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85화>
* * *
처음에는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며 자축하던 주은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왜 연락이 안 오지?’
매료에 걸렸으면, 당연히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걸어야 정상이다.
지금껏 매료에 제대로 걸린 이들 중, 안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검왕 역시 매료를 걸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지, 걸고 난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는데…….
“설마 매료가 약해졌나……?”
이틀 동안 상대방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로, 주은지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할 수 있었다.
특히 그중 젊은 남자는 연락을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대기 길드에서 잠깐 매료를 걸었던 배런 같은 경우는.
어떻게 자신의 연락처를 알았는지 미국에서 장문의 영어 문자를 보내올 정도였으니까.
근데 문자도 오지 않는다?
이건, 매료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는 뜻으로밖에는 판단되지 않았다.
‘하…… 까다롭네.’
주은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혹 매료 자체가 풀린 거라면, 정말 성가신 상대다.
그 비싼 아카식 페이지까지 사용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된 거라면.
성지한을 확실하게 꼬드길 수 있는 건, 본체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왕 때문에, 본체가 올 수는 없단 말이야…….’
검왕에게 상태이상 ‘복종’과 ‘광신’이 걸려 있었다면, 며칠 정도는 자리를 비워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복종과 광신은 검왕이 지닌 쌍검의 효과 때문에 먹히질 않아서.
그 대신 ‘집착’과 ‘의존’을 넣었기 때문에 본체는 검왕의 곁을 함부로 떠나질 못했다.
떠나면 검왕과의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지니까.
‘그래도 어떻게 도쿄까지만 데려가면 할 만한데.’
검왕과 몇 시간 떨어지는 정도까진 괜찮았으니까.
‘이번에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여러 개를 사용해 볼까.’
주은지는 다케다를 떠올렸다.
그도 나름, 서포팅 기포트 중 쓸 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지.
그도 아카식 페이지를 사용하게 하면, 성지한에게 나름 먹힐 것이다.
‘스스로 매료를 풀 정도면, 장기전은 하면 안 돼. 단기전으로 승부를 봐야 해.’
매료 전문가답게 상황을 파악해 낸 주은지는 성지한의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다.
[오너님~ 저,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실까요?]
이번에 준비한 무기는 무려 아카식 페이지 세 장.
‘하. 1000억 엔이 넘게 들었네…….’
아무리 일본 정·재계에서 암암리에 여신으로 불리며, 막후의 지배자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는 이토 시즈루였지만.
그녀로서도 아카식 페이지를 네 장이나 사용하는 건 상당한 출혈이었다.
“성지한…… 넌 월급도 없다.”
본전 뽑을 때까지, 하루 한 끼만 먹이면서 굴려야지.
주은지는 이를 갈았다.
* * *
소드 팰리스의 펜트하우스, 트레이닝 룸.
“와. 삼촌. 이거 봐 봐.”
힘든 훈련을 마친 후, 윤세아는 스마트폰으로 편집된 자신의 영상을 보며 깔깔댔다.
[체력 +7의 비결은 과연…… 윤세아의 스탯 상승을 집중 취재하다!]
잔여 포인트 투자 없이, 오로지 훈련으로만 체력 +7을 찍은 윤세아.
조회 수 자체는 성지한의 훈련 영상이 가장 높았지만.
윤세아가 트레이닝을 하는 영상은, 이번에 길드 채널에 업로드 된 영상 중 가장 큰 화제가 되었다.
“와…… 나 진짜 못생겼네! 왜 이야기 안 해 줬어?”
데드 리프트를 하면서 오만상을 찌푸리는 윤세아의 얼굴이 영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윤세아는 그걸 보면서 웃어 대기 바빴다.
“찍기 전에 이야기 해 줬잖아. 너 진짜 운동할 땐 얼굴 망가진다고.”
“헤헤……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 진짜 심하다 심해.”
말로는 싫다고 하지만.
윤세아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망가지니까, 우호적인 댓글이 많아졌네.”
지금까지는 윤세아에 대해 악플이 많은 편이었지만.
구경하는 사람이 학을 뗄 정도로, 미친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거기에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뤄 낸 성과를 증명하고 나니, 대중들의 시선은 생각한 것보다 더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니 윤세아가 이렇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삼촌. 근데 나. 클래스 뭐 할까?”
그렇게 한참을 영상 댓글을 바라보던 윤세아는 자기 직업에 관한 댓글을 봤는지 성지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 둔 게 있어?”
“워리어나 아처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거 두 개는 왜?”
“워리어는 뭐 이토 때문이었고. 아처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이런저런 훈련을 해 봤는데…… 은근히 뭘 잘 맞추는 재능이 있더라고.”
윤세아는 활 쏘는 포즈를 취하며 헤 하고 웃었다.
“근데 아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풀이 워낙 쩔잖아? 그래서 아처로 전직하면 일본으로 귀화하신 이토 놈에게 한 방 먹이기는 힘들 거 같단 말이야.”
워낙 한국이 양궁 실력으로 유명했기 때문일까.
한국의 아처 클래스 플레이어 중, 최고의 기프트 등급을 가진 이는 S급밖에 없었지만.
베이스가 되는 사격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한국의 아처 전력은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 워리어 하면 되겠네. 워리어 국가대표 풀은 좀 널널하긴 하잖아?”
“그건 그런데.”
윤세아는 성지한을 힐끗 바라보곤 작게 투덜거렸다.
“워리어로 전직하면, 삼촌을 못 이길 거 같단 말이야. 최고는 못 될 거 같아.”
“하핫…….”
그 말을 들은 성지한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아처를 하면 국가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워리어를 하면 최고가 되기 힘들겠단 이야기구나.”
“그래. 누구 삼촌이 괴물같이 강해서 말야!”
성지한은 기특하다는 듯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누가 들으면 브론즈 주제에 벌써 국가대표 선발 걱정에, 최강의 플레이어가 될지 안 될지를 염려하냐고.
김칫국 너무 심하게 마시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대기만성을 가진 세아라면 충분히 말할 자격이 있지.’
저번 생에서도 대기만성을 지닌 중국의 진유화가 순식간에 세계 랭킹 2위가 되지 않았던가.
윤세아라고 못할 게 없었다.
아니. 진유화보다 오히려 빠르게 각성했으니, 그녀보다 더 성장할 시간은 많겠지.
워리어든 아처든, 뭘 하든 최강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성지한은 조카가 확고한 목표를 가지게 된 게 매우 기특했지만.
기특한 건 기특한 거고.
“그 판단…… 아주 정확해.”
팩트는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
“세아야. 내가 있는 이상, 결국 넌 워리어로서는 최고가 될 수는 없어. 대한민국 사상, 아니 지구 최고의 워리어는 내가 될 거거든.”
“와…… 재수 없어.”
“사실인 걸 어쩌겠니.”
가족일수록, 팩트는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지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윤세아에게 조언했다.
“네가 한 클래스의 최강을 노린다면, 나는 아처를 추천한다.”
“워리어는 삼촌이 최고가 될 테니까?”
“응. 난 정상에서 안 내려올 거거든.”
성지한은 확실하게 단언했다.
워리어 클래스의 성지한은, 결국 지구 최고가 될 거라고.
물론, 이건 단순히 근거 없는 자만이 아니었다.
‘포스가 없을 때도, 난 최강이었으니까.’
저번 생에, 무력만 지니고 있을 때도 성지한은 최강의 워리어였다.
유력한 경쟁자들이 있긴 했지만.
전대 최강의 워리어였던 검왕은 행방불명되어 사라졌고.
그 후에 나타났던 워리어들은 모두 성지한에게 랭킹을 추월당하거나, 죽어 사라졌다.
‘거기에 중국의 진유화도 아처였지.’
대기만성 기프트를 지닌 진유화.
그녀는 아처 클래스로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섰다.
대기만성이라는 기프트가 사실 클래스를 따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성지한은 최고를 노리려면 아처가 되라고 충고했다.
“알았어. 나도 사실 어느 정도 아처 쪽에 마음이 있었거든. 근데 삼촌이 위에서 안 내려올 거라고 확실히 이야기해 주니까 이제 결심이 서네.”
“아처로?”
“응. 이왕 하는 거 최고를 노려야지.”
고민을 끝낸 윤세아는 클래스를 아처로 선택했다.
“자. 그럼 그만 쉬고, 다시 웨이트 들어갈까?”
“어…… 근데 이제 아처 되는 거면 이런 무식한 훈련은 좀…….”
“무식한 훈련이라니? 궁수야말로 근력이 필수야. 거기에 아직 체력도 근성으로 안 바뀌었잖아.”
지금 윤세아의 체력은 +7 상태.
+10까지 3밖에 남지 않았으니, 지금 더 가열차게 훈련을 진행해야 할 때였다.
“으으. 악마…….”
“극찬 고맙다.”
툭. 툭.
성지한은 플레이트를 둥둥 띄워, 바벨 양쪽에 꽂아 넣었다.
조금 전보다 10킬로씩 무게가 추가되자, 윤세아는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났다.
아처를 한다고 해도 이 지옥같은 훈련은 끝이 없구나.
부우우웅-
그때.
트레이닝 룸 한편에 놔두었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오너님~ 저,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실까요?]
성지한이 매료에 걸린 척한 지 2일 만에, 주은지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다.
성지한은 그 문자를 보고 아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가 먼저 보냈어야 했나?’
매료에 걸린 건 자신이니까, 상대방에게 반해 있는 모습을 이쪽에서 보여 줘야 했는데.
번호는 이쪽에서 따 놓고, 저쪽에서 먼저 연락하게 만들다니.
‘이런…… 이렇게 살아오질 않아서 깜빡했군.’
저번 생을 포함해서, 성지한은 이성에게 먼저 연락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눈앞에선 매료에 걸린 연기를 잘해 놓고,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
한숨을 쉰 성지한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조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세아야. 나 남녀 관계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남녀 관계? 그건 고등학교 갓 그만둔 나보다 삼촌이 더 잘 알지 않을까? 뭐랬더라…… 여심 마스터라며.”
“그 마스터의 촉 때문에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자…… 내가 예시를 들어 줄게.”
성지한은 주은지의 문자를 보며, 현재의 상황을 담담하게 말했다.
“남자는 여자한테 반해 있어. 완전히.”
“응.”
“근데 남자가 먼저 연락을 안 해.”
“응.”
“그래서 여자가 답답해서 먼저 연락을 해 왔어. 그럼 누가 더 급한 걸까?”
성지한의 물음에, 윤세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거 혹시 남녀가 바뀐 건 아니지?”
“아니야.”
“그러면 당연히…… 먼저 연락한 쪽이 급한 거 아니야? 여자가 먼저 연락했으니. 그쪽에서 급한 거지.”
“역시 그렇겠지?”
“근데 남자가 반한 거 맞아? 반했으면 당연히 먼저 연락을 할 텐데? 나도 예전에 아카데미 입학했을 때, 핸드폰에서 불나는 줄 알았어.”
“왜?”
“선배들이 하도 연락해 왔거든. 나중에 아빠가 누군지 소문이 나고는 잠잠해졌지만.”
윤세아가 턱을 치켜세우며 자기가 입학 때 인기 폭발했었단 이야기를 하자.
성지한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이 녀석이 알 정도면, 주은지 쪽은 이니 눈치를 챘겠군…….’
매료 전문가인 그녀가, 이상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터.
‘저쪽에서 함정을 파 둘지도 모르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문자를 보냈다.
[네. 시간 괜찮습니다. 오늘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