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61화>
* * *
쨍그랑!
“이…… 이 미친 새끼가!!!”
배틀넷 관리국장 사무실.
김남태는 유리컵을 집어 던졌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상황이 이렇게 바뀐단 말인가……!’
그는 떨리는 눈으로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 제목을 바라보았다.
[성지한의 충격적인 고백!
“미국이나 일본 갈 수도…….”
]
[녹취록에서 드러난 대한일보와 관리국장 간의 추악한 카르텔!]
[아메리칸 퍼스트에서 “3천억”을 제안받은 성지한, 이대로 떠날 것인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싶다’ 최후통첩을 가한 성지한!]
[윤세아가 지닌 세계 최초 성장형 기프트, 대기만성이란 무엇인가?]
성지한이 녹취록이고 영상이고 다 까 버린 탓에.
각종 언론에서는 누가 누가 더 자극적인 제목을 쓰는지 대결하듯 어제의 일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이. 이 새끼…… 실버 주제에……!!”
아메리칸 퍼스트.
세계 최고의 길드가, 계약금으로만 3천억을 질렀단다.
계약금은 그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
그 어마어마한 액수가, 성지한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전 국민이 다 알게 돼 버린 것이다.
따르르릉-!
삑.
“자꾸 전화하지 말랬지!”
기자들의 시달림에 고초를 겪던 김남태가 화풀이하듯 소리를 빽 질렀다.
하지만.
[관리국장님. 여기 민정수석실입니다.]
곧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정부의 실세 중에서도 가장 실세인 비서실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아. 죄…… 죄송합니다!”
[VIP께서는 이번 일이 더 시끄럽게 번지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그게…….”
[성지한과 원만히 끝내시지요.]
“시, 실버 놈한테 굽히고 들어가란 말입니까?”
김남태는 억울한 듯 하소연했지만.
[아니면 직을 거시겠습니까?]
답변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검왕의 일본 귀화 이후.
정부에 대한 여론까지 안 좋아진 마당에, 최고의 유망주라고 할 수 있는 성지한과 관리국장이 갈등을 빚는다?
이런 안 좋은 모양새를 계속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때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김남태로서는 그 의중을 깨닫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수상과 표창장도 조건 달지 말고 수여하시지요.]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관리국장님.]
달칵- 뚜- 뚜-뚜-
“…….”
김남태는 수화기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그래.
성지한 그놈이 유망주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 실버 아닌가?
그런 놈한테, 관리국장이나 되는 사람이 전 국민 앞에서 사과를 한다니.
‘때리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주스를 뿌리려다가 맞은 건 자신 아니었던가.
대한일보에 대한 운을 띄운 것 빼고는…… 그렇게 잘못한 게 있었나?
김남태는 속이 답답하고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찬가지로 답답하고 억울한 건 대한일보 쪽도 마찬가지였다.
* * *
대한일보 사옥 회장실.
그곳에 불려 간 김희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인처럼 서 있었다.
“김희수.”
“네. 할아버지…….”
“네가 기자더냐?”
“……아니요.”
“근데 왜 쓸데없이 나서서 일을 이따위로 만들지?”
70대의 노인, 대한일보의 회장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김희수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한국 최고의 언론사다. 여론을 휘둘러야지, 휘둘려야 할 입장이 아니란 말이다.”
“…….”
“그래. 성지한이란 녀석이 뜨기 전에 기사를 보냈으면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한데,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걸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도 이딴 기사를 내보내!”
쾅!
대한일보 회장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70대인 나도 안다. 배틀넷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는 걸!”
“그, 그게…….”
“스포츠는 배틀넷으로 통합되었다. 거기에 안보에서마저 그들이 맡은 역할이 작지 않아. 플레이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네가…… 배틀넷 아카데미에 다니는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냐?”
할아버지의 지적에 김희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루 만에 완전히 뒤바뀐 여론은, 대한일보와 관리국장을 향해 가열찬 비난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깟 특종 하나 얻어 내려고 하다가, 대한일보에 끼친 손해가 대체 얼마인지.
‘성지한이 이렇게 나올 줄이야……!’
성지한은 그저 능력치만 강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여론을 움직일 줄 알았다.
어느덧 구독자가 50만을 돌파한 자신의 채널에서, 대중에게 여론전을 대놓고 조장하지 않았나.
‘……수틀리면 미국으로 간다는 협박이 너무 뼈아팠어.’
갑질.
그건 지금껏 대한일보 사주 가문이나, 관리국장 측에게 어울리는 단어였다.
실버에 불과한 배틀넷 플레이어에게, 역으로 당할 줄은 상상조차 하질 못했다.
“김희수. 이건 네가 일으킨 문제니, 네 선에서 해결해라.”
“저,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연락을 받지 않아요…….”
“연락을 받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서라도 무릎 꿇고 싹싹 빌어!”
대한일보 회장은 으르렁대면서 책상에 놓인 신문을 구겼다.
“김인식 그놈도 같이 데려가서 확실히 사과하도록 해라.”
“오, 오빠는 아직 깁스 찬 상태인데요?”
“잘됐구나. 그럼 불쌍해서라도 봐줄 수도 있겠지.”
“…….”
김희수는 할 말을 잃었다.
다리가 부러진 손주에게도, 회장은 냉정했다.
“일주일 안에 수습해라. 더 이상 회사에 피해가 가면 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김희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소드 팰리스의 펜트하우스.
“성지한 님…… 저…… 국장님께서, 저번에 있었던 불화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다시 찾아온 박윤식 과장은 국장의 사과를 대신 전했다.
“그리고 표창장 수여식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하십니다. 꼭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합니다만…….”
박윤식 과장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성지한은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군.’
그 인간이 이런 일로 자기가 직접 와서 사과할 리가 없지.
지금 부하를 시켜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한 것도 열 받아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터다.
“제가 원하는 것은 공식적인 사과 표현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와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언론에도 그 입장을 밝히는 것이죠.”
“그, 그게…….”
“그게 선행되지 않는다면, 표창장도 받지 않겠습니다. 관리국에서 주는 건 그다지 받고 싶지 않네요.”
“아…….”
“그럼, 저는 이제 길드를 만들어야 해서요.”
“기, 길드 창설에! 저희 관리국도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원만히 해결하고, 관리국에서 창설하심이……!”
“괜찮아요. 집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과장님께는 유감입니다만…… 지금은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군요.”
“…….”
성지한은 얼굴이 흙색이 된 박윤식 과장을 내보냈다.
사실 관리국장이나 대한일보에 대해서는 어제 이후론 별 감정이 남아 있질 않았다.
보통이었다면 이런 사과도 그냥 받아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날 건들면 피곤할 거라는 걸, 이번 기회에 보여 줄 필요는 있다.’
저들은 본보기였다.
자신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줄 본보기.
때문에 오늘 김남태가 직접 사과하러 왔다고 해도, 바로 받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간 여론에 시달려 봐야지 깨닫는 바가 있을 터.
‘이 문제는 차치하고. 지금 중요한 건, 길드 개설이지.’
성지한은 실버가 된 이후로 활성화된 ‘길드 개설’ 항목을 눌렀다.
[길드를 개설하시겠습니까?]
[길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0만 GP가 필요합니다.]
길드를 만들기 위해 드는 비용은 한화로 100억.
성지한이 베팅으로 벌어들인 돈을 죄다 투자해야 할 만큼 엄청난 비용이었다.
‘관리국의 도움을 받으면 여기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정부의 지원은 공짜가 아니다.
길드 개설에 GP 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정부에선 길드의 지분을 일정 부분 요구했다.
처음에 돈 좀 아끼자고 지분을 주느니, 그냥 자기 돈으로 만드는 게 마음이 편했다.
성지한은 과감히 GP를 지불한 뒤, 다음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길드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길드 이름이라.”
성지한은 길드의 개설 이유를 떠올렸다.
이번에 길드를 만드는 목적은, 첫 번째로는 길드 관련 업적 퀘스트를 깨며 업적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함이었으며.
둘째로는 지금 튜토리얼 시기에는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육성형 길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메리칸 퍼스트 2군 길드처럼 말이지.’
이런 육성형 길드는, 성지한과 윤세아의 성장이 어느 정도 한계치에 이르고 나면 필요성이 점차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효용이 다했을 때는 윤세아의 대기만성이 완성되는 순간일 터.
“대기. 길드 이름은 ‘대기’로 하지.”
그래서 성지한은 길드 이름을 대기만성의 완성인, 대기大器로 지었다.
[길드를 개설했습니다. 길드 등급은 실버입니다.]
[길드를 개설했습니다.]
[특수 업적, ‘길드 개설’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과연.
개설하자마자, 첫 번째 목적에 걸맞게 업적 포인트가 들어왔다.
최근 5만짜리 업적을 연속적으로 깨서 그런지 1만도 작아 보였지만, 사실 저것도 얻기 힘든 포인트.
앞으로 길드 관련 업적을 몇 번 더 깨다 보면, 추가적인 업적 포인트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길드 포인트를 배분하십시오.]
[배분 가능한 포인트는 10포인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목적.
‘육성형 길드’로 가기 위한 길드 포인트 배분이 남았다.
길드 인원 확장 (1/10) - LV.1
능력치 증가 (올스탯 +1) - LV.1
성장률 증가 (+10퍼센트) - LV.1
원래 기존 길드가 가장 먼저 포인트를 투자하는 항목은 ‘길드 인원 확장’이었다.
일단 인원이 불어나야 길드가 확장하며, 성장이 가능했으니까.
‘이건 필요 없지.’
하지만 길드를 철저하게 ‘소수 정예 육성형’으로 만들 생각이었던 성지한으로선 인원 확장에 포인트를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육성형 길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장률 증가.’
올스탯 증가도 배틀넷의 경쟁에서 이겨 내기 위한 필수 옵션이긴 했지만, 육성형 길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성장률’이었다.
포인트 투자 없이도, 훈련을 통해서 스탯과 스킬 성장을 가능케 하는 성장률 증가 옵션.
이 옵션은 인원 확장과 능력치 증가 옵션에 비해 눈에 띄는 효과가 없어서, 튜토리얼 시즌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후의 10국 시기 때는, 대부분의 길드가 2군 길드를 만들어 육성형 길드를 운영했지.’
튜토리얼 종료 이후, 인류가 계속 나락에 빠지면서 어떻게든 이를 이겨 내려고 몸부림친 결과.
육성형 길드를 운영하는 노하우가 발전하게 되면서, 성장률 증가 옵션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지식을, 성지한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옵션은 단독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아.’
육성형 길드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성장률 증가를 부스팅할 요소가 또 필요했다.
‘서포팅 기프트.’
아메리칸 퍼스트 2군 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서포팅 기프트-육성을 지닌 제로였다.
멸망한 한국의, 얼굴도 드러낼 수 없던 이민자가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올랐던 이유는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성지한은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에서 이하연을 검색했다.
‘비록 그녀가 재벌가의 딸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이번 TOP 100 경기 때 돈 좀 벌게 해 줬으니까.
자신의 제안에 어느 정도는 호의적으로 들어 보겠지.
당연히 이하연이 돈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한 성지한이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