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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86화 (86/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86화>

*   *   *

소드 팰리스 옆 건물, 4층에 위치한 한 카페.

카페가 위치한 건물은 신 자위대 일본무역상사 한국지부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사실 이곳은 신 자위대에서 예전에 검왕 윤세진을 유혹할 때를 대비해 미리 설계해 두었던 장소였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서,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이 카페는.

이제는 성지한을 확실히 잡아 두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여신님…… 너무 급하게 추진하는 것 아닐까요?”

카페의 안쪽에 마련된 프라이빗 룸에서, 다케다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A4 용지 크기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아카식 페이지에 서포팅 기프트를 강화하는 기능이 있었다니…….’

대기업들의 기술 발전에 쓰여서, 수천억을 호가하는 아카식 페이지에 이런 기능이 있을 줄이야.

사실 여신님 정도가 아니고서야, 수천억으로 서포팅 기프트 따위를 강화하느니 기술 발전을 꾀하는 게 더 낫긴 했지만.

그래도 다케다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 같아, 괜히 긴장되었다.

“어쩔 수 없어. 성지한 그놈…… 매료가 거의 풀린 거 같단 말이야.”

“검왕도 저항하지 못한 여신님의 매료가 풀리다니! 이 다케다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분신이라 권능의 힘이 약하거든. 아카식 페이지를 썼는데도 제대로 안 먹혔어.”

“저번에는 성공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냐. 실패했어. 이틀이나 연락이 안 왔단 말이야.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고.”

“…….”

주은지는 이를 갈며 말했다.

다케다로선 겨우 이틀 가지고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은지에게 있어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매료가 먹혀 들어간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났으니까.

‘거기에 만나겠다는 문자도 영 성의가 없어.’

[네. 시간 괜찮습니다. 오늘 볼까요?]

매료에 빠진 20대 남자의 문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건조한 말투.

제대로 매료가 작동했으면 이런 식으로 답장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승부를 봐야 해.’

큰돈을 써서라도, 아카식 페이지 여러 장을 사용해서 확실히 매료를 시킨 후.

지체하지 말고, 일본으로 데리고 가야 했다.

“아카리.”

주은지가 뒤쪽으로 시선을 힐끗 돌리며,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네. 시즈루 님.”

주은지의 그림자에서, 전신을 다 가린 닌자복 차림의 여인이 튀어나왔다.

다케다는 그 모습을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카리 님까지 오시다니.’

가토 아카리.

일본의 다이아리거 중, 아처의 특수 클래스인 ‘암살자’로 전직한 여성 플레이어였다.

다이아 중에서는 레벨이 낮아 국가대표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암살자 특유의 은밀한 기동성으로 인해 오히려 현실에서 활약할 일이 많았다.

이토 시즈루는 예전부터 닌자로 활동해 오던 가토 아카리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권능을 사용해 자신의 측근으로 만들었고.

그 이후 가토 아카리는 이토 시즈루의 오른팔로 활동하며, 은밀한 일을 대신 처리해 주고 있었다.

“너까지 올 정도라니. 본체의 의지가 대단하네.”

“네. 도쿄의 시즈루 님께서는 저에게 아카식 페이지의 호송을 맡기셨습니다. 거기에, 만에 하나 일이 그르쳤을 때를 대비하여, 저에게 성지한을 납치하라 하셨습니다.”

“납치라니…… 그게 쉽지는 않을 텐데.”

“상대는 강해 봤자 실버. 배편도 인천항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카리는 그러면서 꺼내든 아카식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물건을 사용하느니 제 힘으로 납치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아냐. 괜히 충돌 과정에서 성지한이 격렬히 저항이라도 하면, 일본에 가기도 전에 계획이 알려질 위험이 있어. 골치 아파지기 전에 은밀히 끝내는 게 나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혹여나 일이 그르쳤을 때를 대비하겠습니다.”

주은지는 아카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식 페이지를 다발로 쓰고도 실패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

‘게다가 매료를 확실히 성공하지 못해도…… 저항을 억제할 순 있을 거야.’

그렇게 해서 일본에만 데리고 가면, 끝이다.

본체의 매혹은 절대로 견디지 못할 테니까.

딸랑-

카페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주은지는 다케다와 아카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다케다는 황급히 프라이빗 룸의 뒤쪽 벽면에 숨었고.

아카리는 다시 시즈루의 그림자 안으로 스며들었다.

“어머~ 오너님. 오셨어요?”

그리고 주은지는 조금 전과는 달리,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성지한을 맞이했다.

“좋은 곳을 예약하셨군요.”

드르르륵-

성지한이 태연히 걸어오며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자마자.

주은지는 즉시 힐 굽으로 바닥을 두 번 툭툭 쳤다.

두 번 바닥을 치는 건, 다케다와 미리 약속되어 있던 신호.

‘여신님만 믿습니다……!’

다케다가 숨어 있는 벽면에서 나서려 하자.

우우우웅-

주은지가 테이블 위에 두었던 스마트폰이 작게 진동했다.

‘응……?’

스마트폰에서는.

[‘성지한’이 배틀튜브에서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라는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   *   *

주은지가 알려 준 카페로 가던 성지한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계속 반한 연기를 하는 건, 아무래도 내 전공이 아니라 힘들겠어.’

주은지의 눈앞에서야, 매료에 당한 척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이걸 길게 끌고 가는 건, 문자 건만 보더라도 불가능했다.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할 바에야.

오히려 분신이라도 빨리 제거하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매료가 걸리지 않았다는 티를 내기라도 한다면, 이토 시즈루의 마수가 세아를 비롯한 주변인에게 뻗쳐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신을 제거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저쪽에서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잠입해 올 터…….’

한참 고민에 빠진 성지한이 옆 건물에 들어서자.

“어. 성지한이다……!”

“여긴 무슨 일이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성지한을 보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실물이 더 빛나는데?”

“성지한 님! 사인 부탁드려요!”

“저어…… 사진 좀 같이 찍어도 될까요?”

거기서 더 나아가, 몇몇 팬들은 성지한을 향해 다가와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네. 이젠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나.’

맨날 집에만 있어서 자신의 인기를 오프라인에서 체감하지 못했던 성지한은 살짝 놀랐지만.

“네. 괜찮습니다. 이리 오세요.”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짓고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아메리칸 퍼스트 시절, 지겹도록 해 왔던 팬 서비스를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해 보는 성지한이었다.

“지한 님! 배틀튜브 잘 보고 있어요! 저희 엄마 아빠도 다 같이 밤 12시 라방 시간만 기다리면서 같이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 빨리 구독자 100만 되어야 하는데, 궁금해 죽겠어요. 저한테만 상태창 보여 주시면 안 돼요?”

“하하, 그건 안 될 말씀이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찰 거 같으니까.”

“와, 실물 깡패시네…….”

“음~ 방송 땐 못나게 나왔나요?”

성지한이 씩 웃으며 물어보자 여성 팬이 금세 뺨을 붉혔다.

“아뇨. 바, 방송 때도 멋져요!”

“감사합니다. 알면서 물어봤어요.”

성지한은 그렇게 팬들을 조련했다.

‘생각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많군.’

이미 온라인상에서의 성지한은 슈퍼스타나 다름없었지만.

집에서 게임과 수련만 반복하는 그로서는 인기를 크게 체감할 일이 별로 없었다.

비록 구독자도 많이 늘어나긴 했다지만, 아메리칸 퍼스트에 소속되었을 당시에 누렸던 인기와 관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발의 피 수준이어서.

성지한은 자신의 위상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내가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면…… 이번 일을 아예 공론화를 시키는 게 낫겠어.’

이토 시즈루의 분신이 행하는 공작을, 아예 생중계해서 보여 주자.

성지한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체감하고, 아예 대응 방향을 그쪽으로 틀었다.

“여러분. 아쉽지만 이만 가 보곘습니다. 이제 곧 라이브 방송을 해야 해서요.”

“어…… 정말요?”

“오늘도 광고 찍으시는 건가요?”

“광고는 아니고요. 그거보다 더 재밌는 겁니다.”

성지한은 그렇게 팬 서비스를 끝내며, 배틀 마켓에서 아이템을 샀다.

[1인칭 시점 공유 티켓]

-사용자의 시점을 영상으로 공유하여, 배틀튜브에 중계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1회성 아이템이며, 티켓 1개당 제한 시간은 30분입니다.

배틀넷에서는 게임 참가자에게 기본적으로 지원해 주는 1인칭 뷰.

‘1인칭 시점 공유 티켓’은, 이걸 현실 세계에서 가능케 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티켓 가격이 1만 GP나 되어 잘 쓰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카메라를 들고 갈 수 없는 성지한으로서는 최적의 아이템이었다.

‘거기에 시점 공유는 카메라와는 다른 장점이 있지.’

성지한이 매료를 당하면, 그의 시점에서 비춰지는 주은지의 외모 변화를 모든 시청자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주은지의 위험성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터.

“어머~ 오너님. 오셨어요?”

카페의 룸 안에 들어선 성지한을 주은지가 맞이하고.

툭. 툭.

그녀가 힐굽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자.

‘지금이군.’

성지한은 바로 시점 공유 티켓을 사용한 후, 배틀튜브 방송을 켰다.

-오, 갑자기 라방?

-엥? 오늘 게임 끝난 거 아니었음?

-ㅇㅇ 12시 땡치고 게임 끝냈을 텐데?

대낮에 예고도 없이 방송을 켰음에도, 성지한의 채널엔 시청자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잉. 이거 성지한 시점인가?

-공유 티켓 쓴 거임? 천만 원짜리?

-그런듯. 근데 갑자기 돈지랄 티켓 쓰누;

한편 주은지의 얼굴은.

스마트폰에서 성지한이 생방송을 진행했다는 메시지가 떴을 때부터 차갑게 굳어 있었다.

“당신. 매료에 걸리지 않았군요.”

“걸린 척하려고 했는데. 문자 보내는 걸 깜빡해 버렸어. 이토 시즈루.”

“……어머. 이토 시즈루가 누군가요? 전 주은지랍니다.”

성지한의 말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리 말한 그녀는.

뒤편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케다. 시작해.”

“네!”

그러자 벽면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다케다.

그는 손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에. 다케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어. 저 종이 저거…….

-아카식 페이지 아님?

다케다는 아카식 페이지를 꽉 쥐며, 성지한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성 상! 저와 감정을…… ‘교류’하시죠!”

서포팅 기프트, ‘교류’.

다케다가 신 자위대의 영입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낚았던 그만의 재능.

다케다는 자신이 여신이라고 부르는 이토 시즈루를 보았을 때의 그 황홀한 감정을, 대상과 ‘교류’할 수 있었다.

번쩍-!

아카식 페이지가 빛나며, 다케다의 기프트를 강화시키려 할 때.

“내놔.”

성지한이 손을 뻗자, 아카식 페이지가 다케다의 손에서 빠져나와 성지한에게로 날아갔다.

“어. 어?”

수천억짜리 아카식 페이지가, 포스로 인해 허무하게 성지한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릴 상황.

하나 그 순간.

스으으윽-

주은지의 그림자에서, 닌자 모습을 한 여인이 나타나 날아가는 아카식 페이지를 낚아챘다.

[다케다. 아카식 페이지는 미리 쓰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여닌자의 입에서 일본어가 튀어나오자.

-어... 닌자? 찐본어...?

-뭐라 한 거임??

-다케다한테 아카식 페이지는 미리 쓰라고 타박 줌.

-...이거 대체 무슨 상황야?

시청자들은 지금 켜진 라이브 방송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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