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27화>
테스트가 성지한의 원 펀치로 끝나자마자 인터뷰가 진행됐다.
원래대로라면 다 같이 모여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지만, 국가대표측에서 충격에 휩싸였는지 인터뷰를 거절한 탓에 성지한만 아나운서와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성지한 선수! 먼저 테스트 통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성지한을 바라보는 여자 아나운서.
그녀의 두 눈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사실 많은 전문가분들은 오늘 테스트가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하셨는데요. 성지한 선수께선 이런 예상을 완전히 깨부수고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골드인데도 이렇게 강한 모습을 보여 주신 비결이 있으실까요?”
“저도 이틀 전까지만 해도, 225레벨 이상의 선수들은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간 수련한 결과가 잘 나와서 그런지, 오늘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아! 성지한 선수는 평소 배틀넷을 실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수련에 매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 오늘 나온 거였군요!”
성지한을 마치 노력의 화신인 양 띄워 주는 아나운서였다.
‘그 정도는 아니다만.’
사실 수련 덕을 봤다기보단, 능력치 덕이 컸을 뿐.
성지한은 너무 아나운서가 오버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를 향한 대중들의 이미지는 또 그렇지가 않았다.
미국에서의 수천억의 러브콜도 포기하고 육성형 길드를 만들고.
이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충분히 갖추어진 상태인데도,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대외 활동을 최소화한 채 수련에만 열중하는 진짜배기 플레이어.
이렇게 이미지 메이킹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 정말 대단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이 기대가 되네요!”
“테스트를 통과했을 뿐, 선발이야 관리국과 감독님의 몫이니까요. 저는 그저 국가대표급 워리어님들과 겨룬 것 자체로도 만족합니다.”
“이번 결과를 다 지켜보셨을 텐데, 설마 선발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앞으로의 각오 한마디, 들려주세요!”
“지금 수준이면…… 검왕 정도는 마크할 수 있습니다.”
덤덤하게, 세계 전사 1위를 마크할 수 있다고 자신한 성지한은.
“그리고 내년까지는, 목을 따 오죠.”
“아. 모, 목을요?”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캬 ㅋㅋㅋㅋ 패기보소.
-암!!! 지금 국가대표도 이겼는데. 내년이면 검왕 목 딸 수 있지!!!
-골드리거 주제에 검왕님을 너무 얕잡아보네요^^ 국대가 역대급 최약체인 거 좀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긴~~^^ 빨리 일본전에서 참교육 받았으면 좋겠네요!
-ㄷㄷ 검왕가 아직도 있었음?
-어떻게 지금 나라 꼬라지를 보고도 계속 검왕가를 할 수가 있죠?
-어찌 보면 찐팬이다 저거야말로 ㅋㅋㅋㅋ
검왕의 목을 따겠다는 이야기에, 다 사라진 줄 알았던 검왕가까지 튀어나오며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물론 대부분의 반응은 환영 일색.
골드인데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준 성지한이라면, 내년엔 장담대로 검왕도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편, 일본 도쿄.
“흐응…….”
이토 시즈루는 심각한 얼굴로 성지한의 테스트를 지켜보았다.
아무리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골드가 국가대표에게 도전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기에 일본 배틀넷 전문 채널에서도 이를 생중계했던 터다.
‘갑자기…… 너무 강해졌는데?’
다이아리거인 닌자 아카리랑 싸웠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아카리가 비록 밀리긴 했지만, 낼 수 있는 힘 자체는 그녀가 더 많았다.
한데 오늘 본 광경은 영 딴판이지 않나.
국가대표와의 격돌을 보면, 성지한의 힘은 상대를 찍어 누르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놈……!”
옆에서 성지한의 인터뷰까지 본 검왕이 두 눈을 부릅뜨며 분노했다.
“류헤이. 어떻게 보셨어요?”
“가소로운 놈! 내년에 내 목을 따겠다고? 내, 당장 죽여 주지……!”
“류헤이.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시즈루의 목소리가 차가워지자, 검왕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녀석을 확실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1년 후에는, 장담하지 못한다. 이거죠?”
“……그래.”
이런 대답을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듯이, 검왕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게 이성적인 대답이었으니 팩트만을 전달해야 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성장세야. 닌자와 싸운 게 불과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단계는 더 성장했어. 이런 속도라면, 내년에는 나도 힘들 수 있다.”
“역시 그렇군요…….”
이토 시즈루는 그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TV화면에선 인터뷰가 끝난 성지한이 테스트장에 있던 윤세아와 만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성지한이 아닌 윤세아를 쫓았다.
“류헤이. 딸,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난…… 너만 있으면 된다.”
“이제는 데려와도 될 것 같아서요.”
“……뭐?”
검왕의 매료가 풀릴까 봐, 한국에 두고 오라고 시킨 윤세아.
하지만 상황은 그때와는 많이 변했다.
검왕에게 건 매료는 이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고.
‘쟤도 특이한 기프트가 있었지.’
윤세아도 성지한급은 아니더라도, 꽤 희귀한 재능이 있는 데다가.
‘현재 성지한의 약점이라고 할 만한 건, 그녀밖에 없어.’
지금으로서는 대표팀 경기 때 분신이 된 아카리를 투입한다 한들, 성지한을 확실히 매혹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 이때를 대비해 그의 유일한 약점을 확보해야 했다.
“……세아를 어쩔 셈인가?”
검왕의 물음에.
“제 친딸처럼 기르려고요.”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윤세아를 보며, 시즈루는 태연히 말했다.
“일본에서요.”
* ? * ? *
“삼촌. 벌써 속보 뜬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되지 않았냐.”
“이 기사는 얼마나 급했는지 오타도 났는데? 셩지한이래! 수정하라고 해야지!”
소드 팰리스의 엘레베이터 안.
성지한은 신난 얼굴로 리플을 다는 윤세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어째 자신보다 더 신나 하는 것 같다.
“삼촌. 국가대표 발탁된 기념으로 파티할까?”
“에이, 뭔 파티야. 그리고 아직 선발 안 됐어.”
“에이! 이 정도면 된 거지! 내가 오늘 힘 좀 쓸게. 방에서 좀만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한 윤세아는 핸드폰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성지한의 등을 떠밀었다.
‘그건 그렇고, 아리엘이 조용하군.’
삼단전을 통합할 때, 팔에 놔뒀던 아리엘.
방랑하는 무신에게 소환되었을 때, 그녀도 같이 끌려갔으니 성좌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성지한은 왼팔을 살펴보았다.
팔꿈치 쪽에 응축되어 있는 그림자의 기운.
무혼으로 능력이 개편되면서 한데 뭉쳤던 그 힘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툭!
성지한이 이를 건드리자.
[……뭐, 뭐냐? 날 왜 봉인한 거지?]
아리엘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봉인?”
[그래…… 지금도 봉인하고 있지 않은가.]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일단 나와 봐.”
그러자 그림자 기운이 성지한의 왼팔에서 꿈틀댔지만, 여전히 뭉친 범위에서 더 벗어나질 못했다.
[날 놀리나? 봉인해 두고 나오라니…… 너무하는군.]
“……?”
그 말에 성지한이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이내.
‘무혼으로 재편된 영역을 침범하질 못하는군.’
예전에는 성지한의 묵인하에 자유롭게 체내를 다니던 그림자 기운.
하지만 이제는 무혼으로 완전히 재편된 몸 때문에, 그녀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왼팔까지는 공간을 허락해야겠다.’
그림자 기운이 갈 수 있는 길을 넓혀 주자, 그제야 움직이는 아리엘.
검은 연기가 성지한의 팔에서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쉐도우 엘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아…… 살 것 같군.”
평소보다 더 성장한 그녀는.
키가 거의 성지한과 비슷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응? 내 원래 육체랑 엇비슷하잖아? 아니, 뭐지…… 이 마력량은?”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바라보던 아리엘은 성지한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느끼곤 눈을 크게 떴다.
“너한테서 기운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대체 뭘 한 것이냐? 검영 스탯은 분명히 낮았을 텐데.”
“수련의 결과물이다. 너도 보지 않았나?”
“최하급 종족의 마나홀을 합치는 것 말인가? 결과가 나오려 할 때쯤, 네가 날 봉인시켰지 않나.”
아리엘은 그러면서 성지한을 훑어보았다.
“이제는 중급 종족이라고 할 수도 없겠군…… 상급. 아니…… 그 이상인가? 최하급이 여기까지 오다니…… 이 정도면 엘프는 넘었고, 용족에 필적하겠어.”
“용족은 어느 급이지?”
“상급 이상. 그 위부터는 나도 급을 매기지 않는다. 모르는 영역이니까. 용족이나 반신에 필적하는 종족…… 그리고 더 위에는 성좌가 있다는 걸 알 뿐이지.”
과연 무혼, 별을 대표하는 능력이라 그런지 단번에 아리엘의 등급 기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투성에서의 일은 모르는 것 같군.’
애초에 거기까지 따라와서 모든 걸 봤다는 전제로 질문을 하려 했는데.
그때 봉인된 상태라 아무것도 못 봤다면, 굳이 투성에서의 일을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성지한은 그녀가 알 법한 것만 물어보았다.
“아리엘. 방랑하는 무신의 종에 대해선 아는가?”
“종? 아아…… 무신의 종자를 말하나?”
“종자인가.”
“무신의 종자는 총 다섯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사신으로 오면, 그 별은 공포로 떨지.”
“그놈들이 뭘 하길래?”
“간단하다. 성좌에게 ‘너만 죽을 것인가. 아니면 별과 같이 멸망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물어본다고 한다.”
“잘도 알고 있군.”
“방랑하는 무신은 우주적인 재해나 다름없다. 모두들 그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근데 무신의 종자를, 주인은 어떻게 알고 있나?”
“네가 봉인되었을 때 만났거든.”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진 않고 동방삭에 대해서만 말해 주자,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천마로군.”
“우주천마……?”
장삼봉이자 천마라고 하더니.
동방삭 자신은 천마가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 자신을 그리 칭하는 무신의 종자다. 조금 전, 종자가 사신으로 와서 질문한다고 했지?”
“혼자 죽을래, 다 죽을래 말하는 건가.”
“그래. 성좌가 별이랑 함께 결사 항전하겠다고 반항하면, 우주천마가 그 자리에서 성좌를 납치한다고 한다. 쓸데없는 희생은 지양하겠다고 하면서.”
“……동방삭이 성좌마저도 상대할 수 있었나?”
“힘 자체는 밀리지만, 우주천마에겐 신기한 포획술이 있다고 하더군.”
성지한은 그 말에 투성에서 태극을 형성하던 동방삭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무신이 보내 주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별에 갇힐 뻔했군.
“그래…… 알았다.”
“한데 주인은 대체 우주천마를 어떻게 만난 건가?”
“설명하긴 복잡하다.”
휙휙.
듣고 싶은 대답을 다 들은 성지한이 이제 됐다는 듯 손짓하자, 아리엘이 눈을 흘겼다.
“듣고 싶은 대답만 쏙 빼먹는군.”
“그래야 주인이 된 보람이 있지.”
“간다. 가.”
방을 나서는 아리엘.
“아, 아리엘? 왜 이렇게 커졌어?…… 이제 언니라고 부를까?”
“됐다. 나이로 따지면 할머니 소리 들어도 모자라니까. 원래대로 불러.”
“알았어. 그럼 요리 같이할래?”
“맛은 봐 주지.”
밖에서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무렵.
성지한은 자신의 변한 능력을 점검해 보았다.
‘무혼은 100이고.’
무력과 포스가 합쳐 무혼으로 개편된 채, 큰 변화는 없는 상태창.
‘무명신공은…….’
그는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어, 스킬 창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스킬 ‘무명신공’의 이름에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스킬 등급 : SS
-무명신공의 파편만이 전해진 스킬.
-하나 무명신공의 본류인 무혼을 얻어, 재융합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다.
*무명신공의 상승 무류, 세 가지 신결을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거나, ‘무명無名’의 이름을 알아낼 경우 무명신공 스킬을 완전히 각성할 수 있다.
[‘무명’의 이름을 맞추시겠습니까?]
[글자 수는 총 두 글자입니다.]
[세 번의 기회가 부여됩니다.]
‘등급이 올랐군.’ 스킬 설명도 상당히 바뀌고, 등급도 업그레이드된 무명신공.
이러면 무공을 사용하기에 더 수월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성지한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마지막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이름을 맞춰 보라고?’
세 가지 신결을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는 것보다 이름을 맞추는 게 훨씬 쉬운 길이겠지만.
힌트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문제를 맞추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명신공은 결국 무신의 무공일 터.’
성지한은 잠깐 고민하다, 이름 맞추기를 시도했다.
무신신공은 ‘신神’ 자가 두 개나 겹쳐니 아닌 것 같고.
“무혼신공?”
[틀렸습니다.]
[2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이게 아니었나.
‘한 번은 나중을 위해 남겨 둬야겠군.’
성지한은 무신과 만나면서 왠지 마음에 걸렸던 의혹을, 여기서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지한신공?”
바로, 자기 이름을 넣어 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