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32화>
“시즈루……!?”
윤세아는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시즈루에게서 떠올랐던 메시지는, 윤세아에게도 비슷하게 떠올라 있었다.
[전격의 인장이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매료’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합니다.]
[‘복종’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합니다.]
‘으으…….’ 윤세아는 평범한 얼굴로 분장한 시즈루를 보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완전히 매료당한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떠받들어야 할 것 같았다.
“윤세아! 정신 차려!”
아리엘이 소리치자, 그때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얼른 몸을 뒤로 뺐다.
“어머, 얘. 어디 가니?”
탁-!
시즈루는 아리엘의 그림자 손을 쳐 내며, 윤세아를 향해 여유롭게 말했다.
윤세아를 쉽게 데려갈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이 상황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성지한도 아니고 소환수 따위야, 아카리의 몸으로 금방 이겨 낼 수 있어.’
스으윽.
시즈루는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휘둘렀다.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빛나는 붉은색의 단검.
슈욱!
단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본래의 몸 주인인 아카리보다, 서툴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검날에서 붉은빛이 번뜩이자.
“으음……!”
아리엘의 팔이 그대로 반으로 갈라지며, 그 틈새 사이로 홍염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그림자의 힘으로 몸을 재생하려고 했지만.
불은 끈질기게 불타면서, 복구를 방해했다.
“좋은 무기군.”
“후원해 주시는 분이 많아서.”
아카리보다 실력은 뒤떨어지더라도, 그걸 템빨로 메우는 시즈루.
일본의 막후에서 최고의 실력자나 다름없는 그녀였기에, 돈과 권력으로 구할 수 있는 장비는 죄다 갖춰 둔 상태였다.
‘나 홀로는 못 막겠군.’
아리엘은 빠르게 현 상황을 판단하고, 윤세아에게 소리쳤다.
“세아. 도망쳐라! 그리고 주인에게 연락해라.”
“아, 알았어……!”
“세아야~ 어디 가니? 이리 오렴. 아빠 보고 싶지 않니?”
“어디서 아빠를……!”
“후후. 이제부터 날 엄마라고 불러도 된단다.”
엄마라고 부르라고?
윤세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매혹 때문에 어지럽던 머리에, 찬물을 확 끼얹은 것만 같았다.
‘여기서 잡히면 절대 안 돼!’
뇌인 덕에 한 번 저항했다 뿐이지, 한 번 더 잡히면 그 다음은 장담하지 못했다.
혹여 매혹과 복종을 당해 일본에 끌려가면.
저 여자를 진짜 엄마라고 불러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느니 죽는 게 낫지……!’
윤세아는 이를 악물고 도망치며, 성지한에게 전화했다.
“삼촌! 지하에 시즈루가……!”
[뭐?!]
전화가 다 끝나기도 전에.
“시즈루라니. 엄마라고 불러야지. 세아야.”
윤세아의 뒤에, 시즈루가 바로 다가왔다.
투명하게 변해, 영체화가 된 그녀는.
뒤에서 아리엘이 그림자검으로 공격해 오는 것도 무시한 채 윤세아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 미친…… 대체 아이템이 몇 개인 거지?!”
그게 가능한 원인은 역시 아이템.
시즈루가 입고 있는 옷은 평범한 티셔츠에 반바지여서 방어력이 없었지만.
푹!
그림자 검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으려 해도.
갑자기 어디선가 부적이 튀어 올라, 공격을 막아섰다.
자동으로 공격을 막아 주는 1회용 보호 부적.
성능에 비해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톱 플레이어라고 해도 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 아이템이.
아리엘이 공격할 때마다, 시즈루의 품속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우리 세아 때문에 엄마 벌써 5백억 엔 날아갔어…… 이건, 네가 벌어야 한단다?”
스으으윽.
시즈루는 윤세아를 만지기 위해 영체화를 풀면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잠깐의 저항은 있었지만, 어쨌거나 데려가면 끝이다.
윤세아도 뛰어난 플레이어라고는 하나, 어차피 실버.
다이아인 자신의 손아귀에서 더 이상은 벗어나지 못하겠지.
“……인벤토리.”
그때.
윤세아가 황급히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두 손을 위로 넘겼다.
“풋. 뭐 하니 너?”
처음에는 허공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윤세아를 보면서, 비웃던 시즈루는.
“……응?”
윤세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뭐야.
다 잡은 물고기였는데.
어디 갔어?
‘투명 망토 같은 건가?’
시즈루는 황급히 윤세아가 사라진 곳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없네.’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 ? * ? *
예전에, 성지한은 진유화의 공습에 대비해서 윤세아에게 공허의 장막을 건넸다.
이것은 진유화가 죽으면서 원래의 쓸모가 없어졌지만.
-삼촌. 이제 이거 필요 없지 않아? 가져가야지.
-아냐. 네가 계속 가지고 있어. 내가 숨을 일이 뭐 있냐.
딱히 숨을 일이 없던 그는, 아예 공허의 장막을 윤세아에게 넘겨주었다.
-다만, 오래 숨지는 마. 공허에 파묻힐 수가 있거든.
공허의 장막의 은신 효과는 대단했지만.
꺼림칙한 페널티 때문에, 정말 위험할 때만 쓰라고 성지한은 당부했었다.
윤세아도 이 아이템 설명을 보고, 공허의 장막을 웬만하면 쓰려고 하지 않아서.
막상 사용한 경험은, 처음에 연습했을 때 써 본 것 말고는 없었다.
‘절대 움직이지 말랬지…….’
장막 안의 세계.
그곳은 딱히 현실 세계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평소보다 세상이 두 배 정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뿐.
윤세아는 시즈루가 자신에게 손을 뻗는 걸 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았지만.
스으으윽…….
손은 마치 허공을 통과하듯이, 윤세아의 몸을 그대로 뚫었다가 돌아왔다.
‘휴우.’
진짜 효과가 있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 삼촌이 오기까지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윤세아는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자신이 한심해졌다.
‘……난 삼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성지한의 뇌인과 아리엘 덕분에.
그리고 선물받은 공허의 장막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벌써 시즈루한테 엄마라고 부르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 일본으로 향했을지도 몰랐다.
‘엄마라니. 저 미친 게…….’
그녀는 엄마 소리를 하는 시즈루를 보며,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뚫린 입으로 자신을 그리 지칭할 수가 있는가.
사람에게 살의마저 드는 건, 시즈루가 처음이었다.
‘할 수만 있으면, 저 여자. 내 힘으로 이겨 내고 싶은데…….’
눈앞의 원수를 바라보며, 윤세아는 원한을 가다듬었지만.
아무리 대기만성으로 가능성이 무한하다 한들, 지금 당장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무력감을 곱씹으며, 움직이지 않으려고 참기만 하던 윤세아는.
‘어…….’
저 멀리서부터, 청회색의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현실 세계와 똑같던 장막 안의 세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그걸 보면서, 공허의 장막의 페널티를 떠올렸다.
‘저게 설마, 공허…….’
* ? * ? *
휙- 휙-
시즈루는 몇 번이고 윤세아가 사라진 쪽을 향해 손을 뻗고는 아리엘을 돌아보았다.
“너…… 뭐 알아?”
“알아도 내가 말할까?”
“나한텐 말할걸?”
시즈루는 그러며 단검을 세 차례 휘둘렀다.
화르르르……!
그러자 아리엘의 팔과 다리가 모두 잘려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소환수 따위가 날 섬기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렴.”
시즈루는 진심으로 그리 말하며, 아리엘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서포팅 기프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매료와 복종에는 상당한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라면 이런 소환수 따위에게 매료는 아까워서 쓰지 않았겠지만.
‘빨리 데려가야 해.’
윤세아를 납치하기 위해, 시즈루는 큰 맘 먹고 소환수에게도 매료를 사용하려 손을 뻗었다.
툭.
하나 아리엘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매료를 걸려던 그녀는.
“어…….”
깜짝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당신…… 뭐야…….”
“최하급 종족 따위의 매료에 걸리겠나. 내가.”
“종족의 차이라고……?”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아리엘을 바라보는 시즈루.
비록 이종족에게 매료를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녀는 아리엘의 상태창을 열어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압도적인 격의 차이를 느꼈다.
‘이건…… 단순히 종의 차이, 그 정도가 아냐!’
이게 정말, 손쉽게 팔다리가 잘렸던 소환수가 맞단 말인가?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어 대며, 아리엘에게서 얼른 손을 뗐다.
“호오…… 보는 눈은 있구나.”
사지가 잘렸음에도, 오히려 여유롭게 말하는 아리엘.
시즈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리엘을 굴복시키는 건 불가능하고,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성지한이 온다.
“……다음을 기약해야겠네.”
스으으으-
그녀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져 갔다.
“또 봐. 딸.”
윤세아가 사라진 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아리엘!”
성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 빠르게 왔군그래.”
스으으으-
성지한이 오자, 그림자의 힘이 강화된 아리엘은 사지를 복구하며 일어섰다.
“어떻게 됐어. 세아는?!”
“저기 있다.”
아리엘이 허공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뒤집어쓰는 시늉을 하자, 성지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허의 장막…… 다시 되돌려받지 않길 잘했군.
“시즈루는? 도망갔나.”
“그래. 하지만 그림자를 붙였다.”
아리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조금 전, 시즈루가 아리엘을 만졌을 때 은밀하게 그림자를 붙였던 것이다.
힘이 회복된 아리엘은 잠시 눈을 감더니, 곧 시즈루의 위치를 파악했다.
“재미있게도…… 이 건물에 있네.”
“어디에?”
“19층. 오피스텔을 빌렸나 보다.”
“그래? 세아야. 가자.”
성지한이 윤세아를 부르자, 그녀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혼이 나간 듯, 멍한 얼굴.
짝!
“아……!”
성지한이 그 앞에서 박수를 치자, 그녀는 곧 제정신을 되찾았다.
“빨리 가자. 시즈루 도망가기 전에, 제압해야 하니까.”
살기가 그득한 성지한.
윤세아는 지금처럼 분노한 삼촌을 본 적이 없었다.
“나…… 방해되는 거 아냐?”
“위험한 상황이 오면 다시 장막 써. 여기 혼자 놔두는 게 오히려 마음에 걸려.”
성지한은 그러며, 윤세아의 허리를 껴안았다.
“꽉 잡아.”
번쩍!
초고속으로 마트에서 빠져나가는 성지한.
그는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나오더니.
“저긴가.”
19층의 한 창문을 향해 그대로 날아갔다.
쨍그랑!
대번에 유리가 깨지더니.
“이…… 이런! 어떻게 알았지?!”
노트북을 챙기던 시즈루가 낭패한 표정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뭐 이리 빨라…….”
성지한은 시즈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흑검을 휘둘렀다.
치이이익!
그러자, 시즈루의 품속에서 부적 수십 개가 튀어나오며 일제히 타올랐다.
치명상을 면해 주는 효과가 있는 부적이, 단 일격에 수십 개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괴…… 괴물!”
성지한.
이 인간 예전보다 더 미친 괴물이 됐잖아?
시즈루는 상황을 금방 파악했다.
이거 못 도망간다.
이러면…….
스윽!
그녀는 노트북의 액정을 열어, 그 안에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아리엘을 손쉽게 무력화시켰던, 붉은색의 단검이었다.
그러자.
슈우우…….
단검은 액정을 깨는 게 아니라, 화면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국보는 보내야지.”
그 말과 동시에.
찌이익…….
시즈루의 온몸이 갈라지며, 혈선이 드러났다.
이제는 보호의 부적도 모두 깨져서, 방어가 되지 않는 상황.
시즈루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통증을 느끼기는커녕.
그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아. 아깝네…… 이 육체를 어떻게 장악했는데. 금방 죽겠네.”
스으으윽……
평범한 얼굴이었던 시즈루의 얼굴이 변해 갔다.
예전에 성지한에게 매혹을 걸 때 나타났던 경국지색에 걸맞은 외모로 바뀌었다가.
“세아야. 아빠 보고 싶으면 일본으로 오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얼굴이 본래의 육체 주인인, 아카리로 바뀌었다.
“아…… 나. 나는…… 아아아악!”
그러자, 조금 전 시즈루의 때와는 달리 극도로 통증을 느끼는 아카리.
[저, 여, 여기가 어디…… 넌 성지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일본어를 횡설수설 내뱉었다.
“뭐라 하는 거지?”
[여기가 어디냐고 하는군. 사람이 바뀐 거 같다.]
“흠…….”
연기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모습이었다.
스으윽.
성지한은 검을 거두고, 아카리에게 손을 뻗었다.
“그레이트 힐.”
그러자 아카리의 갈라졌던 몸이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서포터의 스킬은 올 포 원 이후 더 이상 배울 수 없었지만, 일단 배웠던 스킬은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무혼을 이룸과 동시에 힐의 효과도 엄청나게 좋아져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아카리는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 무슨 짓…… 이지?]
“별거 아니다. 몸이 정상이어야지, 다시 아픈 걸 아니까 말이야.”
성지한은 흉흉한 눈으로 아카리를 노려보았다.
“시즈루에 대한 정보를…… 토해 줘야겠어. 하나도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