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02화>
* * *
[TOP 100 승급전을 선택하셨습니다.]
성지한의 선택은 TOP 100이었다.
‘골드 승급전을 치른다면, 단번에 플래티넘 리그로 편입되겠지.’
골드를 뛰어넘어 플래티넘이 된다면, 성장 속도는 빠르겠지만.
골드 리그 맵에서 얻을 수 있는 업적 퀘스트를 비롯한 여타 보상을 날리게 된다.
성지한의 입장에선 당연히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튜토리얼이 끝났을 시기에는 플래티넘에 있어야 해.’
승급전 날짜는 9월 25일.
이때 골드로 승급하고 나면, 10월부터 12월까지 세 달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적당히 성장 속도를 조절하면서 플래티넘 리그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래야 스페이스 리그 개막전 때, 지구가 패배하지 않게 된다.’
꽤 먼 미래에서 회귀한 성지한에게, 이 시기의 게임에 대해서 기억나는 바는 많지 않았지만.
지구가 스페이스 리그에 편입한 직후, 벌어진 첫 번째 개막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류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 준, 엘프와의 첫 경기를.
그때의 경기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성지한은 다이아가 아니라 한 단계 아래 등급인 플래티넘에 속해 있어야 했다.
[밸런스 조정을 위한 페널티를 받습니다.]
[승급전에 사용되는 맵이 서바이벌 맵 ‘콜로세움’에서 디펜스 특수 맵, ‘습격받은 정복자의 황릉’으로 바뀝니다.]
[‘북쪽’ 팀과, ‘남쪽’ 팀의 정원이 50명 대 50명에서, 10명과 90명으로 바뀝니다.]
[TOP 100 중 플레이어 성지한은 북쪽 팀에 속하게 되며, 나머지 팀원들은 TOP 91위부터 100위까지로 정해지게 됩니다.]
[북쪽 팀이 지키는 북쪽 방면에서 오는 적이 더 강화됩니다.]
팀 정원도 줄이고, 같은 팀에 배정되는 플레이어도 91~100위인 데다가.
상대하는 적마저 더 강화시키는 밸런스 조정.
성지한은 이걸 보고 피식 웃었다.
‘이럴 땐 배틀넷이 참 꼼꼼하단 말이야.’
맵 조건이 성지한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정작 그는 여유만만이었다.
‘그래 봤자 실버 승급전이니까.’
오히려 평소와 다른 특수 맵인 이상.
여기서 특이한 업적 퀘스트를 깰 게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성지한이 TOP 100 경기 참여를 선택하자.
이변이 일어났다.
[배틀넷 베팅 서버에서 긴급 공지를 알립니다.]
[실버 리그 TOP 100의 맵이 플레이어 ‘성지한’의 선택으로 인해 뒤바뀌었습니다. 베팅 서버는 기존의 베팅 수치를 초기화하고, 새로운 베팅을 시작합니다.]
[실버 리그 TOP 100 경기의 맵이 바뀌면서, 경기 일정이 하루 앞으로 당겨집니다. 세계 1위 리그인 뉴욕 리그 기준, 9월 24일 저녁 6시에 편성됩니다.]
[자세한 변경 사항은 베팅 사이트를 참조해 주십시오.]
배틀넷의 시스템에 포함된, 배틀넷 베팅 서버.
거기서 실버 TOP 100 경기의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자, 전면 공지가 날아온 것이다.
‘일정까지 바뀌다니. 디펜스 특수 맵…… 대체 뭐길래?’
성지한이 그렇게 의문을 가질 무렵.
쾅!
“삼촌! 뭐야, 뭐야. 갑자기 공지 떴어! TOP 100 경기 바뀐다며?”
“음, 봤구나?”
“나한테만이 아니야! 지금 난리야! 배틀넷 베팅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들에겐 공지가 다 떴다고!”
“뭐? 진짜?”
뭔가 일이 커지는군…….
성지한은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표정을 굳혔다.
“잠깐. 세아야?”
“응?”
“배틀넷 베팅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들한테 공지가 떴다고?”
“어! 그렇다니까! 미국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 모두 다!”
“너도 봤다며?”
“응어?”
“설마. 너…… 베팅했냐?”
그러자 윤세아가 아차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 그. 그게. 그게 말이지.”
“후우우……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요즘 장비 사는 게 뒤가 없다 싶더라니.”
윤세아가 근래 레벨 업을 하면서 사들인 장비는 딱 봐도 B~A급 정도로 상당히 비싸 보였다.
물론 좋은 장비를 사는 거야 배틀넷 플레이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성지한은 윤세아의 쇼핑을 과소비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아하기는 했다.
‘그래서 내가 사 준다고 해도, 돈 많다고 괜찮다고 하더니.’
“너…… 언제부터 한 거야?”
“아. 그, 그냥. 그냥! 호기심에…… 사알짝…… 살짝 한 거야!”
“얼마?”
“으, 응?”
“얼마나 했는데.”
윤세아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하나 폈다.
“1억?”
“에이. 너무 낮게 잡으신다~.”
“10억?”
“……아니요.”
“……설마 100억?”
“헤헷!”
윤세아는 혀를 살짝 내밀며 뺨을 긁적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하아.”
성지한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예전엔 안 이랬는데.’
저번 생에서는 도박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윤세아였는데.
어째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 버렸나.
‘아무래도 내가 너무 승승장구했나 보군.’
예전 성지한은 비록 승률이 높긴 했어도, 돈을 잃고 따고를 반복했기에.
윤세아에게 그는 그저 도박 중독자일 뿐, 그리 모범적인 사례로 비춰지지 않았지만.
이번의 성지한은 달랐다.
찍는 것마다 죄다 맞추며, 자산을 미친 듯이 불려 나가고 있었으니까.
‘좀 더 주의했어야 했어.’
물론 하지 말라는데 해 버린 윤세아도 잘못이 있기는 했지만.
성지한은 자신의 탓이 더 크다고 봤다.
옆에서 그렇게 신들린 베팅으로 자산을 불리는 걸 지켜봤는데, 호기심에라도 해 보지 않았겠는가.
“하아아. 내가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줬구나.”
“아, 아냐. 삼촌은 언제나 내 우상인걸. 그냥 내가 따라 한 거지.”
“도박하는 걸 누구 보고 배웠겠어.”
“헤헤…….”
“그래서, 얼마 벌었어?”
“어…… 700…… 정도?”
“700억?!”
“네. 헤헤.”
성지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아니, 내 베팅을 따라 해도 그때 5배가 최고였을 텐데?”
“아. 삼촌한테 TOP 100 걸어서 5배 따고. 또 삼촌이 일본이 계속 이길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거기서 소소하게 벌었어.”
“……응? 세아야. 내가 너한테 일본이 계속 이길 거라고 말했었나?”
“아…… 그, 하연 언니랑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거든.”
거기서 정보를 캐치한 건가.
귀도 밝구나.
성지한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아…….”
“헤헤. 삼촌. 한 번만 봐주라~!”
“이왕 이렇게 된 거. 500억은 따로 빼 놔. 망해도 비빌 언덕은 있어야지.”
“당근 빳다죠!”
“그리고, 내 베팅만 따라와. 따로 하진 말고. 그러다가 도박 중독된다. 진짜.”
벌써 베팅으로 돈을 벌어 본 이상.
그냥 하지 말라고 말해 봤자 그게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픽하는, 확실한 것만 하게 해야지.
“물론이지!”
“그래. 베팅에 괜히 재미 들렸다가는 하연 씨처럼 된다. 아, 그리고 하연 씨처럼 내 베팅 거스르려고 하지 말고. 그러다 다 날려.”
“그건 당연히 알지. 하반꿀이잖아.”
“하반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성지한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윤세아는 성지한의 귓가에 은밀히 입을 가져다 대었다.
“‘하연 반대 개꿀’이라는 뜻이야.”
“……뭐냐 그게?”
“하연 언니가 픽하는 걸 반대로 베팅하면 돈 번다고. 가영 언니가 알려 줬어.”
성지한은 하반꿀의 뜻풀이를 듣자, 예전 생이 생각났다.
-제로. 이번엔 누구한테 베팅했어?
-왜. 이 새끼들아. 내 반대로 하게?
-당연하지! 네 반대로 하니 승률 75퍼센트나 찍었다고.
-그래. 제로! 너도 그냥 본능에 거슬러서 우리 따라가는 게 어때? 어겐스트 제로. 우리 용어도 만들었다니까?
-거슬러서 베팅한 게 그거야 새끼들아!
-아 그래? 그래서 누구한테 베팅했냐?
-꺼져! 안 알려 줘!
아메리칸 퍼스트 때에도 길드원들이 죄다 제로의 베팅을 참고하고는 했지.
‘그때랑 취급이 똑같네.’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하연 씨랑 내 베팅 갈리면, 나만 따라.”
“당연하죠. 후후후…… 그래서 삼촌 베팅은?”
“나야 당연히 나한테 하지. 모든 지표 1등은 다 나야.”
TOP 100 맵이 밸런싱되었지만.
성지한의 자신감은 끝이 없었다.
“역시…… 그렇지?”
“왜. 걱정돼?”
“헤헤. 무슨! 난 삼촌에게 몰빵할 거야!”
“윤세아. 목소리가 떨린다?”
“아냐…… 무슨…… 배틀넷 시스템이 밸런스를 맞췄다지만. 난 전혀 의식하지 않아!”
저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많이 의식하는 거 같은데.
“후후…… 그렇게 확신이 안 서면, 길드로 내려가서 하연 씨 베팅 참고해 봐.”
“아아~! 그런 방법이?! 좋아! 나 염탐하러 가 볼게!”
성지한의 말에 윤세아는 화색을 띠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 *
9월 22일.
성지한이 실버 TOP 100 승급전을 선택한 후폭풍은 생각보다 거셌다.
-와 배틀넷 베팅 사이트 전체 공지까지... 실화냐?
-성지한 미쳤네 진짜 ㅋㅋㅋㅋ 승급전 맵에다가 날짜까지 바꾸네 -뉴욕 기준이라 우린 아침 7시에 본방 사수해야겠네요!
-야 근데 팀원 10명 대 90…… 이 정도면, 1등 못하지 않을까?
-어허. 제한성 모릅니까! 제발 한국인이면 성지한에게 베팅합시다!
-저 한국인 아닌데요. 토쟁인데요.
-역시 돈 앞에선 나라도 팔아먹을 토쟁이들;
-원금 회복이 애국심보다 더 중요하다고!
배틀넷에 참가한 이후, 성지한은 언제나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지만.
이번에 그는, 일반 대중보다 도박꾼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사고 있었다.
-님들 배틀넷이 뭔지 모름? 우주적 하이퍼 테크놀로지 시스템임! 그게 지금 밸런스 패치를 했다고요. 10대 90 했다고요ㅋㅋ 그럼 누구한테 걸어야겠음?
-ㄹㅇ...성지한 지금까지 너무 많이 이겼어. 너무 많이 1등 했지. 한 번쯤은 꼬꾸라져도 돼. 인간이 어떻게 달리기만 하겠어. 한 번 쉬어 갈 때도 있는 거지.
-미친 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 지한 오빠는 다이아도 이겼거든요? 뭣도 모르고 까지 말아 주실래요? 10대 90이 뭐야. 1대 99해도 지한 오빠가 당연히 1등해요!
-하... 이래서 그릇된 팬심이 문제네.
-더 퍼스트 니네들은 베팅하지 마라.
성지한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는 한국의 여론과는 달리.
배틀넷 베팅과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들고 일어나 성지한이 이번에는 패배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밸런스를 조정한 것이 바로 배틀넷이었으니까!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도, 배틀넷을 접속할 수 있게 하며, 전기가 안 통해도 TV에서 채널을 볼 수 있게 만든 초 하이퍼 테크놀로지 기술을 지닌 그 배틀넷에서, 밸런스를 조정했으니까.
-이번에는 진다. 무조껀 진다!
-진짜. 몇 번을 1등했냐 성지한이 ㅋㅋㅋ
-양심적으로 한 번은 고꾸라지겠지.
-ㄹㅇ; 시스템이 규제하면 원래 이길 수가 없어. 이게 세상 이치야.
이러한 여론은, 해외에서 더 심했다.
성지한의 대단함을 체감한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시스템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번에는 성지한 진다wwwww 시스템을 어떻게 거스르냐는wwwww -배런... 저번에 날린 100만 달러... 이번엔 되찾아 와라... 너만 믿는다...
-시스템이 판 깔아줬다고? 당연히 배런이 1등하겠지 :-)
베틀넷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밸런스 패치를 했으니, 더 이상 그가 독주를 할 수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오너님 배당률…… 높네.”
성지한의 1등 배당률, 4배.
그가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놀라운 성과를 비추어 보면, 말도 안 될 정도의 저평가였다.
다이아도 꺾고, 혼자서 내시드 백작을 잡아 낸 그가, 어떻게 대중에게 1등으로 선택받지 못했단 말인가.
“역시 시스템은 이기지 못하는 건가…….”
이하연은 길드 마스터실에서,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남 일대가 보이는 명당.
“아가씨. 잔 가져왔습니다.”
“고마워. 가영아.”
이하연은 빛이 꺼지지 않는 강남의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잔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제…… 선택을 할 시간이었다.
“오너님…… 죄송해요.”
세계를 한순간에 바꿔 버린 배틀넷 시스템.
그 대단한 존재가, 대놓고 밸런스를 조정한 것이다.
1등을 놓치지 않던 성지한을 완전히 저격한 것이다.
어디에 베팅해야 할지, 답은 나와 있었다.
“하아. 가영아. 마음이 아프네.”
“왜 그러십니까?”
“길드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응당 오너님께 베팅해야 하는데…… 전문가의 본능적인 감각이 그게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어.”
임가영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이하연을 바라보았다.
누가…… 전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