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97화>
* * *
털썩.
“헉…… 헉…… 죽겠네 진짜…….”
“허어어…… 어떻게 벌써 왔어?”
성지한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은 윤세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뒤에 발자국이 찍힌 거 보면, 갑옷 무게는 아까랑 똑같은데.
설마…….
“삼촌. 진짜 실버 맵이 좋긴 한가 봐.”
씨익-
윤세아는 자리에 앉은 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체력이 올랐어.”
“너. 그럼 설마…….”
“어. 드디어 ‘목표 달성’했어!”
이하연이 얻은 집중 성장이 적용되었기 때문일까.
윤세아의 체력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벌써 1이 증가해 있었다.
‘드디어 체력이 근성으로 바뀌었군.’
아리엘이 무게를 추가해도, 저렇게 뛸 수 있게 된 걸 보니까.
체력보다 효율이 2배 좋은 레어 스탯 ‘근성’으로 바뀐 게 틀림없었다.
“좋아. 그럼 그 갑옷 벗고 전투 준비하자.”
“알았어!”
윤세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장착 해제하고 활을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레벨 업 해야지!”
인벤토리에서 꺼낸 화살을 시위에 걸며, 의욕에 불타는 윤세아.
근성도 얻었으니 이제는 폭렙업길만 남았다.
“그래. 오늘은 내가 각 잡고 키워 주마.”
“오. 정말?”
“그럼. 미니언 데려올 테니까 쏘기만 해.”
성지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작은 천사 형상을 하고 있는 적 미니언 부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미니언의 그림자가 검으로 변하며, 뒤에서 그들을 찔렀다.
푹! 푹!
가슴팍에 검이 박힌 채, 움직이질 못하는 미니언 무리.
크기는 비록 작아도, 실제 수준은 실버 50레벨 정도로 강력한 이들이었지만.
성지한의 그림자검에는 전혀 저항을 하지 못했다.
“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적 부대를 제압한 성지한.
그 다음로는 포스로 꼬챙이에 꿰인 미니언들을 끌고 와서, 윤세아 앞에 일렬종대로 진열시켰다.
“한 놈에 한 발씩. 막타 치면 돼.”
-개꿀꾸르르를
-초특급 버스네 진짜 ㅋㅋㅋㅋ
-버스가 뭐임? 이 정도면 퍼스트 클래스급 안락함이지.
-레벨 완전 꽁으로 올리네.
“좋아!”
윤세아는 죽어 가는 미니언들에게 신나게 화살을 쐈다.
원래면 브론즈의 화살 따위, 미니언들이 죄다 튕겨 냈겠지만.
이미 그림자검에 제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그들은 하나둘씩 죽어 나갔다.
그렇게 열 마리쯤 잡았을까.
“와. 나 벌써 레벨 업 했어!”
“레벨 7인가 그럼? 오늘 10 넘을 때까지, 쭉쭉 달려 보자.”
“나야 좋지! 히히.”
내시드 백작을 잡기 전, 버프 200퍼센트 모을 때까지의 여유 시간 동안.
성지한은 최대한 윤세아의 레벨을 끌어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아. 진짜 너무 센 거 아냐?”
“성. 아깐 장난이었어. 우리한테 안 져 줘도 되니까 그냥 같이 내시드 백작 트라이할까?”
성지한테 아까 죽었다가, 부활한 두 플레이어가 다시 라인에 복귀하면서 그에게 그리 말을 걸었지만.
“아니. 우리 조카 경험치나 돼 줘.”
“뭐?”
푹!
성지한은 미니언 제압하듯, 둘을 끌고 와서 윤세아의 앞에 대령했다.
“큭……! 이, 이건 노매너지!”
“삼촌. 저분들이 노매너라는데?”
“괜찮아. 여기로 다시 온 쟤들이 잘못했지.”
-ㅇㅈ합니다...
-그치 당해 놓고 다시 온 게 잘못이지ㅋㅋㅋㅋㅋ
쟤들한테 노매너 소리를 듣는 게 뭐가 중요한가.
윤세아 레벨 업 시키는 게 중요하지.
성지한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슥 긋는 제스처를 취하자.
“올~ 그렇다면야 사양 않고!”
윤세아는 열심히 과녁이 된 두 사람에게 화살을 날려 댔다.
“젠장!”
“두고 보자……!”
두 플레이어는 그렇게 독기 가득한 얼굴로 전사했지만.
푹!
“아…… 진짜!”
“이건 좀 아니잖아!”
두 번째에는 다른 라인에 서려다 무력하게 압송되고.
“미니언이라도 좀 치면 안 될까?”
“우리 팀에서 꼴찌라도 면하고 싶은데…….”
세 번째에도 다른 라인에서 타워링을 했음에도 전혀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끌려오게 되니, 둘은 분노하는 대신 미니언이라도 치게 해 달라며 사정사정했다.
“그럴 여유가 없네. 벌써 세아 레벨이 10이 올랐거든.”
하지만 성지한은 단호했다.
“얼른 다시 살아서 와 줘.”
“에라이 씨…….”
“됐어. 게임 안 해!”
푹!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 전사한 두 플레이어.
그렇게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한 이후부터는, 라인에 다신 복귀하지 않았다.
그냥 이번 게임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세아야. 버프 어느 정도 쌓였어?”
“150퍼센트. 200퍼센트가 맥스지?”
“음. 그럼 금방 끝나겠네. 난 정글 좀 돌고 올게. 아리엘이랑 나머지 50퍼센트 채우고 있어.”
“알았어!”
성지한은 적 플레이어가 게임을 포기한 라인에, 아리엘을 소환했다.
“세아 좀 케어해 줘.”
“알겠다. 주인. 타워 밀어 버려도 되나?”
“그래. 슬슬 부수자.”
내시드 백작을 잡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적을 본진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윤세아 레벨 업 때문에 시간을 좀 끌었지만,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겠지.
“그래. 그럼 내가 가장 먼저 밀지.”
아리엘은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천사 진영의 1차 타워가 파괴됐습니다.]
타워를 파괴했다는 메시지가 벌써 떴다.
그것도 배런이 향했던 미드가 아니라.
“……이걸?”
마시드가 간, 탑 라인에서였다.
* * *
‘뭐야…… 이 사람!’
소피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마시드를 바라보았다.
‘축구의 신’ 마시드.
그는 세상에 몇 없는 SSS급 기프트를 지녔지만, 축구공을 발에 달고 있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한 때 세계 최고로 추앙받던 축구 선수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플레이어였다.
‘워낙 SSS급의 실패 사례로 언급이 많이 돼서 전혀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이거 미쳤잖아?’
어느새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만 모이게 된 대기 길드.
이곳에 왜 마시드 같은 사람이 있는지 의아했는데, 그녀는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저레벨 마법사들이 던져 대는, 흔하디흔한 공격 마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시드가 펼치니,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화르르륵!
그의 발치에 놓인 축국공이 붉게 타오르더니, 곧 어마어마한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이 정도면 볼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 수준.
마시드는 그 거대한 불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트래핑하곤, 적진을 향해 뻥 찼다.
콰콰쾅!
“미친…… 실드! 실드으으으!”
“억! 방패 녹는다! 브론즈가 왜 저리 세냐!”
“소피아 버프가 저렇게 좋았나?”
“아냐! 그 정도로 사기는 아니라고!”
같은 뉴욕 1 에어리어 출신이라 그런지.
소피아의 버프에 대해 알고 있는 오렌지 길드원들.
둘은 마시드의 파이어 볼을 막아 보려고 애썼지만, 곧 불덩이에 파묻혀 버렸다.
“버프를…….”
“아. 네네!”
마시드의 발치에, 불이 꺼진 공이 돌아오자.
그는 여유롭게 공에 마법을 부여하며 미니언을 제압했다.
20레벨대 브론즈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전투를 주도하는 마시드였다.
‘몸놀림도 엄청 빠르네.’
그가 상대하는 미니언들은 레벨이 그보다 훨씬 높았지만.
마시드는 그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하면서, 근접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거리 유지가 필수인 데 반해, 마시드는 오히려 자기 쪽에서 거리를 좁혔다.
“천천히 밀겠다. 라이트닝.”
지지지직!
이번엔 전기가 감도는 오브.
팡! 팡!
마시드는 패스를 하듯 미니언들을 하나둘씩 제압해 나갔다.
파이어볼보다 파괴력은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정교하게 하나하나를 제압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와아…….”
소피아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마시드가 확실히, 한때 전 세계를 풍미했던 ‘축구’의 신이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런 게 장인인가?’
오로지 축구만을 생각하는 고독한 장인.
저렇게 지저분하고 거칠게 기른 수염도 축구 하나에만 몰두하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거겠지.
그녀가 그렇게 마시드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음?”
공을 열심히 차던 마시드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김성용 님. 100GP 후원 고맙다. 이지성 님. 200GP 후원 고맙다. 박영표 님. 300GP 후원 고맙다.”
익숙지 않은 한국어 발음으로 일일히 후원에 고마움을 표하는 마시드.
소피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말이라서 뭐라고 하는진 자세히 모르겠는데, 허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연신 숙이는 게, 마치 감사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후원이 쏟아지나?’
배런은 후원을 받아도 본체만체 고개만 까딱하던데.
‘자존심 빼면 시체일 것 같은 인상인데, 인사성도 좋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렇게 좋게 평가하는 소피아였지만.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미니언한테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계속 마시드가 감사를 연발하자, 얼마 안 가 고구마를 가득 머금은 듯 답답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마시드! 뭐 해요! 포위됐어요!”
“후원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전투할 땐 적당히 끊어야죠!”
“100GP나 해 줬는데 어떻게 끊나?”
“100GP? 겨우 그거 가지고…….”
“겨우우? 10만 원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앗, 미션이……!”
소피아를 철없는 애송이 보듯 쳐다보던 마시드의 눈앞에 시청자 미션이 떨어졌다.
[윤흥민 님이 시청자 미션을 보냈습니다.]
-적 타워를 가장 먼저 철거해라.
-보상 : GP 3,000
“3, 3,000GP?!”
마시드가 채널 미션을 바라보고는, 바로 허리를 120도로 굽혔다.
“고, 고맙! 습니다! 첫 포탑은, 이제 내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손한 목소리.
하지만 고개를 숙였다 든 그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서포터. 풀 버프! 빨리!”
“왜, 왜요?”
“3,000GP! 타워, 내가 먼저 민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매직 미사일!”
마법을 오브에 모조리 때려 넣기 시작하는 마시드.
오브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세 마법이 융합했다.
“빨리! 버프!!!”
“알았어요!”
소피아의 버프를 받고, 마시드는 본격적으로 타워를 두들겼다.
쾅! 쾅! 콰앙!
집채만큼 거대해진 마법 덩어리가 타워를 후려쳤다.
게임 내에서, 단단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워.
하지만 마시드의 오브가 연발 자주포라도 되듯 몇 번이고 타워를 때리자.
콰르르르-
순식간에 형체가 반 이상 무너져 내리며 걸레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뭐야. 진짜 부숴져……?’
아니.
아무리 그래도 브론즈잖아?
아무리 풀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아무리 SSS급 기프트가 있다고 해도.
타워가 이렇게 벌써 부서져도 되는 거야?
“깼드아.”
콰아아앙!
완전히 터져 나가는 타워를 보며, 소피아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마시드를 바라보았다.
‘……로버트가 엄청 들이대겠네.’
소액의 후원에도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는, 돈이 급한 플레이어.
이런 사람을 영입하는 데에는, 아메리칸 퍼스트의 치프 스카우터 로버트 게이츠만 한 사람이 없었다.
“윤흥민 님! 3,000GP! 정말 고맙! 습니다!”
미션을 클리어하고, 한국어로 리액션을 하는 마시드를 바라보며, 소피아는 살짝 웃었다.
‘이제 금방 같은 길드에 소속될 지도 모르겠어.’
마시드가 성지한에게 빚이 있다는 걸 모르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잡죠.”
적을 완전히 몰아붙이고, 200퍼센트 버프를 모두 챙긴 성지한 파티는, 내시드 백작이 숨어 있는 계곡 근처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