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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121화 (121/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21화>

“청원인이 벌써 30만을 돌파한 상황이오니, 관리국에서는 진실된 대국민 답변을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후우.”

새롭게 부임한 배틀넷 관리국장 오규승은 제 손에 쥐어진 공문을 읊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조금만 기다리면 어련히 국가대표에 뽑힐 텐데. 뭐가 급하다고 하루 만에 이렇게 불이 붙는지…….”

플레이어 성지한.

전 세계의 유망주 중, 가장 각광받는 플레이어가 아닌가.

워낙 그가 보여 주는 퍼포먼스가 뛰어나서, 관리국에서는 그가 다이아에 승급하기만 하면 바로 국가대표로 선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 성장 속도만 봐도 얼마 안 돼서 다이아가 될 거 같던데 말야.”

“어제의 패배 중계가 큰 위기감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관리국장의 한탄에, 공문을 가지고 온 박윤식 과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만에게도 너무 처참하게 패배했으니까요…….”

“국대 전술의 핵심이던 검왕이 일본에 가 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한구 국가대표의 기본 전술은 소수정예의 워리어들로 적의 맹공을 막아 내며 시간을 끌고.

강력한 아처 전력으로 적의 핵심 전력을 하나하나 저격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방어의 거의 대부분을 소수의 워리어에 치중한 극단적인 공격 배분.

얼핏 보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검왕이 있을 땐 무적의 전술이나 다름없게 작용했다.

검왕이 워낙 강했던지라, 소수의 전사만으로도 전방이 커버되다 못해 오히려 적의 전사 진영을 뭉개 버리기도 했고.

그렇게 앞에서 시간이 끌릴 동안, 아처들의 초장거리 저격이 효과적으로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팀의 핵심이었던 검왕이 사라지고 나니, 이 전술은 근간부터 무너지게 됐다.

“예…… 지금의 대표팀은 전방이 너무 약합니다. 동북아 리그의 경쟁국 중, 워리어진이 압도적으로 최약체일 정도로요.”

“그래. 어제도 대만의 워리어들에게 그대로 무너지더군.”

한국인 플레이어들이 가진 워리어의 재능은 모두 검왕에게만 몰린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였다.

검왕을 제외한 다른 워리어들은, 모두 다른 나라의 워리어에 비해 역량이 부족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리그로 손꼽히는 동북아시아 리그에서는, 그 수준 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검왕이 있을 때만 해도 이 약점이 가려졌었지만, 그가 떠난 이후에는 어찌나 잘 보이던지.

“그래도 골드를 국대로 뽑는 건 좀,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나?”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배틀넷이 최초로 들어온 시기 때에는, 골드와 플래티넘도 국가대표 경기를 치렀었으니까요.”

“그땐 다이아까지 레벨 업이 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고. 지금은 10년이나 지났잖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리나라 관리국에서 정한 규정상 안 되는 거지, 세계 배틀넷 연맹의 규정으로 따지면 출전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국민 청원글에서도 그 부분을 강조하고 있고요.”

“하기야 상대 나라가 국가대표로 골드리거를 뽑는다면 당연히 거부할 리 없을 테니 규정이 있을 리가…… 골치 아프군.”

오규승은 양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골드를 국가대표로 뽑는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시간을 끌고 싶었다.

‘어차피 조금만 시간 끌면, 성지한은 금방 상위 리그로 올라올 텐데 말이야.’

금번 하반기 동북아시아 리그는 어차피 망했다.

어제 대만과의 경기 패배로, 한국은 꼴찌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어졌다.

여기서 여론에 휘둘려 무리하게 성지한을 발탁하느니, 그냥 시간을 끌면서 자연스럽게 성지한이 올라오는 걸 기다리고 싶었다.

하지만.

‘전임이 그렇게 나가리 됐는데…….’

괜히 성지한한테 시비를 걸었다가, 이 꿀 자리를 잘린 전임 관리국장이 떠올랐다.

정치권에서 입김이 상당히 강한 양반이었는데도, 여론의 뭇매를 맞으니 직을 유지할 수가 없었지.

“내 솔직히 말하자면, 골드를 뽑는 건 시기상조 같네. 플래티넘이면 모를까 골드라니…… 거기에, 어차피 성지한은 금방 올라오지 않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골드를 국가대표로 뽑는 건 관리국에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지금이야 30만이 청원했지만, 막상 뽑히면 반대 여론도 엄청날 겁니다.”

“맞아.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내가 사정사정해서 관리국과 성지한과의 관계를 회복했는데, 괜히 이번 일로 틀어지긴 싫단 말이지…….”

박윤식 과장은 관리국장이 뻔질나게 대기 길드장을 찾아가 호소했던 걸 떠올렸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괜히 이번에 관계가 틀어지기 싫겠지.

“그런데, 성지한 님이 과연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할까요?”

“……당연하지 않는가? 배틀넷 국가대표일세. 가문의 영광 아닌가.”

“지금 국민 청원이 30만이나 돌파하기는 했지만, 막상 골드가 국가대표가 되면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분께서도 괜히 지금 대표팀에 승선해서 여론의 구설수에 오르느니 나중에 올라가는 걸 원하지 않으실까요?”

“흠…….”

오규승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한번, 자네가 그의 의중을 알아봐 줄 수 있겠는가?”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자네야말로 관리국에서 성지한과 가장 친하지 않는가.”

친하긴 무슨.

그저 관리국에서 안면만 제일 많이 텄을 뿐, 직접 만나면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데.

그래도 국장이 이야기하는데,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눈치 봐서 은근히…… 만약에 국대를 하고 싶다고 하면…… 골드에서 말고 그 이상. 그래. 적어도 플래티넘 이상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게.”

괜히 말을 꺼냈다가 일만 더 맡아 버렸다.

박윤식은 성지한의 이야기를 꺼낸 걸 후회하며, 관리국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제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   *   *

같은 날.

성지한은 오늘의 게임을 클리어하고 로그아웃하고 있었다.

‘오늘은 1레벨 업인가.’

이번에 클리어한 게임 종류는 인베이드 맵.

어제의 디펜스 게임은 다이아리거가 클리어하는 수준까지 진행해서 그런지 레벨이 많이 올랐지만.

인베이드 맵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기에, 경험치 보상이 더딘 편이었다.

성지한은 잔여 포인트를 무력에 찍으면서 레벨 업 속도를 가늠해 보았다.

‘이 정도 레벨 업 속도라면, 10월 승급전에 참여할 수도 있겠어.’

골드의 플래티넘 승급전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레벨은 100.

실버에서 갓 골드로 올라온 플레이어가 한 달 만에 참가하기에는 불가능한 속도였지만.

시스템에서 성지한에게 제발 상위 리그로 올라가 달라고 경험치를 퍼 주고 있었으니, 25일까지 충분히 1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골드에 올라왔으니 서바이벌이나 던전 맵도 바뀌었을 텐데. 새로운 맵이 걸리길 기대해야겠군.’

아무래도 새로운 맵에서는, 경험치를 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나. 할 말이 있는데…….”

“어. 들어와.”

성지한의 방에 찾아온 윤세아는, 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나, 오늘 게임 하면서 생각해 봤는데 말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삼촌 버스 타는 거. 이제…… 그만할까 해서.”

“……왜? 레벨이 안 올라?”

“아니. 엄청 잘 올라. 오늘도 2레벨 올랐어.”

“음, 뭔가 불편한 거라도 있어?”

“응. 뭐랄까…… 너무 내가 하는 게 없는 거 같아. 실제 실력은 늘지 않고, 레벨만 오르는 느낌이야.”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기분이 들 만했다.

오늘 게임만 해도, 윤세아가 기여한 바는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대기만성으로 게임 두 판 할 수 있잖아. 한 판은 네 실력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건데, 그거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응…… 조금? 이런 실력이라면 TOP 100 우승은 못할 것 같아.”

“……그거 진짜로 노리는 거었어?”

“당연하지. 대기만성 C급으로 올라가야 하잖아? 승률 60퍼센트로 500판을 하는 거보다, TOP 100 우승이 훨씬 빠르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윤세아.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어차피 대기만성 D등급 업그레이드 조건도 충족했으니까. 그럼 한번 스스로 올라와 봐.”

“응!”

“그럼 소피아한테도 연락해서 파티 해산해야겠네.”

“……아. 그, 그래?”

“어. 굳이 너 키워 주는 것도 아닌데, 파티 유지할 필요가 없잖아.”

성지한이 그리 말하자, 윤세아는 뺨을 긁적였다.

소피아가 성지한이랑 파티 같이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옆에서 계속 지켜봤는데.

자기 때문에 파투 나게 생겼으니 괜히 미안해진 것이다.

“으…… 삼촌, 그럼 그냥 파티 일주일에 두 번만 할까?”

“왜 또?”

“아. 그냥, 파티 완전 해산하기는 아까워서! 헤헤.”

성지한은 윤세아가 왜 저러는지 대충 감이 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없으면 승률 60퍼센트가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두 판 정도는 승리 줘야지.’

어느덧 레어 스탯도 둘이나 가지게 된 윤세아라, 승률 60퍼센트 정도는 사실 무리한 조건이 아니었지만.

성지한이 보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던 것이다.

“알았어. 그럼 내가 소피아한테 연락할게!”

그러면서 윤세아가 방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하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너님! 관리국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관리국에서요?”

[네. 박윤식 과장님이 오셨는데…… 그. 국가대표 건으로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웬 국가대표요?”

[어…… 오너님 국가대표로 뽑자고, 국민 청원이 30만 넘은 거 모르세요?]

“네에?”

성지한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그런 걸로 국민 청원을 하고, 거기에 30만까지 모여?

‘내 팬이 그리 많았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이하연에게 대답했다.

“일단 길드로 내려가겠습니다.”

*   *   *

대기 길드 사무실.

“……그래서, 관리국에서는 국민 청원에 대해 답변을 드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성지한은 박윤식 과장에게 이번 국민 청원이 벌어진 배경에 대해 설명을 쭉 들었다.

“대만한테 그렇게 심하게 졌나요?”

“음…… 어제 경기 안 보셨습니까?”

“예. 수련하느라 바빴거든요.”

삼단전 통합 시도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거기에만 신경을 쓰던 성지한.

게다가 대표팀이 패배하는 건 그에게 있어서 예견된 일인지라, 딱히 시청하고 있지도 않았다.

“좀 심하게 지긴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대만은 그나마 워리어 진영이 약해서, 그나마 1승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냥 뚫려 버렸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무슨 골드가 국가대표가 된답니까. 지금 국가대표 기준이 다이아 레벨 225 이상 아닙니까?”

200레벨부터 시작하는 다이아리거.

하지만 이들도 225레벨을 기점으로 하나의 벽을 느꼈다.

이 시점부터는 경험치 획득량이 크게 감소하는 데다, 패배할 시 깎이는 경험치가 훨씬 커서.

정말로 실력이 뛰어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다이아들은 200~225레벨에서 정체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이아들 중에서도, 벽을 넘은 이들.

그런 플레이어만이 국가대표가 될 자격이 주어졌다.

“네. 맞습니다. 워리어 진영의 경우에는 그 이하 레벨도 조금 있긴 하지만요…….”

“아니, 225 이하도 있었어요?”

“예. 워리어 클래스 수급이 안 되다 보니…….”

“그건 좀 심하네요.”

국가대표 수준이 참담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225레벨 이하가 뽑힐 줄은 몰랐다.

검왕의 빈자리가 크긴 크구나.

“저…… 성지한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지요.”

“아직 골드인 저로서는 시기상…….”

일거에 거절의 뜻을 밝히려던 성지한이 순간 말문을 멈추었다.

‘잠깐. 골드로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업적 포인트 꽤 얻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최근 60만 넘게 소모해서 빈털터리가 된 업적 포인트가 아닌가.

국가대표가 된다면 분명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실력으로 국가대표팀에 민폐를 끼쳐선 안 되지.’

현재 성지한의 레벨은 70.

대표팀들의 레벨과는 아득한 차이가 있었다.

괜히 업적 포인트 모은다고 승낙했다가, 대표팀에 민폐를 끼치면 이게 무슨 추태인가.

그래도…….

“어제 경기. 워리어 진영만 한번 보겠습니다.”

지금의 대표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궁금했다.

“네. 여기 준비됐어요!”

그렇게 성지한은 이하연이 준비한 어제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게 되었고.

=아아아! 무너집니다! 무너져요! 한국 대표팀……!

=그냥 막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나요!

=아! 또 전사!

“……왜 이렇게 못해요?”

대만 전사들에게 순식간에 짓밟힌 대표팀 워리어진을 보며.

자신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추태가 전혀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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