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68화>
이제 와서 갑자기 연계 퀘스트라니.
성지한은 브론즈리거일 당시 받았던 연계 퀘스트를 떠올렸다.
[파멸의 사도, ‘블랙 핸드’가 만들어 낸 플래시 골렘의 진격을 막아 내세요. 크리스탈의 축복을 이용한다면, 힘의 격차를 좁힐 수 있습니다!]
‘이 연계 퀘스트…… 디펜스 때 깼던 게 이어지는 거였군.’
디펜스 맵인 10개의 탑에 나타난 플래시 골렘을 태산압정으로 베어 클리어했던 퀘스트였다.
성지한은 연계 퀘스트 내용을 살펴보았다.
[연계 퀘스트 - 사도의 흔적(1)]
-종말의 협곡의 한 장소에는 빛과 어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가 은닉해 있습니다.
-숨어 있는 그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천사 진영의 본진에 있는 대천사의 검과, 악마의 본진에 있는 사신의 낫에 타격을 입혀 두 신물의 파편을 획득하십시오.
-보상 : 업적 포인트 20,000
-주의 : 신물의 파편은 상대방 진영에 속해 있을 때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 클리어 시, 사도의 흔적 (2)로 퀘스트가 이어집니다.
대천사의 검과 사신의 낫.
이 둘은 이 협곡 맵의 최종 목표인, 상대방의 본진 건물 앞에 꽂혀 있는 상징이었다.
다만, 두 상징은 적의 공격을 그대로 반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플레이어들은 본진을 타격할 때 상징이 있는 방향은 피하곤 했다.
이 둘과 사도의 존재를 드러내는 게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신물의 파편을 얻으라니. 쉽지 않겠는데.’ 아무리 성지한이 지금 일반 실버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신물에 타격을 입히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주의 내용을 보면 자기 진영 신물은 못 건드리는 거 같고.’
지금은 악마 진영 소속으로, 사신의 낫에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한 상황.
‘일단 풀 버프를 모아야겠군.’
협곡 맵에서의 버프는 상한선이 있었다.
마신이 내려 주는 전체 능력치 20퍼센트 업 버프와.
정글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주는 능력치 강화 버프는 최대 200퍼센트까지 버프가 중첩되었다.
‘거기에 5킬에 25퍼센트씩 능력치 버프를 주는 것도 있었지.’
정글 몬스터는 다시 리젠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지금 버프를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킬을 쓸어 담는 것.
성지한은 곧바로 번개로 변해, 미드 라인으로 달렸다.
* * *
“아이스 필드!”
“애로우 레인!”
미드에선 마법사와 궁수 플레이어가 영혼의 맞다이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 자식, 역시 좀 치는군!’
‘과연, 컨트롤이 만만치 않은데!’
미니언들의 대혈투 사이로, 두 플레이어는 서로의 기술과 마법을 난사했다.
둘의 사투는 단순히 마력이 되는 대로 기술을 날리는 그런 몰상식한 딜 교환이 아니었다.
둘은 상대방의 기술 데미지와 범위를 계산하면서도, 다음 기술이 날아들 타이밍을 실시간으로 재며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피잉!
“어림없다!”
한 끗 차이.
콰앙!
“어딜!”
이번에도 또 한 끗 차이로 기술을 피해 낸다.
둘은 실버 리그를 진행하면서, 수없이 맞붙었던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50레벨에 도달한 선배 플레이어들이 승급전을 준비하는 이상, 이제 강남 1 실버의 미드라이너는 그들이 최강이었다.
둘은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다.
실버 때부터 이어져 온 이 라이벌리는 골드로 넘어간 이후에도 여전할 거라 여겼다.
그렇게 쉽사리 끝나지 않는 접전이 이어지기도 잠시.
미니언이 소모된 틈을 타 둘이 신중한 눈으로 서로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무렵이었다.
“실례.”
북쪽의 개울가에서.
갑자기.
봉황시를 든 야생의 성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킬 좀 가져갑니다.”
“에……?”
푹!
성지한의 신형이 순간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천사 진영 궁수 플레이어의 머리를 꿰뚫었다.
“……?!”
“갱 값도 받아 갈게요.”
성지한의 봉황시가 미니언들을 노렸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한 번의 휘두름에, 새로 리스폰되어 진격해 오던 열 마리의 천사 미니언이 일제히 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평정된 미드 라인.
“어…… 어어…….”
이성 길드의 리더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미드 라인에서 상대방과 마주하며 치열하게 투닥거리고.
서로의 컨트롤에 감탄하며, 실버 리그 졸업까지 가장 성가신 경쟁자가 될 거라고 여겼는데…….
그런 상대가 한 방에 나가떨어져 버렸다.
‘……30레벨이라며?’
성지한이 어지간히도 세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송에서 볼 때와 눈앞에서 볼 때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
‘아니! 이게 게임이냐?!’
느낌이고 자시고 간에, 자신이 쌓아 올린 게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 길드의 리더는 생전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성지한은 이성 길드 리더에게 한번 손을 흔들어 주곤 모습을 감췄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 성지한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이 마신의 가호를 받습니다!]
연속 4킬과 5킬을 달성했을 때 뜨는 메시지가 연속해서 출력됐다.
그새 봇 라인에 도착해 쓸어버린 건가.
“……버스 제대로 타네.”
30레벨에게 승급 준비 팀 4명이 얹혀 간다는 게 잠깐 부끄럽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 길드의 리더는 이제 눈앞에 놓인 승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음 게임에서는, 적으로 안 만나기만을 간절히 빌면서.
* * *
게임이 시작된 지 40분.
천사 진영은 어느새 본진 바로 앞까지 밀려 있는 상태였다.
탑과 미드, 바텀 라인 모두가 터져 버린 채, 게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평균 게임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는 종말의 협곡 맵이,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 의해 벌써 끝나 가고 있었다.
-실버도 너무 쉬운데?
-ㅋㅋㅋㅋㅋㅋ풀버프 받으니까 혼자 날라다니넼ㅋㅋ
-저쪽은 우물에서 나오지도 않누ㅡㅡ;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첫 경기부터 이렇게 게임을 압살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레벨 차이가 이렇게나 나는데!
게다가 협곡 맵도 처음 아냐?
그럼에도 성지한은 무쌍을 찍고 전 라인을 폭파시켜 버렸다.
20킬을 달성할 때가 되자, 상대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포기하고 전체 메시지를 날려 대기 바빴다.
[하 시발... 게임 ㅈ같이 하네 진짜]
[저희 안 하기로 했으니까 제발 좀 빨리 밀어 주세요ㅜㅜ]
[성지한님님 다음에는 우리 편에서 버스 좀ㅠㅠ]
[소환수는 왜 저리 쎄 진짜 개 같은 게임ㅅㅂ꺼]
게임을 포기한 적 플레이어들의 극찬 아닌 극찬이 이어지고.
시청자들은 저들의 마음에 십분 공감했다.
-게임 ㅈ같이 하네 최고의 찬사 나왔쥬?ㅋㅋㅋㅋㅋ
-나 같아도 하기 싫겠다. 소환수한테 두 명씩 뒤짐;
-ㄹㅇ 소환수도 너무 센데ㅋㅋㅋㅋ-다크엘프 눈나 점점 커지니까 죠와..헤으응...
-눈 시커먼 게 귀신 같은데 ㄷㄷ
-그래도 이쁘니 합격!
-ㅇㅈ난 여전사 채널 들어가서 다크엘프만 봄 ㅎㅎ
천사 진영의 본진.
탑과 미드, 바텀의 병력 생산 기지인 병영까지 부서지고, 본진의 중심 건물인 대신전 앞에 방어 타워 2개만이 남은 상황.
성지한은 대신전의 앞에서, 탑 라인에 방치해 두었던 아리엘과 만났다.
조그마했던 다크 엘프는 어느새 크게 성장해서, 성지한의 어깨까지 닿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서바이벌 맵에서 봤을 때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왔나. 하급 종족.”
“소환이 꽤나 오래 가네.”
“네 스탯이 워낙 올라서 말이지. 지속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
검영 스탯.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다른 능력치와 마찬가지로 5로 시작했지만.
칭호 2개의 효과로 +8이 되고, 기프트 ‘달의 그림자’를 받으면서 지금은 20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게임 내 버프 중첩으로 인해 200퍼센트가 늘어났으니, 현재 검영 스탯은 60이었다.
“검영 스탯이 늘어나면 이렇게 쓸모가 있다. 그러니 미리미리 찍어 둬라.”
“미안하지만, 다른 게 더 쓸모 있어서 말이지.”
“대체 무슨 능력이 그렇게 좋은 거지?”
“한번 체감해 볼래?”
성지한이 아리엘에게 왼손을 뻗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크 엘프의 몸은 다시 시커먼 기운으로 퍼져 나가며, 성지한의 왼팔에 다시 흡수되었다.
소환수의 모습에서 그림자검 이클립스로 변환한 아리엘.
‘아까보다 확실히 다루기가 편안해졌군.’
처음 검을 썼을 때에 비해 능력치가 확 오른 덕에, 이제는 이클립스도 안정적이었다.
“일단은.”
저벅. 저벅.
성지한은 신전의 타워를 부수기 위해 눈앞의 아수라장을 지나쳤다.
그가 먼저 목표로 한 건, 대신전의 뒤편.
게임을 포기한 다섯 명의 천사 진영 플레이어가 멍하니 앉아 쉬고 있는, 성수가 흐르는 우물가였다.
“엥?”
“뭐. 뭐야. 여긴 왜 와요?”
“여기 부수는 곳 아니에요.”
“더 왔다간 번개 나와서 죽어요! 빨리 게임이나 끝내 줘요…….”
쉬고 있던 적 플레이어들이 오히려 성지한을 향해 오지 말라고 말렸지만.
“펜타킬 좀 먹으려고요.”
성지한은 씩 웃으며, 손을 뻗었다.
“어…… 어?”
“몸이……!”
그러자 다섯 플레이어들이 중력에 끌려가듯, 성지한 쪽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힘은 대천사의 가호가 깃든 우물가에서, 적을 잡아 끌어들일 정도.
가호를 받아 무지막지하게 강화된 포스 덕분이었다.
[대천사가 천사의 안식처에서 행해지는 작태에 분노합니다!]
[대천사가 심판의 벼락을 내립니다!]
쿠르르르-!
플레이어의 휴식 공간인 우물가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천사 진영의 대천사가 벼락을 쏟아 냈지만.
휙. 휙.
뇌전이 강타한 건, 성지한의 잔상뿐이었다.
성지한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신의 심판을 피해 내고 있었다.
대천사의 눈가가 씰룩였다.
지이이잉-!
[대천사가 안식처의 가호를 강화합니다!]
우물가에 새하얀 빛의 배리어가 크게 둘러쳐졌다.
원래는 거의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었지만, 분노한 대천사가 가호를 강화하자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 성지한은 이에 개의치 않고 이클립스에 본격적으로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포스가 공간을 열고, 검기가 그 틈을 갈랐다.
치이이익-!
백색의 배리어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대천사의 가호로 인해 단단해진 보호막은, 그래도 공격에 저항했지만.
툭- 툭-
우물가 옆에 걸린 깃발과, 여러 장식은 모조리 반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강하긴 하군.]
이클립스 안에서 성지한의 검기를 체감한 아리엘이 말했다.
[이것이 네 전력을 다한 검이군.]
[비록 대천사의 가호를 뚫지는 못했을지라도, 상흔을 남긴 것만 해도 대단하다. 칭찬해 주지.]
“전력? 이건 기본인데.”
[……?]
횡소천군을 보고 필살의 일격이라고 착각한 아리엘에게, 성지한은 삼재무극을 연속적으로 펼쳐 보여 주었다.
태산압정, 횡소천군, 선인지로.
이 세 무공은 능력치가 강화된 성지한에게 있어서, 숨 쉬듯 펼치는 검격에 불과했다.
배리어를 향해 쏟아지는 치명적인 검기에.
쩌저적-!
보호막의 붕괴는, 이제 점점 확실시되어 가고 있었다.
[미친…… 이걸 계속 펼친다고?!]
삼재무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모습에 아리엘이 경악을 하고 있을 때.
쿵!
[대천사의 검이 안식처를 직접 보호합니다!]
본진의 정면에 있어야 할 거대한 대천사의 검이, 천사의 안식처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배리어의 바로 뒤편에서, 가호를 강화하는 검.
캉!
대천사의 검은 확실히 배리어 보다도 단단한 데다, 공격을 반사하는 속성도 있어서.
성지한의 검기가 오히려 뒤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우물가를 어떻게든 지키려는 대천사의 검을 보며, 아리엘이 짧게 말했다.
아무리 강화된 성지한이라고 해도 저 검을 뚫는 건 무리겠지.
“……본진보다 우물 킬을 막는 게 그렇게나 중요한가?”
성지한은 필사적인 대천사를 보며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오히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대천사의 검 파편까지 얻어 간다.
‘그러려면 모든 전력을 다해 부딪쳐야 할 터.’
무명신공의 상승무류에 포함된 세 가지의 신결神訣을 시전할 때가 온 것이다.
‘이클립스에 딱 맞는 무공을 써야겠군.’
무명신공無名神功
암영신결暗影神訣
암혼와류暗魂渦流
그림자검 이클립스가 검의 형태를 잃고, 하나의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성지한에게서 거대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심상치 않은 조짐에 이클립스 안에 있는 아리엘이 화들짝 놀랐다.
[이 힘은…… 본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