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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58화 (58/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58화>

*   *   *

“하하하. 오랜만이네. 성지한 군. 나 기억 나나? 예전에 검왕을 찾아왔을 때 인사했지?”

비대한 몸을 지닌 중년의 남성, 배틀넷 관리국장 김남태.

그는 펜트하우스에 들어오자마자 성지한에게 친근하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그래. 그래. 우리 세아 양도 예쁘게 잘 컸구먼.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김남태는 윤세아를 보며 씨익 웃음 짓더니, 둘을 지나쳐 거실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르던 박윤식 과장이 성지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오늘 활약 잘 보았습니다. 역시 대단하시더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방문해 오실 줄은…… 무슨 일이신가요?”

“아. 그게, 국장님이 꼭 오늘 말씀하실 게 있다고 해서…….”

관리국장이 직접?

“햐. 역시 집이 좋구먼!”

이미 제집인 양 거실에 가서 소리치는 김남태를 보며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가 갑자기 무슨 용건으로 오겠다고 한 거지?

“이 집을 기부하겠다고 하다니. 참 대단해.”

이미 거실에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관리국장은 둘을 향해 까닥까닥 손짓했다.

완전히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성지한의 미간이 더더욱 찌푸려졌지만.

“어휴, 국장님 성격이 좀 호탕하셔서……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성지한은 박윤식 과장의 얼굴을 봐서, 표정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흠. 여기까지 와서 그런데 목이 마르군. 뭐 마실 것 없나?”

“아~ 국장님. 오렌지 쥬스나 커피 드실래요?”

“아. 그래, 세아 양. 그럼 오렌지주스에 얼음 좀 띄워서 주게. 요즘 날이 너무 더워서 말이야. 하하하.”

“네. 과장님이랑 삼촌은요?”

“저는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아.”

그렇게 해서 관리국장의 앞에만 주스가 놓인 채, 성지한과 윤세아 그리고 관리국장과 과장이 테이블을 두고 마주하는 상태가 되었다.

꿀꺽꿀꺽-

한차례 여유롭게 오렌지주스를 들이켠 관리국장은 성지한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성지한 군. 이번에 대단한 활약을 했더구만. 검왕이 나라를 뜨고 나라가 침체된 상황에서, 비록 브론즈지만 자네가 TOP 100 승급전에 들고 거기에 우승까지 하니 국민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네.”

왠지 모르게 관리국장이 ‘비록 브론즈’를 강조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칭찬은 칭찬.

“덕담 감사합니다.”

“그런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

“……무슨 소식입니까?”

“배틀넷 관리국 차원에서, 우수 성과 표창장을 수여하기로 했다네.”

“…….”

성지한은 어이가 없었다.

우수 성과 표창장.

‘겨우 그걸 가지고 저렇게 거들먹거리면서 온 거였나?’

하다못해 GP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종이 쪼가리 하나 주는 것에 불과하건만.

저 꼴을 보느니 그냥 안 받을까도 했지만, 이왕 주는 건 받자고 생각한 성지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표창장이라니……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래. 갓 실버리그에 오른 플레이어에게 표창장이라니, 참 전례 없던 일이야.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

팔아먹을 수도 없는 표창장을 가지고, 김남태는 온갖 생색을 다 냈다.

그렇게 듣는 성지한은 물론 같이 따라온 박윤식 과장까지 불편해할 정도로 이 표창장이 얼마나 영광인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일삼던 그는.

“그런데 말이네.”

갑작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표창장을 받는 데 있어서, 문제 요인이 있더군.”

“문제, 말입니까?”

“그래. 자네, 대한일보와 트러블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

씨익-

김남태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쪽과는, 좀. 사이를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일보 가문이 그래도 영향력으로는 재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단 말이지.”

이에 대해 거론하는 배틀넷 관리국장 김남태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   *   *

-국장님! 저희 아들이 성지한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대한일보 계열 광고 대행사 사장의 주재로 열린 접대 자리.

술이 어느 정도 오가며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사장은 김남태에게 읍소를 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폭행이라뇨?

-제 아들이 실버 등급 워리어인데, 그자가 무슨 수법을 사용했는지 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버렸습니다. 재활 치료를 하는 데만 해도 몇 달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고소하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던 사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성지한이라는 작자가 유망주로 대단히 명성이 높더군요. 괜히 그런 이와 고소전을 남발했다간 본사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을까 봐 걱정됩니다.

-흐음…… 그럴 수 있지요.

-그래서 말인데, 원만히 합의하기 위해서라도 성지한에 대한 매니징을 저희 쪽에서 맡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만…….

김남태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라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폭행 건이 있다지만, 그런 걸로 성지한 선수를 매니징하려고 하다니요.

이때만 해도, 김남태는 철저히 성지한을 대변하려 했다.

성지한이 누구인가!

배틀넷에 입문해서 단 한 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은 이 플레이어는 스타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다.

즉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뜻이었다.

그런데, 기껏 이런 접대 하나로, 대한일보 쪽을 밀어 준다?

김남태의 입장에선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물론, 저희가 관리국장께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흐음…… 그럼요?

-수익 지분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수익을 나눈다고?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성지한. 줏대 없는 녀석이었지.’

검왕 윤세진에게 허리를 굽히러 갈 때, 펜트하우스에서 종종 봐 왔던 성지한.

김남태가 보기에, 그는 검왕의 후광에 빌붙어 살 뿐인 별 볼일 없는 청년이었다.

‘그런 놈 따위야. 어른이 이야기하면 당연히 따라갈 터.’

김남태는 성지한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특히, 광고 대행사 사장에게 전해 들은 귀띔은 그의 확신에 확신을 더했다.

-그…… 설득에 도움이 되실까 하여 전해 드립니다. 윤세아 있지 않습니까? 기프트가 안 좋게 나왔다고 그러더군요. 플레이어를 감히 할 수 없을 정도로요.

…….

“대한일보 측은 폭행을 당한 피해자지만, 자네에게 관대한 제안을 했네. 5년간 자네를 매니징하며, 광고 대행을 전담하겠다고 한 거야. 대한일보 계열의 영향력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그들에게 맡기면 윈-윈이 될 거야.”

“대한일보.”

“그래. 자네가 그쪽 사장 아들의 다리를 부숴 버렸다며? 그런 자네에게 광고를 대행하는 걸로 퉁친다고 하다니! 허헛, 참으로 마음이 넓지 않은가?”

“……하하.”

성지한은 그 말을 듣자마자 헛웃음을 흘렸다.

미국에 있을 당시엔 전혀 기억에도 없던 회사의 사주 따위로, 자신이 이렇게 시간과 감정을 버렸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런 뭣도 아닌 의도로?

‘오히려 잘됐군.’

성지한은 이참에 ‘예의’란 걸 버리기로 결정했다.

“이봐. 개소리도 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뭐?”

관리국장 김남태는 눈을 깜빡거렸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것이다.

반말은 둘째 치고, 관리국장으로 취임한 뒤로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저 경멸 가득한 시선은 너무나도 생경한 것이었으니까.

“자네 지금 뭐라고…….”

“적당히 상대하다 보내 주려고 했는데, 선 넘네.”

“……!?”

“각설하고, 대한일보한테 얼마나 받았지?”

갑작스럽게 바뀐 성지한의 태도에 당황하기도 잠시.

제정신을 차린 김남태가 온 몸을 부들거리며 벌컥 화를 냈다.

“이…… 이 개념 없는 자식이!”

“개념은 네놈이 상실했고. 꼴도 보기 싫으니 빨리 집에서 나가라.”

휙휙.

성지한의 손짓에, 김남태의 얼굴이 홍시처럼 새빨개졌다.

아니, 감히 지금 배틀넷 관리국장인 자신에게.

실버리거밖에 되지 않는 일개 플레이어가 이렇게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김남태가 볼살을 푸들거리며 말했다.

“너, 너너. 이 새끼…… 내가 지금까지 네놈을 생각해서 소드 팰리스 기부받은 거. 처리 안 해 주고 있었건만!”

“퍽도 그랬군. 그걸로 흔드시게?”

“오냐. 당장! 이 집에서 나가!”

김남태 딴에는 효과적인 협박이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었지만, 정작 답변하는 성지한은 평온하기만 했다.

“안 그래도 나갈 준비는 해 놨으니 유치하게 굴지는 말고.”

“이, 이익……! 실버 주제에, 브론즈에서 주목 좀 했다고 기고만장해서는!”

“브론즈도 안 되는 놈이 국장 감투는 왜 썼지? 낙하산이면 낙하산답게 조용히 있어. 말 섞기도 싫으니까.”

“이게!!!”

김남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기 앞에 놓인 오렌지주스 잔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촤악-!

“크흡!”

김남태가 성지한에게 잔을 던지기도 전에.

주스 잔의 내용물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김남태의 안면에 뿌려졌다.

“캄 다운.”

성지한이 친절히 관리국장의 컨디션을 걱정해 준 것이다.

“크으윽…… 이 미친 자식이! 능력을 써?”

“실버 주제에 무슨 능력이 있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하! 윤세아의 기프트가 망했다는 사실도 내가 소문 안 나게 잘 무마시켜 주려고 했건만!”

“세아……?”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던 성지한은 옆에 있는 윤세아를 쳐다보곤, 씩 웃었다.

“세아야. 망했니?”

“아니. 나 완전 잘 나왔는데?”

“허세는! 쫄딱 망해서 수능 본다고 하지 않았나!”

관리국장의 악다구니에, 성지한은 그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그때 자신들을 지켜보던 경비를 추궁한 건가.

“그쪽 걱정과는 달리 잘 나왔으니 걱정 마시고. 이만 집에 가시지?”

휙-

성지한이 손짓하자, 이번에는 관리국장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어…… 어어! 이거 놔! 이거 안 놔?!”

그때, 옆에서 계속 안절부절못하던 박윤식 과장이 벌떡 일어났다.

“제, 제가 일단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박윤식!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저놈한테 겁먹은 거야!?”

“국, 국장님! 그래도, 일단은 가심이……!”

“큭!”

박윤식은 김남태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목례하고는 재빨리 그를 데리고 펜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세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삼촌…… 뭔가, 큰 사고 친 거 아니야?”

“내가? 뭘?”

“배틀넷 관리국장씩이나 되는 사람한테 싸움을 걸었잖아. 관리국장이면 아무래도 배틀넷 업계의 관리자인데…….”

“에이, 저런 놈이 관리자는 무슨.”

성지한이 피식 웃었다.

“저 사람은 플레이어도 아니야. 그냥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에 불과하지.”

“그런가……? 그래도 이렇게 박대하면, 문제가 되는 거 아니야?”

“뭐, 옛날이라면 그랬겠지.”

배틀넷이 들어오지 않았던 예전 세상이라면.

돈과 권력이 인간의 지배적인 통치 수단으로 사용되던 시절에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랐다.

현 시대는 플레이어들 자체가 주체가 되어 세상을 주름잡고 있었다.

그걸 단지 기성세대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하지만 배틀넷이란 거대한 시류를 거스를 순 없었기에, 그들이 나름 타협을 한 게 ‘협회’란 ‘단체’였고, ‘감투’였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되면 대한일보 쪽에서 세아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겠군.’

경비의 말을 근거로 삼아, 윤세아의 기프트가 꽝이라는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기사화할 것이다.

괜한 오해가 생기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세아야.”

“응? 왜?”

“내 채널에서 인터뷰 좀 해야겠다.”

“아~ 기사 나오기 전에 내 기프트 미리 공개하려고?”

“맞아.”

“에이. 그건 하수들이나 하는 방법이잖아.”

윤세아는 오히려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프트 공개는 저쪽에서 기사 나오는 거 보고 하자. 그게 더 재밌지.”

“흐음. 괜히 그 기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사실 윤세아가 말한 방법이 효과 면에서는 더 좋긴 했지만, 그 기사가 널리 퍼지는 동안 윤세아에게 조롱과 비난의 댓글들이 쏟아질 게 뻔히 보였다.

성지한으로선 그 점이 걱정되었지만.

“삼촌? 가끔은 고구마도 먹어 줘야 사이다가 더 맛있어지는 법이라는 거, 알아?”

기우였다.

윤세아는 어느 새 성지한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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