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94화>
-성지한이 혼자서 휩쓸고 다닌 게 이유가 있었군.
-그런데 레벨 46에 저런 스탯이 가능한가?
-그것도 다 사라진 기프트 때문이지!! :-)
-유니크 스탯 1개 가지고도 배런이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불렸는데 lololol -배런은 이제 다시는 유망주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없겠어.
-자기 능력인 줄 알았던 포스로도 밀렸잖아? 사과 깎는 거 봤어?
-당연하지. 그렇게 활용하는 건... 배런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거야.
배런은 성지한의 기사에 달린 미국인들의 리플을 보고 술잔을 집어던졌다.
“그깟 거, 누가 못한다고!”
포스를 염동력처럼 운용하는 건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했던 거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할 수 있는 잡기술일 뿐!
흥분으로 얼굴이 발개진 배런이 바닥에 손을 뻗었다.
띄워 올리려는 대상은 깨진 유리잔.
필사적인 의지가 담겼기 때문일까.
깨진 유리잔은,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지만.
“것 봐……!”
희열에 찬 배런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쨍그랑!
유리잔 잔해가 폭발하듯 깨져 버렸다.
포스의 미세 컨트롤이 실패한 것이다.
파지지직- 펑!
천장의 조명도 깨지며, 잠시 전깃불이 튀었다.
깨진 조명의 잔해가 배런에게로 쏟아지듯 떨어졌지만.
그를 든든하게 지켜 주는 포스의 절대영역 덕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으으…….”
하지만 몸은 다치지 않았어도.
배런의 마음에는 스크래치가 났다.
안 된다…….
단순히 유리잔 잔해를 드는 것도 안 되는데.
성지한이 보여 주었던 사과 깎는 식의 미세한 컨트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놈은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배런은 입술을 깨물었다.
성지한.
그 자식을 보기 전까지는 인생이 탄탄대로였다.
세계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유니크 스탯을 가지고, 언젠가는 세계 랭킹 1위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TOP 100 승급전에서 그를 만난 이후로.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세계 1등은 성이 하겠군.
-상태창 좀 빨리 공개했으면 내가 배런에게 100만 달러를 걸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모두 성에게 걸 테니 내기가 안 되겠어.
“Shit…….”
기사에 달리는 사람들의 리플이 눈에 박혔다.
배런은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배런의 꿈속에서는.
대기 길드에서 본 주은지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벌떡!
배런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튕겨나듯 잠에서 깼다.
그녀가 이토 시즈루의 분신임이 밝혀진 이후, 미련이 사라진 줄 알았건만.
오히려 성지한의 영상 속에서 보였던 여신 모드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꿈까지 말썽이군…….”
사람을 조종하는, 최악의 스파이가 바로 이토 시즈루가 아닌가.
배런이 애써 그녀를 머리에 지우며 책상에서 일어났을 때.
[배런. 대기 길드에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로버트 게이츠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무슨 염치로 나에게 제안을 하지?”
자기가 먼저 성을 낸 건 염두에도 두지 않은 채.
그는 어제 방송에서 성지한이 고의적으로 자신에게 창피를 주었다고 생각한 배런이 그리 반문했지만.
[내시드 백작을 같이 잡아볼 생각이 있냐고 하는군요.]
“뭐…… 내시드 백작을?”
로버트가 대기 길드의 제안을 말하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인베이드의 협곡 맵에서만 나오는 내시드 백작.
하지만 실버에서 플레이하는 협곡 맵에서는, 아예 등장도 하지 않는 보스 몬스터였다.
플래티넘 이상에서나 사냥을 하는 이 보스를 잡자고?
아니, 애초에.
“리그 지역이 다른 데 가능할 리가!”
성지한은 한국의 강남 1 에어리어고, 배런은 미국의 뉴욕 1 에어리어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리그끼리 팀을 짜는 건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런 제안을 하는 거지?
[대기 길드 쪽에서 방법이 있답니다. 소피아는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배런은 곰곰이 생각했다.
성지한의 내시드 백작 사냥 참여.
그 꼴도 보기 싫은 놈을 도와주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성공하면 또다시 그놈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지.’
분명히 그놈도 자신이 있으니까 내시드 백작을 잡자고 하는 걸 거다.
그렇다면 거기에 숟가락을 얹어야지.
궁극의 마법사에 걸맞은 활약상도 보여 주면서!
그리 생각한 배런은 로버트에게 답했다.
“참가하겠다.”
* * *
대기 길드 안에 잠입하여, 암적인 존재로 자랄 터였던 주은지를 성공적으로 제거한 성지한은 이제 배틀넷 미션으로 눈을 돌렸다.
직면한 과제는 역시 인베이드 맵 ‘종말의 협곡’의 연계 퀘스트.
[연계 퀘스트 - 사도의 흔적 (2)]
-빛과 어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도는 두 진영의 충돌을 획책한 채, 깊은 호수 아래에 숨어 있습니다.
-교활한 사도, ‘내시드 백작’은 대천사와 사신의 무기가 부서진 것을 보고 움직일 것입니다.
-두 신물의 파편을 호수에 던져서, 백작을 호수에서 끌어내 토벌하세요.
-보상 : 공허의 장막 / 업적 포인트 50,000
종말의 협곡 맵은 플레이어의 리그 단계에 따라 진화한다.
각 단계마다 맵이 커지고 미니언들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글에도 변화가 생겨서.
골드 리그의 협곡 맵은 아래쪽 개울가에 준보스, ‘드레이크’가 등장하며.
플래티넘 리그의 협곡 맵에선 드레이크와 더불어 보스 몬스터인 내시드 백작이 등장했다.
내시드 백작은 플래티넘 5명이 모여서 정교한 협공을 해야 잡을 수 있는 보스로, 실버에게 이걸 토벌하라고 하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성지한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션을 계속 깨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막막한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래도 내시드 백작을 잡기 위해선 팀원이 필요하단 말이지.’ 예전 세계 랭킹 7위 수준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성지한이 내시드 백작을 잡기 위해서는, 팀원 4명이 꼭 필요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손발이 맞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 팀원으로 쓸 만한 사람이 없는 게 문제인데…….’
강남 1에 있는 대기 길드 길드원이라고 해 봤자 임가영와 디에고 마시드뿐.
거기에 둘은 아직 브론즈라, 실버인 그와 같이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또 공개 파티에서 내시드 백작을 잡기에는 리스크가 크고…….’
성지한이 곰곰이 생각하며, 길드 메뉴에서 파티 생성을 눌러 봤다.
그와 동시에.
[리그 초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파티 구성 제한 조건이 일부 해제됩니다.]
“……?”
[플레이어는 자신보다 한 단계 하위 리그의 플레이어와 파티를 맺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와도 파티를 맺을 수 있습니다.]
* 주의 : 단, 모두 같은 길드 소속이어야 합니다.
“오…….”
저번에 디펜스 게임에서 상위 리그 맵이 걸리고 얻었던, ‘리그 초월’ 업적.
그게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이러면 내가 세아나 마시드를 파티에 넣을 수도 있겠군.’
하위 리그의 플레이어랑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다니.
이러면 고레벨 유저가 저레벨을 키워 주는, 일명 ‘쩔’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배틀넷 게임 시스템 상, 상대방도 수준에 맞게 매칭되기 때문에.
저레벨을 파티에 넣었다가는 게임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고레벨 유저가 ‘성지한’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혼자서도 게임을 지배하는 개사기 캐릭터였으니까.
‘그래도 이번 퀘스트에서 키워 주는 건 힘들겠군.’
쩔은 다음 기회에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성지한은 두 번째 단락에 집중했다.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와 파티를 이룰 수 있다는 문구.
이게 있으면, 지금 대기 길드에 임대 가입되어 있는 실버 플레이어들과 협업을 할 수 있었다.
‘파티를 한번 모아 봐야겠군.’
성지한은 이하연을 통해 세계 각지에 있는 대기 길드 소속 실버 플레이어들과 접촉했다.
“소피아 님은 바로 참여 의사를 밝히셨어요! 내시드 백작 레이드라니! 엄~청 기대하고 계시던데요!”
“왕린 님도 참여하신다고 해요!”
“미하일 님도 참가 의사를 밝히셨어요!”
“와…… 거기에 배런 님도 참가하신다고 했어요! 어제 그 난리를 쳐서 안 할 줄 알았는데…….”
“스칼렛 님께서는 자리 다 찼다고 하니까 아쉬워하시면서, 혹시 비면 연락 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길드원들의 호응은 놀라웠다.
내시드 백작 레이드 제안에, 5명의 임대 플레이어들 모두가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이다.
특히 배런은 어제 그렇게 난리를 쳐 놓고도, 재빠르게 참여 의사를 밝혀 이스라엘의 스칼렛을 제쳤다.
“참…… 태세 전환하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그럴 수밖에 없죠! 내시드 백작 레이드인데요! 실버가 레이드라니?!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거예요!”
대기 길드에 임대해 온 5명의 플레이어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기프트 SSS급만 둘이고, SS급은 셋.
모두들 자기 소속 길드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최고의 유망주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갈망하다시피 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내시드 백작 레이드라는 떡밥은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야망이 남달라.’
소피아와 배런은 제외하고라도.
중국의 왕린, 러시아의 미하일, 이스라엘의 스칼렛.
모두 다 성지한의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럼 내일 바로 내시드 남작 레이드를 도전할 테니, 내일 배틀넷은 제 연락이 가기 전까지 대기해 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오너님.”
“아. 그리고. 하연 씨.”
“네?”
성지한은 당금의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인벤토리를 열어 온전한 아카식 페이지를 꺼내 이하연에게 넘겨주었다.
“어, 오, 오너님. 이건…….”
“아카식 페이지에, 서포팅 기프트를 강화하는 능력이 있더군요. 하연 씨, 이걸로 ‘육성’을 강화해 주세요.”
“저. 저저…… 이거, 어, 얼만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아카식 페이지를?
나한테?!
아니, 이 사람은 이 물건 가치를 알긴 하는 거야?
이하연은 감히 받지 못하고 말만 더듬었다.
“3천억 정도는 하지 않나요?”
“아. 아시네요…… 아시는데 그걸 저한테…… 아. 지, 지분 다시 회수하시려구요……?”
“지분을 왜 회수합니까? 계속 가지고 계세요.”
성지한은 이하연이 쉽사리 아카식 페이지를 받으려 하지 않자 억지로 손에 쥐어 줬다.
“돈은 저한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배틀넷이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 환경에서는 그 무엇보다 능력을 발전시키는 게 먼저입니다. 이건 투자입니다. 저를 위한 투자.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마세요.”
‘부담이 안 되겠냐고……!’ 이하연은 속으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아까워 죽겠는데! 겨우 서포팅 기프트 강화하는 데 쓸 바에야…….’
이번에 이성 폰, 스페이스 23의 완벽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완성했던 게 바로 아카식 페이지의 덕 아니었던가.
그런 어마어마한 기술 발전을 이룩할 물건을, 겨우 자신의 서포팅 기프트를 강화하는 데 쓴다니.
이하연은 자신이 너무 아까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아. 참. 하연 씨. 이성가 출신이 왜 이렇게 배포가 좁습니까?”
“아니, 3천억이면…….”
“3천억 소리 그만 하시고. 그냥 이 자리에서 쓰세요. 제 눈앞에서. 바로.”
성지한은 이하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빨리 써.
빨리!
그의 눈빛은, 이하연 인생 최대의 과소비를 강요하고 있었다.
‘에잇…… 나도 몰라! 분명히 오너님이 쓰라고 한 거야!’
성지한의 무언의 강요에 이하연은 결국 아카식 페이지를 받아들였고.
번쩍!
엄청난 가치의 황금색 종이는, 곧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