한은 소피아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 저번 생보다 더 중증인데?
셋이서 파티를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지한 님! 대표팀 어땠어요?]
상대편 플레이어들은 기지에서 눌러앉은 채, 성지한과 채팅을 쳤다.
[다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근데 이렇게 게임 하셔도 돼요? 어떤 대표팀 선수 별스타에 환영회 한다고 그러던데.]
[어제 일도 있고 해서 환영회는 거절했습니다. 레벨도 제일 낮으니 레벨 업도 해야죠.]
[아... 레벨 업... ㅎㅎ...ㅋㅋ...]
[그래서 굳이 우리 게임하는 시간에 오셨구나...]
[일부러 지한이횽 게임하는 시간 피해서 돌렸는데....]
성지한의 말에 허탈해하는 상대팀 플레이어들.
국가대표로 소집됐으면 게임 좀 쉬고 환영회나 가지, 뭘 또 굳이 돌려서 자신들이랑 매칭된단 말이냐.
‘오늘은 좀 오래 해야겠어.’
성지한은 보이드 아처로 전직한 윤세아가 인게임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게임을 오래 끌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원래는 빠르게 정글을 돌면서 팀에게 버프를 주어야 했지만.
그는 적 팀처럼, 기지에 눌러앉은 채 팀 상황을 여유롭게 주시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났다.
[그냥 빨리 밀어 줘요...곶통ㅜㅜㅜㅜㅜ]
[머하심 진짜 ㅠㅠ]
상대편이 볼멘소리를 터뜨릴 정도로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 때쯤.
[잉..? 성지한 님 빨리 미셔야 할 듯. 저한테 후원 왔는데... 배틀넷 센터에 뭔 일 일어났다는데요?]
[네?]
성지한 없는 성지한 환영회에서, 대형 사건이 터져 버렸다.
* ? * ? *
“……이게 사실이냐?”
노영준 감독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 측 선수가 하유리를 폭행해서, 중상이라고…….”
“네…… 다행히 전화받은 서포터 선수가 달려와서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대체 누가 그런 거야?”
“저. 윤정현 선수가…….”
성지한 등장 전까지는 김동우 다음으로 강력한 워리어였던 선수인 윤정현.
그러나 인성은 개차반으로, 다혈질이고 여자 좋아하는 성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이 미친놈이 여자를, 그것도 대한민국 톱스타인 하유리를 팰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대체 왜? 거기에 김동우 이 새끼는 저번에 자기들끼리 술자리 한다고 하더니……!”
“연예인 대거 불러서 술 파티를 벌였나 봅니다. 성지한 선수 환영회 한다고.”
“……성지한은? 설마 성지한도 연루됐어?”
“아뇨. 그때 배틀넷 게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도 하유리 씨가 성지한 선수 없으니 집에 가겠다는 걸 붙잡다가 윤정현 선수가 발끈한 거라고…….”
“이 개미친 새끼가!!”
워리어 플레이어는 인간 흉기다.
그것도 국가대표급이면 더더욱.
그런 사람이 일반인을 패?
진짜 안 죽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아. 이번엔 1승 가능하나 했더니. 합의는…… 어떻게 안 되겠나?”
“저. 그게…… 하유리 씨는 하연주 선수의 동생입니다. 하연주 선수가 지금 윤정현 쏴 죽이겠다고 하는 걸 겨우 말리고 있는 상태라…….”
하연주.
국가대표 궁수진의 리더로.
지금 한국 플레이어 중에서는 레벨이 가장 높은 톱 플레이어였다.
그녀는 한국 대표팀 중 그나마 수준 높다고 평가받는 궁수진의 핵심이었기에, 대표 팀에서의 위상이 윤정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이 미친 새끼는 하연주 동생인 거 알고도 팬 거야?”
“자기는 가지 말라고 잡았을 뿐인데 애가 날아갔다면서 억울해합니다만…….”
“씨발 일반인한테 힘을 쓴 게 문제지 그 새끼 진짜!”
쾅!
노영준은 책상을 내려치며 분을 참지 못했다.
술 처먹는 거 눈감아 줬으면, 사고라도 치질 말아야지.
일반인, 그것도 톱스타 하유리를 폭행해?
‘다 때려치우고 싶다…….’
노영준은 술 생각이 났다.
검왕이 떠난 후, 연패하면서 떨어진 감독의 위신.
예전엔 말 잘 듣던 김동우는, 외부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그리도 맹세하더니 그 말을 비웃듯 연예인을 수십 명이나 데려왔으며.
거기서 이런 대형 사고마저 터져 버렸다.
“저…… 감독님. 어찌해야 할지…….”
분석관이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노영준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미 대표팀은 자신의 컨트롤에서 벗어나 있었으니까.
이번 사건의 책임을 통감한답시고, 그냥 사임서 쓰고 나갈까.
그 생각만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때.
“감독님.”
궁수진 리더 하연주가 감독실을 찾았다.
톱스타 하유리만큼 아름다운 외모로 한국의 미녀 자매로 유명했던 그녀는 살기 가득한 얼굴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오늘 술자리 참가한 새끼들. 다 잘라 주세요. 아니면 저희 아처 전체가 국가대표 경기 보이콧합니다.”
“……뭐? 저, 전부? 윤정현 그놈이 문제 아닌가. 전부 다는…….”
“아니요. 제 동생이 그렇게 폭행당할 동안, 옆에서 가만히 지켜본 새끼들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러, 러시아전이 이제 며칠 안 남았어. 아무리 그래도 워리어진을 다 빼는 건…….”
“다는 아닙니다. 2차 술자리에 참가한 이들, 12명. 그들만 빼 주십시오.”
12명의 워리어를 안 빼면, 궁수진이 게임 보이콧하겠다니?
노영준은 눈앞이 깜깜했다.
아니.
성지한 합류로 드디어 이길 가능성이 생겼는데.
뭔 주인 없는 환영회 때문에, 이런 파국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무슨 일입니까?”
그때, 게임을 끝마친 성지한이 감독실을 찾았다.
“성지한 선수…….”
하연주는 팔짱을 낀 채, 성지한을 노려보았다.
비록 성지한이 환영회에 참가하진 않았다지만.
그를 보겠다며 여동생이 술자리에 왔다가, 봉변을 당했으니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이 여자는 왜 나한테 이래?’
성지한이 의아해하고 있자니.
“하아. 그게…… 아까 말이지…….”
옆에서 이를 본 감독이 자초지종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러자 이를 듣던 하연주는 이를 갈더니, 딱딱하게 말했다.
“그러니, 당신 팀원들이랑은 더 이상 대표팀에 같이 못 있겠습니다. 이는 궁수진 모두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
국가대표 경기 전에 술 먹을 생각만 하더니.
제대로 사고 쳤군.
성지한은 워리어진의 팀원들을 떠올려 보았다.
뭐 있으면 좋지만.
딱히 없어도 그만인 이들이었다.
“그럼, 제 팀원은 몰라도 저랑은 팀에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뭐, 성지한 선수야. 술자리는 참석 안 했으니까요.”
“좋아요. 감독님.”
성지한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열두 명 자르시죠. 아니, 1차 참가한 사람들도 자르세요.”
“뭐, 자. 자네…… 윤정현은 몰라도, 나머지까지 자르면…… 워리어가 없어! 2군 애들밖에 없다고!”
“아까 웨이브도, 11라운드부터 저 혼자 막았습니다.”
그 말에, 노영준 감독은 말문을 잃었다.
그렇긴 했지.
“저 역시 제 이름 팔아 사고 친 사람들과 호흡 맞추긴 싫습니다.”
“으. 으음…….”
“아니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그 말에, 하연주가 놀란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1차 참가한 애들도 자르라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진 못했는데.
오히려 성지한 쪽에서 저렇게 나오다니.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와줄 줄은 몰랐다.
괜히 아까 노려본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살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그래.”
성지한과 궁수진 VS 사고 친 워리어진.
이걸 비교하면, 무게추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노영준은 조율을 포기했다.
‘러시아전을 지더라도, 기강을 잡는 게 낫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번 경기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 ? * ? *
하지만 시일이 흘러, 대표팀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이번에 대표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죠?
=예…… 참 있어서는 안 될 사고였습니다. 노영준 감독이 일벌백계한다고 해서 1군의 워리어들을 모두 쫓아냈습니다만. 여론의 비난을 사기도 했었죠.
=예. 워리어들을 다 쫓아내면 경기는 누가 치르냐는 의견이 많았죠. 하지만 오늘 노영준 감독, 표정이 여느 때보다 자신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제 인터뷰에서도,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요…….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노영준 감독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런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한 사람 때문이었다.
‘이놈은 진짜 미친놈이야.’
그는 대표팀 명단에서, 성지한의 이름을 가장 먼저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