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8화>
* * *
후두두둑-
포스의 힘에 의해 뿌리째 뽑혀 나간 머리카락이 땅바닥에 툭툭 떨어져 내렸다.
“이…… 이 자식이……!”
안 그래도 없어서 신경 쓰고 있던 머리숱이다.
머리카락 때문에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사람들이 30대 초반으로 봤기에 얼마나 애지중지 관리해 왔던가.
“씨발!!!!! 죽여 버리겠어!!”
“잠깐……!”
“오, 오빠! 멈춰!”
경비와 사촌의 만류 따위는 한 귀로 흘린 김인식이 황소처럼 성지한에게 돌진했다.
레벨 50의 워리어.
아무리 현실 세계에서는 게임에서보다 힘이 너프된다지만, 그쯤 되면 초인이나 다름없었다.
콰아아아!
김인식의 주먹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성지한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레벨 50의 공격은 빠르고 치명적이다.
거기에 스톤 스킨으로 돌처럼 딱딱해진 피부로 인해 그의 주먹은 하나의 거대한 철퇴나 마찬가지.
아무리 같은 플레이어라 해도, 브론즈가 저걸 맞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마, 망했어!’
김희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적당히 협박만 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지게 생겼다.
특히, 김인식의 기프트는 힘 A.
진짜로 저 주먹에 직격당한다면, 머리가 터져 나갈지도…….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마라……!’
김희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스으으윽-
쏜살같이 뻗어가던 김인식의 주먹이, 점점 느려졌다.
“아, 아니?!”
김인식의 몸이 늪에 빠진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성지한이 지배하는 포스의 절대영역에 들어와 버린 탓이었다.
그의 사방에서 짓누르는 억압은, 아무리 실버리거인 김인식이라고 해도 가볍게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느려 터져진 주먹에, 성지한이 마주 주먹을 뻗었다.
“큭……!”
콰지지직!
그러자 김인식의 주먹에서부터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오며, 돌처럼 딱딱하게 변한 피부의 표면에 금이 갔다.
‘스톤 스킨’이 깨지는 현상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다.
상대는 브론즈.
아무리 요즘 강하다고 소문이 난 플레이어라지만, 자신과는 20레벨 넘게 차이가 났다.
거기에 스톤 스킨까지 사용했으니, 주먹이 깨져야 할 건 누가 봐도 김인식이 아니라 성지한이어야 했다.
아무리 상대가 염동력을 썼다고 해도, 기본적인 스펙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하지만, 나타나는 결과는 정반대였다.
“실버 수준이 겨우 이 정도였나?”
“이익……!!!”
김인식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아무리 그래도, 브론즈에게 이딴 모욕을 당하다니.
자신이 형편없게 깨진 것을 보고 경각심을 느낄 만도 하건만, 그는 화가 먼저 치밀어 올랐다.
“뒈져!”
휙!
김인식은 기습적으로 성지한의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포스의 절대영역 안에 들어온 상태.
기세 좋게 로우킥을 날리려 했지만, 그의 발은 느릿느릿하기만 했다.
“매를 버는군.”
성지한이 김인식의 다리에 마주 로우 킥을 날렸다.
빠직!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던, 다리의 스톤 스킨이 무력하게 부서지며 뼈까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억……!”
배틀넷 게임 내에서와는 달리, 스트레이트로 전달되는 통증은 실버리거인 그로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김인식이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땅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아프다.
너무나도 아프다.
50레벨의 워리어이자 파티의 최전방을 책임지는 탱커의 모습과는 걸맞지 않게, 김인식의 눈가에는 눈물마저 맺히고 있었다.
“이,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어떻게 브론즈가…….”
약해 빠졌군.
겨우 뼈 하나 부러졌다고, 50레벨씩이나 되는 워리어가 징징대는 꼴이라니.
성지한은 손바닥을 폈다가 움켜쥐었다.
두두둑!
“커, 컥……! 누, 눈은!!”
눈 근처에 갑자기 통증이 일어나자, 김인식은 기겁하며 두 눈을 가렸다.
저 괴물 같은 놈이 눈알이라도 뽑는 게 아닌지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뽑힌 것은 눈이 아니라 눈썹.
떨리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뿌리째 뽑힌 눈썹이 가닥가닥 떨어져 내렸다.
“으…… 으으으…….”
김인식은 여전히 두 눈을 가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모습.
“오, 오빠! 당신 미쳤어!?”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김희수가 대경한 얼굴로 뛰어왔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다니! 폭행죄로 당장 고소할 거야!”
“고소한다고? 난 저놈이 때리는 거 맞받아친 거밖에 없는데?”
정당방위다, 이건가?
으드득.
김희수는 이를 갈았다.
“당신이 머리카락 먼저 뽑았잖아!”
“그럼 그걸로 고소하던가.”
“……당신, 누굴 건드렸는지 알고 있어? 당신은 지금 대한일보 가문을 건드린 거야!”
“대한일보?”
“그래! 어디서 끈도 떨어진 게 주제도 모르고……!”
두 눈에 쌍심지를 켠 김희수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 댔다.
사촌 오빠 김인식도, 비록 방계라지만 대한일보 가문의 사람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근본도 없는 서민에게 처참한 취급을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 삼촌!”
기프트 관에서 나온 윤세아가 황급히 달려왔다.
대체 뭣 때문에 이런 사고가 터졌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중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희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윤세아. 너 때문이잖아!”
“……나 때문이라고?”
“네까짓 게 계속 인터뷰를 거절하니까 그렇지! 내가 해 준다는데 얌전히 받아들일 것이지! 괜히 오빠를 데려왔다가 이게 뭐냐고……!”
“인터뷰는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
“시끄러워! 내가 한다면 하는 거야! 이제 애비 애미도 없는 년이 어디서 그렇게 튕기고…… 아아악!”
갑자기, 김희수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혔다.
김인식 때와는 다르게, 원형 탈모처럼 가운데만 뻥 뚫린 김희수.
그녀는 머리가 통째로 뽑힌 통증에 눈물을 글썽이며, 성지한을 노려보았다.
“그쯤하고 가지?”
“너, 너…… 진짜 미쳤어? 나까지 건드려?”
“대머리 될래?”
“당신, 내가 기필코 매장시켜 버릴 거야! 아직도 니네가 검왕 가족인 줄 알아?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윤세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표정을 굳혔다.
김희수의 협박은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었다.
한국에서 언론사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한일보.
김희수의 가문은 재벌가와도 혼맥으로 이리저리 얽혀 있어, 작정하고 보복을 하려고 들면 이를 당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거기에 김희수 말대로, 윤세아와 성지한은 더 이상 ‘검왕의 가족’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뒷배가 사라진 상황.
얼마든지 저쪽에서 매장시키려면, 매장시킬 수 있었다.
‘사과…… 해야 해.’
윤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래도 F급을 받아 심란한데.
이젠 친구라는 가면도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명령조로 소리치는 김희수에게 사과해야 한다니.
오늘은 정말 최악의 생일이었다.
윤세아는 성지한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려고 했지만.
‘……어?’
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괜찮아.”
성지한은 포스로 윤세아를 뒤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표독스러운 눈을 한 김희수가 그런 성지한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해 봐. 매장.”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내가 못할 줄 알아!?”
“어. 해. 어차피 나야 세아 데리고 대한민국 뜨면 그만이거든.”
“뭐?!”
성지한은 발치에 쓰러진 김인식을 툭툭 쳤다.
“실버도 한 방에 보내는 브론즈. 나를 탐내는 나라는 차고 넘치겠지. 요새 일본 쪽 스카우터는 매일 질척거리고 있고, 요즘은 미국과 중국에서도 연락이 오더군.”
“……너.”
“웬만하면 조국에서 플레이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대한일보가 저 매장시킨다고 해서 그냥 미국에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이러고 이민 가 버리지 뭐. 세계 최고의 유망주가 언론사의 횡포로 나라를 떴다고 알려지면, 그거 참 재밌겠어. 그치?”
“누, 누가 세계 최고의 유망주야!”
“당연히 나지.”
성지한은 얼굴 표정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말했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김희수는 그걸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웬만한 유망주라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겠지만…… 이 자식은 그 정도가 아니야.’
성지한이 브론즈 리그에서 보여 주고 있는 성적은 미친 수준.
거기에 지금 눈앞에서, 실버 50레벨 워리어를 단번에 무력화시키질 않았던가.
이 정도면 그의 말대로, 세계 최고의 유망주가 아닌가.
적어도 전 세계 브론즈들 중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는 든다고 봐도 됐다.
‘거기에 이 인간. 배틀튜브 구독자도 많아…….’
단적으로 말해, 그가 자신의 채널에서 ‘대한일보 때문에 이민 가요.’라고 말하고.
미국에 가서 뛰어난 플레이어로 발전한다면?
대한일보는 김희수가 벌인 일 때문에 불필요한 욕만 얻어먹게 될 것이다.
특히 검왕이 떠나, 지역 리그 꼴찌가 될 위기에 처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뛰어난 플레이어가 절실했으니.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대한일보가 훨씬 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걸 생각하니,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조금 식었다.
“……여기서 우리한테 사과하면. 한 번은 넘어가 줄 수 있어.”
김희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최대한 양보해서 사과를 요구했지만.
“사과는 너나 하고.”
“진짜 이렇게 나올 거야?!”
“당연하지.”
휙. 휙.
성지한은 파리 쫓듯 손바닥을 내저었다.
“사과하기 싫으면, 그냥 저놈 데리고 꺼져.”
“이이익! 이대로 넘어갈 줄 알…… 꺄아악!”
두두둑!
김희수의 왼쪽 눈썹이 통째로 뽑히자.
이를 황망히 지켜보던 경비가 입을 쩍 벌렸다.
이 사람, 상대가 누구든 가차 없구나.
‘나…… 잘못한 거 없었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소리 지르면, 다음엔 오른쪽이다.”
“이…… 이…… 미친 새끼…….”
“흠. 아니지. 이번엔 다른 걸 뽑아 볼까?”
성지한이 한마디를 덧붙이자.
김희수는 몸을 움찔하다가, 중년 기자에게 손짓했다.
저 인간, 진짜로 할 놈이다.
일단은 자리를 떠야 했다.
“뭐 해요! 오빠 부축해요!”
“네, 넵!”
“으. 으으…… 살살…… 다리 부러졌어…….”
“아이 씨,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뭐야 진짜!”
성지한이랑은 눈도 안 마주치고, 사촌 오빠를 끌고 사라지는 김희수 일행.
그걸 보고, 어느새 마비가 풀린 윤세아는 눈을 껌벅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
“……저 인간이 나한테 집적대려고 했다고? 인터뷰도 억지로 하려고 했고?”
“그래.”
“그래도 삼촌…… 대한일보 사람 저렇게 만들면, 큰일 나는 거 아닐까?”
“괜찮아.”
그가 건드린 대한일보는 언론사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신문사로 사회적인 영향력이 막대했지만.
성지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삼촌…… 대한일보 가문. 엄청 큰 곳인데. 거기 신문사만 하는 게 아니야. 거기에 여러 재벌가랑 혼맥으로 얽혀 있다고.”
“상관없어. 영 귀찮게 하면 미국 가면 되거든.”
“응? 언제 미국에서 제안 들어왔어?”
“뭐, 언젠가 하겠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태연한 대답이었다.
“엥?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게…… 아니야?”
“응. 어차피 시간문제잖아?”
“으으…… 삼촌! 걱정도 안 돼?”
“걱정을 왜 해.”
“저쪽은 대한일보잖아…….”
성지한은 낯빛이 어두워진 윤세아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세아야, 지금은 배틀넷 시대야. 유망한 플레이어의 위상은 네 생각보다 훨씬 높아.”
“그래도…….”
“거기에 튜토리얼 시즌이 끝나고 나면 플레이어의 가치는 더욱 올라가게 될 거거든.”
미래를 살고 온 성지한은, 이를 확실히 몸으로 겪어 왔던 산증인이었다.
2020년인 지금, 배틀넷 플레이어의 위상은 통합 스포츠 선수이자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튜토리얼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플레이어의 수준이 곧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뛰어난 플레이어가 없는 나라는, 멸망했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어.”
자신만만한 성지한.
윤세아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능력이 있으니 이럴 수 있구나.’
좋겠다.
윤세아는 삼촌을 보며, 가슴속 깊이 부러움을 느꼈다.
조금 전, 자신은 뒷일이 걱정돼서 김희수에게 고개를 숙이려고 했는데.
성지한은 독보적인 능력이 있으니, 저 정도의 상대에게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기프트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저렇게 당당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F급을 받았으니, 이제는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삼촌.”
“응?”
“나…… 망했어. 아무래도 수능 공부해야 할 거 같아.”
“……그래?”
“응. 학교도 자퇴해야겠어. 아카데미는 내신을 인정 안 해 주잖아.”
특수 목적으로 설립된 배틀넷 아카데미.
교과 과목이 일반고와는 완전히 달랐기에, 일반 대학교에서는 이곳의 내신을 잘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기프트를 못 받고 대입을 하려는 학생들은 자퇴해서 검정고시로 진학하곤 했다.
“세아야.”
“응 삼촌.”
“내 상태창, 볼래?”
윤세아는 그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 자기는 F등급 기프트 받아 심란해 죽겠구만!
위로는 못해 줄망정, 갑자기 웬 상태창을 보여 준다는 거야.
“……볼래.”
그래도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다.
“보고 놀라지 마. 자세한 건 집에서 말해 줄게.”
이내 윤세아는 성지한이 띄운 상태창을 보고는.
두 눈을 비볐다.
“헐. 이게…… 말이 돼?”