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74화>
* * *
“이제 아카식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까. 아리엘.”
집으로 돌아온 성지한이 읊조리자.
팔꿈치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퍼지더니, 아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식 페이지는…… 서포팅 기프트를 지닌 이들의 장비다.”
“장비라고?”
“그래. 아카식 페이지는 서포팅 기프트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지.”
아리엘은 성지한의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검은 기운이 뻗어 가며 쥔 것은, 이번 광고를 찍고 선물로 받은 스페이스 23 기종이었다.
“비록 영구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증폭 효과가 뛰어난 물건이다. 겨우 이런 기계를 접고 펴는 데 쓰일 만한 것은 아니야.”
그러며 아리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카식 페이지의 아이템 설명에도 서포팅 기프트를 뒷받침한다고 쓰여 있을 텐데. 왜 그딴 데다 쓰는지 이해를 못 하겠군.”
“음. 그런 설명은 없었는데?”
지구에 나온 아카식 페이지의 아이템 설명은 단순했다.
[아카식 페이지]
-등급 : SS
-초차원 정보집합체에 접촉합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쓰는질 몰라, ‘인터넷에서 가장 쓸모없는 SS급 아이템’이란 짤방으로 쓰였던 아카식 페이지.
성지한이 그걸 찾아 아리엘에게 보여 주자, 그녀는 이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감정 안 하나? 감정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가 있을 것 아닌가.”
“지구에서 SS급은 감정 못해.”
감정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 중, SS급을 감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감정 기프트 최소 등급이 A는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 최하급 종족 인구가 얼마나 되지?”
“70억쯤 될 거다.”
“70억? 그 많은 사람 중 단 하나도 SS급을 감정하지 못한다고? 역시…… 최하급 종족이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엘.
그녀의 머릿속에서 인간 = 최하급 종족 공식은 더 공고해진 듯했다.
“그리고 저게 알려졌어도, 지금처럼 쓰였을 확률이 커. 이 세계에서는 서포팅 기프트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 그 기프트를 받으면, 그냥 일반인처럼 살지.”
그런데 기술 혁신을 버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아카식 페이지를 투자한다?
지구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이 세계에도 던전 포탈은 생길 텐데. 그걸 없애려면 ‘탐색’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가 필요하지 않는가?”
“뭣……! ‘탐색’이 있으면 던전 포탈 철거가 가능해?”
성지한은 아리엘이 툭 내뱉은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던전 포탈.
튜토리얼 시기인 지금은, 리그 최하위 10퍼센트의 나라에서만 생겨났지만.
튜토리얼이 끝난 이후에는 그 퍼센티지가 점차 확대되어서, 나중에는 최후의 10국 빼고는 모두 던전 포탈에 뒤덮여 모두 멸망하지 않았던가.
‘던전 포탈의 문제는 완전 소멸이 불가능한 데 있었지.’
던전 포탈을 없애 보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다.
포탈 위에 폭격을 가해 보기도 하고, 플레이어들이 마법을 퍼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던전 포탈은 그런 외부의 충격에 절대 사라지지 않아서.
인류는 포탈 안으로 결국 진입하는 걸 택했다.
‘하나 진입해도, 던전을 완전히 철거하는 건 불가능했다.’
던전 포탈 안의 모든 것을, 전술핵까지 사용해서 소멸시켜도.
던전 포탈은 하루가 지나면 더 강력해져서, 다시 재생되었다.
그렇게 변한 던전 포탈에서 나오는 몬스터 종류는 계속 뒤바뀌었는데.
어쩌다가 유령 계열의 몬스터가 나오면, 그 지역은 포기해야 했다.
비록 서포터나 마법사의 공격이 통하기는 했지만, 수가 너무 많아 그들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탐색 기프트로 던전을 철거할 수 있다니…….
“그걸 몰랐나? 던전핵을 찾으려면 탐색 능력이 필수다.”
“전혀…… 몰랐어. 서포팅 기프트, 상당히 쓸모가 많았군.”
“맞아. 때문에 우리 세계에서는 그들이 가장 대우받았다. 서포팅 기프트를 천대하다니, 참…… 신기한 세계군.”
아리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아…… 혹시, 최하급 종족의 서포팅 기프트 최고 등급이 어떻게 되지?”
“내가 본 건 A가 최고야. 우리 길드마스터가 그 등급이지.”
“A가 최고라니. 그럼 C, D등 하위 등급이 즐비하겠군.”
“그렇지.”
“서포팅 기프트에서 그런 등급은 쓸모가 없지…… 일반인 취급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전투 분야에서는?”
“SSS급이 여럿 있지.”
“그래서 그런가…….”
아리엘은 무언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짐작이 가는 것이라도 있나?”
“주인의 종은 전투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급소가 너무 많아.”
아리엘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자, 그곳에 구멍이 뻥 뚫렸다.
“쉐도우 엘프는 이래도 죽지 않고.”
목을 가리키자.
목이 떨어지며, 머리가 공중에 둥둥 떴다.
“목만 남아도 생존한다.”
“……대단하군.”
“이게 중상급 종족의 생존력이지. 하나 인간종은 참 죽기 쉽더군. 전투 능력으로 따지면 배틀넷에 참가하는 종족 중 최하위겠지.”
성지한은 예전에 스페이스 리그에서 적으로 나왔던 종족들을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종으로만 따지면, 제일 약했지.’
인간은 기본 신체 능력 자체가 이종족에 비해 매우 뒤처져 있었다.
거기에 급소도 많고, 몇 군데라도 찔리면 과다 출혈로 죽는 것에 반해서.
다른 종족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갖다 대면 멀쩡히 달라붙고, 불가사리처럼 아예 재생하기도 했다.
특히 ‘엘프’의 생명력은 바퀴벌레도 한 수 접어 줄 수준이라, 밸런스상 같은 리그에 있으면 안 될 수준이었지.
“그런 허약한 인간종이 배틀넷에 참가했으니……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시스템에서 뛰어난 기프트를 부여했군. SSS급 기프트를 받은 이가 여럿 있다니.”
“다른 종족은 안 그러나?”
“그렇다. 우리의 별이 스페이스 리그에 처음 참가했을 때만 해도, 전투직 최고 기프트 등급이 A였지.”
“그 대신 서포팅 기프트는 잘 받고?”
“그렇다. 평균이 B급, 최고는 SSS급까지 있었지.”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전투보다 정보를 알려 주는 게 더 쓸 만하군.’
태양의 그림자 아리엘.
소환수로 역할을 하는 거나, 그림자검으로 쓰일 때도 물론 유용했지만.
그것보다 다른 세계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이 지금은 더 유용했다.
탐색 능력으로 던전핵이란 걸 찾을 수 있다니…….
‘이 정보는 나중에 공개해야겠군.’
지구를 위해서라면 던전 포탈 철거에 대한 정보를 지금이라도 바로 공개하는 게 좋겠지만.
성지한은 냉철히 판단했다.
‘이 정보가 아리엘에게서 나왔다는 게 알려지면, 내 신변이 위험할 수도 있다.’
지금은 성지한이 세계 제일의 유망주라 대우받고 있지만, 아리엘이 이세계의 리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강대국 정보 조직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성지한이 강해도, 지금 당장은 실버.
나라 단위의 표적이 되어서야, 버텨 내기가 힘들었다.
‘내가 감당이 가능할 때 정보를 풀어야겠어.’
어차피 지금 당장은 튜토리얼 기간이라, 던전 포탈로 세계가 크게 위험한 게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건 그렇고…… 아카식 페이지는 확보할 필요가 있겠군.’
서포팅 기프트의 효과를 증폭시킨다니.
한참 성장해야 할 성지한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하연의 육성 능력을 강화하면, 자신도 혜택을 보게 되니까.
‘얻을 방법을 알아봐야겠어.’
* * *
[종말의 협곡에 소환되셨습니다.]
[당신은 천사 진영입니다.]
[천사를 도와, 악마 진영을 점령하세요.]
‘드디어 천사 진영이군.’
성지한은 오랜만에 쾌재를 부르는 중이었다.
실버 리그로 진입한 이후 6번의 게임을 치를 동안, 인베이드 맵의 천사 진영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베이드만 4번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악마 진영이었지…….’
50퍼센트 확률로 진영이 바뀌는데, 이쯤 되니 대천사의 검을 부순 죄로 저쪽에서 거부당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냥 재수가 없었군.’
7일차가 되는 오늘, 드디어 천사 진영이 되어 사신의 낫 조각을 얻을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한편, 성지한과 같은 팀이 된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뛸 듯이 기뻐했다.
“와! 성지한이다!”
“아즈아아아!!! 인베이드 첫 판인데!”
“나도 드디어 버스 타는 날이 오는구나…… 흑!”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버스 승객은 저 플레이어들인가요?
-인베이드 첫 판? 실버 뉴비들이넼ㅋㅋㅋㅋㅋ
-저번 판에도 성지한네 팀원들 죄다 레벨 20대 후반에서 30 초반대던데 ㅋㅋ-이쯤 되면 배틀넷에서 공인한 버스 기사인 거 ㅇㅈ?
-ㅇ~ㅇㅈ~~~
맨 처음 게임만 해도 48~49레벨들의 사이에 껴서 게임을 했던 성지한이지만.
그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 터뜨리고 다니니, 이제는 만나는 팀원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고레벨과 만났다면, 이제는 갓 실버가 된 25레벨.
인베이드 맵 초보자들과 묶인 것이다.
그런데 상대편은 예전과 똑같이 40레벨 후반이라, 성지한만 제외하면 팀 전력은 압도적으로 적이 유리했다.
하지만.
-1레벨들만 모아 놔도 성지한 캐리 엔딩하는 거 나만 보이냐?
-어차피 5:1도 이기는데 뭘 새삼스럽게ㅋㅋ
-그니깐. 실버 플레이어 중 누가 정글 잡고 다니냐;
-배런 쫌 하던데?
-아~ 라인전에서 버프 200퍼센트 두르고 정글 몹 잡는 거?
-그럴 거면 정글 왜 돌음?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아무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은, 당연히 그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아 씹…… 왜 상대편이 돼서!!”
푹!
인베이드 첫 게임에서 같은 팀이었던 이성 길드의 승급 준비팀.
성지한은 미드 라인에 선, 이성의 팀 리더의 머리를 무정하게 꿰뚫었다.
[플레이어 성지한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이 천신의 가호를 받습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시스템 보이스.
성지한 채널의 시청자들은 이젠 별 감흥도 없이, 그의 다음 퍼포먼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우물 펜타킬 하나?
-그러게. 악마 진영으로 한 번 했으니, 천사 진영 되면 도전한다고 들었는데.
-근데 성지한 검이 암속성 아님? 같은 속성끼리 데미지 잘 안 박히지 않아?
-ㅉㅉ~~ 지한 님은~~~ 당연히 하실 겁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곧.
시청자들의 기대대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와…… 버스 탑승감이…… 마이마흐 저리가라네요.”
“마이마흐라뇨. 이 정도면 몰스로이스 탄 거죠.”
“아! 쌉인정합니다. 그럼 우린 쪼렙이니까 다음번에도 이번처럼 또 버스 기사로 오실 수도…….”
성지한의 저레벨 팀원들은 편안하게 수다를 떨며 게임을 즐기고.
[적으로... 안 만나기로 했잖아요...ㅠㅠ]
[아아아 나도 지한 님이랑 팀 먹고 싶다!!]
[우물 펜타킬은 안 당할 겁니다!!!!]
[정글에 짱박혀야지ㅠㅠ]
적 팀은 우물 펜타킬이라는 굴욕을 피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지키라는 기지는 안 지키고, 정글에 숨어 있었다.
-쟤들 본진 안 지킴? ㅋㅋㅋㅋ
-야 우물에도 안 있네;;;
-우물 펜타킬 영상이 배틀튜브에서 박제되긴 했지ㅋㅋㅋㅋ-신박하다 정글에 숨을 생각을 하네 ㅋㅋㅋㅋ
“아. 이거 비매넌데.”
우물 펜타킬 업적.
사실 이건 첫 게임 때 깼기에, 이번에 또 한다고 업적 포인트를 주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굳이 우물 킬 할 필요 없이, 악마의 안식처에 쳐진 보호막을 공격해서 사신의 낫과 부딪치면 되었지만.
‘혹시나 또 숨겨진 업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성지한은 악마 진영으로의 전진을 멈추고, 정글을 뒤졌다.
무명신공無名神功
보법步法
섬천뢰보閃天雷步
맵이 넓긴 했지만.
“어…… 어떻게……!”
정글 몬스터가 지배하지 않는 영역만을 뒤지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 플레이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자. 자. 우물로 갑시다.”
툭. 툭!
순식간에 점혈당해, 몸이 굳은 플레이어들.
성지한은 그를 포스로 띄워서 데리고 다니며, 악마 진영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녔다.
“한 명은 본진에 있었으니. 당신이 마지막이군요. 넷이나 숨다니…… 참 나.”
“흑흑. 배틀튜브에 박제당하기 싫었어요…… 그냥 이겨 주시면 안 돼요?”
툭. 툭.
마지막으로 발견한 상대 팀 대장의 우는 소리를 무시하고 무심하게 점혈하는 성지한이었다.
“이럼 더 박제되는 겁니다.”
성지한은 네 명의 플레이어를 두둥실 끌고 다닌 채 적 본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 집으로 돌아가실까요?”
안식처 안으로 네 플레이어를 모두 집어넣었다.
쿵!
차곡차곡 쌓이는 네 명의 플레이어.
거기에 안식처에서 쉬고 있던 한 명이 추가되자, 다섯이 모두 우물가에 모였다.
성지한은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펜타 가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