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34화>
찰칵-! 찰칵-!
배틀넷 센터 입구엔 기자들이 벌써 구름처럼 운집해 있었다.
국가대표 플레이어들이 도착할 때마다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던 그들은 쉴 새 없이 셔터 버튼을 누르면서도, 입으로는 작게 불만을 내뱉어 대고 있었다.
“나 참…… 이번에도 허탕이네.”
“그 사람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기자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뭐가 허탕인데요?”
“앗, 아닙니다…….”
아무리 작게 말했다지만, 국가대표급 플레이어 정도면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
국대 플레이어들은 그런 기자들의 불평불만을 어이없다는 듯이 흘겨보며 지나갔다.
그렇게 플래시 세례를 받은 이가 열이 넘어갈 즈음.
관리국 소속의 커다란 리무진이 보란 듯이 센터 입구로 들어와 정차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지한이 내리자, 기자들 사이에서 진격을 알리는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성지한이다!”
그에 맞춰, 기자들은 눈을 빛내며 잽싸게 카메라를 들었고.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플래시 소리가 난무했다.
“응? 다른 사람도 내린다!”
그리고 커다란 리무진에서 내린 사람은 성지한뿐만이 아니었다.
성지한을 비롯해 윤세아, 아리엘과 아카리가 차례로 등장한 것이었다.
“저 사람이 아카리인가?”
“소환수도 있네.”
“윤세아까지 데려왔어. 어제 일 때문인가?”
때마침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얼른 달려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성지한 님! 러시아전에 임하는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제 습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정부에서는 이번 일을 묵과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성지한.
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자, 기자들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 갔다.
‘오늘은 몸 굳게 안 하겠지……?’
‘국가대표 첫날인데. 자기도 최소한의 눈치는 보지 않겠어?’
기자들은 성지한이 여러 번 포스의 힘을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오늘은 성지한이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지한은 그런 거 없었다.
그가 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아. 제가 어제 일 때문에 사람이 몰려오는 것에 예민하거든요. 실례하겠습니다.”
“어엇…… 읍읍?!”
몰려오던 기자들의 입과 발이 일제히 묶이고.
스르륵-
초밀착해 온 몇몇 기자들의 몸이 떠오르더니, 뒤로 밀려났다.
타의적 거리 두기가 완벽히 실현된 상황.
기자들로 인해 가로막힌 성지한의 앞길이 훤하게 열렸다.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인터뷰장에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일련의 소동이 끝나 가나 싶었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가토 씨! 어제 했던 말씀이 모두 사실입니까? 이토 측에서는 오히려 살인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운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본국에서는 존속 살해를 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넘겨 달라면서 한국 정부에 범죄자 인도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지한보다는 그의 뒤를 따르던 아카리에게 접근한 일본 방송국 기자가 일본어로 그녀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당금 일본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오른 건 뭐니 뭐니 해도 아카리가 터뜨린 폭로였으니, 일본 기자들 입장에선 성지한보단 아카리가 특종이었던 것이다.
아카리가 그 말에 홱- 일본 기자를 노려보았다.
[뭐? 부모님을…… 내가 죽였다고 뒤집어씌워?]
[당신이 아니면 누가 죽였겠냐고, 이토 측 변호사가 항변했습니다!]
[그딴 유언비어를…….]
“잠깐, 상대하지 마라.”
악에 받친 한마디를 하려던 아카리를 성지한이 제지했다.
결국 그녀는 이를 악문 채, 기자들에게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 *
배틀넷 센터 안은 최고급 호텔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한 외관을 자랑했다.
“성지한 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박윤식 과장은 성지한 일행을 센터의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어제 요청해 주신 대로, 붙어 있는 룸 세 개를 잡아 두었습니다.”
“방 따로 써요? 나 삼촌이랑 같은 방 써야 하는 거 아닌가. 붙어 있어야 하잖아.”
윤세아는 어제 일이 충격적이었는지, 성지한과 자석처럼 붙어 있겠다는 말을 그대로 이행하려고 했다.
“옆방에 있는 정도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 어제는 같은 장소였는데…….”
“어제처럼 꼭대기층과 지하 정도 거리가 아니면 커버할 수 있어.”
그렇게 윤세아를 안심시킨 성지한은, 이번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너는 당분간은 아카리와 같이 방을 써야겠어.”
“쟤랑? 감시 때문인가?”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으니까.”
“알았다.”
이내 아리엘이 이를 통역해 주자, 아카리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박윤식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국정원의 배틀넷 관련 부서에서, 아카리 님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냐고 요청해 왔습니다.”
“국정원에서요?”
북한이 던전으로 붕괴된 이후, 대공 업무 파트가 배틀넷 관련으로 변경된 국정원.
검왕이 일본으로 기습적으로 떠난 이후, 이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던 국정원에서는 아카리라는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자, 그녀를 주목했다.
“네. 일본과의 여론전을 위해서, 국정원이 지닌 정보를 크로스 체킹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
아리엘의 통역을 들은 아카리는 퀭한 눈을 번뜩였다.
“아카리, 협조해 줄 건가?”
[하겠어요. 시즈루에게 피해를 줄 수만 있다면 뭐든 다.]
조금 전 일본 기자와의 대화 때문인지, 그녀의 원한은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자신의 몸을 빼앗고.
그 몸으로, 아카리의 저항도를 파악한다고 부모까지 죽인 원수.
그녀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할 생각이 넘치는군요.”
“……알겠습니다. 그쪽에 그리 전하겠습니다.”
과연 다이아 클래스 암살자인가?
살기가 장난 아니네.
박윤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
배틀넷 센터 2층, 국가대표 전략 회의실.
그곳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 100명이 모여 있었다.
“오늘 훈련에 들어갈 맵은 1, 2차전에 사용되기로 결정된 ‘사우스게이트’입니다.”
사우스게이트.
요새의 남쪽 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맵으로.
한 번은 요새를 지키는 디펜스.
한 번은 요새를 공격하는 인베이드로 총 두 번의 게임이 치러지는 맵이었다.
국가대표 대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게임.
‘튜토리얼에 걸맞은 간단한 맵이군.’
단상에 올라온 노영준 감독의 설명을 들은 성지한이 내린 결론이었다.
사우스게이트 맵의 문은 게임 내에서 이미 뚫려 있는 상태다.
거길 전사들이 진형을 갖추어서 막고.
궁수와 마법사는 요새 위에서 적을 견제하며.
서포터는 뒤에서 이를 치유하거나, 적에게 디버프를 건다.
이게 사우스게이트 맵의 기본적인 게임 진행 방식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이 맵은 워리어진이 가장 중요합니다. 뚫린 남문을 언제까지 막느냐에 따라 포인트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죠.”
요새의 문 역할을 하는 워리어 진영.
이들이 언제까지 버티냐가, 사우스게이트 맵의 승패를 좌우했다.
워리어진이 무너져서, 문 안쪽으로 적이 발을 디디는 순간.
도저히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포인트의 손실이 발생했으니까.
“이런 맵의 특성 때문에, 세간에서는 저희가 이번 국가대표 경기도 패배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많습니다만.”
동북아시아에서 압도적인 최약체로 분류된, 한국의 국가대표 워리어진.
그에 반해, 러시아는 동북아시아 리그에서 검왕이 합류한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음인 중국과 비슷한 정도로, 강력한 워리어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전사 수준이 차이 나는데, 1, 2차전의 맵마저도 전사가 가장 중요한 맵에 걸려 버렸으니.
세간의 예측도 그렇고, 도박사들의 배당도 압도적으로 러시아를 우위로 두고 있었다.
“하나 이번에는 우리 선수들이 이런 부정적인 전망을 깰 것이라 믿습니다. 특히! 우리 대표 팀에는 든든한 선수도 한 명 합류했으니까요.”
그러면서 노영준 감독은 성지한을 바라보며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성지한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인사를 하고 다시 앉는 성지한.
국가대표 선배들을 앞에 두고, 태도가 상당히 뻣뻣하여 오만해 보일 지경이었지만.
짝짝짝-!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박수를 치며 그를 환영했다.
휘이이익!
특히, 워리어보다는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이 휘파람까지 불면서 매우, 아주 열렬히 성지한을 반겼다.
“드디어 왔네!”
“크…… 이제 살겠다.”
자동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약체인 워리어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성지한이 합류한다면 확연한 변화가 생길 테니까.
“오늘은 워리어진의 팀워크를, 집중적으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네!”
그렇게 시작된 연습.
“성지한 선수!”
전사진의 리더, 김동우는 한 플레이어와 함께 웃는 낯으로 성지한에게 다가갔다.
“저번에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신세? 한 방에 다들 터졌죠. 흐흐.”
“야. 시끄러워. 그런 흑역사를 꺼내고 싶냐?”
“형님이 먼저 신세 졌다고 했잖아요.”
국가대표 선발 테스트 때, 성지한에게 모두 원 펀치로 깨졌던 워리어진.
그때 너무 압도적으로 져서 그런지, 그들은 자신들을 이기고 들어온 성지한에게 생각보다 호의적으로 대해 왔다.
“어쨌든 이제 저희 원 팀이 되었으니, 연습 열심히 해서 합을 맞춰 보죠.”
“예. 알겠습니다.”
“하하. 이제 같은 팀인데, 편하게 지내시죠. 혹시 나이가……?”
“27입니다.”
“아. 전 30인데.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성지한은 김동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붙임성 좋은 사람이네.
‘굳이 척지며 살 필욘 없지.’
같은 국가대표로 소속된 만큼, 워리어끼리 묶여서 활동할 일이 많을 텐데.
서로서로 잘 지내면 좋지 않겠는가.
성지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오. 오…… 진짜죠? 아, 진짜지?”
“형님! 저는 이윤기입니다. 저도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까칠해 보이던 성지한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자, 옆에 있던 이윤기도 벌써 형님 소리를 하며 성지한에게 들러붙었다.
노영준 감독은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우가 그래도 저런 건 잘한단 말이지. 트러블은 나지 않겠어.’
원 펀치에 깨진 워리어진과 감정적으로 골을 보이면 어쩌냐 우려했는데.
다행히 김동우가 그를 환영하고, 성지한도 잘 호응하면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워리어진에서 시너지 효과만 나면 되겠는데.’
노영준 감독은 그리 생각하면서, 인 게임에 들어섰다.
전사를 30명까지 뽑을 수 있는 사우스게이트 맵.
그는 일단 기존의 정예 맴버에서, 최하위 선수를 성지한과 교체했다.
하나, 게임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방패가 없다고?”
“네. 게임하면서 들어 본 적이 없군요.”
“아. 귀갑진을 이루려면 방패가 필수인데…….”
김동우는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사우스게이트의 뚫린 남문.
여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사들이 뭉쳐서 게임에서 인정하는 특수한 진형인 ‘귀갑진’을 짜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방패를 든 채, 서로 뭉쳐서 하나의 방벽 같은 역할을 하는 전사진.
이걸 형성하기 위해서는, 방패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하긴…… 형님 방송에서는 칼이랑 창 쓰는 것밖에 못 봤슴다.”
“음. 일단 그럼 이 방패라도 쓸래? 어차피 감독님이 보고 싶으신 것도 귀갑진의 효율일 테니.”
김동우는 인벤토리에서 안 쓰는 방패 하나를 꺼냈다.
A급 성능의, 커다란 카이트 실드.
성지한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수비진에 묶여 있으면 안 되긴 하다만.’
전사들 중, 검왕처럼 뛰어난 이들은 지금 이렇게 귀갑진을 이루는 전사들과는 달리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성지한도 저번 생에는 그런 프리 포지션으로 아메리칸 퍼스트에서 최고의 활약을 내보였고.
무혼을 얻은 지금도,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감사합니다.”
일단 지금은, 팀에 융합하는 게 먼저였다.
프리 포지션은 실력을 더 인정받고, 받아 내면 될 터.
그는 기꺼이 카이트 실드를 받아들였다.
방패를 사용한 적은 저번 생까지 합쳐도 손에 꼽아서,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여기 서면 될까요?”
“어. 어. 그래. 이리로 와. 자, 여기를 막고…….”
그는 30명의 전사와 함께, 하나의 진형을 이루었다.
방패를 처음 든 성지한이, 어설프게 자리에 설 때만 해도.
‘1, 2차전 때는 성지한을 출전시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노영준 감독은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지만.
부우우웅……!
막상 귀갑진이 발동하자.
“어…… 이건…….”
입을 쩍 벌리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