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24화>
* * *
수련실 안.
[삼단전三丹田의 통합을 시도하겠습니까?]
성지한이 삼단전을 통합하려고 하자, 저절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확실히 그의 수준이 올라서 그런지.
저번처럼 ‘플레이어의 수준이 너무 낮아 위험하다’는 경고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통합한다.”
성지한은 그리 말하면서, 세 개의 단전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이번엔 된다.’
막연한 자신감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었다.
처음과는 달리, 이번엔 어느 정도 사전 작업이 진행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단전과 중단전을 같이 사용하는 포스 덕분에 단전 간의 경계가 희미해져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삼단전의 통합을 시도합니다…….]
성지한은 눈을 감으며 본격적으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미 반쯤 허물어져 있는 상단전과 중단전의 연결은 손쉬웠다.
‘여기는 이미 되었군.’
투둑. 투두둑…….
포스의 절대영역을 거둬들이고 내부에만 역량을 집중하니, 상단전과 중단전이 완전히 합쳐지는 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전의 벽이 깨져 나가며, 두 개의 단전에서 동시에 요동치는 기운은 어느덧 경계를 의식하지 않았다.
‘이제 위의 두 단전은 하나나 다름없다…… 하지만 하단전이 문제지.’
하단전은 확실히 연결 고리가 미약한 상태.
무력과 포스가 능력치는 공유했지만, 그래도 하단전의 벽은 꽤 두터웠다.
‘안과 밖에서 동시에 자극해야겠군.’
투둑. 투두둑.
하단전 안에서는 내공을 움직여 벽을 무너뜨리고.
하단전 외부에서는 포스로 자극한다.
내공을 담는 그릇을 강제로 깨부수려고 하니, 아랫배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베히모스의 불길을 맞았을 때와 비슷하군.’
전생에서 하도 굴러 본 성지한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단전을 두들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머리와 등에서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상의가 완전히 젖을 정도로,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몸은 어떨 때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가, 어떨 때는 불같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얼굴은 시뻘게졌다가, 창백해졌다가를 반복했다.
하단전의 통합은 확실히 쉽지 않았다.
‘그래도…….’
투두두둑-!
쉬지 않고 두드린 보람이 있었는지, 하단전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성지한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
그는 조급해 하지 않고, 차분하게 융합 과정을 지속했다.
* * *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하루가 지나자.
“됐…… 다…….”
세 단전의 경계가 모두 무너지고, 삼단전의 통합이 완성됐다.
이제는 단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기가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성지한의 전신 그 자체가 세 단전의 기운을 모두 포괄한 것이다.
“후우…….”
심호흡을 한 성지한은 눈을 떴다.
한 호흡에 전신에서 기운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과연 오랜 시간을 들인 보람이 있군.’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수련실을 나서려고 한 성지한은.
[삼단전의 통합을 시도합니다…….]
‘뭐지?’
이미 삼단전의 통합을 마쳤는데도 변함이 없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융합을 했는데도, 왜 그대로일까.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무력과 포스.
둘 다 100으로, 변함이 없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란 말인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을 리는 없고.
성지한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단전의 벽은 모두 허물었는데, 뭐가 부족한 거지?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고민하기를 잠시, 성지한은 포스의 영역에 생각이 미쳤다.
‘영역마저 완성을 해야 비로소 통합이 마무리되는 건가?’
성지한은 거둬들였던 절대영역을 다시 펼쳤다.
그러자 전신으로 영역이 넓게 퍼진 단전 중.
심장 위, 상반신 쪽만 절대영역의 흐름에 관여했다.
‘절대영역마저 전신화된 단전이 모두 다룰 수 있어야. 그제야 진정한 합일이다.’
실마리를 찾은 성지한은, 합친 단전을 외부와 소통시키는 데에 몰두했다.
이는,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안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해결했지.’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 통합을 시도한다고 나와 있지 않았다면, 삼단전이 통합된 줄만 알았을 터.
그렇게 전신화된 단전과, 주변의 공간을 완전히 지배하는 절대영역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아예 그것까지 단전과 통합하자.’
신체 내부로 국한되어 있던 단전을 한 차례 더 발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포스를 매개로 공간을 지배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단전의 범위를 더 넓히기로 한 것이다.
‘어렵군…….’
이건 삼단전을 융합할 때에 비해, 훨씬 고단한 과정이었다.
삼단전이야 신체 내부에 있었다지만, 이건 아예 외부의 공간과 단전을 통합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간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아예 시도조차 못했겠어.’
포스로 절대영역을 다뤄 본 경험이 없었다면, 그저 상상만 하다가 끝났을 방법.
그는 그간의 경험을 집대성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렇게 또다시 하루가 꼬박 지나자.
‘……이게 지금 수준에서의 한계인가.’
성지한은 전신화된 단전이 조금 더 넓어졌음을 느꼈다.
그야말로 몸 전체를 넘어서서, 마치 ‘단전’이라는 이름의 전신갑주를 두른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포스의 절대영역에 비하면 그 범위가 10cm정도로 오히려 엄청나게 축소되었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절대영역이라 할 수 있겠군.’
포스가 지배하던 절대영역은, 이것에 비하면 감히 ‘절대’를 붙일 수 없었다.
융합되어 외부로까지 영역을 넓힌 이 단전이야말로 공간을 지배한다고 하기 알맞았다.
그리고.
[삼단전의 통합을 완성했습니다.]
[무력과 포스가 통합되어 새로운 스탯으로 재편됩니다…….]
[별의 능력, 무혼武魂을 얻습니다.]
별의 능력?
유니크 위의 등급이 별인가?
성지한은 하나로 재편된 스탯, 무혼을 바라보았다.
수치는 무력이나 포스와 같은 100.
하지만 무혼이라는 범주로 둘이 묶이니, 조금 전 10cm정도만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이, 2배로 넓어져 있었다.
‘이건 너무 압도적인데…….’
별의 능력이라 칭해진 스탯, 무혼.
이건 기존에 지배하던 영역만 단순히 두 배로 넓어진 게 아니라, 무력과 포스가 다뤄 왔던 힘을 몇 배로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리그를 압도적으로 깨부쉈던 성지한마저도 전율케 하는 능력.
‘이 정도면 세 번째 신결을 충분히 쓸 수 있겠어.’
성지한은 무명신공의 세 번째 신결에 생각이 미쳤다.
무혼이 있다면, 충분히 이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국가대표 테스트 때…… 써 버릴까.’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어떻게 쓸지 기대하던 성지한에게.
갑작스레,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별의 능력은 하나의 별에서 단 하나의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성좌 ‘방랑하는 무신’이 이미 무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뭐?’
별에서 단 하나의 존재만이 가질 수 있다는 능력, 무혼.
그걸 방랑하는 무신이 가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방랑하는 무신은 지구 출신이란 말인가?’
방랑하는 무신은 모성에 얽매여 있는 다른 성좌와는 달리, 자신이 만든 별인 ‘투성’에 머물며 성좌를 사냥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만 보면, 무신은 지구 소속이라고 추측이 되었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무혼을 지닌 게 무신이 먼저이니 별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건가?
그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방랑하는 무신’이 당신을 소환합니다.]
성지한의 눈앞에, 칠흑의 공간이 열리더니.
그의 몸이 그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 * *
어둠이 짙게 깔린, 황량한 대지.
스으으윽-!
공간이 소용돌이치더니, 성지한의 신형이 거기서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먼저 살폈다.
‘몸은 멀쩡하군.’
저항할 수 없는 힘에 강제로 연행된 것치고는, 몸은 멀쩡했다.
무혼으로 개편된 능력도 그대로였다.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방이 어두웠지만, 위에서 여러 종류의 색깔이 미약하게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위를 바라보자 거기에는.
‘무기…….’
각양각색의 무기가, 어두운 공간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대충 놓인 것 같지만.
성지한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수준의 무구임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정도는 되어야 EX급인가.’
그가 최근에 얻었던 봉황기는 저기에 감히 끼지 못할 정도로, 각종 무구들이 품고 있는 기운은 급이 달랐다.
저런 대단한 무기가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니.
성지한은 별무리를 이룬 무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때.
“반갑네. 연자여.”
뚜벅. 뚜벅.
어둠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걸어왔다.
“당신은…….”
“나는 동방삭이라고 하네.”
기나긴 푸른 도포를 입은, 인자한 얼굴의 백발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가 발하는 언어는 분명 한국어가 아니었지만, 성지한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동방삭이라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
이 이름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자네, 내 붓으로 힘을 얻었더군.”
동방삭의 붓을 통해서, 성지한이 상태창에 무력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신을 대신하여 연자와 이야기를 나눌 대리인으로 발탁되었네.”
“무신을 대리한다니……?”
“원래는 자네가 직접 그분을 뵈어야겠지만…….”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성지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무혼을 지녔음에도, 아직 자네의 수준이 너무 낮아. 지금의 수준이라면 무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테지.”
방랑하는 무신.
눈만 마주쳐도 즉사한다니, 무슨 흉신악살이라도 되나?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전 왜 소환된 겁니까?”
“자네에게 선택지를 주기 위해서.”
동방삭은 뒷짐을 지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무혼을 얻고 언제 올지 모를 죽음을 각오하겠는가. 아니면, 깔끔히 포기하고 무신의 보상을 얻겠는가?”
무혼을 얻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별에서 단 하나의 존재만이 지닐 수 있어서 그런 건가.’
성지한은 친절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동방삭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무혼을 얻으면, 왜 죽어야 합니까?”
“무혼은 단 하나의 존재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자네가 무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잠시는 무신과 양립이 가능할 테지만…….”
동방삭은 뒷짐을 풀며, 다시 수염을 쓰다듬었다.
“언젠가는, 양립이 불가능할 때가 올 거라네. 아마 자네 수준이 꽤 올라왔을 때겠지. 시스템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네와 무신님을 싸우게 할 것이야. 그날이 오면, 자네는 죽는다네.”
방랑하는 무신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단언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런 예정된 죽음을 피해, 자네가 무혼을 포기한다면…… 무신께서는 저 물건 중 하나를 보상으로 내릴 거야.”
“저건…….”
“성좌의 정수라네. 저렇게 투성의 하늘에서 별자리로 위치한 무구는, 꽤 상급 성좌들의 것이지. 최소 레벨 1,000 이상의 성좌들의 물건이야. 자네는 내 연자이니만큼, 좋은 걸 골라 줌세.”
동방삭은 이미 성지한이 포기할 걸 확신하고, 찬찬히 하늘 위의 무구들을 바라보며 뭐가 좋은지 고민했다.
“저거는 인간이 쓰기에는…… 그렇군. 진면목은 77척의 둔기이니, 모든 힘을 끌어 낼 수가 없어. 저거는 또 너무 작고…….”
진짜 자기가 쓸 무기인 것처럼, 심각하게 따져 보는 동방삭.
성지한은 그런 그의 고민을 해소해 주기로 했다.
“동방삭 님. 무기, 안 골라 주셔도 됩니다.”
“응? 무슨 소리인가?”
“무혼. 그냥 얻으려고요.”
뚝.
그 말에, 동방삭의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자네. 제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