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1화>
* * *
타다다닥- 타탁-
이하연은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연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이는 얼굴.
그런 이하연의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임가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하연의 모니터가 비추고 있는 화면은 다름 아닌 배틀넷 베팅 사이트였으니까.
“역시 토쟁이들이 참 빨라.”
“그게 토토인 건 인정하셨군요.”
“아. 정정. 승부사들은 참 정보가 빨라.”
“……하아. 그래서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아가씨?”
“지한 씨의 1등 배당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아. 1.8배 수준이야.”
배당률이 높지 않다는 건, 사람들이 성지한의 1등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성지한의 TOP 100 승급전 합류 소식이 알려진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도박사들은 성지한에 대한 조사를 이미 마친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낮은 겁니까?”
“응. 배당률 낮은 거로 순위를 매기면 2등이야. 뭐, 지한 씨 동영상만 봐도 이 사람이 얼마나 격이 다른 플레이어인지는 잘 알 테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사람이니.”
“응. 여기에 최다 킬도 같이 넣어서 베팅하면……?”
최다 킬까지 성지한으로 넣어 베팅을 묶자, 배당은 3배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 정도면…… 아쉽지만 날린 원금은 상당량 회복할 수 있어.”
“3배나 벌고도 원금 회복이 안 되는 거였습니까?!”
“……자세한 건 묻지 말아 줄래?”
“알겠습니다.”
이 도박녀는 대체 돈을 얼마나 날린 건가.
임가영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아가씨의 부탁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대신,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근데 그런 성지한을 제치고 배당률 1등을 한 사람은 누구죠?”
“배당률 가장 낮은 사람? 그러게. 아…… 여기 있네.”
이번 브론즈리그 TOP 100 승급전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각광받는 플레이어.
그의 이름을 보자, 이하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국의…… 배런 윌리엄스.”
“배런. 그가 이번 승급전에 나왔군요.”
배런 윌리엄스.
미국의 브론즈들 중, 가장 강력한 이들만 모인다는 뉴욕 1 에어리어를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마법사의 이름이었다.
“얼마 전에 인터뷰에서 자기 기프트를 공개했지?”
“맞습니다. 자기가 SSS급 기프트, ‘내 상태창 2개’를 지녔다고 자랑했죠.”
SSS급 기프트를 지닌 데다 백인이기도 하고, 잘생기기까지.
미국에서는 벌써부터 여느 다이아리거 못지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법사였다.
“지한 씨처럼 전부 1등은 못했지만…… 그래도 ‘그 뉴욕 1’에서 75퍼센트의 확률로 1등을 했어.”
“예. 뉴욕 1의 리그 수준이 아무래도 강남 1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런에게 베팅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세계 최강의 대국, 미국.
미국은 배틀넷에 있어서도 최상급의 인프라를 자랑했고, 선수들 수준도 가장 높았다.
특히 뉴욕 1 리그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최소 기프트 등급은 무려 S.
다른 나라 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기에, 뉴욕 1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리그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 뉴욕 1에서 75%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자랑한 배런 윌리엄스.
그의 배당률이 가장 낮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음…….”
이하연은 베팅을 하기 전, 배런을 검색했다.
브론즈 플레이어임에도 불구하고, 배런의 하이라이트 영상은 수도 없이 올라와 있었다.
하나하나 구성된 장면이 다른 게, 모조리 보기 좋게 편집까지 되어 있는 수준으로.
“와, 이 사람도 장난 아니네.”
영상에서 나온 배런은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대마법사였다.
그의 손짓에 온 사방이 불바다로 변하고.
땅이 뒤집어지며 벼락이 내리쳤다.
워리어는 접근도 하기 전에 불타 사라져 버렸으며.
아처들의 화살은 날아오는 중간에 힘을 잃고 떨어져 버렸다.
“접근 자체가 안 되네.”
“특수한 힘…… 기프트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게. 저거 마법 아니지?”
“네. 참 아무리 생각해도, 배틀넷에 게임 밸런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영이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니.”
둘은 그 영상을 보면서, 배런의 힘이 성지한의 염동력과 똑같다고는 생각하질 못했다.
배런이 포스를 운용하는 방식은 마법사로서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느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무지막지한 화력을 지녔으면서, 적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특수한 방법까지 지닌 배런 윌리엄스를 보면서.
이하연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배런도 엄청 세 보이는데…… 지한 씨가 이길 수 있을까?”
“글쎄요.”
이하연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쩌지…… 어쩌지?!”
“성지한에게 거는 게 아니었습니까?”
“왠지 배런이 더 세 보인단 말이지.”
“아가씨 징크스인 손톱 깨물기가 나왔는데, 딴생각 마시고 그냥 성지한에게 거시죠?”
“아. 나 언제 물었지? 음…… 아니야! 원래 지한 씨에게 걸려고 했는데 손톱을 깨문 거잖아? 그럼 이건 지한 씨에게 걸지 말고 배런에 걸라는 뜻 아닐까?!”
자기 좋을 대로의 해석이었다.
결국 이하연은 배런에게 거액의 돈을 걸었다.
“지한 씨한테도 뭐……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조금 걸어야겠지.”
반면 성지한에게 건 돈은 배런에게 건 금액의 2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이거, 또 광복절 때가 떠오르는데.’
그걸 뒤에서 보고 있던 임가영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냈다.
‘난…… 성지한한테 걸어야겠다.’
자기가 보기에도 배런이 강해 보이긴 했지만, 임가영은 눈에 보이는 차이보다 ‘이하연의 징크스’를 믿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가씨.’
* * *
“배런도 이 시기에 브론즈였군.”
성지한은 배틀넷 베팅 사이트에 들어가, 배런의 이름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세계 랭킹 1위였던 배런 윌리엄스.
그의 시작이 2020년인 줄은 몰랐다.
‘아메리칸 퍼스트 때의 빚을 갚아 주지.’
배런과 성지한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는 정작 성지한을 차별해 왔다.
그가 비록 미국 국적으로 서류상 귀화했다고 해도, 배틀넷에서의 국적은 한국에서 변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틀넷에서 국적 보너스를 받지 못했었지.’
튜토리얼이 끝나면서, 점차 더 많은 컨텐츠가 더 풀리기 시작한 배틀넷.
그렇게 해방된 컨텐츠 중에서는, 플레이어를 위한 수많은 업그레이드 요소도 있었다.
국적에 따른 보너스 효과가 그 예였다.
그래서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 플레이어들은 국적 보너스 효과까지 받아 더욱 강해진 데 반해.
망국의 플레이어들은 멸망한 나라의 국적을 끝까지 가져가며 보너스도 받질 못했다.
능력치의 격차는 점점 커졌으며, 자국민이냐 아니냐에 따른 차별도 심해졌다.
‘그러고 보면 저번 생에선 국적 보너스 없이 잘도 7위를 찍었네.’
망국의 플레이어인 성지한이 세계 랭킹 7위까지 오른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워낙 그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일.
그래서 배런은 성지한이 아메리칸이 아니라고 차별하면서도, 사냥개로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래도 고맙군.”
성지한은 배당률이 가장 낮은 배런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TOP 100 승급전에 나서 준 덕분에 자신의 배당률이 높아졌으니까.
‘그러니 내가 다 가져가 주마.’
성지한은 광복절 한일전에 베팅해서 번 돈을, 그대로 자신에게 쏟아부었다.
1등에 최다 킬까지 넣어서 해 보니, 검왕 때와는 달리 배당률 자체는 3배가 조금 넘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그래도 성공하면 재산이 100억이 넘어가겠군.’
워낙 많은 돈을 걸었기에, 그만큼 돌아오는 액수도 컸다.
“삼촌. 뭐 해?”
“셀프 베팅 중이야.”
“아~ TOP 100 경기?”
“응. 내가 1등할 게 확실한데, 이럴 때 돈을 벌어야지.”
“……그, 배런이란 사람도. 좀 세 보이던데.”
윤세아는 성지한이 화면으로 보고 있던 배런 윌리엄스를 가리키며 조심스레 말했다.
“뉴욕 1을 그만큼 지배한 플레이어가 지금껏 없었다고 들었거든.”
“뭐. 그렇겠지. 내 상태창 2개는 그만큼 사기 기프트니까.”
“응.”
“하지만 내가 이겨. 쟤, 발컨이거든.”
“바, 발컨이라고?”
“아, 발컨이 뭔지 모르나? 발로 컨트롤한다고.”
“에이, 나도 그건 알아.”
윤세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상 속의 배런은 이렇게도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 주고 있는데, 발컨이라는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삼촌. 그만큼 확실하면…… 나도 걸까?”
“너도?”
“응.”
“됐어. 삼촌씩이나 돼서 조카한테 도박을 권유하고 싶진 않거든?”
“이번 거는 도박이 아니지 않아? 어차피 삼촌이 1등할 텐데.”
“아니. 그래도 도박은 도박이지.”
승패를 떠나, 돈을 걸고 그게 몇 배로 돌아오는 그 감각과 행위.
성지한은 거기에 윤세아가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참 나…… 도박 중독자였던 삼촌이 그러니까 참 설득력이 있네.”
“이런 건 애초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해.”
어차피 돈이야 대기만성을 지닌 윤세아가 성장만 잘하면 얼마든지 굴러 들어올 텐데.
괜히 여기서 중독성 최강인 배틀넷 베팅을 잘못 접하게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칫…… 알았어.”
“잘 생각했어. 근데…… 왜 교복 입고 있어? 아카데미 그만둔 거 아니었어?”
“응. 그만둘 거야. 그래도 자퇴서는 내야지.”
기프트를 받고 각성한 학생들에게 자퇴는 흔한 일이었다.
학교를 더 다니느니, 그 시간에 길드에 들어가서 케어를 받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학생회장이자 우등생이었던 윤세아라도 배틀넷 플레이어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굳이 아카데미를 더 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럼 이게 마지막 등굣길이겠구나. 가자, 그럼.”
* * *
“이익……! 너……!”
김희수는 학교에 나온 윤세아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번 윤세아의 생일날, 머리카락과 눈썹이 뽑히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주말 동안 어떻게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이리저리 노력한 끝에 어떻게든 커버를 쳤지만.
그때 당시 성지한에게 무자비하게 털이 뽑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했다.
그렇게 자기는 이렇게 주말동안 고생해서 홀쭉해져 있는데, 윤세아는 저리 태연한 걸 보니 속이 뒤틀렸다.
“안녕. 눈썹 잘 칠했네. 머리는…… 가발? 원래보다 낫네!”
“……너. 왜 이렇게 태연해? 니네가 대체 뭔 짓 했는지나 알아?! 우리 오빠, 다리 완전히 부러졌어. 깁스해야 한다고!”
“하면 되지. 근데 실버가 브론즈 때려 놓고 다리 부서진 게 문제 아닐까?”
“뭐어?!”
“아니면 고소할 거야? 삼촌을?”
윤세아는 김희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국에서 4년 만에 TOP 100에 나가는 플레이어인데?”
그 말에 김희수는 잠시 흠칫했다.
4년 만에 TOP 100에 든 플레이어.
비록 그가 브론즈라고 해도, ‘TOP 100’이 주는 무게감은 적지 않았다.
벌써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는 성지한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뜨고.
언론에서는 서로 앞다투어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검왕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 출신의 배틀넷 대형 유망주!
아무리 대한일보라고 해도, 성지한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었다.
“……너. 우리가 정말 못할 줄 알아?”
김희수는 애써 그리 말했지만, 목소리는 어느새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응. 못할 거 같아.”
윤세아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너…… 어디 가!”
“자퇴서 내러. 쌤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더는 앉아 있기 싫네. 또 털 날아올 거 같거든.”
윤세아가 자신의 눈썹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이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반면 김희수는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끈 떨어진 천민 따위한테 이렇게 무시를 당하다니…….
그녀는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소리를 빽 질렀다.
“야! 니들은 그걸 그냥 보고 있어?!”
“왜, 같이 지랄하라고?”
“우리가 미쳤니? 당연히 그냥 봐야지.”
“윤세아 쟤 기프트 잘 받은 거면 어쩌려고?”
이것들이…….
언제는 윤세아를 뒤에서 그렇게 씹더니.
김희수가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저년 기프트……!’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모두 윤세아의 기프트를 독점 인터뷰하려다 벌어진 게 아니었나.
김희수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다가.
문득 기프트관에 있는 CCTV를 떠올렸다.
‘……거기서 건질 게 있지 않을까?’
드르르륵.
김희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교실 밖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