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89화>
화르르르!
봉황시의 백화가 순식간에 아카리를 불태운다.
던질 때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는 봉황시답게, 불길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이김!!
-저거 죽은 거 맞지?
-찐다이아 이긴 거야? 실버가?
-미쳤다 진짜; 시점 공유해서 보는데도 대체 어떻게 이겼는질 모르겠네 -팔 잘렸을 때는 찐텐으로 소리 질렀는데ㅠㅠ 다행이다...
시청자들은 성지한과 같이 시점 공유를 하고 있었음에도.
대체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돌아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도 빠르게 진행된 전투였기에, 일반인의 눈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방송이 끝나고 차분하게 슬로우 모드로 보아야, 전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겨우 파악할 수 있을 정도.
-근데 이거... 살인 사건을 생중계한 거 아닌가요?
-살인은 무슨 정당방위였구만.
-그래도 죽인 건 죽인 거지. 이거 국가 분쟁 일어나겠는데?
-그럼 그대로 성지한이 뒤졌어야 함? 아니면 사지 잘리고 몸통만 일본으로 운반되어야 했나?
-ㄹㅇ 이건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항의해야 하는 일임
-풀발ㄴㄴ... 괜히 법원 갈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한편 배틀넷이 아닌 현실에서 아카리가 불길에 잠겨 버리자, 시청자들은 성지한이 벌인 일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실버가 다이아를 이긴 쾌거를 이룬 것까지는 좋은데.
아무래도 이게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보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군.’
이미 아카리가 죽었다고 보는 시청자들과는 달리, 성지한은 저 백화白火 속에서 아카리가 끈질기게 명줄을 붙잡고 있음을 간파했다.
‘튜토리얼의 금제만 아니었으면 벽력섬뢰를 사용해서 끝을 보았을 텐데.’
무력과 포스 같은 유니크 스탯은 튜토리얼의 금제에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그래도 배틀넷 게임 안에서처럼 힘을 완전히 발휘할 수는 없었다.
특히 무명신공의 상승무류를 사용하는 건 더 힘든 일.그나마 그림자검 이클립스가 있었기에 펼쳐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아…… 하아…….]
투두두둑-
백화 속에서, 검은 실루엣이 일어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깊게 가라앉아 있는 아카리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시청자들은 경악에 빠졌다.
-와 씨발 욕나오네;
-저걸 맞고도 사냐?
-역시 고삐 풀린 다이아.. 개쎄네 ㄷㄷ
-이럼 지한 님 위험한 거 아닌가요??
-쟤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동안 도망치시는 게...
그때.
탕! 타탕!
“성지한 님. 피하십시오!”
“이제부터 저희가 맡겠습니다!”
위협사격 소리와 함께, 경찰청 소속의 대 플레이어 진압 특공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두두두두!
아카리가 있는 쪽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사격을 개시하는 특공대.
강력한 플레이어가 난동을 부릴 경우, 그들이 입히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는 특공대의 조치엔 사정이 없었다.
아무리 플레이어들이 날고 긴다고 해도, 현대 화기의 화력은 강력했으니.
이 정도로 집중 사격을 받으면, 아무리 강력한 플레이어라 한들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상대가 나쁘군.’
휙! 휙!
아카리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고, 총알이 그 몸을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암살자라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고유 스킬, 영체화靈體化였다.
-뭐야. 갑자기 귀신 됐네 ㄷㄷ
-암살자는 다 저거 쓸 수 있음.
-개사기네 ㄷㄷ 근데 성지한이랑 싸울 때는 왜 안 씀?
-저거 쓰면 스탯 확 떨어짐. 게다가 성지한은 오라도 쓸 수 있으니까 오히려 불리하지.
-아하. 어? 근데 쟤…… 날아간다?
슈우우우-
한참 집중 사격을 당하던 아카리의 영체가 허공 위로 연기처럼 떠올랐다.
바닥에서 소용돌이치며 아카리를 붙잡고 있던 암혼와류는 어느새 크기가 작아져 있는 상태였기에, 다시 운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힘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암혼와류로 좀만 더 붙잡았으면, 아카리를 확실히 처치할 수 있었을 텐데.
실버의 힘으로는 여기까진가.
성지한은 암혼와류가 사라지고, 암검만 남아 있는 방향을 향해 떨어진 팔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쑤우욱!
암검이 성지한의 텅 빈 팔에 달라붙으며, 왼팔이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주변의 경찰 특공대들은, 성지한의 손이 만들어지는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흠. 잘 움직이는군.”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새카맣게 물들어 있기는 했지만, 왼손의 상태는 멀쩡하기만 했다.
[허어…… 주인의 미친 짓이 정말 실현 가능했군. 팔을 스스로 잘라 낼 줄이야.]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아까의 상황에서, 아카리의 귀참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녀의 검격에 의해 팔이 떨어지는 건 예견된 결과.
적의 검에 베였으면 절단면에 귀기鬼氣가 깃들어, 암검 이클립스에서 펼쳐지던 암혼와류도 금방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도 검과 팔의 일체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 그대로 신체를 잃었을 텐데. 인간은 최하급 종족이라 신체 손실에 민감하지 않았나.]
“재생하면 되지. 우리나라에 좋은 서포터들 많아.”
성지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저번 생에서도, 워리어로 살아가며 숱하게 잘리고 잃어 버렸던 신체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팔 하나 잘렸다고 우는 소릴 하기에는, 그가 전생부터 지나 온 전장이 너무나도 혹독했다.
“근데…….”
성지한은 오른손으로 땅에 박힌 봉황시를 뽑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망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덤벼들지도 않고.
갈피를 못 잡고 둥둥 떠 있기만 하는 아카리.
“아직 안 갔네?”
그의 눈이,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흉흉하게 빛났다.
“다이아 사냥, 다시 시작하지.”
무명신공無名神功
보법步法
섬천뢰보閃天雷步
아카리는 성지한이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자, 한껏 질린 얼굴이 되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는가…….’
조금 전에는, 정말 죽을 뻔했다.
아카리가 입고 있는 닌자복이 SS급 장비인 데다가, 다이아리거의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 공격을 겨우 버텨 낸 것이지.
뭐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온몸이 불타 고통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금제가 다시 걸리기까지…… 1분.’
아직 힘은 남아 있다.
성지한과 맞붙을 만했다.
객관적으로, 전투가 펼쳐지면 우세한 쪽은 여전히 자신이겠지.
하지만.
‘……1분 안에 저 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살기가 흉흉한 성지한의 두 눈을 바라보니.
[…….]
겁이 났다.
저놈은 진짜다.
1분 안에 제압하지 못하면.
그래서 튜토리얼의 금제가 다시 생기면, 성지한에게 우세를 점할 수 없게 된다.
아니, 우세를 점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는다.
아카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배틀넷에서 숱하게 죽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실제 현실에서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죽음의 공포 따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성지한이 뿜어내는 진짜 살기를 맞이하니, 그녀는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치익!
어느새 지척에 접근한 성지한의 검이 얼굴을 스친다.
금제가 풀린 다이아의 힘으로는 충분히 피하고 반격까지 취할 수 있는 공격.
하지만, 아카리는 애써 검을 피하기만 할 뿐.
역으로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이길 수 없어.’
이미 패배감이, 그녀의 가슴속에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카리가 여기에 계속 있었던 이유는, 주군인 이토 시즈루가 분신마저 희생하면서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그때.
[아카리. 이제 됐습니다. 전장에서 이탈하세요.]
그녀의 귓가에, 이토 시즈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차마 도망을 가지 못하던 그녀에게 명분을 안겨 주는, 구세주의 음성과도 같았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아카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남은 1분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 사용했다.
휘이이익!
광풍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는 아카리.
전력을 발휘한 다이아의 도주는 빛의 속도나 다름없었다.
* * *
“하. 빠르네.”
애초에 스탯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던지라, 성지한은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 끝났네요, 여러분.”
-와 미쳤네 진짜 ㅋㅋㅋㅋ
-다이아가 쫄튀하는 거 실화냐? ㅋㅋㅋㅋㅋㅋ
-K-실버의 클라스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K-실버는 무슨 ㅋㅋㅋ 우리나라 실버가 죄다 저 정도면 이미 대한민국이 세계 제패함-와…… 후원 쏘고 싶은데 하필 통장에 백만 원밖에 없음ㅠㅠ-한도 1만 GP 에바라고 형 ㅠㅠ
스크롤이 마구 올라가는 채팅창.
최소 후원 한도가 천만 원이 아니었으면, 흥분한 사람들로 인해 도네이션 메시지로 도배가 되었겠지.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대신, 오늘은 아카식 페이지를 건졌으니까요.”
성지한은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오늘의 전리품, 아카식 페이지 세 장을 꺼냈다.
-와.. 오늘 얼마 버신 거임?? ㄷㄷㄷ
-아ㅋㅋㅋ 이럼 얘기가 다르지ㅋㅋ 그깟 도네 안 받아도 되지!!
-근데 일본 애들 지독하네. 아카식 페이지를 세 장이나 쓴 거면... 대체 얼마를 돈지랄한 거야?
-그러네 ㄷㄷ 개소름이네;
-아 근데 여신님 얼굴 또 보고 싶다...ㅜㅜ
-ㄹㅇ 겁나 예쁨
-헤으응... 재방 돌려 봐야지...
잠깐 보았던 이토 시즈루의 얼굴을 잊지 못하는 시청자들.
성지한이 제때 유심소조를 사용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미 시청자들은 전부 그녀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영상에 매혹의 힘이 남아 있으면 삭제를 해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꺼내든 아카식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세 장 중 두 장은 사용된 거라서 금빛이 많이 바래져 있었지만.
다케다가 미처 사용하지 못했던 하나는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케다 덕에, 하나는 온전하군요.”
-다케쨩이 유일하게 잘한 일ㅋㅋㅋ
-다케쨩 기프트가 교류였나? 그거도 당해 주지…… 여신님 영접하는 기분 느끼고 싶다 -미친 새끼들... 지한 님 일본 가라고 고사 지내냐?
-에이 형은 그거 좀 당해도 끄떡없음 우리들이 문제지ㅋㅋㅋㅋ
안 그래도 아카식 페이지를 구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공짜로 들어오니 잘 되었군.
아카리를 죽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얻은 전리품에 만족하고 있자니.
[★☆다케쨩☆★이 1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성 상…… 타스케떼…….]
갑자기 채널에 후원 메시지가 떴다.
-?? 뭐임 갑자기
-그러고 보니 다케짱 아직 안에 있나?
-저놈은 한글로 타스케떼를 치네 ㅋㅋㅋㅋ
-어이어이. 현지화 너무 된 거 아니냐고wwww
-타스케떼가 뭔 뜻임?
-살려 달라는 거임.
성지한은 그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카페 안이 어떻게 난리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케다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나 보다.
‘저거, 포로로 잡아야겠군.’
휙!
카페로 다시 날아간 성지한은, 부서진 건물 잔해에 깔린 다케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체가 짓눌린 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그는 성지한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헤. 헤헤…… 성 상.”
“심각하진 않군.”
“아…… 심각하지 않긴요. 아픕니다…… 하체에 감각이 안 느껴져요…….”
“안 죽었음 됐다.”
스으으윽.
포스로 잔해를 들어 올리고 다케다를 꺼낸 성지한은.
“자. 여러분. 다케다도 포획했으니,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중계를 종료했다.
* * *
이날의 방송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
여기서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불과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조회 수 1,000만을 돌파한 화제의 영상.
“……시즈루. 이 방송…… 대체 뭐지?”
그리고, 그 1,000만 명 중에는.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검왕, 이토 류헤이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