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66화 (66/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66화>

*   *   *

[종말의 협곡에 소환되셨습니다.]

[당신은 악마 진영입니다.]

[악마를 도와, 천사 진영을 점령하세요.]

종말의 협곡은 인베이드 미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맵이었다.

경기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천사와 악마, 양쪽 진영이 강을 사이에 두고.

탑, 미드, 바텀, 세 갈래의 공격로를 통해 5명의 플레이어가 서로의 진영을 침공하는 방식이다.

이 맵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실버 리그에서는 탑 라인에 2명, 미드 라인에 1명, 바텀 라인에 2명의 플레이어를 배치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번쩍. 번쩍.

성지한이 먼저 악마 진영의 본진(용암이 휘몰아치는 우물가)에 서 있자니, 이어서 소환된 4명의 플레이어가 그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이런, 파티원 하나 갈렸네…… 어라?”

“응? 설마…… 성지한?”

“아니. 뭐야! 이번 달에 실버 된 거 아니었어?”

시청자들의 반응도 파티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지한 이번에 실버 리그 첫 게임 아님?

-맞는데? 뭐 문제 있음?

-파티원들 구성 실화냐? 이성 길드 승급 준비팀임!!!

-47, 48, 49, 48…… 평균 48렙이넼ㅋㅋㅋㅋㅋㅋ

-25레벨따리가 골드(진)이랑 매칭되눜ㅋㅋㅋㅋ

이성 길드의 승급 준비팀은 골드 승급 레벨인 50레벨을 찍기 위해, 길드 내 최정예만을 모아 만든 파티다.

한데, 어떻게 갓 실버에 올라온 플레이어가 저들과 매칭이 된단 말인가?

성지한은 가만히 채팅을 보다가, 오류를 지적했다.

“저 30레벨입니다. 우승해서 5레벨 올랐거든요.”

-와 TOP 100 우승하면 30레벨 스타트였어??

-ㅋㅋㅋㅋ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누

-ㄹㅇㅋㅋ

-그래도 30레벨이 48과 매칭되는 건 좀 에반데

“예전에 50레벨 전사도 별거 아니던데요, 뭐.”

-아 그르네

-대한일보 걔?

-그때는 심지어 브론즈였음ㅋㅋㅋ

-그러네!!! 매칭 시스템이 잘못했네!!! 50레벨이랑 붙여 줘야 했는뎈ㅋㅋㅋ-걔들은 승급전 준비하느라 게임 안 돌리잖아

그렇게 성지한이 시청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 안녕하십니까.”

소환된 이성 길드 팀에서 리더 역할을 하던 플레이어 가 다가왔다.

“저 혹시…… 어느 라인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자기보다 레벨이 훨씬 낮음에도, 조심스러운 태도.

아무래도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성지한인 만큼, 그를 가볍게 대할 수 없었다.

“빈 라인이 어떻게 되죠?”

“아. 탑 라인의 듀오 중에 메이지가 비어 있습니다.”

“탑 라인 듀오? 아, 정글러는 없나요?”

정글러.

세 개의 공격로 외에, 정글이라고 불리는 중립 지역에서 게임을 운용하는 포지션.

성지한의 의문에, 이성 길드 파티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 여긴 실버 리그라…….”

“실버 수준에서는 정글 몬스터가 버겁거든요.”

“……아, 그래요?”

“네. 정글링은 적어도 70레벨 골드 정도는 되어야 가능합니다.”

-성지한 협곡 뉴비 티가 나네ㅋ

-응애!!! 실버는 정글링도 못해요?

-ㅇㅇ실버가 무슨 정글링임 ㅋㅋㅋㅋ 정글 몹 레벨이 최소 65인데 -그렇지. 실버는 그냥 미니언들 뒤나 졸졸 따라다녀야지ㅋㅋ

채팅을 확인한 성지한의 눈이 반짝였다.

실버 리그에선 정글 지역이 그렇게 고난이도라니?

‘정글에서 업적의 냄새가 나는군.’

20만까지 모았던 업적 포인트도, 이제는 1,200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이제 다시 부지런히 모아야 할 때였다.

업적 포인트만 생각하면, 바로 정글로 뛰고 싶지만…….

‘일단은 적응도 할 겸 팀플레이에 호흡을 맞춰 줄까.’

거기에 대외적인 이미지도 챙길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선택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탑으로 가죠.”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다행히 성지한이 순순히 비어 있는 포지션을 가겠다고 하자, 팀 리더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   *   *

“지한 님! 저 TOP 100경기 보고 감동했어요~.”

성지한과 같은 탑 라인으로 배정된 여전사는 활발한 성격이었다.

“한국에서 1등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다니까요? 구독자로 도네도 쏘고 싶었는데, 최소 가격이 너무 높더라고요…… 헤헤.”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협곡에서의 팁을 드리자면…… 자. 첫 번째!”

탑 라인으로 걸어가는 위쪽의 큰 대로.

여전사는 길 앞쪽에서 걸어가는 10마리의 사람 반만 한 악마를 가리켰다.

삼지창이나 지팡이를 든 채, 삐쩍 마른 붉은 피부의 악마.

악마종 중에서도 최하위에 위치하는 임프였다.

“자. 보세요. 저 작은 악마들. 저런 쫄따구들을 미니언이라고 부르거든요? 천사나 악마 진영이나.”

“그건 알고 있습니다.”

“상위 리그에서야 미니언을 가볍게 학살하지만, 여기 실버에서는 쟤들도 50레벨일 정도로 강력해요. 미니언과는 단독으로 맞서지 말고, 꼭 아군 미니언과 보조를 맞춰서 제압해야 해요.”

그러면서 게임 초보에게 설명하듯, 하나하나를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는 여전사였다.

처음에 정글러는 없냐고 물어본 게 그렇게 충격이었던 듯했다.

“……저희는 죽어도 1분 후에 다시 부활하지만 말이죠. 저희가 라인에 없으면 전선이 조금씩 밀리게 되니까, 꼭 안 죽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쟤 왜케 설명충임 ㅋㅋㅋㅋ

-정글러 없냐고 물어봐서 친히 실버의 마음가짐을 알려 주시잖냐ㅋㅋㅋ-ㄹㅇ임 실버=쫌 센 미니언이라고 생각해야 함.

탑 라인의 최전선까지 걸어오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질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여전사는 성지한에게 쉴 새 없이 실버의 마음가짐을 주입시켰다.

미니언과 보조를 맞춰라.

혼자 적 부대와 싸우려고 들지 마라.

정글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라…….

결론적으로, 그냥 나서지 말고 얌전히 미니언 부대와 라인에서 버티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성지한은 간단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결국은 안 죽으면 되는 거네요?”

“그, 그쵸?”

“쉽네요.”

성지한은 최전선을 바라보았다.

챙! 챙!

최전선에서는 악마 진영의 임프 부대와 천사 진영의 작은 천사가 서로 맞붙고 있었다.

얼굴은 어둠에 가려진 채, 새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천사들.

둘 다 사람 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크기였지만, 나름 서로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쾅! 쾅!

후열을 이루는 다섯의 마법사 미니언이 서로의 전사 미니언을 공격하자, 꽤 강렬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이를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유심히 지켜보던 여전사는, 폭발이 멈추자 성지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익스플로전이 끝났네요. 지한 님~ 그럼, 조심해서 가 볼…… 어엇?”

휙!

여전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냅다 달려가는 성지한.

“조, 조심하셔야 한다니까요!”

여전사는 기겁하며 성지한을 따라 나서려 했지만.

‘뭐 이렇게 빨라?!’

그는 어느새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최전방에 도달해 있었다.

“아리엘.”

스으으……

성지한의 왼팔에, 음영이 깃들고.

“검을.”

그림자는 곧, 손을 완전히 잠식하더니 그의 손아귀에 검을 쥐어 주었다.

불길하도록 시커먼, 어둠의 검을.

“흠.”

그림자검 이클립스.

무게는 가벼워 보이나 천근같았으며.

형태는 온전한 검처럼 보이다가도, 금방이라도 녹아내려 형체를 잃을 것 같았다.

수없이 많은 장비를 다루어 보았지만, 지금껏 이만큼 컨트롤이 되지 않는 무기는 없었다.

[이래서 검영을 찍으라고 한 것이다.]

이클립스에서 아리엘의 지적이 들려왔다.

최하위 종족 따위가, 검영 스탯을 투자하지도 않고 어찌 감히 이클립스를 다루겠는가.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 테지.

하여간, 당해 봐야 안다.

아리엘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나름 쓸 만하군.”

검을 바라보던 성지한이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자.

팟-

녹아내리던 그림자가 순식간에 검의 형상을 갖췄다.

[엇……?!]

아리엘은 도무지 이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하급 종족 따위가 어떻게…….]

벌써 그림자검을 제대로 컨트롤하는 거지?

아냐. 억지로 무너지려는 검을 뭉치고 있을 뿐.

완전한 컨트롤은 할 수 없을 터.

하나 그녀의 예상은 이번에도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스윽-

그림자검이 허공을 가르자, 검의 궤적에서 한 줄기의 검기가 뻗어 나가 적 미니언들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슈우우우……!

치열하게 악마들에 맞서 싸우던 천사들의 움직임이 뚝 멈추더니, 대번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

완벽한 검기 발출이었다.

검영 스탯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는데도, 천사 미니언들을 전멸시킨 성지한의 실력에 아리엘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이클립스를 다루려면 검영 능력치가 최소 40은 되어야 하거늘…….’

성지한은 격이 다른 마력의 운용으로 스탯의 부족을 가볍게 커버하고 있었다.

‘본체가 저 녀석에게 투자한 이유가 이 때문인가?’

아리엘은 본체가 성지한에게 과투자하는 게 아니냐며 지금껏 불만을 품고 있었다.

‘무신’이라는 성지한의 말이 왜 그리 중요했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선택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좀 치네. 하급 종족.]

그녀는 성지한의 평가를,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상향했다.

*   *   *

여전사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휙!

성지한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천사들의 육체가 맥없이 갈라졌다.

그 누구도, 일격을 막아 내는 이가 없었다.

‘괘, 괜히 충고했어…….’

여전사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물론 자기야 좋은 뜻에서 한 거지만, 저렇게 강한 플레이어한테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다니.

성지한 채널의 시청자가 그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쪽이 팔린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사의 걱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ㅁㅊ그냥 혼자서 개박살내네

-상대 플레이어 타워에서 나오지도 못함ㅋㅋㅋㅋ

-타워 피 벌써 절반이나 까졌는데?

-쟤네들 울겠다;;ㄷㄷㄷㄷ

탑 라인에서의 게임은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천사 진영의 미니언은 전선에 나오는 족족 전멸하기 바빴고.

악마 진영의 미니언 부대는 온전히 전력을 보전해서, 적의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방어 타워에 돌진했다.

지이이이이잉-!

새하얀 광선을 뿜어내는 천사 진영의 방어 타워.

유도 기능이 있는 저 광선은 한 번 맞으면 즉사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3초에 한 번씩 발사되는 딜레이가 있어서.

아군이 많이 살아남으면 살아남을수록 그만큼 타워에 데미지를 많이 넣을 수 있었다.

“막, 막아!”

“벌써 밀리면 안 돼……!”

적 진영의 두 플레이어는 아예 타워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타워를 끼고 미니언 잡기에만 열중했지만.

실버 수준에서는 미니언을 빨리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아 타워가 벌써 반파된 상태였다.

-근데 성지한은 타워 안 치네

-원래 실버에서는 근접캐가 타워 안 때려. 재수 없어서 타워데스빔 맞으면 즉사거든 -근데 쟨 실버 수준 아니잖아. 떄려도 되지 않나?

-ㄹㅇ한 방에 미니언을 전멸시키는 실버가 어디 있누?

-그러게? 그럼 왜 안 치누!!!!

시청자들은 타워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 성지한을 보며 의아해했다.

실버 수준을 아득히 넘은 그라면, 타워에도 충분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연히, 성지한에겐 계획이 있었다.

[미니언을 50마리 제압했습니다. 마신이 당신의 공을 인정하여, 축복을 내립니다.]

[모든 능력치가 20퍼센트 강화됩니다.]

‘됐군.’

협곡 맵에서는 미니언을 50마리 잡을 때마다 축복이 내려온다.

축복은 능력치를 한 번에 20퍼센트씩 강화시켜 주는 엄청난 버프였다.

성지한은 몸이 한층 더 가벼워짐을 느끼며, 이클립스를 땅바닥에 꽂았다.

이 정도면, 소환할 수 있겠지.

“아리엘. 현신해라.”

스으으으-

그러자 그림자검 이클립스가 검은 기운으로 변해 한데 뭉치더니.

곧 키가 성지한의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다크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 불렀지?”

“현신 시간은 얼마나 유지되나? 내가 멀리 떨어져서, 마나 공급을 못한다고 가정했을 때.”

“3분. 하지만 기프트 덕에 7분까지는 가능하다.”

달의 그림자 효과가 꽤 쓸 만하군.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리엘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너, 전투에 참가할 순 있지?”

“당연한 일이다.”

“잘됐네. 그럼 여기서 좀 싸우고 있어 봐.”

“……너는?”

아리엘의 의문에, 성지한은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켰다.

“정글링 해야지.”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